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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성실의 의미
“시간은 누구에게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제는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일 뿐입니다. 오늘 현재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합니다.”
- 본문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 중에서 -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코카콜라의 더글러스 회장이 임원단을 모아 놓고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신년사를 하였다.
“1년의 소중함을 알려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에게 물어보세요. 1년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달의 소중함을 알려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세요. 한 달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주의 소중함을 알려면, 주간지 편집장에게 물어보세요. 한 주가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려면, 다섯 자녀를 둔 일용직 근로자에게 물어보세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면,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일 분의 소중함을 알려면,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 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일 초의 소중함을 알려면,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일초라는 짧은 시간이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무리하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제는 지나간역사이며,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신비일 뿐입니다. 지금 현재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합니다.”
마부와 노인
어느 추운 겨울밤 한 노인이 길가에서 벌벌 떨면서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마차가 다가왔으나 노인은 마차를 세우지 않았다. 곧이어 다른 마차도 지나쳤지만 역시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잠시 후 세 번째 마차가 다가왔다.
노인은 마차를 세우며 말했다.
“젊은이, 미안하지만 나를 좀 태워줄 수 있겠소? 눈이 많이 내려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구려.”
마차를 몰던 청년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노인을 태워주었다.얼마쯤 와서 노인이 마차에서 내릴 때가 되자 마부인 청년이 물었다.
“어르신, 저보다 앞서가던 마차도 있었는데 왜 그 마부에게는 도움을구하지 않으셨습니까?”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눈을 봤지. 그들은 배려하는 마음이 없더군. 허나 자네의 눈엔 친절과 동정심을 느낄 수 있었지.”
이 말을 들은 청년은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그리고 정중히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바쁘다는 핑계로 친절을 베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나중에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자 미국 독립 선언서를 초안한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이었다. 또한, 그는 미국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부자 아버지
미국의 세계적인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1839~1937)라고 하면 미국을 상징하는 대재벌이었다. 하루는 뉴욕에 살고 있던 그가 사업 때문에 워싱턴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묵을 호텔로 갔다.
그때 호텔 지배인이 록펠러 회장을 알아보고 물어보았다.
“회장님! 가장 좋은 방을 드릴까요? 우리 호텔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방이 있습니다.”
지배인은 당연히 가장 전망이 좋은 최고급 방으로 달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록펠러는 아니었다.
“이 호텔에서 가장 산방 하나를 주시오.”
이 말을 들은 호텔 지배인이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아니, 회장님은 미국을 대표하는 재벌 가운데 한 사람인데, 어째서 가장 싼 방을 원하시지요? 회장님의 아드님은 언제나 최고급 방만을 원하시는데요?”
그러자 록펠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놈은 부자 아버지라도 있지 않소. 그런데 나는 그런 부자 아버지가 없잖소. 나는 내 자식 놈처럼 부자 아버지를 두는 그런복은 타고나지 못했거든…….”
부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가 된 뒤에도 역시 검소함과 성실함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곧 이를 지키는 길인가 보다.
아빠에게 빌린 돈
열한 살짜리 소년이 축구를 하다가 실수로 이웃집의 유리창을 깨었다. 이웃집 주인이 깨진 유리창 값으로 12달러 50센트를 요구하였다. 당시 그 돈으로는 달걀을 낳는 암탉을 125마리나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소년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 소년은 난감해하면서 말하였다.
“저에게는 그렇게 큰돈이 없는데 깨어진 유리창 값을 어떻게 갚을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12달러 50센트를 주며 말하였다.
“이 돈을 너에게 빌려주겠다.단 1년 뒤에 나에게 반드시 갚아야 한다.”
이때부터 소년은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반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결과 마침내 아버지에게 돈을 갚을 수 있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이었다.
그가 젊을 때는 유머가 풍부한 영화배우였다. 어느 날 대통령 역을 뽑는 자리에서 감독으로부터 대통령 역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따금 이런 농담을 하며 주위 사람을 웃기기도 하였다.
“배우로서 대통령 역도 맡지 못한 사람이 실제 대통령직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을까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이야기이다. 한 해군사령관이 제복을 세탁소에 맡겼다가 옷에 달린 계급장을 분실하고 말았다. 사령관은 때마침 중요한 작전회의에 참석해야 하는데 계급장이 없어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당황한 사령관은 부관을 시켜 혹시 대장 계급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사령관실로 오라고 영내 방송으로 알리도록 하였다. 사령관은 솔직히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내의 대장이라곤 사령관인 자기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소위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령관은 소위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소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 여자 친구가 저에게 당신은 틀림없이 대장이 될 거라면서 미리 선물한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정말 해군 대장이 되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 큰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딴 미국 최고의 핵 추진 항공모함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해군원수가 되었다. 그는 바로 체스터 윌리엄 니미츠(1885~1966)였다.
그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첫걸음으로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이루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성공하겠다고 결심을하였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장제스 총통의 대학 시절
1900년 초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사관학교에는 주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출신 나라별로 화장실을 따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중국의 유학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장 더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어찌 된 일인지 중국 유학생들의 화장실이 깨끗해져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그 대학의 총장이 학교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기숙사에서 대야와 걸레를 가져오더니 중국의 유학생들이 쓰는 화장실을 열심히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총장은 학생을 불러 물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청소하던 학생이 대답하였다.
“예, 저는 중국인 신입생입니다. 본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날마다화장실을 청소합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는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열심히청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던 후 그 학생은 특별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훗날 중국의 총통이며 국부(國父)인 장제스(蔣介石, 1887~1975)였다.
신입 사원의 채용 기준
한 유명한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다는 모집 광고가 나가자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 중에는 일류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도 많았다.
드디어 서류전형을 마치고 마지막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인재 등용에 남다른 열의를 지닌 사장이 직접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날카로운 질문을 할 것으로 예상한 지원자들은 저마다 최상의 예상 질의와 답변을 생각하느라 바짝 긴장하였다. 그런데 지원자들을 한 사람씩 만난 사장은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면접을 모두 마쳤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회사는 7명의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다. 그날 면접실에 들어간 지원자 모두는 사장과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는데 도대체 합격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합격을 시킨 이유를 묻는 말에 사장은 대답했다.
“우리 회사는 겉치레나 학벌보다는 평소에 드러날 수 있는 사소한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사람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면접실 문 앞에 휴지를 떨어뜨렸죠. 들어오면서 휴지를 주워 휴지통에 넣은 사람들은 합격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다리 부상으로 지방 신문사를 그만두어야 했던 한 여인이 병상에서 7년간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여인은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으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없었다.
어느 날 밀련출판사의 편집장 레이슨이 출장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간 것을 알고, 그녀는 기차역으로 급히 달려가 막 기차에 오르려는 그에게 원고 뭉치를 안겨주며 애원하였다.
