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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주자 <장영주> 천재소녀에서 21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이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지난 99년 공연 이후 약 2년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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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힘 - '절제의 미'
천재라고 일컬어지던 많은 연주자들이 10대 때 누렸던 명성과 기대를
이어가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이제 스무살을 막 넘긴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
그는 이제 천재소녀에서 21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박영선 : 서울에 와서 이렇게 공원을 걸어 볼 기회가 있어요?
장영주 : 별로 없어요. (웃음) 서울에 올때는 대부분 호텔하고, 연주하는 홀, 그리고 레스토랑 뭐이런데쯤이죠.
박영선 : 공원에 처음 오셨죠?
장영주 : 이뻐요, 굉장히 이쁜데요.
박영선 : 저도 사실은 여기 가까이에 있지만 와본건 처음이에요.
박영선 : 이번 서울에 연주하러 온게2년만인가요?
장영주 : 그렇죠. 그때 밀레니엄 연주하러요, 왔다가.. 연주하러는 이번이.. 오래간만이죠.
박영선 : 서울오면 항상 어때요? 편안하세요?
장영주 : 너무 좋아요.
박영선 : 어떤면에서?
장영주 : 여기 할아버지도 계시고, 사촌들, 이모, 이모부 다 계시고, 그리고 여기오면 굉장히 편해요. 연주를 굉장히 편한 맘으로 하게 되고요, 그리고 한국분들께서 너무나 많은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시니까,
특히 이번엔 외국 오케스트라고, 런던필하고 쿠르트 마주르하고 같이
오니까요, 굉장히 자랑스럽고요, 그리고 오케스트라 멤버들께서도 제가 한국사람이고, 여기서 물론 태어나진 않았지만 한국사람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걸 아니까요, 이번에 온거 굉장히 기대한다 그러더라고요.
박영선 : 서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서울을 편안하게 느끼고, 한국말도 잘하고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이 더 좋아하는거 같아요. (웃음)
8살 데뷰할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박영선 : 천재니, 신동이니, 이런 얘기를 듣던 음악가들이 성숙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장영주양의 경우에는 그것이 계속 되고 있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장영주 : 처음에 데뷔할땐 사실 신나고 쉽죠. 데뷔할때가 제일 쉬워요. 그.. 굉장히 중요한 12살, 13살 그 스테이지(무대)에 엄마 아빠께서 굉장히 조심하시면서요, 연주들어오는거 다 하지 않았구요, 굉장히 리미트(제한)를 터프(엄격)하게 했구요, 학교도 다니면서, 레코딩도 막 만들지 않았어요. 제가 준비 됐다 생각할 때 그냥 꾸준하긴 한데 천천히.. 만들고 싶다면 만들었고. 그러니까 굉장히 저를 푸쉬(강요)를 안하셨어요. 그렇게 하셔서 지금 제가 음악을 아직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하는거 좋아하고 무대에 서는 걸 아직도 사랑하고
그러니까요. 일단 다니고, 연주하고.. 투어 힘든거 다 상관없이 무대에 서는 그 순간의 행복은 정말 누구와 바꿀 수 없죠.
박영선 :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건 언제입니까?
장영주 : (웃음)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때요? 가끔가다 있죠.. 바이얼린하고 커리어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 안해요. 바이얼린하고, 레코딩하고, 연주하고 이런거에 대해선 굉장히 럭키하고, 운이 좋고, 굉장히
감사하고요. 다른거, 바이얼린만 하고 음악에만 신경썼으면 참 좋겠을 때, 다른거 막 붙어있는게 어떨땐 참 싫어요.
박영선 : 붙어있는거라는게 인터뷰.. 모 그런거에요?
장영주 : 인터뷰 뿐이 아니라요, 인터뷰가 어떨땐 정말 재미 있을때도
있어요. 어떨땐요. 근데 페이퍼워크(숙제)부터 시작해서 메니지먼트사이드 (박영선 : 숙제?) 숙제. 16살때까지 숙제도 굉장히 힘들었죠.
