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갚는 조건, 채무자 형편에 맞게"
채무조정기구 설립도 필요
빚갚는 기간은 최대한 짧게
입력 : 2004.11.15 18:07 08'
용접기능공 박철웅(51·경기 안산)씨는 자원 봉사를 하면 원금을 탕감해주고 ‘신용불량자’에서 해제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지난 7월 신한은행을 찾았다. 그는 독거노인과 결손 가정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자원 봉사 100시간을 마친 후 원금 200만원을 탕감받았다. 박씨는 “신불자였을 땐 일당 입금받을 은행 통장도 없어 일자리 잡기가 어려웠는데 이젠 새 삶을 찾았다”고 말했다.
신불자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일하려는 신불자에게는 일자리도 찾아주고, 좀더 과감한 빚 탕감도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또 능력이 있어도 일부러 안 갚거나 어려운 일은 안 하면서 정부가 대신 빚을 갚아주기를 기다리는 얌체들은 가려내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 대안 1:일자리와 연계된 신용 회복=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청년층 신불자는 인턴, 퇴직층은 재무 상담역 등으로 임시 고용하는 프로그램을 정부가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업종의 취업을 꺼리는 신불자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신한은행은 9월부터 연체 원금이 500만원 이하인 신불자를 대상으로 1시간 사회봉사활동을 하면 원금 2만원을 탕감해주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신불자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 대안 2:신용불량자에 ‘맞춤형’ 채무 조정=기존 신용 회복 프로그램은 채권자 중심이어서 채무자 사정에 관계없이 조건이 일률적이다. 다양한 채무자의 형편을 감안, ‘맞춤형’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한마음금융의 경우 군 복무 중인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제대 후 6개월 간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변형된 프로그램을 내놓기도 했다. 서울대 최현자 교수는 “다양한 신불자의 입장에서 금융기관과 협상할 수 있는 채무 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영국 등에서는 채무 조정기구가 채무자를 대리해서 채권자와 채무 조정 협상을 벌인다는 설명이다.
◆ 대안 3:개인 파산·회생제 활성화=우리나라의 개인 파산 신청건수는 작년 3856건으로 일본(24만2849건), 미국(162만5208건)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개인 파산 선고 후 면책을 받으면 빚을 탕감받는 이점은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파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면 너무나 많은 불이익을 받는다. 지난 9월 신분상 불이익 없이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개인회생제가 시행됐지만 긴 채무 변제기간과 비용 부담 등으로 이용이 쉽지 않다. 법무법인 세종 박용석 변호사는 “개인회생제의 경우 변제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해서 신불자들의 부담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