“이 원고를 한 번만 읽어 봐 주세요.”
레이슨은 마지못해 원고를 들고 기차에 올랐으나 열차 선반에 올려놓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얼마 후 열차 승무원이 레이슨에게 세 통의 전보를 배달했다. 전보 내용은 「저의 원고를 한 번만 꼭 읽어 봐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그제야 레이슨은 기차역에 서 있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읽어 볼 생각으로 원고를 펼쳤다. 목적지에 기차가 멈추어도 레이슨은 그것도 모른 채 그녀의 원고에 푹 빠져 있었다. 이렇게 해서 출판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하루에 5만 부가 팔려 세기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여인이 바로 마가렛 미첼(1900~1946)이었다. 역사소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그녀는 퓰리처상(1937)을 받았다. 그 후 4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3,500만 부나 팔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39년에 빅터 프레밍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여 아카데미 작품상과 8개 오스카상을 받기도 하였다.
숨겨진 능력의 발굴
고대 희랍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유명한 조각가였다. 아버지가 어린 소크라테스에게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야, 저것이 무엇으로 보이니?”
소크라테스가 대답하였다.
“바위요.”
어린 소크라테스의 대답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에 그 바위를 아름다운 여인상으로 조각하였다. 그다음에 아들인 소크라테스에게 다시 물었다.
“얘야, 이것은 무엇으로 보이느냐?”
“아름다운 여인상이요.”
소크라테스의 대답에 아버지는 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위 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숨어 있었구나.”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바위이지만 사람의 손길로 아름다운 여인상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란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에는 진주와 같은 보물, 즉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있다. 단지자신에게 재능이 숨겨져 있다는 확신과 그것을 발굴해 실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포기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그러니 너는 지금부터라도 너의 숨겨진 능력을 찾아라.”
불가능을 지워라
세계적인 성공학자인 나폴레옹힐(1883~1970)은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힐의 집이 너무 가난하여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기 어려웠다. 어느 날 어린 힐이 자신의 꿈을 털어놓자 친구는 대뜸 이렇게 말하였다.
“안됐지만 자네의 꿈을 이루기는 불가능해.”
그 후 힐은 조금씩 돈을 모아 좋은 사전을 샀다. 열심히 독학해 글 솜씨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힐은 사전을 사자마자 ‘Impossible’이라는 단어를 찾아 오려냈다. 힐은 자신의 사전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 뒤에도 나폴레온 힐은 ‘Impossible’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위에 검은 줄을 그었다. 훗날 그는 청중 앞에서 ‘불가능’이라는 주제로 이처럼 말하였다.
“지금까지 불가능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가능으로 바뀐 사례들을 수없이 봐 왔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문 가짜로서명성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윌슨 대통령 홍보담당 비서관과 루스벨트대통령의 고문관을 역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명사가 되었다.
그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단어 사이에 아포스트로피(’)를 찍자. Impossible은 어느새 I’m possible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바뀔 것이다.’
너는 남과 다르니
조선 시대의 위대한 문장가 서포 김만중(1637~1692). 그의 아버지가 1637년 정축호란 중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어머니 해평 윤씨는 만삭의 몸으로 피난선 갑판 위에서 그를 낳았다.
어릴 적부터 독서와 사대부의 기품을 몸에 익힌 윤씨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는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윤씨는 그럴수록 엄한 가정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했다. 그런 윤씨가 택한 방법은 바로 ‘독서’였다. 윤씨는 아들에게 좋은 책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제때 배우지 않고 사는 것은 빨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
결코, 넉넉한 살림이 아니지만, 아들에게 필요한 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값을 묻지 않았다. 이웃에 사는 홍문관 교리에게 책을 빌려서는 밤새 손수 베껴 아들에게 읽혔다.
또한, 들에서 곡식을 거둔 돈으로 《논어》, 《맹자》 등 고서를 구했고, 직접 짠 명주를 팔아 《춘추좌씨전》을 샀고, 《소학》, 《시략》, 《당률》을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때로는 고된 일로 손끝에 피멍이 맺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너는 남과 다르니 더 배움이 깊어야 한다.’라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르침 속에 자란 김만중이었다.
훗날 어머니 윤씨에게 헌정한 한국 고전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불후의 명작 《구운몽》을 비롯해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 유명한 저서를 남겨 역사에 이름을 빛냈다.
독특한 면접 방식
제너럴일렉트릭사(GE)의 회장이던 레그 존슨은 「기내 면접」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후보자를 면접하였다. 그는 자기를 대신할 GE의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해 기내에서 면접하였다. 이는 단순히 기내의 면접이 아니라 레그가 면접 후보자들에게 하는 질문의 내용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당시 레그는 모든 후보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만일 당신과 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게 된다면 당신은 우리 회사의새로운 CEO로 누구를 추천하겠는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후보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음으로써 후보자의 인간적인 면모나 추구하는 방향을 짐작하려는 심산이었다. 그 당시 회사의 수익을 20%를 차지하고 있던 소비재 부문의 총책임자인 웰치를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레그 회장은 웰치에게만 다시 물었다.
“우리가 비행기를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 비행기가 추락하게 되었네. 나는 죽고 자네가 살았네. 그럼, 누가 GE의 회장이 되어야 하겠나?”
웰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였다.
“바로 접니다.”
그가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 역사상 최연소 CEO 자리에 오른 잭 웰치(1935~)였다. 그는 1981년부터 20년간 GE의 CEO가 되면서 회사의 총매출액을 40배 이상 이룩한 세계적인 전문 경영인으로 유명하였다.
독특한 자리 배치
미국의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자리 잡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 게이츠가 창립한 회사이다. 이 웅장한 건물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사계절의 멋진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직원은 당연히 밖이 환히 보이는 자리를 선호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는 무조건 지위가 높다고 이런 명당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한 실력 위주의 인사 정책을 펴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자리 배치에서는 회사나름대로 독특한 규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직원마다 하나의 사무실을 배정하는데,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창이 있는 자리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10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에게 내주었다. 이것이 오래된 사원을 배려하는 독특한 지원 제도였다.
새로 영입한 사장급 임원이라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회사에서는 일정 기간 꿋꿋하게 일한 사원이 아니면 아무리 유능한 재원이라도 처음엔 창이 없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다. 전망이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꾸준히 오랫동안 장기 근무하는 성실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철저한 실력 위주의 경영을 실행하지만 그래도 오래된 직원의 성실함을 높이 하고, 인정하고 배려하는 지원 정책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었으며 이 회사의 이런 경영 철학은 다른 회사들도 한 번쯤 본받을 만한 일이다.
