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사회안에서의 신체
-대공황, 계층분화와 자유주의 정치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사진은 전쟁과 세계대공황기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로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의 사진은 대부분 사실주의적 표현이었는데 주로 소외된 계층이나 인종문제, 경제문제등을 다룬 사진이었다. 사진이 사회적 통로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번단락은 당시 미국의 사진흐름을 주도했던 F.S.A의 워커에반스,도로시어랭등의 사진가를 중심으로한 도판과 설명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소속되어 있던 F.S.A를 알아보자.
FSA (농업안정국, Farm Security Administration)
사진은 사회성을 가진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하지만, 사진만큼 그 시대를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드물다. 사진의 흐름은 낭만적이고 감수성이 뛰어나거나 때론 도전적인 사진가들에 의해서 이루어 질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외적 조건이 위대한 사진의 흐름을 형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사진이 가지는 사회성때문일 것이다. 많은 전쟁속에서 로버터 카파, 유진 스미스 등과 같은 뛰어난 보도 사진가들이 탄생했고, 2차 세계대전중 승리를 위해 쏟아 부은 정열 속에서 세계적인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가 기반을 잡기도 했다.
흔히 다큐멘터리 사진(Documentary) 또는 보도사진, 기록사진이라고 말하는 사진은 으젠 앗제(Eugene Atget), 아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제콥 리스(Jacob A. Riis), 루이스 하인같은 뛰어난 사진가들에 의해서 그 위상을 굳혀 나갔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사진이 하나의 사진 미학적 장르로 도약하고 중요한 기능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농업안정국(FSA : Farm Security Administration)사진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경제학에서나 등장할 대공황기간의 FSA가 사진사에 나타난 것은 사진이 가진 사회성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기간 중 FSA(1935~1942년)에서는 로이 에머슨 스트라이커(Roy E. Stryker)의 지휘아래 사진가들로 하여금 당시 소작인이나 소작농, 모래폭풍이나 가뭄으로 인해 황폐해진 지역의 주민들, 영세농민들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 그 심각성을 알리고자 하였다. 물론, 로이 애머슨 스트라이크는 사진가가 아닌 경제관료였고, 이 목적 역시 당시 미국 농업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알려서 해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사진을 단순 도구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참여했던 아서 로드스타인(Arthur Rothstein), 워커 애반스, 도로시어 랭, 벤 샨, 매리언 포스트 월코트, 잭 델라노등과 같은 사진가들은 이들의 목적을 훨씬 뛰어 넘은 위대한 사진들을 탄생시켰다.
주된 목표는 로이 에머슨 스트라이커가 정하였지만, 사진적 시각이나 장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었던 그는 사진 스타일이나 장비의 선택등은 전적으로 이 대규모의 작업에 참여한 사진가들의 몫으로 돌리는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특히 이들 가운데 워커 에반스와 여류 사진가 도러시어 랭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흔히 가질 수 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의 주입, 강요된 주장등과 같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사진사에 기억될만한 뛰어난 사진을 남겼다. 특히 워커 에반스는 직접적인 정면시각으로 사진을 찍어 솔직하고 리얼리티한 방식으로 보여지도록 하였는데 에반스는 곤궁한 농민들의 생활상을 파악하고자 인물위주보다 그들이 생활상이 반영된 공간을 위주로 촬영에 들어갔다. 또한 도러시어 랭은 FSA에서 보여준 사진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그녀가 맡은 FSA에서의 주제는 이주 농민들로서 이를 가장 대표하는 사진이 바로 1936년작인 Magrant Mother 이민 노동자의 어머니이다. 이주 농민들의 생활과 그 상태를 기록한 사진으로 이주자들이 일거리를 찾아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이주하며 생활하는 불쌍한 어머니가 텐트 속에서 어린애에 둘러싸인 모습을 통하여 당시의 미국 노동자의 삶과 얼굴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진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의 기록과 정서적 감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정책적인 이유로 시작된 다큐멘터리 기록적 사진이기도 했지만 그 안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진실을 느낄 수 있도록 감동적인 해설서였기 때문이다.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준 랭의 사진세계는 한 시대의 사건들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사진을 보면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게해준다. ◀
-워커에반스
워커에반스는 그의 사진에서 주로 소외된 사회계층을 언급한다. 특히 그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인물이나 공간에서 그들의 현실을 짐작케 한다. 도판<55>를 보자.