왜냐하면 하이스쿨(고등학교) 다니면서 연주하면서 레코딩하면서 이메일로 보내고 팩스로 보내고 하는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연주 끝나고 디너 파티도 있고, 리셉션도 있고, 정말 힘들어서 호텔가서 자고 싶은데 그때부터 숙제한다.. 그게 재미있지 않았어요. 정말
재미 없었어요, 그건. 그거 끝나니까 그래도 좀 괜찮구요..
박영선 : 그렇지만 그런 평범한 생활이 또 계속 됐기 때문에, 에너지가 지속될 수 있었죠?
장영주 : 그럼요.
박영선 : 부모님들이 절제를 계속 가르쳐 주셨군요.
장영주 : 그럴 수도 있죠.
박영선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브람스이면서도 18살이 되기전까지는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았고 베토벤 역시 지금까지 연주 스케줄에 넣지 않았던 것도 그가 쌓아온 절제의 미 였습니다.
박영선 :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런 얘기를 했던데, 2000년이 되기 전에는 베토벤, 브람스를 하지 말라고.. 그랬다고…
장영주 : 하하.. 2000년.. 시간보다는, 사실 베토벤, 브람스를 줄리어드
프리컬리지(예비학교) 다닐 때 8살, 9살때 그때 다 배웠는데요, 그때
무대 서서 베토벤, 브람스 연주하는거는 그렇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물론, 테크닉컬리(기교적으로는) 다 되는데, 음악적으로 그걸 이해하긴 시작도 못하죠. 그래서 브람스는 제가 18살은 되어야지 첫번째 대중앞에 선 보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고요, 사실, 브람스라는게
40, 50살이 되어서도, 완벽하게 된다기보다 반 정도만 제가 이해하고
싶어도, 지금부터 연주를 조금씩 조금씩 해야지, 그래야 제가 편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람스는 작년부터하기 시작했고요, 베토벤은
2002년도부터 연주 스케줄이 잡혀있어요. (박영선 : 아직 안했군요?)
아직 안했는데 2002년 9월달에 처음 베토벤 연주가 있어요.
박영선 : 작곡가마다 특징이 있지 않습니까? (장:그럼요) 어느 작곡가가 가장 자기하고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장영주 : 저는 퍼스널리(개인적으로) 브람스를 굉장히 사랑해요. 그
콘체르토가.. 기가 막히고, 바이얼린 콘체트로 중에서도 저는 이걸 완전히 탑으로 보는데요, 그거 말고는 저는 사실 시벨리우스를 좋아하구요, 그리도 발토 콘체르토도 옛날부터 많이 했구요, 많이하고, 개인으로서도 참 좋아하죠.
매일 매일 변화하는 "신동"
박영선 : 제가 96년돈가요..? 헐리웃볼 공연을 봤을 때 그때 다른 연주자들보다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고 생각했었어요. 곡을 해석하는 것이
굉장히 에너제틱하다고(열정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장: 그때 무슨곡이었죠?) 잘 생각안나요. (저도 생각이 잘 안나요..) 하여튼, 템포가 굉장히 빨랐어요. 그랬는데, 지금 스무살 넘었잖아요. 곡을 해석하는데
변화같은거 자신이 느껴요?
장영주 : 변화는 계속 일어나죠. 사실 차이코프스키도 이번에 많이 하고 있지만, 마에스트로 마주르가 말하신게요, 어떻게 매일 밤마다 다르냐고 해요. 근데 기계가 아니니까요, 사람이 기계가 아니니까 매번마다 약간씩 달라지죠. 그렇게 하니까 아직두 재밌고요, 템포같은게
빠르고 신나는것도 좋지만, 끝에가선 음악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타일이 어떻게 체인지(변화)하는지, 그게 제일 중요한거죠. 사실 차이코프스키 한국에 굉장히 오래전에 했던 것 같아요, 몇 년전에 했던
것 같은데요, 그때하고 지금하고 굉장히 다르고요, 그리고 저번엔
KBS오케스트라하고 편하고 재밌게 공연했고요, 이번엔 외국 오케스트라고요, 투어를 많이 하고, 연주를 꽤 많이 하고 들어온 오케스트라니까요, 이번엔 한국 퍼블릭한테 런던필 하고 같이하는거 굉장히 저도 신나게 기대하고 있어요.