마지막까지 성실하라
유능한 한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평생 수없이 많은 건물을 지었고 그가 짓는 아름다운 건물은 언제나 많은 사람의 갈채를 받았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른 뒤 그도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여유로운 말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사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훌륭한 건축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사장은 그에게 집 한 채만 더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건축가는 사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번에도 멋진 집을 짓는다면 사장이 자신을 더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예정대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물론 공사장 인부까지도 그가 집 짓는 일에 대충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결국, 예정된 기한을 넉 달이나 넘겨서야 가까스로 집을 완성하게 되었다.
집이 완공되자 건축가는 집 열쇠를 사장에게 건넸다.
“약속대로 집을 지었으니 이제 돌아가도 되는 거죠?”
그런데 사장이 건축가의 어깨를 다독거리고 열쇠를 다시 돌려주며 하는 말에 그의 얼굴에는 낭패의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 집은 자네에게 주는 은퇴 선물이네. 평생을 바쳐 나와 일한 것에대한 보답이야.”
까마귀의 꾀
비둘기장에 몇 마리의 비둘기가 함께 살고 있었다. 항상 먹이가 풍부하여 서로 다투는 일 없이 의좋게 지냈다. 까마귀는 그것을 보고 늘 부러워했다.
“저놈들은 상팔자를 타고났나 보군. 나도 저들 틈에 한 번 끼어 포식해 볼까?”
생각다 못한 까마귀는 제 몸을 하얗게 색칠한 다음 비둘기장으로 들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이만 먹었다. 배가 부른 나머지 까마귀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고 말았다.
“아이고, 잘 먹었다.”
이 말에 다른 비둘기들이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비둘기 소리가 아닌데?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한 놈이 들어와 있네.”
비둘기들이 하얗게 칠한 까마귀의 온몸을 쪼아서 내쫓으니 할 수 없이 자기 동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까마귀들이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은 도대체 누구야? 소리는 우리와 같은데 빛깔이 다르잖아? 이놈은 까마귀가 아니야. 빨리 몰아내자.”
이렇게 해서 외톨이가 된 까마귀는 크게 푸념하였다.
“작은 욕심 때문에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은 이익을 좇다가 신세를망치다니……. 앞으로는 하찮은 것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내 분수를 지키는 일에 충실해야지.”
승진할 수 없는 이유
미국의 세계적인 맥도날드 식품회사에 승진이 늦어 늘 불만에 가득 찬 한 사원이 있었다. 동료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다들 승진했건만 유독 그는 20년간이나 평사원의 직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특별히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과만 계속되었다. 해가 갈수록 느는 것은 불평과 권태뿐이었다. 또다시 승진 심사에서 누락되자 그는 사장을 찾아가서 따져 물었다.
“도대체 저를 승진시키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저를 이 자리에 몇 년이나 박아두었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20년이란 말입니다.”
20년간 그를 줄곧 지켜봐 온 사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닐세. 자넨 20년 동안 있었던 게 아니지. 일 년뿐이야. 그걸 20번 반복했을 뿐이네.”
그리고는 사장은 그에게 조용히 훈계하였다.
“순간순간 새로 샘솟는 의지와 뜨거운 열정이 뒤따라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근무 시간이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일세. 우리는 세월이 가고 연륜이 더 깊을수록 생동감 넘치는 열정과 이에따른 자세가 필요하다네. 그런데도 우리 주위에는 언제나 남보다 열심히 일을 잘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흘러간 시간만 꼽아가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려는 사람도 있다네. 하지만 사람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성장하지는 않는다네.”
학문의 왕도
BC 300년경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집대성한 기하학의 창시자였다. 유클리드가 집필한 《원론》은 그리스와 이집트 수학을 집대성하고 체계화시킨 것으로 수학의 역사에서 불멸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날 그리스의 프롤레마이오스 왕이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장 학식이 높은 유클리드를 불렀다. 유클리드는 열심히 수학을 가르쳤지만 까다롭기만 할 뿐이었다. ‘기하학’에 싫증을 느껴 짜증이 난 왕은 유클리드에게 명령했다.
“나는 왕이다. 더 간단하게 설명하라.”
그러나 유클리드는 왕을 바라보면서 의연하게 대답했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따로 없습니다.”
이 유명한 말이 바로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로 변형되어 생겨났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 해도 배우는 데는 결코 지름길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 무엇인가를 쉽게 얻고자 한다. 어려운 것을 간단하게 빨리 취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허황한 욕심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러한 삶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배움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인내와 자신감을 무기로 삼아 한 단계 한 단계 깨달음을 넓혀 나가는 것이 왕도일 것이다.
품질 선구자 조셉 쥬란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있는 선수라 할지라도 공을 기다리는 버릇이 있는 선수는 그 버릇을 고칠 때까지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런 원리는 스포츠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고 품질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조셉 쥬란(1904~2008) 박사는 예방 비용, 평가 비용, 실패 비용의 상대적인 비율을 1:10:100으로 제시하였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한다. 잘못되면 결국 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음에 일이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을 ‘예방 비용’이라고 한다. 사전에 예비 교육을 시켜 처음부터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투자하는 비용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전에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검사하고 평가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드는 비용을 ‘평가 비용’이라고 한다. 제조 공정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결함을 찾는데 사용되는 비용들이 여기에 속한다.
만일 그러한 오류가 외부로 빠져나가게 되면 필드 서비스를 통해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데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실패 비용’이다. 즉 이미 일어난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들이 바로 실패 비용이다.
그래서 발생하는문제의 표면보다 처음부터 그 원인을 찾아 완전하게 출고하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뒤돌아보지 마라
절망에 빠진 한 소년이 있었다. 아무런 희망이나 대안도 없는 소년이었다. 파리의 빈민가에서 살고 있던 소년은 어려운 가정 형편을 한탄하며 늘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갱단에 소속되어 있던 한 친구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위하여 머리맡에 축구화 한 켤레를 놓아두었다. 소년은 퇴원 뒤 아픈 과거를 잊기 위해 오직 축구에만 매달렸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육상을 잘해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능력은 그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되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그가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티에리 앙리(1977~)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우뚝 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지금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축구 선수로서 엄청난 수입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의 과거는 암담했다. 만일 그가 환경만을 탓하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면 지금의 앙리가 존재했을까?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이다. 하지만 현재를 바꾸는 것은 과거를 바꾸는 것에 비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면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과거의 실패는 성공적인 미래의 디딤돌이 된다.
노력하는 천재
천재란 태어날 때부터 좋은 머리를 갖고 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천재는 타고 난 좋은 머리만으로 명성을 얻기는 어렵다. 그 명성 뒤에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엄청난 노력이 숨어 있다.
