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를 청, 봄 춘
_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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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갔다, 라고 그날의 일기에 썼던 것 같다. 아마도 서른이 되던 해의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그만 이십대를 넘겨버린 또래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잔 술에, 혹은 한 곡의 노래에 가버린 청춘을 되새기고 되씹고 했다.
첫 사랑을 떠올리며 한 잔, 듣고 들었던 군대얘기에 다시 또 한 잔, 지나고 보니 시시한 일화들과, 지나고 나도 그리운 몇 곡의 유행가들.
덧없이 가버린 봄날의 그림자처럼 어느덧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전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상계동으로 망원동으로 더러는 일산과 죽전으로 친구들이 사라지고, 그날 그 어두운 골목길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봄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바람에 떠밀려 어디론가. 어느새 인생은 날짜가 지난 스포츠신문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대리님 요즘 이상해요. 그리고 어느 날 회사의 여직원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 이상한 봄이었다. 그런 여직원은 그런 여직원이고, 근무태도가 갑자기 좋아졌다며 부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쩍 말수가 줄었네? 거래처의 과장에게선 그런 질문을 받았고, 간만에 만난 대학 선배는 자식 여전하구나, 라며 어깨를 툭툭 쳤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조금 이상했고, 갑자기 근무태도가 좋아졌으며, 말수가 줄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여전한 기분이었다. 모쪼록, 청춘이 끝난 인간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잘 가라 내 청춘.
그렇게 청춘은 가버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주말 프로야구 경기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고, 어지간한 일에도 화가 나지 않았으며, 뭔가 한풀 꺾인 느낌이었고, 나도 한 번 가져볼까? 주택청약통장을 마련했으며, 쉬쉬할 줄 알고, 묵묵히 혼자서 맥주를 마시는 일이 잦아졌고, 다음 차는 자리가 비지 않을까 전철을 떠나 보내던 습관이 사라졌으며, 가능한 교통신호를 준수하게 되었고, 이럴 수가 교회를 한번 다녀볼까 싶기도 했으며, 말하자면 기스면 같은 걸 다 주문하고, 언제부턴가 자장면이란 게 참 먹기가 그렇고, 사는 게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고, 드라마 같은 걸 절대 보지 않는 인간이 되었으며, 어느 날 문득 어린아이로부터 아저씨, 라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히 있는 인간이 되었다. 아저씨! 왜?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서른… 아니 스물 아홉인데. 와, 나이 딥따 많다.
그리고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저씨(이 얼마나 사치스런 단어인가)는 고사하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어느 날 문득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라 불리는 인간이 되었다. 삶은 쏜살처럼 지나가고, 그러나 하루하루는 더디고 더뎠으며, 아스라히, 차창을 스치는 풍경처럼 지나가는 갈, 봄, 여름,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는, 저 산에는 꽃이 피지만, 그런, 느닷없는 꽃들의 출몰에도 무덤덤한,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다. 마흔이라니. 아아, 과연 나는.
아아, 과연 그래서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들판을 찾았다. 작은 개천이 흐르는, 개나리 무더기로 쓰러져 있고, 그 위로 구름 몇 점 떠가는, 집에서 가까운 한적한 들판이었다. 여린 새싹도, 봄볕의 반짝임도, 몇 점 나비와 자전거를 탄 아들도 모두가 봄에 합당한 존재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봄과 상관 없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정말이지 봄볕 아래서, 그래서 나는 외롭고 외로웠다. 마흔 살이란 나이는 봄의 수면(水面) 위에 고립된 끈적한 기름방울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빠 기분 좋지? 그래… 그래. 그래서 십 년 만에, 나는 또 한 번 지나간 청춘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 그래, 내게도 청춘이 있었지. 청춘이… 있었던가? 그러니까 그 옛날, 마치 백악기나 중생대 같은. 그러니까 이억, 이천오백만 년 전?
문득, 그러나 실은 한 번도 청춘을 보낸 적이 없음을, 마흔 살의 봄볕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이럴 수가! 실은 내게 단 한 번도 청춘이 없었다니. 어떤 화석도 나오지 않는 중생대의 지층처럼, 돌이켜보니 내가 믿어온 청춘의 지층이란 그야말로 텅 빈 것이었다. 단언컨대 우리에게 청춘은 없었다. 쓸쓸한 얘기지만 나도 당신도, 아니 대부분의 한국인은 청춘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단지 잠깐, 주민등록증에 찍힌 젊은 나이와 젊은 육체를 지녔을 뿐이었다. 변함없는 우리의 화두는 실은 언제나 ‘먹고 사는 것’이었다. 너무 쉽게, 또 당연하게 학교와 집, 학원과 집을 오가고 입시와 취직, 재테크와 내 집 마련으로 젊음을 다 보내버린다. 그리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게도 청춘이 있었다고, 우리의 청춘은 이제 지나갔다고. 그러니까 사천 만, 명 정도의 청춘 착각!
단지 젊다는 이유로 청춘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청춘은 보다 근사하고 멋진 단어이며, 실은 젊음과는 무관한 삶의 특수한 지층이다. 청춘은 갔다, 라고 외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그래서 흡사 봄이 가버렸다 외치는 에스키모와 다를 바 없다. 봄이 온 적도 없는 곳에서, 봄이 뭔지도 모르는 늙은 에스키모처럼, 그 들판에서 나는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간만에 아내와 함께 맥주를 기울였다. 남아 있는 인생처럼, 가려진 반달이 걸려 있는 푸른 봄밤이었다. 여보, 나 말이야… 언제고 꼭 한 번 ‘청춘’을 살고 싶어. 좋도록… 하세요. 나이를 먹는 건 그래서 근사한 일이란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그러니까 그것을 ‘청춘’이라 믿었으니까. 아직 누구에게도 청춘은 오지 않았다. 그것은 나이나 육체와 무관하고, 먹고 사는 일과도 무관하다. 저 연두의 새싹처럼 용감하고, 무모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어떤 것이다. 비로소 푸르고 아름다운 인생의 특수한 지층일 것이다. 청춘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열심히 열심히, 이제 청춘을 준비할 생각이다. 저 반달을 기울게 할 것인가 차게 할 것인가. 당신의 청춘이 끝났다면 할 말 없는 문제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시건방 떨지 말아라. 청춘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이를테면 저,
푸를 청, 봄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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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민규
현재 한국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소설가 중의 한명으로, 1968년에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에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를 출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세 번째 장편소설 『핑퐁』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