박영선 : 어떤 음악적인 해석에, 매일 매일 달라진다고 그랬잖아요?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게 뭐에요?
장영주 : 오케스트라하고 연주를 하면서요, 저는 거의 도시를 매주마다 바꾸거든요. 그래서 다른 나라가서 다른 오케스트라하고, 마에스트로하고 연주를 하면 물론 영향이 제일 크구요, 그리고 더 큰 영향은
사실, 그냥 살아가면서.. 친구들하고 시간 보내고,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고 배우는거..겠죠. 영화를 보면서도 배운다고 생각해요, 저는요.
뭔가 마음속에 깊게 무언가 이펙티브하게 느꼈으면 연주할때도 다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사실 연주할 때 첫번째 줄에 앉아계신분하고 저기 위에 3층에 계신분하고 똑같은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소리도 물론 (거기까지 가야되고) 중요하지만 퍼스널한 인터비테이션과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영선 : 그러니까 평상시에 삶에서 느끼는 그런 것들이 음악적인 해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얘기죠? (장영주:네) 책 많이 읽어요?
장영주 : 책 많이 읽어요. 비행기 타면서, 기차 타면서 자던지 책 읽어요, 전.
박영선 : 책속에서도 많이 느끼고..? (장영주: 그럼요)
박영선 : 그럼 바이얼린 말고, 일상 생활에서 평범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어떤걸 좋아하세요?
장영주 : 친구들하고 영화관 가는 거 굉장히 좋아하고요,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사실, 한국하고 일본 오기 전에요, 인디아에서 연주했거든요. 그래서 많은 분들.. 특히 메니지먼트쪽에서 인디아 지금 가지
말라고.. 지금 그렇게 좋을 때 아니라면서 가지 말라면서 저한테 어드바이스(충고) 했는데요, 전 마에스트로 메타(주빈메타)하고 연주했었고요, 그리고 이스라엘 필 하고 하니까.. 그래도 하고싶다, 하고 싶어요 전, 그러면서 그냥 갔거든요. 인디아에는 너무 너무 예쁜 파시미나하고 숄하고 예쁜 옷감이 많잖아요. 가서 열개정도는 산거 같아요.
(웃음) 이것도 인디아에서 산거에요. 그러니까 쇼핑도 좋아하고, 연주하러 갔다고 호텔방에서 하루종일 연습하는 것도 아니구요, 나가서
사이트 시팅(관광)도 해야되고 그 도시에 뭐가 있는지도 느껴야 되고
하니까, 참 재밌어요.
박영선 : 어렸을때, 8살때부터 연주를 해서 무대생활한지 12년, 13년
그렇게 됐죠? 그러면.. 어렸을땐 항상 천재, 신동, 이런 단어가 붙어
다녔었는데, 부담스럽지 않으셨어요?
장영주 : 그때는.. 맨 처음 시작할 땐 물론 대단이 큰 영광이었죠. 그
레벨 붙어다니는게 그렇게 방해가 안되요. 맨 처음에는요. 왜냐면 새로운 얼굴이고, 새로운 아티스트고 그러니까 다 재밌죠. 재미있고, 좋고 그런데요, 사실 같이 연주하는 음악가, 그리고 지휘해주시는분은
어리다고 절대로 봐주시는 거 하나도 없었구요,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 당연히도 없구요, 저는 옛날부터 원했던거는 그냥 좋은 음악가로
다니고 싶지, 천재 소녀 뭐 이런소리.. 그건 사실 제가 40살 50살때까지 같이 따라다닐 순 없잖아요.
박영선 : 좋은 음악가는 어떤 의미에요?
장영주 : 좋은 음악가는 다른… 관객뿐만이 아니라 같이 연주하는 뮤지션들, 그러니까 오케스트라 멤버들은, 챔버뮤직, 실내악 연주 같이하는 오케스트라들은 제가 하는 아이디어들을 다 맞다고 생각은 안해도, '아.. 저럴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제가 플레이(연주) 하는걸 좋아하고, 이해하고 끝에가선 '좋은 음악가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게 제 꿈이에요.