독일의 빈에서 어떤 젊은 작곡가가 허름한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2층에서 계속 물이 똑똑 떨어져 1층 주인집의 거실 여기저기에 얼룩이 지고 말았다. 화가 난 주인이 2층으로 올라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작곡가가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다가 손가락이 아프면 옆에 놓아둔 물이 담긴 양동이에 손을 담가 통증을 식힌 뒤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일이 수 없이 반복되면서 손가락에 묻은 물이 바닥에 흘러 스며들었고 결국 아래층에까지 떨어져 거실이 얼룩졌던 것이었다.
너무나도 열중하여 피아노를 연주하는 젊은 작곡가를 본 집 주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열중하는 것을 보니 저 젊은이는 크게 성공할 거야! 내 지금은 비록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모르는 척해야지.’
그 젊은 작곡가가 바로 천재적인 음악가이며, 세계적인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었다.
고객의 미소
미국의 최대 가정용 건축 자재 유통회사 홈데포의 창업자인 버니마커스(Bernie Marcus) 사장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찾아와서 수다를 떨었다.
“웬 세상에. 며칠 전 자네 회사에 왔더니 아주 멍청이 같은 친구녀석이 있더군. 그런 사람은 자네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니 얼른 잘라 버리게.”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주에 자네 회사 매장에 수도꼭지를 사러 갔었지. 2백 달러짜리 물건을 달라고 하였더니 그 멍청한 녀석이 1달러 50센트만 내면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도꼭지를 새것처럼 수리해 줄 수 있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자네 회사는 망하고 말 거야.”
“그 친구의 이름이 뭔가?”
“왜? 당장 해고하려고?”
“아니야. 곧 승진시켜야지.”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 녀석을 승진시키다니?”
버니마커스 사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친구는 내 지시를 충실히 따른 직원일세. 나는 사원들에게 손님이요구하지 않는 것은 팔지 말라고 하였지. 손님의 지갑을덜 풀게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침일세. 자네 집 수도꼭지가 또 고장이 난다면 어느 가게로 가겠는가?”
“그거야 그 직원이 있는 가게로 가겠지.”
“그것 보게. 비싼 물건을 판다고 좋은 것만은 아닐세. 손님 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결국 우리 회사를 돕는 걸세.”
승리를 넘어 즐기는 경기
농구 황제로 마이클 조던(1963~)을꼽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듯이 남다른 농구 철학으로 승리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선수로 단연 빌 러셀(1934~)을치켜세울 만하다.
빌 러셀은 1960년대 보스턴 셀틱스를 농구 명가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13번의 시즌 동안 11번의 승리를 거머쥐며 진정한 코트의 제왕에 올랐다.
러셀은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단지 위협적인 블록슛만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철저한 수비와 팀플레이로 승리를 일궈내며 경기장을 한층 뜨겁게 만들었다.
러셀을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추앙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정으로 경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승리를 향해 피 말리는 심정으로 코트를 누비는 와중에도 그는 늘 경기 자체를 즐겼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재빠른 움직임들, 속출하는 진기명기의 대결, 그렇게 박빙의 경합을 벌이는 동안에도 경쟁의식을 못 느끼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아지경의 기적을 경험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인《두 번째바람》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한 특별한 순간에 게임이 종료될 경우 정말이지 열 번 가운데 다섯 번 정도는 어느 팀이 이겼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졌더라도 나는 여전히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자유로운 매였다.」
비발디의 선율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비발디(1678~1741)가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날이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세상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알려진 바이올린이었기에 콘서트홀은 청중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청중들은 비발디의 선율에 빠져들었다. 청중들은 모두 감탄하였다.
“역시 악기가 좋으니까 저렇게 멋진 소리가 나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비발디가 연주를 멈추더니 바이올린을 높이 들여바닥에 내리치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청중들은 모두 놀라 소리치며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모두 무대에서 산산조각이 난 바이올린을 응시하였다.
그때 사회자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저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싸구려 바이올린입니다. 비발디 선생이 바이올린을 깨뜨린 이유는 참된 음악이란 악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잘 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우리에게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외부 환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환경을 지배하고 만들어가는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의 차이
흉노족을 토벌한 중국 한나라의 명장 이광은 활을 대단히 잘 쏘는 명궁이었다. 그의 화살이 날아간 곳에는 어김없이 백발백중으로 새나 산짐승들이 쓰러져 있었다.
하루는 이광이 사냥길에 올랐다가 숲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문득 앞을 보니 큰 호랑이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이광은 급히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
다행히 화살은 호랑이를 명중시켰다. 하지만 호랑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럴 수가! 그것은 호랑이 형상처럼 생긴 바위였다. 그가 쏜 화살은 바위 한가운데 깊이 박혀 있지 않은가!
‘화살로 바위를 뚫다니 믿을 수 없어.’
그는 다시 활을 들고 바위를 향해 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살이 박히기는커녕 화살촉이 튕겨 나가고 화살대는 부러져 버렸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이 일에 대해 주어진 환경과 목표가 같다 하더라도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해석을 달았다.
“같은 화살로 같은 바위를 쏘았지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은 과녁을 향한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이다.”
평범을 초월하는 노력
어느 날 칠순 넘은 이웃의 할머니 한 분이 낡은 노트 한 권을 들고 대문호인 발자크(1799~1850)의 집에 찾아와 대뜸 그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이보게. 자네 같은 대작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네. 여기 이 글을 쓴 아이가 앞으로 작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한번 봐 주지 않겠나?”
노트를 꼼꼼히 살펴보던 발자크가 말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글만 봐서 그 아이는 작가로서 특별한재능이 보이지 않는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할머니가 큰 소리로 웃었다.
“인제 보니자네도 순 엉터리로구먼, 이 글은 30년 전 자네가 초등학교 때 썼던 글인데 그것도 몰라보니 말일세. 자네도 어릴 때는 형편없었군.”
발자크는 그제야 자기 어릴 때 쓴 글임을 알아차리고 당황스러워했다.사실 그 글은 할머니의 말대로 발자크가 어린 시절 쓴 글이었다.
하지만 발자크는 태연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제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저는 타고난 재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연습을 통해 만들 어진 것이니까요. 평범을 초월하는 노력만이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일을 완벽하게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와 마술을 보여주었다. 빈 보자기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환호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카드와 접시를 이용하여 마술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부인이 그에게 자신이 여는 파티에 와서 마술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부인의 부탁을 기꺼이 수락하였다.
얼마 후, 그는 약속대로 부인이 초대한 파티에 참여했다. 파티가 중반에 이르자 부인은 그에게 마술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손에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다.
“당신은 마술 전문이 아닌가요?”
그는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연주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마술과 바이올린 연주를 멋지게 해낸 젊은이는 20세기 전반에 최고의 연주자로 ≪빈 기상곡≫, ≪사랑의 슬픔≫을 작곡한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1875~1962)였다.
그는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비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떤 일이든 원리는 같습니다. 다만 관심과 노력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열망만 있다면 모두 쉽게 이룰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전혀달라 보이는 일도 서로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문제는 첫 번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죠.”
