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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석 교수 © | 지금 나는 몸담고 있는 인문대로부터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예술대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섹소폰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가끔 연구실 앞 복도로 걸어가는 누군가의 발소리나 학생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창문 밖으로 어떤 교수가 차를 주차하거나 발진하는 자그만 소음도 있다. 연구실 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차 한잔에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내가 학부 때부터 대학원과 강사생활을 할 때까지 늘 동경하던 모습이었다. 이제 교수가 되어 그러한 여유 내지는 사치스러움이 나의 일상생활이 되었으니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왜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내가 원해서기라기보다는 책에 끌려서인 듯하다. 즉 책에 끌려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결국 교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처럼 추구했던 교수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행복은 무지개와 같아서 다가서면 다시 멀어지고, 인간의 마음은 만족할 줄 몰라 바라던 것을 얻고 나면 다시 욕심이 생기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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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연구실 풍경 © | 나는 유학을 11년간 했다. 요즘 우리나라, 특히 중국학 하는 사람들이 볼 때 너무 길다 싶을 정도로 오랜 기간이다. 그러나 지내고 보니 11년도 짧고, 만약 내가 일찍 학위를 받았으면 지금의 학문 수준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둔한 나는 유학해서 8년 정도가 지나서야 학문이 향상되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이전 시간은 공부의 진보나 퇴보가 없이 수평선을 긋는 것이어서 막막했는데, 이후 자료를 찾고 주제를 정하고 학문적 사고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쓰고 남의 글에 대해서 판단하고, 저서나 논문의 오류를 찾아내서 밝히는 일들이 쉬워졌다. 그래서 공부하는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스러워질 수 있었다. 당시에는 나의 무능함을 많이 탄식했지만 지금은 그 11년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박사학위 후 7년 남짓 강사생활을 했는데 두 차례 연구교수를 하게 되어 3년 동안은 그런대로 안정된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1년에 평균 두 편의 논문을 내되 가능하면 학회에서 직접 발표하고, 연구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분야를 찾아내어 그 주제로 여러 편의 논문을 쓴 후 나중에 다시 모아서 정리하고 새로운 연구도 더해 책으로 출판했다. 하나의 큰 주제를 두고 여러 해를 천착하는 것이 연구의 깊이가 있고 나의 성격에도 맞기 때문이다. 이렇게 낸 책이 두 권이 됐다. 그리고 교수들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논문이나 책은 말할 것이 없지만 학회나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토론 한 것이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기실 연구교수가 되는 데에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내가 정작 교수가 되고 난 후 공부한 것을 되돌아보니 오히려 강사시절보다 못하다. 교수가 되면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 쓰지 못했던 글들을 마음껏 읽고 써보리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교를 많이 함도 아니요, 오히려 교수 임용 후 술과 모임을 멀리해왔다. 술은 마시더라도 일차로 끝내고 귀가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급적 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연구실에 와 책을 봤다. 큰 학문은 맑은 정신과 조용한 생활 속에서 이룰 수 있으니,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고 했던가. 그런데도 1년 동안 공부한 것을 계산하니 부끄러워진다. 그 이유로는 내가 무능하기도 하겠지만 잡무가 많아 연구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매년 학생들 어학캠프와 해외연수가 있는데 거기에 올해는 학부통합과 학교통합, 게다가 대교협 평가까지 겹쳐 아예 책을 펼 시간조차 없는 날이 많다. 수업을 끝낸 후 잡다한 서류를 작성하고 회의 참석하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흔히 대한민국의 교수는 만능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수업과 연구 외에 학생지도, 학생취직, 학교 통폐합까지 일일이 책임져야 한다. 정말 그런 것이 훌륭한 교수인가. 나는 적이 의구심을 갖는다. 선진국의 교수들은 대부분 수업과 연구에만 책임을 지고 나머지는 행정인이나 학생이 직접 해결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연구에 두 세배의 시간을 보내고 열정을 쏟는다. 일년에 몇 달을 외국에 나가 자료를 찾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10년을 꼬박 책 한권 쓰는데 다 바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세계적인 대저와 대가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와 선진국을 비교하지 말라고. 그러나 사람이 어찌 좋은 것을 보고 내 것과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대교협 평가에서 도무지 아무 쓸모없는 것들도 작성하라 하니 실망을 넘어 분노가 느껴진다. 사실 처리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조그맣고 사소한 것들이 연구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교수에게 잡무를 맡기지 않는 것이다. 학문적 연구를 할 때는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어 오래 동안 지속되는 純一無雜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서류 하나 쓰고 나면 아침 다 가고 사람 한 두번 만나고 나면 오후가 다 가버린 느낌이어서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 오늘 내가 공부한 것이 무엇인고를 생각하면 하루가 허망하게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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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독서도 © | 요즘은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 책보기에 더없이 좋다. 韓退之는 ‘符讀書城南’이라는 시에서 “가을비 내리더니 맑게 개고, 청량함이 시골 언덕에 불어오네. 등불과 제법 친할만하여 책을 펴기에 좋구나(時秋積雨霽, 新凉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券舒)”라고 했다. 흔히 사용하는 燈火可親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나도 연구실에 불을 켜놓고 이 가을 독서삼매에 빠져들고 싶다. 佛家에 坐中得力이란 말이 있다. 앉아있는 가운데 힘을 얻는다는 뜻이다. 가끔 공부는 스님들이 참선하듯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앉아 있으면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고 학문으로 대성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앉아서 힘을 얻으면 그 효과가 신묘하다고 한다. 李白이 쇠몽둥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앉아 있는 노파를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각고정진 해 결국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고 하는 磨杵成針이란 成語가 있다. 타고난 천재인 이백도 坐中得力을 했던 것이다. 아! 나의 이상은 맑은 가을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높은데 현실은 나를 자꾸 머뭇거리게 한다. 빨리 학교통폐합이 마무리되고 대교협평가가 끝나면 좋겠다. 그러나 며칠 전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한 원로교수의 말이 생각나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제발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이었으면.
장춘석 / 전남대·중국고전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