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34A280C49E1329D42) 나. 제 2 회 결집 ③ 근본분열(根本分裂)과 20부파(部派) 대중들은 이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고 "너의 말은 불교가 아니다" 하고 가부의 논쟁이 극심히 일어났다. 특히 상좌부 계통의 장로들은 대천의 이 다섯 가지 일을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규정지어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외도의 나쁜 소견이라 단정했다. 그리하여 가부(可否)가 결정되지 않으니 아쇼카왕이 갖가지 방법으로 이들을 화합시키고자 하였으나, 결국 효과가 없으므로, 대천의 발의에 따라 다수결을 채택하였는데, 상좌부측이 패하였다. 그러나 논쟁은 의연히 그치지 않고 드디어 상좌의 1파와 대중의 1파로 분열되어 상좌부는 북방 가습마라국으로 집중되고, 중인도의 교권은 대중부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남방소전에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전하지 않고 있으므로, 일부의 역사가들은 이 사실은 북전 유부(有部) 안에서만 전하여진 허구설이며, 대천이란 인물도 허구의 인물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점이 없지 않다. 당시의교단 사정과 시대적 배경과 대소승법 대립에 입각한 여러 가지 실증에 비추어 볼 때 각각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니 진제(眞諦) 삼장(三藏)의 부이집소(部異執疏)와 파리서(巴利書 Kathāvattū) 오사원어(五事原語)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대천이 주장한 다섯 가지 일은 대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당시 소승들이 최고의 경지로 삼고 있던 아라한 증과(證果)에 관한 문제로서 아라한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즉, 불완전한 경지를 최고의 진리로 하고 있는 소승불교보다는 부처님과 보살을 이상으로 하는 대승불교가 타당하다고 주장한데 그 진원(震源)이 있다고 추지(推知)할 수 있다. 이것은 특히 20부파 중 제다산부(制多山部)의 주장이라고 논사주(論事註)에 기록하고 있다. 하여간 두 가지 사건인 발사자비구(跋闍子比丘)의 십사비법(十事非法)과 대천(大天)의 오사(五事)를 중심으로 당시의 불교계의 실상을 비추어 볼 때 교리(經), 교단(律) 양면에 있어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경향이 왕성하게 일어났고 새로운 사조(思潮)의 발흥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다른 학설들이 비온 뒤 죽순처럼 일어나 분파에 분파를 거듭하는 형상을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41E24255DAA9D333)
분파도(分派圖) 그래서 처음에는 근본 기말 이 두파가 한 교단의 양대 산맥을 이루어 얼마동안은 평정을 이루어 오다가 그 후 약 1백 년 후부터 대중ㆎ상좌 양계 등으로부터 균열을 거듭하여 도합 20부파를 형성하였으니 이제 간단히 도면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도면참고) <계속> 출처 : <불교계율해설>
|
첫댓글 이 분파도를 제가 그려 보았는데 선이 좀 굵네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가는 펜으로 했어야 했는데...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6.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_()_
대천의 오사(五事)를 감히 제가 무어라 할 수는 없지만 대천이 과연 아라한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상좌부와 대중부 20부파... 대중부는 나중에 대승불교로 발전했지요.
분파도를 직접 작성하신 열의에 감사드립니다.![^0^](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0.gif)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