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만 둘 둔 나와 혜경이로서는 뼈저리게 공감하는 바가 많은 글이다. 딸 아들 골고루 두고 있는 우리 동기들에게는 얼마나 와닿는 글이될지 모르지만 말이야.
얼마 전에 오선생님을 만나뵈었을 때 주신 글이야. 오선생님의 삶을 한번 엿보자구. 게재 허락을 공식적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허락해 주시리라 믿어(지금 중국에 계시거든). 여러분들도 뭐 평소에 써놓은 것 있으면 올려봐. 범희가 올린 시도 좋던데. 아론 아빠의 저녁 햇살 표현도 멋졌구. 아론이가 7.5 킬로라 비만은 무슨 비만. 우유 먹이는 일은 많이 개선이 되었는지? 많은 부분 병선이가 주장했던 방법이 훌륭하다 싶긴 하지만...난 아이 젖을 마이크로웨이브를 사용해 데우는건 반대야. 마이크로웨이브 그거 좀 끔찍한 기계거든.
딸네 집에 가요
오금성
전에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면, 딸을 키우는 친구들이 가끔 "너 딸 한 번 키워봐라. 참으로 기가 막히다!"라고 하였지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도 심심하면 "여보, 당신 닮은 딸 하나 더 낳을까?"라고 하지만, 나는 그 깊은 속 뜻이 무엇인지를 전혀 헤아리지 못하였다. 아이들이 지금까지 자라오는 동안 교육과 대화의 많은 부분을 내가 맡아 해 왔다. 두 아이 모두 사내아이인데다, 아내보다는 내가 비교적 시간에 여유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른들이 나에게, "애들 키우는 재미를 절반 밖에 맛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것이 '절반 밖에 안되는 재미'라고는 꿈에도 생각한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4층에 사시는 오 집사님을 뵈었다. 타고난 미인이신 얼굴에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다복한 분이시다. 아침 인사가 끝나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 집사님께서 먼저, "집사님도 딸이 있으시죠?" "아뇨, 아들 뿐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지금 딸네 집에 가요. 오이김치가 맛있게 익어서 갖다 주려고요." "딸은 출가하고도 등을 기대는 일이 가끔 있다면서요?" "그래도 좋아요. 대화도 하고"라고 하시면 웃으시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도 주고 싶으세요?" "예에에!" 오집사님의 뒷모습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래도 좋아요. 대화도 하고"라 하시던 오 집사님의 모습이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 분의 말씀과 모습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머님'의 모습을 보았고, 또 그 모습 너머로 문득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저 딸에게 주고싶고 딸과의 대화가 커다란 즐거움인 어머니들처럼, 하나님께서도 완악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예비하신 모든 것을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면서, 우리와 대화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은혼일을 한참이나 넘긴 지금까지도, 아내는 철철이 이것저것을 장모님에게 신세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방 교회의 권사님이신 장모님은 "야! 내가 담근 된장이 제일 맛있어!"라고 하시며, 그저 주시는 것이 즐거우신 모양이다. 그 때마다 감사하고 죄송해서 "저희는 딸 안 낳기 잘했어요. 저 사람은 장모님같이 줄 형편도 못되니 말씀이예요"라고 하면, "사람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대로 사는거야"라고 하시며 웃으신다. 그리고 가끔 아내와 만나면 무슨 애기가 그리도 많은지 밤늦도록 아내와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나는 결혼 전에 아내에게 "시아버님이 안 계시니, 내가 남편 몫 외에 시아버님 몫까지 사랑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 그 말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생활하다 보면 가끔 다투기도 하였다. 때로는 서로에게서 큰 소리도 나왔고, 잠자리에서 돌아 눕기도 하였으며, 새벽 두세시까지 잠을 설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러한 긴장이 다음 날까지 간 적은 없었다. 그것은 막판에 가면 아내가 마지막 비장의 무기로 아껴둔, "두 배의 사람이라고? 반 쪽 사랑도 못하면서!"라는 말이 나왔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그날 아침 오 집사님의 말씀은 아내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심심하면 "당신 닮은 딸 하나 더 낳을까"라고 하던 아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 '딸과의 대화'였다. 아내도 "딸네 집에 가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제야 그 깊은 속 뜻을 깨닫게 된 나 자신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하였고, 또 아내에게 그러한 딸 하나 못 안겨준 것이 바로 나의 죄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남편들은 아내에게 자기 몫의 사랑만 하면 되지만, 사실 나는 남 모르게 그 두배의 사랑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또 내가 영생을 얻은 후로는, 아내에 대한 이러한 사랑도 하나님의 말씀(고전7: 3-4, 엡5: 25/28, 골3: 19, 벧전3: 7)에 대한 순종임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노력이 나를 두 배나 더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나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 2: 23)인 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전보다 한배 더 늘려야 되겠다. 내가 아내에게 줄 단 하나의 길은, 아내에게 '남편 몫과 시아버님의 몫 외에, 딸 몫의 대화와 사랑'을 더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도 세 배의 행복이 더 있을 것을 확신한다.
그렇지만, 아내에게도 "딸네 집에 가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딸'이 하나 있으면 진정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