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08년 나온 안국선의 풍자소설 '금수회의록'에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 8가지 동물이 등장해 인간 사회의 모순과 세태를 비판한다.
이 소설에서 다섯번째 자리를 차지한 '무장공자(無腸公子)'는 배알도 없이
외세에 의존하려는 사람들을 창자 없는 '게' 보다 못하다며 독설을 퍼부어댄다.
무장공자란 번지르한 껍데기를 지녀 외모는 공자 같지만 속은 비어 있는 '게'를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기개나 담력이 없는 사람을 놀릴 때 무장공자라는 말을 써왔다.
하지만 게에게도 창자가 있긴 하다. 배가 작게 퇴화하는 바람에 머리 가슴 아래쪽에
접혀 있어 마치 내장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게 입장에선 '무장공자'라는 말이
못 마땅할 듯하다. 게가 불쾌해 할만한 일은 이뿐이 아니다.
자신을 가리키는 별칭과 속담 중 좋은 의미로 쓰인 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눈자루를 내어놓고 두리번거리는 모양새가 요사스럽게 곁눈질하는 듯 보여
'의망공(倚望公)'이라 불렀고, 바르게 가지 못하고 옆걸음 친다하여
'횡보공자(橫步公子)'라는 이름을 붙였다.
체면을 차리지 않고 급하게 밥을 먹어치우는 형상을 두고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다'라고 했는데, 이는 몸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두 개의 눈이 위험을 감지하면 급히 몸속으로 민첩하게 숨어버리는 데서 비롯된 속담이다.
그리고 사람이 흥분하여 말할 때면 입가에 침이 번지는 것을 보고 "게거품을 문다"라고 한다.
이는 게의 아가미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호흡을 위해 빨아들인 물이 배출되면서 주위에
거품이 북적북적 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야행성인 게는 달이 밝으면 먹이를 노리는
천적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아 몇일을 굶는 통에 살이 물러진다.
그래서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을 두고 "보름게 잡고 있네"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게는 한자로 '해(蟹)'라고 쓴다. 규합총서(1809년,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부녀자를 위하여 엮은 일종의 여성생활백과사전)는 '늦여름과 이른 가을에
매미가 허물을 벗듯 벗어나기'에 게를 뜻하는 한자에 벌레 충(蟲)자가 들어간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