성실은 최고의 자본
세계 10대 부자이자 아시아의 최대 재벌 리카싱(1928~). 그는 사업초기에 자본이 확보되지 않아 고충을 겪었다. 다행히 외국 바이어로부터 대량의 제품을 주문받게 되었지만, 그들이 믿을만한 재력가의 보증을 요구하였다. 그는 보증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약속 기한 내에 이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당시 이런 상황에는 서류를 조작해 바이어의 눈을 속일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없이 외국 바이어를 찾아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외국 바이어는 리카싱의 정직함과 성실함에 감동하고 오히려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보증인은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계약을 협상하는 과정을 통하여 당신이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당장 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바이어의 이러한 제안에도 리카싱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리려 난색을 표하며 말하였다.
“저를 믿어주시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도저히 이번 계약을 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의 운영 자금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바이어는 오히려 서둘러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물품 대금을 선지급하였다. 리카싱은 자신이 갖고 있던 ‘성실’이라는 자본으로 계약을 성사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엄청난 이윤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게 되어 지금의 청콩 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
루이 암스트롱의 연주
미국 남부의 허름한 작은 술집에서 술에 취한 손님들끼리 싸움이 멀어졌다. 뒤늦게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싸움은 끝났고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그러나 피해 흔적은 즐비하였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손님이 모두 돌아간 뒤라 정황을 목격한 증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난장판이 된 홀에서 한 사람이 트럼펫을 열심히 불고 있었다. 경찰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번 사건에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경찰관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누가 싸움을 했나요?”
그는 트럼펫 연주에 몰입하느라 싸움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그는팁도 받기 힘든 허름한 술집에서 연주를 들어줄 손님이 없어도 개의치 않고 즐겁게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가 바로 재즈와 트럼펫의 연주자로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1901~1971)이다. 특히 그의 《Mack the knife》, 《What a wonderful world》는 전 세계를 통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음악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던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속에 음악이 있다면 음악에 대한 정의가 필요 없다. 그러나 당신속에 음악이 없다면 아무리 음악에 대해 훌륭한 정의를 내려도 전혀 소용이 없다.”
제2 연주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이자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첫 지휘자였고,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찬사를 받은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 시리즈 등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캔디드》와 같은 다수의 작곡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루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지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 적이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자유로운 대화 시간이 되자 한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제2 바이올린입니다. 제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열의를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플루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번스타인은 빙긋이 웃으며 곤혹스럽게 말하였다.
“제1 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 연주자가 되기를 원치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넘어질 줄 알아야!
로빈 커즌즈는 영국 국가 대표 스케이트 선수로 화려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더 나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자신만만하게 미국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영국에 있는 동안 승리의 기쁨을 제법 맛보았기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본 미국의 코치는 매우 차갑게 말했다.
“실력이 형편없군. 더구나 내가 보기에는 너에게는 발전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가거라.”
의외의 말을 들은 로빈은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인정을 받을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실망하는 로빈에게 코치가 물었다.
“최고의 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니?”
“당연하죠!”
그러자 코치는 로빈에게 말하였다.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겠다는 녀석이 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니? 그렇게 몸을 사리면서 최고가 될 수 있겠어!”
이어서 코치는 로빈에게 따끔한 말을 던졌다.
“로빈, 스케이트 선수가 넘어진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만 그런 넘어짐을 통해서 실력이 향상된다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개미가 먹이 하나를 나르기 위해서는 100번 이상 떨어뜨린다는 것을잊어서는 안 된다.”
무책임의 결과
1923년 초호화 여객 유람선 타이타닉(Titanic)호는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었다.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호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앞으로 몇 시간 후에 타이타닉호가 침몰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들이받아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그곳에서 불과 16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는 캘리포니안(Californian) 호가 항해를 하고 있었다. 사고 현장까지는 반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타이타닉호 무선사들은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무전을 보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캘리포니안 호 무선사는 무전기를 꺼 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 비상요청을 다른 배에게 전달한 결과, 타이타닉호의 비상요청은 93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카파시아(Carpathian)호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타이타닉호가 침몰이 다 된 후 도착하였다.
캘리포니안 호는 대형 참사를 알지 못한 채, 항로를 따라 계속하여 이동했다. 만일 무전기를 켜 놓았더라면 타이타닉 호는 그렇게 큰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이 이토록 엄청난 희생을 낳았던 것이다.
정직한 예술가 타 데오 가디
1340년경에 일어난 일이다. 대홍수가 이탈리아 피렌체를 휩쓸면서 아르노강의 제방이 모두 유실되었다. 피렌체의 남북을 잇는 다리는 죄다 붕괴하고교각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알타프론데 성이 무너질 정도였으니 피렌체로서는 사상 초유의 재앙이었다. 시 정부에서는 무너진 교량을 재건할 건축가를 수소문하였다.
이때 무명에 가까운 화가가 도시의 끊어진 다리를 잇겠다고 나섰다. 그는 14세기 이탈리아 미술의 최고 거장인 조토가 아끼는 제자로 피렌체 출신으로 미술계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피렌체 대성당의 종탑을 설계한 스승 조토로부터 건축의 원리를 착실히 배운 그는 동료 화가들과 경쟁하기보다는 동료를 형제처럼 사랑하며 친구의 영예를 소중히 여겼다.
그는 모든 비용과 노력을 쏟아서 성실과 정직을 바탕으로 네모반듯한 석재로 교량을 짓고, 석주 위에는 아치를 올리고 다시 상판을 덮었다.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견고함이 조화를 이룬 새 다리는 아르노강을 가로질러 피렌체의 남북을 잇는 가장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그 후, 1557년 9월에 다시 대홍수로 다른 교량은 강물에 유실되어도 그가 만든 폰테 베 키오(옛날 다리라는 뜻) 다리는 끄떡없었고 지금 그 다리 위에는 보석과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가 바로 타 데오 아디(1300~1366)이다. 피렌체 시의회는 그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었다.
「타 데오 가디! 당신이 살아있는 한 피렌체는 행복했다.」
천재였던 바보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는 어린 시절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바보 소리를 듣다가 어른이 되어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사람들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근대 조각의 시조인 로댕(1840~1917)도 마찬가지이다.
로댕의 아버지조차 주위 사람에게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보 천치 아들을 두었어.”
사람들도 모두 로댕의 아버지가 하는 말에 수긍할 만큼 로댕은 바보스러웠다. 실제로 로댕은 학교에서 가장 열등아로 지목받았고 학업 능력이 부족하여 미술학교에 입학하는데 세 번이나 낙방할 정도였다.
로댕이 장차 미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로댕의 삼촌도 그를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로댕이 성장하기까지 그의 잠재적인 재능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7년간 이탈리아와 유럽 각지를 돌며 여러 가지 건축 양식과 작품 세계를 보고 크게 감명을 받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때부터 로댕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누구보다도 훌륭한 조각가가 될 수 있었다.