박영선 : 어머니가.. 부모님이 이제껏 많은 애를 써주셨잖아요. 스무살 넘었다니까 제가 질문 드리는건데, 부모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이런 느낌 같은건 안가져 보셨어요?
장영주 : 전혀 안멀어지던데요, 하하..(웃음)
박영선 : 어머니랑 자주 싸운다던가..
장영주 : 자주 싸우는쪽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자주 보진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많이 다니구요, 엄마가 3분의 1정도 같이 다니시고요, 아빠도 많이 다니시고.. 항상 누군가는 있어요, 저하고. 근데 사실 이렇게 집 떠나서 다닐때요.. 한 일주일 정도는 혼자 있어도 재밌어도 그
담에는 참.. 혼자있는게 썩 좋은건 아니에요. 제 투어들은 어쩔때는
두달, 세달 이렇게 길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럴때는 엄마 계신게 참
제가 좋구요. 그리고 사실 힘들고, 맨날 비행기타고 새로운 도시가서
곡 바꿔가면서 힘들 때 있잖아요. 힘들어하고 그럴때는 엄마, 엄마 하고 거는거죠. 새벽 두시든, 세시든 상관없이. 거는거죠.
지휘자 마주르에 대해
이번에 동독 출신의 지휘자 마주르가 지휘하는 런던필과 협연하는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현재 뉴욕필을 맡고 있는 거장
마주르와는 리허설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주 협연을 했습니다.
박영선 : 마주르 지휘자는 뭐랄까.. 약간 무섭게 생겼다 그럴까..?
장영주 : 그럴 수 도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하신 분이에요. 음악에 대해선,.. 그러니까 음악하고 관계된, 혹은 리허설 하고 그럴 때 굉장히 터프하세요. 그리고 오피니언이 굉장히 쎄신데, 그건 좋은거죠.
사실. 왜냐면, 음악적으로는 탑 레벨로(최고로) 익스펙트(존경)하시고, 그건 어떤 뮤지션이나 좋아하죠. 사실 마에스트로하고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던지, 아니면 쇼핑을 하던지 그러면 굉장히 따듯하신 분이에요.
박영선 : 네… 개인적으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장영주 : 네. 열한살 때부터 같이 연주를 많이 해서요, 굉장히 편하고,
마에스트로가 사실, 영국하고 루마니아, 지난주엔 일본에서 같이 연주했구요, 계속 런던필하모닉하고 같이 다니고 있으니까요, 이젠 뭐
거의 두번째 할아버지, 세번째 할아버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박영선 : 한국 사람들한텐 동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약간 친숙한 분은 아닌 것 같아요, 마주르. 지휘하시는분이. 장 : 친숙?
박영선 :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는..
장영주 : 아~ 어, 근데 마에스트로는 뉴욕필 뮤직디렉터시구요, 그리고 '라이프치히 반트 하우스'가 독일에서는 굉장히 잘 알려진 오케스트라에요, 히스토리(역사)가 굉장하구요, 굉장히 오래된 오케스트라죠. 맨델스존이 '라이프치히 반트 하우스'의 첫번째 뮤직 디렉터셨어요. 그러니까 히스토린(역사는) 굉장하고, 그리고 마에스트로 마주르가 물론 독일분이지만 뉴욕에서도 지금 뭐 굉장히 오래되셨어요. 잘
알려지고, 그리고 뮤지션들이, 솔로이스트들, 오케스트라 뮤지션들이
마주르를 굉장히 존경해요. 굉장히 좋아해요.
박영선 : 뉴욕필에서는 왜 그만두셨나요?
장영주 : (하하…) 마에스트로도 사실, 같이 저녁 먹고 그럴 때, 스트레스 푸실 때 있죠. 또 설명하시죠. 저는 사실 뉴욕을 주빈메타하고,
그 시절부터같이 연주했으니까요, 메니지먼트도 잘 알구요. 항상 스토리는 사이드가 두 개 있죠. 그런데 저는 마에스트로하고 뉴욕하고
컴비네이션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음악적으로는. 다른건 다
상관없이 음악적으로 좋았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사실 페어(공정)하게 보진 못하죠, 음악가의 입장에서 보니까.