사진은 1936년의 소작인 가족을 찍은 사진이다. 사진속의 인물들은 초라한 나무판을 이어지은 공간안에 3대의 가족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은 외형에서 드러나듯 누추한 옷을 입거나 벗은 몸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앙상하게 남은 신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맨발로 생활하는 당시의 소작인의 표본적 모습이다. 그 공간안에 그들 뒤에는 잡지에서 오려낸듯한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진속에는 유복한 가정의 모습이 있어 소작인가족들과 극명확하게 대비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작은 장치로 그들의 모습을 더 명확하게 파악할수 있게된다.
그리고 이들은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고 별다른 행동을 보여주지 않으며 사진가와 의 관계에서 객체로서 그들의 위치를 나타낸다. 이 가족의 가장 역시 자신의 지위를 다른 가족들과 동일시 하는 시선으로 촬영되었다.
-도로시아랭
F.S.A의 전속작가인 도로시아랭은 여류사진가로서 사진스타일에 워커에반스와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랭은 에반스의 비평적이고 치밀한 분석적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진과는 달리 정열적이고 감정적인 스타일을 고수한다. 에반스 사진속의 인물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표본적 개념의 사진이라 평한다면 랭의 사진속 인물들은 훨씬 자연스럽고 그들의 행동에 주목하여 더 직접적인 의미를 창조한다. 랭의 대표적인 사진인 ‘떠돌이엄마’사진은 그녀의 스타일을 알수있다. 꽉찬 프레임속의 어머니와 두 아이는 공공장소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하나의 가족을 담고 있다. 이 사진속의 어머니는 당시 27살 이었다고 한다. 꼭찬 프레임은 그들을 보호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두 아이는 어머니뒤로 잠을 자고 있는 듯 기대고 있고 어머니는 주위를 경계하며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사진과 동시에 다른 랭의 사진을 보면 로우앵글로 하늘을 포함한 인물사진들은 대부분 당시의 소외계층의 인물들을 더 크고 강하게 보이도록 한다.
-헬렌 래빗
헬렌래빗은 1936년부터 1951년에 결쳐 뉴욕에서 활동한 다큐멘타리 사진가 집단인 포토리그의 일원으로 다른사진가들과는 다른 낙천적관점으로 사진을 제작했다. 도판<57>에서 보여지듯 뉴욕의 할렘가를 배경으로한 이사진에서 사회적고통을 배재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은 가난을 잊은체 자유를 열망하는 분위기의 묘사를 한다.
포토리그
1936년부터 1951년에 결쳐 뉴욕에서 활동한 다큐멘타리 사진가 집단으로 가장정치 참여적 집단이다. 사진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세계의 참된 이미지 기록이 창립 목적이다. 1930년에 좌익성을 띤 “Film and Photo League 로 출발하여 36년 포토리그로 개칭하였다. 아론 시스킨드를 중심으로 할렘가의 실업과 빈곤에 처한 노동자를 동정적시각으로 촬영 하였으며, 루이스 하인, 시드 그로스만,솔 립손, 헬렌 레빗, 아론 시스킨드등이 참여인물이다.
-고든파크스
그는 미국의 최초 흑인사진가로서 F.S.A의 마지막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큰 호황을 얻는 라이프지의 기자로도 활동한다. 그는 당시의 사회문제중 인종문제에 대한 사진을 찍었다. 도판<58>의 사진은 백인인형을 껴안고 노는 두명의 흑인 아이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자신과는 다른 금발의 백인인형을 가지고 있는데 백인은 그들보다 우월하고 이상화된 인형을 가지고 있음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흑인심리학자‘케네스 클락’의 연구에서도 보여지듯 백인인형이라는 장치는 아이들에서 인종적 동일시를 나타낸다.
-마리온 팔피
팔피는 1940년대 인종과 신체에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판<59>의 사진은 어머니와 그 품에 안긴 아이가 있다. 그들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상처입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시 사회적 약자인 그들의 사진은 인종차별의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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