로댕은 나중에 이렇게 술회하였다.
“세상에서 완벽한 존재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누구나 새로운 지혜와 재능을 발휘할 가능성을 충분히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앵바르 캄프라드 회장의 절약 정신
돈이 많은 가문의 사람을 재벌이라고 한다. 재벌이라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세상에서 알아주는 재벌인데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재벌의 회장이면서도 비행기를 탈 때는 항상 이코노미석을 타고 과일을 하나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청과상의 문을 닫을 무렵에 간다고 한다. 해외 출장으로 묵을 일이 있어도 인근에 있는 가장 싼 호텔 방을 이용하며, 호텔 방에 있는 미니바의 음료수를 꺼내 먹었을 때면 다음 날 편의점에서 똑같은 음료수를 사다 넣어놓을 정도라고 한다.
그가 바로 구두쇠 백만장자로 소문난 스웨덴의 세계 최대 가구 회사인 이케아의 창업자 앵바르 캄프라드 회장이었다. 세계에서 4번째로 부자인 그는 불과 17살 때인 1943년에 이케아를 설립하였다. 지금은 35개국에 237개 이상의 대형 매장을 가질 정도로 세계 최대의 가구 회사이며 항시 싼 가격으로 고객을 모시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이케아는 고객을 숨 막히게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제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가 70살 때 자신이 좋아하는 핫도그를 이케아 매장에서 팔려고 하였다. 그것도 간이음식점에서 파는 가격의 절반 이하로 말이다. 대개의 제품은 원가와 이윤을 생각하여 제품 판매가를 책정한다. 그러나 그는 정반대로 가격을 정해 놓고 제품을 개발토록 하였다. 그 핫도그도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의 판매 전략은 기업을 더욱 성장하게 하였다.
젊은 시절의 꿈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는 교수들보다 나이가 많은 한 학생이 3년째 소설 창작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는 항상 검은색 운동복 상의에 흰 운동화를 신고 캠퍼스를 다니며, 이따금 그가 전용 제트기를 타고 등교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가 70의 나이로 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 이유는 젊은 시절의 소망이었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2004년 CEO에서 물러나면서 자기보다 50년이나 젊은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영문과 교수에게 소설을 쓰는 방법을 물었고, “기초부터 시작하라.”라는 말에 따라 창작 초급 수업부터 들었다. 특히 헤밍웨이의 작품을 좋아하는 그는 20년 전에 쓰다가 아직도 완결하지 못한 소설도 부지런히 쓰고 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동복 브랜드인 나이키의 창업주 필립 나이트(1938~) 회장이다.
성공한 세계적인 경영인으로 손꼽히는 필립 나이트는 작년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최고의 갑부로 남부러울 것이 없지만 그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던 것이었다.
나이와 재산과는 무관하게 오늘도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는 그의모습을 본 많은 사람은 그가 왜 세계적으로 성공한 최고 경영인이 될 수 있었는지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24시간 뉴스만 하는 방송국
“나는 24시간 뉴스만 하는 방송국을 만들 것입니다.”
미국의 CNN 왕국의 신화를 만든 테드 터너(1938~)가이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유선 방송국에서 통신 위성을 이용해 당시 미국 전역의 지방유선 방송국으로 뉴스 전파를 보내는 방법을 구상했다. 값비싼 장비를 동원하지 않고도 위성 중개료만물면 쉽게 뉴스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터너는 정치ㆍ경제ㆍ스포츠ㆍ인물 뉴스를 각각 30분씩 방영하고 두 시간 간격으로 새로운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다가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기존 방송을 중단하고 생생한 뉴스 속보를 보냈다.
1991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비로소 CNN은 그 진가를 발휘했다. 터너는 뉴스란 과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개념을 바꾸었다.
그는 세계 최대 뉴스 왕국 Cable News Network(CNN)를설립한 언론 재벌이며 자선 사업가이기도 하다. CNN이 나타나기 전에는 미국인들은 뉴욕에 있는 3대 방송사(NBC, ABC, CBS)의 정해 놓은 시간에만 뉴스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80년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세계 최초 24시간 뉴스 채널을 설립한 것이었다.
시작이 반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존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존은 13살로 나이는 어렸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했다. 이런 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흙투성이 길이 되어버리는 교회 진입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진흙투성이 길을 걸을 때면 옷이며 신발은 엉망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교인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고심하던 존은 마침내 결심했다. 그는 일당 7센트의 임금 중에서 날마다 벽돌을 한 장씩 사서 깔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넓은 길을 존이 혼자서 완성하려면 족히 2년은 걸릴 만큼의 큰일이었다.
존이 벽돌을 한 장씩 깔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존의 모습을 지켜보던 교인들은 그동안 건성으로 지나쳤던 자신들을 반성하고, 길뿐만 아니라 낡은 예배당까지 헐고 신축하기로 결의한 것이었다. 소년이 혼자서 2년 이상 걸릴 일이 교인들의 도움으로 몇 달 만에 진흙투성이 길에서 포장도로로 변한 것이다.
한 어린 소년의 배려와 헌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었다. 사랑을 몸소 실천했던 그 소년이 바로 미국의 백화점 왕인 존 웨나 메이커였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시작이 반입니다. 마음을 먹고 작정한 일이라면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래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선행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 기초를 작성한 유능한 정치가요, 건국의 아버지이며, 피뢰침을 발명한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영특했던 그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려 노력했으며, 특히 일분일초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었다.
양초를 만드는 아버지 밑에서 17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서 1년, 가정교사로부터 1년을 배운 것이 전부이다. 12살 때는 인쇄공인 형에게 인쇄 일을 배워야 했다.
형의 집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우던 그는 어느 날 채식에 관련된 책을 읽고 형에게 식사하지 않는 대신 식비의 절반을 주면 혼자 해결하겠다고 했다. 형이 허락하자 프랭클린은 채소로 간단히 식사하고 남은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어떻게 하면 하루를 효율적으로 사용할까 고민했다. 하루는 종이 한 장을 꺼내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자신이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적어두었다.
그는 일과를 다 완성한 뒤, 일과표의 맨 처음과 맨 아랫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정성 들여 적었다고 한다.
“오늘은 어떤 선행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제는 어떤 선행하였는가?”
정직과 성실
1960년대 초, 해머라는 미국의 작은 석유 회사가 캘리포니아주에서 매장량이 풍부한 천연기전을 뚫는 데 성공했다. 이 사업으로 해머 회사의 규모는 전보다 많이 확장되었으나 아직도 기존의 다른 대형 석유 회사와 견줄 바가 못 되었다.