박영선 : 이번에 차이코프스키 연주하시죠? 차이코프스키를 연주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장영주 : 제가 사실 런던필하고 투어를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콘체르토 두개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드보르작은 물론 영국에서도 했지만, 뮌헨에 가서도 하고 계속 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차이코프스키 옛날에 한 다음에 한번도 안했어요. 차이코프스키도 좋고, 그 담에
이번에 끝나자마자 마에스트로하고 뉴욕에 가서 뉴욕필하고 베르그
콘체르토 하기로 되어 있어요. 담주에요. 그래서 마에스트로하고 지금 레파토리 굉장히 많이 하고 있구요, 그리고 굉장히 새로운걸 좋아하셔요, 로맨틱 곡들, 제가 많이하는거, 옛날부터 편하게 많이 했지만, 그래도 베르그, 바르토 이렇게 새로운 곡도 좋아하세요.
하고 싶은 일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하버드 대학 입학 허가서를 받아 들고도 빡빡한 연주 일정 때문에 입학을 보류하고 있는 장영주는 모나지 않은
좋은 음악가로 오래 기억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박영선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입학 허가서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아직 대학교에 입학하진 않았습니까?
장영주 : 그게 2년전이었거든요. 그때 1년동안 생각해보겠다 그랬는데요, 지금 제 스케줄이 2004년도까지 꽉 차있거든요. 그건 클로우즈
되어있고, 2005년도 스케줄링을 지금 하고 있어요. 근데 학교를 하버드 같은 학교를 다니려고 하면 일단 그걸 다 멈춰야 되요. 연주를 해도 열몇개만 하면 가능하겠죠. 근데 저는 그게 아니고 굉장히 많은 연주를 하니까요, 어떻게 밸런스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일단은 지금 그냥 줄리어드. 줄리어드는 음악학교고, 다 이해하는 학교니까, 거기 다니면서 디플로마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걸하고 천천히 생각하는거죠. 하하..
박영선 : 그럼 음악 이외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어요?
장영주 : 하고 싶은건 많죠. 하고 싶은건 너무 많죠. 랭귀지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가 물론 미국에 사니까 영어를 하지만, 독어도 한동안 배웠고, 그리고 히스토리를 굉장히 재미있어해요.
박영선 : 한국말 잘하는 것도 그런 약간의 탤런트(재능)가 있군요?
장영주 : (웃음) 한국말 잘하는게 아니에요 전혀. 전혀 잘하는거 아니에요.
박영선 : 근데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오잖아요.
장영주 : 그거는 엄마, 아빠께서 집에서 쓰시는 한국말이지..
박영선 : 그래도, 집에서 쓰더라도 이렇게 네츄럴하게(자연스럽게) 나오기가 참 힘들거든요.
장영주 : 감사합니다.
박영선 : 그럼 이제 여기 연주 끝나고 뉴욕으로 돌아가시나요?
장영주 : 네. 여기 연주 끝나고 콜로라도에서 연주가 하나 있구요, 마에스트로 마주르하고 뉴욕가서 뉴욕필하모닉 연주회 하고..
박영선 : 사실 테러 때문에.. 공연계도 상당히 얼어붙고 있는데.. 어떻게 느끼세요?
장영주 : 사실.. 뉴욕하고 워싱턴에 테러가 끝난 다음에요, 저는 사실
뉴욕필하고 독일에서 연주한 다음에 런던필하고 루마니아 가 있었어요. 마에스트로 마주르 하고요. 사실 티브이에서 다 같이 보고, 그날
밤에 루마니아에서 연주가 있었는데요, 그때 오케스트라가.. 그떄 제가 굉장히 임프레스(감동)한게, 이게 지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인터네셔널한(국제적인) 문제고, 그리고 런던필하모닉의
멤버들이 완전히 쇼크먹으셨더라구요 다.. 그래서 저한테 와서 괜찮냐.. 뉴욕에 친구들 많고 페밀리(가족)도 미국에 있는데 괜찮냐, 그러면서 너무나 생각을 해주시더라구요. 그게 굉장히 저한테 임프레션(감동)을 만들었구요, 그리고.. 일단 저는 캔슬(취소)을 한게 아무것도
없어요. 많은 아티스트들이 연주 캔슬(취소)하고, 비행기 타기 싫다고
그래서 비행기도 안타고 그러신 분들 많죠. 그리고 그건 다 이해가 가요. 지금 좋을때가 아니니까 다 이해가 가는데요, 저는 일단 그래도
음악.. 하는게 저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구요, 이럴땐요, 특히. 그리고
한국에 오고 이러는건 참 재밌잖아요 (웃음)
박영선 : 한국의 어머니들이 애들을 기르면서 쟤는 참 음악적으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니다 이런거에 상당히 호기심이 많이 있거든요.
