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이와 추억
송병완
사랑스럽고 행복한 아이가 내 막내 아이라 생각한다.
아장 아장 거닐 때 화려한 봄날, 자운영 밭에서, 목련이 피어오르고 왕 벗 꽃 아래서 달리던 아이가 아름답게 자랐던 아이였다. 매일 오토바이 앞에 태우고 만덕 초등학교에 내려다주었던 아이였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혼자서 이 십리 떨어진 고서면소재지의 태권도 도장을 다녔다. 초등 일학년생부터 도장이 옮길 적마다 따라 다녔던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광주 우산 초등학교와 광주 충장 중학교, 국제고등학교 거처 경상북도 구미 시 금호공대를 졸업하였다.
대학교에서 ROTC 군사훈련 받은 아이가 장교로 임관 휴전선에서 근무하고 공수훈련을 받은 아이가 지금은 익산에서 하사관 10명을 거느린 대위로 중대장이다. 아이로 엊그제인데 나라를 지키는 간성으로 성장하고 있다.
집에 오면 아빠 엄마 구두 닦기, 자질구레한 일 도맡아 하였다. 그러던 아이는 항상 긍정적이고 형들의 말에 순종하면서 가족애의 환경 조성에 한몫을 다하고 있는 사랑스런 아이였다. 엄마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사들고 어제밤이슬 내리듯 토요일 밤에 외박을 나왔다.
“아빠 엄마 생일잔치를 오늘 제가 해 드릴게요! “
아이와 함께 셋이 1966년 19살 나이로 첫 공직에 몸담았던 담양 남면 소재지로 갔다. 남면 소재지에 양 탕 이라는 음식 맛이 좋아 갔다. 지금 큰아이는 충남 서산에, 둘째 아이는 서울에 살고 있다. 오늘은 막내 아이와 오붓이 지내는 추억의 날이다. 입춘을 보낸 문턱에서 날씨가 예년에 없는 쌀쌀 함은 겨울다운 모습이다.
“효기야 지금의 시대는 재테크를 잘 해야 재산을 늘려 갈 수 있단다.”
엊그제 「주식회사 다부자」회사에 취직하여 나는 2일간 부동산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돈은 땅에 묻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세를 살아가는 고금의 진리였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독거리며 말했다.
“너는 장차 부모 곁을 떠나 경기도 이천지방에 터를 잡아라. 이천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로 발전의 전망이 있다. 다음에 집에 올 때에는 계획을 세워 가지고 오너라.”
집사람은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말이라 하였지만 부모는 장래를 걱정해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였다. 공직 32년 7개월 하였으나 공직 기간동안에 부채를 갚고 연금으로 처리하여 물려줄 재산 한 푼 없는 처지라서 경험을 바탕으로 일러준 것이다.
막내아이가 귀대하기위해 광주로 가면서 무등산아래 화암 계류에 있는 운암서원에 들렸다.
“여기서 선조 공부를 하고 가자. 1600년 전 ‘전라도 광주 유생이 임금에게 올리는 만 언소’ 해광 송제민 할아버지를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대대로 전 하여라.”
“값진 보석은 양가죽으로 바꾸지 않고, 뿌리에 물주면 따로 양분을 먹지 않아, 하늘의 덕은 하늘의 理로 실천해야 한다.”
운암서원에 문이 잠겨 주변을 둘러보면서 자식에게 한마디로 조상님의 말씀을 전달
했다.
작년에 만언소에 대한 글로 「광주 이야기」를 공모하여 광주문화예술진흥위원회로부터 아카이브 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광주 이야기에 올린 시조 한수 소개한다.
“떠 있는 그믐달도 하늘에 흠 이런가
산세는 연꽃처럼 화암에 둘러있고
운암사 배향된 선생 티끌 없는 만세라
무등산 정기어린 장엄한 운암서원
해마다 그려보는 호남의 유림이라
도학과 절의의 표상 가을 하늘 같아라.
조상의 바른 덕은 우리의 갈 길이다
자손은 이어받고 후손에 전하여라.
한 평생 나라 위해서 몸 바쳤던 임이라“
-송병완,<조상의 바른 덕은 우리의 갈 길이다> 時調 전문(전남문학 가을 제51호)
막내 아이와 보내는 하늘은 실오라기 없는 명경 같은 하늘이라 값진 막내아이와 추억으로 길이 남기리라.
(2006. 2.5 일요일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