그래서 해머 회사는 유명한 에너지 회사인 PG&E와 손을 잡으려고 여러 번 절충하였지만, PG&E는 해머 회사와 같은 작은 석유 회사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캐나다 천연가스 파이프 건설에 거액을 투자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해머 회사는 PG&E의 주요 고객인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를 찾아가 자신들의 사업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협조를 요청하였다.
“우리 해머 회사는 지금까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회사입니다. 비록 다른 회사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개발한 천연가스를 로스앤젤레스까지 파이프로 연결하여 아주 싼 가격으로 안전하게 시민들에게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공사 기간도 최대한 다른 회사보다 훨씬 더 짧은 시일 내에 완공해 드리겠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해머 회사의 말에 감동하였고 바로 동의하였다. 사업도 체결되었다. 결국, PG&E는 로스앤젤레스라는 주요 고객을 잃게 되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해머 회사는 크게 신장하여세계의 굴지 에너지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쉼표 하나에도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가 한창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때 친구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화창한 날 아침에 책상 앞에 앉아 있다니 어서 일어나게. 바람이나 쐬러 나가세.”
그러나 플로베르는 작품을 써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할 수 없이 친구들은 그를 남겨둔 채 교외로 나가 이틀을 묵고 돌아왔다.
친구들이 돌아온 일요일 저녁, 플로베르가 기분 좋은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자 그중 한 친구가 물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데…….”
“좋고말고. 일을 아주 많이 했거든…….”
친구들은 작품을 얼마나 썼는지 궁금하다며 보여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플로베르가 내민 원고는 이틀 전과 비교해 전혀 진전이 없었다.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도대체 무얼 썼다는 건가? 우리가 보기엔 한 줄도 늘어나거나 달라진게 없는데.…….”
그러자 플로베르는 종이 위의 한 문장을 가리켰다.
“여기 이 쉼표를 보게. 그제 쉼표를 쌍반점으로 바꿨다가 오늘 다시쉼표로 바꿨다네. 이틀 동안 이것 때문에 내내 씨름을 했지. 지금 이렇게 흡족하이.”
플로베르는 쉼표 하나라도 무수히 많은 고뇌를 거치니 누구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거장의 작품을 만든 것이었다.
백 명의 손님
캐나다 테네시주에 열여섯 살짜리 입양 소년이 있었다. 양어머니가 죽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식당이었다. 일을 시작한 첫날 식당 주인이 소년에게 말했다.
“꼬마야, 처음 하는 일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힘들기 마련인데 최선을 다해 보렴.”
주인은 시간당 급료는 10페니를 주되, 손님들에게 식사를 빨리 가져다주고 완벽한 서비스로 만족시켜주면 25페니를 더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하고 온종일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손님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첫날 일과를 마친 뒤 식당 주인이 소년에게 물었다.
“자, 오늘 너의 실적을 볼까? 지금까지 몇 사람을 접대했지?”
“정확히 100명입니다.”
소년의 대답에 주인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어느 아르바이트생도 세운 적이 없는 대기록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구나! 너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세월이 흐른 뒤 주인의 말이 그대로 적중되었다. 소년이 자라서 딸의 이름 딴「웬디스」라는 패스트푸드점을 개업하여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가 바로 「웬디스」의 창업자 데이브 토머스(1949~)이었다.
기적의 부루클린 다리
뉴욕의 맨해튼시와 브루클린시 사이에 놓여 있는 브루클린다리는 인간의 기술이 이룩해 놓은 기적의 다리이다. 1883년 맨해튼시와 브루클린시를 잇는 다리 건설이 논의되었을 때 전문가들은 모두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창조적인 기술자인 존 리블링은그의 아들 워싱턴과 함께 다리 건설을 계획했다. 금융업자들을 설득해서 다리 건설을 위한 재정을 지원받아 꿈의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교통사고로 존 리블링은죽고 말았다. 다리의 건설 방법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그의 아들 워싱턴마저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말은 물론 걸어 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운 워싱턴의 머릿속에는 다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 한 개뿐이었다.
‘누군가 내 얘기를 듣게 할 수 있다면…….’
워싱턴은 다른 기술자들과 의사소통할 방법으로 손가락을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다리 건설 기술자들에게 전달할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아내와 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 규칙에 따라 아내의 팔에 신호를 보냈다. 브루클린 다리가 완공될 때까지 워싱턴은 13년 동안 손가락 한 개만으로 마침내 기적의 다리인 브루클린 다리는 완성되었다.
마케팅의 정석
5~7년에 한 번꼴로 크게 요동치는 국내 교육 시장에서 43년 동안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학습참고서가 있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66년 출간된 이래 매년 120만 권씩 팔리는 《수학의 정석》은 누적 판매량이 4천만 권을 넘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다.
고유명사가 된 듯한 제호와 표지 디자인은 다른 참고서가 흉내 내지 못할 전통과 차별화로 자리매김했다. 겉으로 보기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어 보이지만 《수학의 정석은 기본은 고수하되 수시로 문제를 바꾸었다.
각 장마다 새로운 수학 개념을 소개하고 상세한 풀이 과정을 넣은 기본 문제를 실은 뒤, 유제와 연습 문제로 단련하는 큰 틀을 40년째 고수하였다. 수학의 기본기를 가르친다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저자인 홍성대(1937~) 성지출판 회장은 “책이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홍 회장은 “내 사전에 마케팅은 없다.”라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성지출판에는 책을 공급하고 수금을 전담하는 한 명의 영업 직원만 있을 뿐 이렇다 할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다. 내용이 좋으면 사용자들 사이에서 저절로 입소문이 퍼지기 때문이다.
《수학의 정석》을 푼 학생들은 참고서에 대한 만족감을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 준다. 일단 제품 자체의 내용이 알차면 홍보와 마케팅은 저절로 되는 것이다.
죽음까지 함께 하는 친구
어떤 남자에게 세 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친구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친구였고, 두 번째 친구는 좋아하기는 하지만 첫 번째 친구보다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 친구는 그저 그런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먼 길을 함께 갈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다. 그러나 친구는 함께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노라고 거절했다.
그는 두 번째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신은 마을 어귀까지는 갈 수 있지만 더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몹시 실망했다.
마지막 친구에게 갔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네가 가자면 얼마든지 어디든지 가겠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것이 친구가 아니겠나?” 하며 기꺼이 함께 가겠노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서 첫 번째 친구는 재산을 의미한다. 아무리 소중해도 죽음이라는 먼 길을 떠날 때는 남겨두고 가야 한다. 두 번째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역시 무덤 가까이는 같이 갈 수 있다. 그러나 더는 갈 수 없는 사람이다.
