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트레일-마츄픽츄(Machupicchu)
고대 잉카제국의 케츄아인들이 마츄픽츄로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고 사용했다는 길, 바로 잉카트레일을 통해 마츄픽츄로 간다. 쿠스코에서 우리를 태워 출발한 버스는, 언제든 강둑 밖으로 터져 나와 우리를 집어삼킬 듯 거칠게 흐르는 갈색 우루밤바강의 한 켠에 멈춘다. 국립공원 입장등록을 하고 성난 듯 꿈틀거리는 우루밤바강 위로 구름다리를 타고 지난다. 자신이 순수한 케츄아인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가이드 월터의 설명을 들으며 잉카트레일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드높은 산들이 사방에서 하늘을 가리지만, 워낙 큰 산들이라 경사가 그리 가파르지는 않다. 키가 3미터가 넘는 꽃대를 가진, 알로에같이 생긴 선인장을 비롯해, 난생 처음 보는 여러 식물들을 재미있어하며 생각보다 쉬이 첫날 밤을 묵는 캠핑장에 도착한다. 이곳에 오면서 본 녹색과 노랑색이 섞인 야생 앵무새들이 떼지어 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느 농가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부엌문 사이로 작은 토끼 같은 것들이 조르르 무리 지어 다니는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햄스터처럼 생긴 게, 무척 귀엽다. “꾸이”라고 불리는 이 녀석들은 페루에서는 아주 유명한 식용동물이라는데, 그렇게 귀여운 걸 어떻게 먹을 수가 있나 의아스럽다. 하지만, 저녁 식사 중 맛있는 닭튀김을 먹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닭이 아닌 꾸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사실, 맛이 좋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서 먹고 싶지는 않다. 한 마리 키우는 건 좋아도.
텐트에서 맞는 아침은 언제나 춥고 몸이 뻐근하다. 기지개를 한껏 펴고는, 코카 차를 잔뜩 들이마신다. 오늘은 해발 4200미터의 능선을 하나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길이 험하지는 않다. 울창한 밀림 같은 레인포레스트를 끝없이 계속되는 돌계단들을 오르며 지나면, 거의 일정한 경사가 지속되는 언덕길을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만 쫓아 걸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고도 때문에 숨쉬기가 힘이 든다. 아니, 숨을 많이 쉬어 보아도 별 도움이 되지를 않고 계속 숨이 찬다. 열 발자국 가서는 한 번 쉬고, 다시 열 발자국 가서는 또 한 번 쉬고를 반복하다가 4200미터 능선에 거의 다다라서는, 한 번 멈춰서 숨을 돌리지 않고는 숨이 턱에 닿아 다섯 발자국 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 결국 능선 꼭대기에 올라 우리를 날려버릴 듯하게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금껏 온 길을 내려다 본다. 커다란 산 두 개의 사이에 있는 둥그런 골짜기 길이 시야가 닿는 끝까지 아래로 뻗어 있고, 그 위에는 설산들이 구름을 걸치고는 햇볕을 맞으며 바다의 수평선처럼 넘실대고 있다. 이 곳에서 콘돌을 보면 좋은 징조라기에 열심히 찾아보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콘돌 대신 독수리 한 마리를 본다. 나름 좋은 징조라고 믿고 또다시 한참을 내리막 바위 길을 내려와 두 번째 캠프에 다다랐다. 지금까지는 잉카트레일이 있는 곳까지 온 거고, 내일부터는 진짜 잉카트레일을 밟으며 마츄픽츄를 향한다.
