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고향 솜씨마을' 을 찾아가보니
산나물 식사…손에 침 퉤퉤 짚신삼기…스님과 차 한잔…두부·찐빵 만들기…옥수수 따기…웃통 벗고 목물…
토요일 오후 대구에서 2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곳은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입니다. 김천IC에서 내려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 방향으로 가룻재를 넘어 청암사 입구까지, 곁눈팔지 않고 달리니 '옛날솜씨마을'이라는 표지가 외지인을 반깁니다.
비 그친 평촌리 들녘엔 여름이 한창이군요. 마을 앞길 수도계곡의 맑은 물은 콸콸 물소리도 요란하게 인사합니다. 폭이 제법 넓고 하천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 있어 버들치·쏘가리·꺽지 등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고 하네요. 건너편에는 하얀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노란 꽃을 매단 애기똥풀도 무리지어 개울을 수놓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넓고 편평한 들녘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편안해지다니요. 벌써 고향의 푸근한 품을 느낍니다.
마을 입구에 민박을 예약해 둔 무골집 박분남 아주머니(54)가 마중을 나와 계십니다. 짐을 풀고 감나무꽃이 떨어진 길을 따라 마을 구경을 합니다. 감꽃을 따먹던 유년의 기억, 그 끝을 붙잡아 봅니다. 마음이 짠해지는군요.
이른 저녁식사를 합니다. 수도산에서 직접 채취했다는 산나물이 한상 가득한 '웰빙 밥상'입니다. 입 짧은 아이들도 그 참맛을 아나 봅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체험장으로 향합니다. 짚공예 시간입니다.
"옛날에는 초저녁마다 새끼를 꼬았지. 짚신을 잘 삼으려면 손에 침을 이렇게 퉤퉤 묻혀서…."
야심차게 지푸라기를 한 뭉치씩 들고 새끼를 꼬기 시작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짚신을 만들겠다는 처음의 생각을 접고 계란꾸러미를 완성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뉘엿뉘엿 날이 저물고 땅거미가 깔릴 무렵, 마을에는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옵니다. 시골마을의 어둠은 도시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별빛이 묻혀 버리는 '휴식없는' 도시의 밤. 한창 깨어 있을 시간, 이불을 깝니다. 별빛도 초롱 눈도 초롱. 쉬 잠이 오지 않습니다. 비온 뒤 불어난 물 때문인지 계곡의 물소리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찌르르르…. 여치 같은 풀벌레들도 따라 웁니다.
희부여니 먼동이 텄습니다. 낯선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6시. 아침을 먹고 10여분을 걸어 청암사로 갑니다. 신라 도선국사가 세운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을 위한 승가대학이 있는 곳입니다. 스님들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마을로 내려옵니다.
체험장에서 두부와 찐빵을 만들어 보는 시간입니다. 밭에서 옥수수도 따왔습니다. 가마솥에 직접 불을 때 쪄먹습니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놀이에 한창입니다. 제기차기, 투호, 널뛰기, 비석치기. 컴퓨터 게임 말고도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는 걸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도 이번 여행은 소중한 기억이 되겠지요.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올려 웃통을 벗고 목물도 해 봅니다. 내친김에 마을 앞 계곡으로 달려갑니다. 물놀이를 하기 좋게 계곡을 정비해 두었군요. 평촌마을의 여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낭자합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그곳, 도시로 차를 몰아갑니다. 빡빡한 일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면 시골마을의 평온함을 찾아 아마 이곳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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