마지막 친구는 평소에 쌓아놓은 선행을 의미한다. 이것은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죽음 뒤에도 동행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선행을 쌓는 데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가장 소중한 순간
한 노인이 산길을 가고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이 노인의 하얀 머리카락 위로 타듯이 미끄러져 내렸다. 그때마다 노인은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하얀 모시 소매로 쓱 훔치고는 노래를 부르며 계속 길을 가고 있었다.
노인은 구수한 노랫가락을 읊조릴 때마다 참나무로 만든 반들반들한 지팡이를 박자 삼아 두들겼다. 목을 쭉 뺀 나리꽃들이 노인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이상하다. 저 노인도 이제 인생을 다 살았는데 뭐가 저렇게 즐거운것일까?’
노인의 노랫소리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메아리를 타고 옮겨 다니며 지루한 여름 한나절을 식혀 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노인이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예쁜 나리꽃이로구나. 왜 날 불렀니?”
나리꽃은 자신이 얼마 있으면 곧 시들어 버려야 한다는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하늘을 잠시 올려보더니 말했다.
“그래, 아마 나도 얼마 있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나의 현재를 망칠 순 없지 않겠니?”
로댕의 작품 세계
현대의 미켈란젤로, 조각의 거장인 천재 조각가 로댕(1840~1917)은 그가 남긴 열정적인 조각만큼이나 뜨거운 삶을 살았다. 웅대한 청동상과 대리석상에 인간의 고뇌와 열정을 그대로 담아 놓은 듯 살아있는 표정으로 유명한 로댕은 처음에는 전문적인 조각 수업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초라한 경력으로 인해 한때 그가 출품한 작품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본으로 떠서 만든 것이라는 의심까지 받았다. 그러나 로댕은 이러한 의혹의 눈길들을 무시한 채, 인간의 심신에 관한 탐구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청동시대」가 인정을 받으면서 40세에 조각계를 평정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지옥의 문》을 제작(1880~1917)하기 위해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그로부터 그는 미친 듯이 그 기념문의 제작을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하였다. 단테의 《신곡》을 수없이 읽었고, 수백 페이지의 노트를 스케치로 메우며 수십 개의 실험 작품을 제작하였다.
《지옥의 문》을 보면 로댕이 생전에 수없이 고뇌했던 구절이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로댕은 그만큼 《신곡》에 심취하였고, 특히 ‘지옥편’을 꼼꼼히 읽었다.
《지옥의 문》은 《신곡》 못지않게 영향을 준 문학 작품이다. 로댕은 시집에 등장하는 감상적이고도 우울한 캐릭터들을 《지옥의 문》에 모두 등장시켰다고 한다.
미인의 필수 조건
인도에 마가밀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의 딸은 절세의 미인이라고 찬사를 받을 만큼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가밀에게는 딸이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언제나 딸을 데리고 다니며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내 딸이 예쁘지 않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리라.”
그의 장담처럼 그의 딸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고 한눈에 반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가밀은 기세가 등등해져서 당치도 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우리 딸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자는 없다. 이번에는 출가한 석가모니에게 보여주리라.”
그러나 석가모니는 마가밀의 딸을 보고는 말했다.
“이 여인의 용모는 정말로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용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마음의 아름다움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리라.”
아름다운 용모를 갖는 것은 모든 여성의 소원이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얼굴이나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의 말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가을 하늘처럼 맑고 투명한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움을 꿈꾸는 모든 사람의 필수 조건이 아닐까? 석가모니의 말을 듣고 그토록 오만방자했던 마가밀도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라
클리블랜드(1837~1908)가 미국의 2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교도소에 있는 죄수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가 당선됐군요. 하긴 워낙 훌륭한 사람이니까.”
“그럼, 자넨 클리블랜드를 알고 있나?”
간수가 의아해서 물어보자 사내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와 늘 일․이등을 다투었죠.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그는 ‘맛이 좋은 것에는 속기 쉽다.’라고 하며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에 비해 나는 한 번쯤은 괜찮다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지요. 매번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마시다 보니 결국 오늘처럼 구름과 진흙탕의 차이가 나게 된 겁니다.”
똑같은 육체와 똑같은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극기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뜻을 세운 자는 소박한 음식을 먹고 소박한 옷을 입으며 그 뜻을 관철하지 않았는지.
그래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늘 이렇게 말하였다.
“하등 인간은 혀로 사랑하고, 중등 인간은 몸으로 사랑하며, 상등 인간은 마음으로 사랑하므로 자신을 늘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성공의 열쇠
한 청년이 왕을 찾아와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왕은 청년에게 물이 가득 담긴 물동이를 주면서 그것을 머리에 이고 시장 한 바퀴를 돌아오면 가르쳐 주겠노라고 대답하였다. 대신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그때는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청년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물이 넘쳐흐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딪치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했고, 모퉁이를 돌 때면 물동이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더욱 조심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이고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얻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청년은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시장을 돌아서 다시 왕에게 왔다.
그러자 왕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는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슨 소리를 들었느냐?”
그제야 청년은 시장에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음을 깨달았다. 모든 정신이 물동이에 집중되었다.
왕은 청년에게 오직 한 가지 일만 생각하는 것. 즉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깨우쳐주었다.
조지 패튼 장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미군 제2 기갑사단을 이끌고 독일의 전설적인 롬멜 부대와 맞섰던 조지 패튼 장군은 전차 위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지고도 웃는 놈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 진다는 생각 자체도 참지 못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은 29살의 중령으로 전투에 투입되어 탱크 부대를 지휘했다. 험난한 지형에서 기관총과 대포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탱크를 사용했지만, 탱크는 안에서 밖을 잘 볼 수 없다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패튼 장군은 탱크 옆을 걸어가면서 부대를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호언대로 그는 롬멜의 기갑부대를 격파하였다. 그런 그에게 전투를 앞두고 정말 두려움이나 불안을 경험한 적이 없는지를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물론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처절한 실패를 할까 두려워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익숙한 것을 경멸하는 그 자체를 두렵게 여긴다.
그러나 조지 패튼 장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다행히 신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에 대응하는 무기를 선물했다. 그것은 바로 용기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가 있다. 용기는 결코 두려움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
그리스 신화에 키프로스에 사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젊은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추한 외모에 대한 심한 열등감으로 늘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도 만나기를 꺼려 왔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자신 속에 스스로 갇혀 살기를 더 좋아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각하는 일밖에 없었다. 우연히 자기가 동경하던 여인을 60년 동안이나 혼신의 힘을 다해 여인상을 조각한 그는 그 여인상에 도취하였다.
이 조각의 여인이야말로 자신만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아름다운 여인이라 생각하고 늘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변함없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조각가는 아프로디테 여신 축제일에 간절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만든 여인의 조각상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 후 기적적으로 여인의 조각상은 사람으로 환생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의 여인과 결혼해 딸 파포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화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간절한 열망으로 꿈을 기원하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자기 암시의 예언적 효과를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