새벽 몇 시나 됐을까. 몸서리쳐지는 차가움에 잠에서 깬다. 등어리부터 엉덩이까지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다. 밤 새 퍼부은 비 때문에 텐트에 물이 샌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침낭을 열고 텐트 밖으로 나와, 장대같이 오는 비를 뚫고 부근 화장실로 간다. 물을 짜낼 수 있는 만큼 짜내고, 너무 추워서 팔벌려뛰기도 하고 팔굽혀펴기도 한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 어딘가에서는, 시냇물이 마구 넘쳐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빗발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더듬더듬 텐트로 돌아가 보니, 선숙도 잠에서 깨어 혼자 울고 있다. 너무나 가여운 모습에 뭉클해져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위로한다. 축축하게 젖은 텐트 바닥에서, 더 이상 잠도 오질 않는다. 침낭과 매트를 접어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어서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린다. 하늘이 조금씩 푸르스름하게 변할 무렵 텐트에서 나와보니, 비는 다행히도 멈췄다. 캠핑장 앞 골짜기 아래에서 짙은 안개구름이 몰려 올라오는 모습이, 꼭 우리를 꿀꺽 삼켜버릴 듯 무시무시하다. 그 거대한 솜덩이 같은 게 텐트 바로 앞까지 왔을 때엔, 손으로 만져질 듯 하다. 하지만 안개는 안개요, 구름은 구름이다. 날이 밝았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하다.
어제 우리가 넘었던 능선은 눈으로 덮여있다. 그곳엔 비 대신 눈이 왔나 보다. 어젯밤의 비가 주위의 폭포들을 잔뜩 살찌워, 풍경이 한층 더 멋지다. 드디어 커다란 바위들을 반듯반듯 쌓고 맞춰 깔아놓은 잉카트레일을 걷는다. 종종 웬만한 TV만 한 돌덩이들이 보이는데, 이 높고 험한 산길에 어떻게 이 많은 돌들을 이리도 정교하게 맞추어 쌓았을까 싶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바람과 빗방울에 의해, 이 돌덩이들의 길은 꽤나 반질반질하게도 닦여 있다. 이따금씩 지나게 되는 고대 잉카제국의 요새들도 케츄아인들의 놀라운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리는 먼 옛날 케츄아인들이 태양의 아들 잉카의 도시로 가며 밟았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숨이 덜 가쁘지만, 그래도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자그마한 몸집의 현지인 짐꾼들은 자기들 몸집보다도 커다란 짐을 등에 짊어지고는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한다. 매년 이곳에서는 포터들 사이에서 경주가 벌어진다는데, 우리가 그저께 출발했던 곳에서 내일 도착할 마츄픽츄까지 가장 빠른 기록이 3시간 15분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3번째 캠핑장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하고는 포터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팁을 증정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순수한 기쁨의 미소가 흘러 넘친다. 이들이 집을 떠나오며 가족들에게 희망의 약속으로 손을 흔들었을 모습을, 그리고 다시 서로들을 만나는 상상을 해 본다.
아침 일찍 캠프를 떠나, 또 산 몇 개를 돌아 넘고는 발을 딛기조차 쉽지 않으리만큼 가파른 돌계단 길을 오른다. 숨이 정말 턱에 닿아 그 꼭대기에 있는 “태양의 문”에 올라 서니, 저 멀리 아래로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마츄픽츄가 보인다. 솔직히, 마츄픽츄의 모습도 감격스럽지만, 이제부터는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려 한다. 산등성이를 따라 나 있는 우리의 잉카트레일 끝자락을 따라 마츄픽츄를 향한다. 주위의 산들은 그 정상과 아래자락이 다 내려다 보일 만큼 뾰족하고 가파르고, 그 산들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우루밤바강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어느새 마츄픽츄에 도착했다. 이 산 자체가 나무들과 풀로 덮인 돌덩이 산인데, 그걸 깎아 수없이 많은 돌덩이들을 식물의 씨앗이 들어갈 빈틈도 없이 쌓아 올려 도시를 만들었다는 게 믿기가 힘들 정도다. 더군다나 저 멀리 산봉우리의 “태양의 문” 근처에서 솟는 물을 받아 일정한 경사로 끊이지 않게 이곳까지 수로를 지어 흐르게 했다는 것. 그 물이 돌을 쌓아 만든 신전을 통과한 뒤, 다시 돌을 쌓아 만든 수로를 통해 이 도시 곳곳의 건물들과 테라스 밭들에 고루 나뉘어 흘렀다는 것. 이 모두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3시간에 걸쳐 이 고대 도시를 둘러보면서 한시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