(장 : 네-) 그 음악적인 소질은 어떻게 발견하는거에요?
장영주 : 저 몰라요~ (하하..) 우리 엄마께선요, 정말 모르셨다그래요.
제가 첫 아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계시고.. 그냥
피아노~ 세살 반쯤에 시작하고.. 바이얼린 제가 달라고 해서 그냥 선물로 하나 주시고 그래서 하루에 정말 10분정도 연습했거든요? 그거
하면서도 그때 운동도 하고 말 타는 레슨도 하고, 발레도 레슨 하고
그러니까 정말 하는게 너무 많은 거 중에서 바이얼린도 하는거였었어요. 그래서 전혀 음악가가 되고싶다고 해서 시작한게 아니고, 특히 엄마 아빠가 음악을 하시니까 이게 굉장히 힘든 비즈니슨걸 아세요. 아시니까 저는 그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전 항상
느껴요. 한국에서 연주할때마다, 학생들도 굉장히 많이 오구요, 조그만 7살, 8살 된 애들이 연주회에 와요. 전 그게 너무나 좋아요. 왜냐하면, 다른데선 그런게 별루 없어요. 별로 없어요, 정말요. 그래서 그 서포트(지지), 그 음악의 사랑. 그게 굉장한 거 같아요. 한국은.
박영선 : 그래도 왜 예를 들어서 어린 애들이 연주하는 걸 보면 장영주씨 눈에 쟤는 소질이 있을 것 같다, 없을 것 같다, 이런거 보이는 거
있어요?
장영주 : 물론 탤런트(재능)는 금방 보이죠. 학생이 연습을 하고,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을 보내면 할 수 있는 리미트(한계)는 있지만, 일단
태어난 탤런트(재능)하고 음악을 사랑 하는지, 안하는지 그건 배울 수
있는게 아니죠. 그건 정말 타고 나서 음악을 실제로 좋아하고, 음악가, 음악가라는게 자랑스럽고 프라우드한지 아닌지, 그건 누가 배우라 그럴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거고, 정말 본인의 잡(일)이죠.
박영선 : 연주해서 돈 많이 벌었잖아요.. 그거 다 어디다 쓰고 싶어요?
장영주 : 쓰고 싶은건.. 어느정도 악기에 들어가고 있죠. 어느정도 악기에 들어가구요, 그리고… 저는 잘 몰라요. 엄마가 다 하셔요.
박영선 : 앞으로.. 앞으로 번 돈을 어떻게 하고싶다.. 이런거 없어요?
장영주 : 전 사실 제가 살면서 편할 정도만 있으면, 나머진 정말 학교를 차리고 싶다.. 그거 보다는, 음악을 스터디하는 학생들. 학생들하고, 악기. 특히 악기를 좀 빌려주거나 도와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저는.
박영선 : 뉴스위크에서 20세기가 낳은 10대 천재, 거기에 꼽혔잖아요.
그때 사실 굉장히 기분 좋았죠?
장영주 : 좋은것도 있고, 깜짝 놀라죠. 완전 쇼크죠. 친구들이 뉴스위크 사라고 해서 샀는데.. 연다음에 내가 여기 왜 있지? 이러는거죠..
참.. 큰 영광이지만.. 거기에 아인슈타인.. 굉장하신분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해서 하는 사람하고 같이 놔주는게 저는 너무나 너무나
고맙죠. (웃음)
박영선 : 오늘 고맙습니다.
장영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