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사회 불평등
학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가르칠까요? 과연 어떤 대안을 제시할까요?
EBS 수능 대비 강의(실제로 수능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강의)에서는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해법을 두 가지로 제시하는군요. 기능론과 갈등론. 그러면서, "그 두 시각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라"고 결론을 짓고 있네요.
이게 수능의 답이 될까요? 이런 교육이 옳은 것인지, 아래 핵심을 발췌해 봅니다.
---- EBSi 사회문화 40번째 강의 (앞 부분만 요약)
오늘 강의는 '사회 계층 현상'인데요, 먼저, 앞시간에 배운 사회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간략히 요약합니다.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문화적 불평등, 정보 불평등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나요?
사회 불평등의 각 영역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예컨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솔직히 권력의 획득이나 사회적 지위 상승에 있어서 더 유리하죠. 그렇죠?
또한 지방 의회 의원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권력을 갖게 되는데, 이때 후보자들 중에서도 경제력이 있어 충분한 선거 운동 자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당선 가능성도 높죠?
또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명예와 위신을 높이기에 보다 더 좋고요.
또한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곧 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회 불평등의 각각의 형태들은 모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건강 불평등이라고 하는 것도 경제적 불평등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상위층과 그렇지 않은 하위층, 빈곤층이 보통 건강문제에 있어서 더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고,
정보 불평등 문제도 역시 경제적 불평등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요.
또 정보 불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관계와도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불평등의 많은 종류들을 이야기해 봤는데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하는 이런 불평등 등은 서로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차등적 보상에 대해서도 요약해 봅니다.
기능론자들은 차등적 보상을 당연시 하죠? 일의 중요도가 다르다, 분명히 중요한 일이 있지요? 또 일의 중요도뿐만 아니라 그것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과 훈련을 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회적 보상을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더 중요하고 남다른 재능이 필요한 직업에 대해서 더 많은 보상을 해 주어야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 동기를 부여받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고 보죠. 그래서 기능론은 이러한 차등적 보상 체계에 의해서 정말 인재가 적당한 자리에,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그래서 사회가 유지 발전된다고 봅니다.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회적 불평등 현상은 사회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 기능론이었고요.
그렇다면, 바로 그 차등적 보상론에 대해서 갈등론은 어떻게 반박하나요? 정리해 봅시다. 이에 대해서 갈등론은 다음과 같이 비판을 합니다.
첫째,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일반 병사들의 헌신적 참여가 중요한 것처럼 위세가 높은 직업, 그렇지 않은 직업보다 위세가 높은 직업이 그렇지 않은 직업보다 반드시 사회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지금 기능론에서는 일의 중요도에 따라서 달리 대우, 차등적으로 보상해 줘야 된다고 하지만 갈등론에서는 첫 번째, 일의 중요도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 지휘관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일반 병사가 하는 그 전쟁 수행 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냐? 이렇게 반문하는 거죠.
스타만 중요하고 엑스트라들의 역할은 안 중요하다는 얘기냐? 아니라는 거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귀천이 없다. 그러면서 반박을 하죠.
둘째, 많은 보수를 받고 있는 직업이 실제로 사회에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보수를 적게 받는 직업도 많죠.
예를들면,....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CF모델인 정말 톱스타들은 정말 많은 보상을 받잖아요. 그들은 여러분 정말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는 이유는 사회에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하기 때문입니까?
반대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 저 아는 선배분 중에도 소방관이 있는데요. 이게 직장 근무 시간이 정말 천차만별이에요. 어떤 때는 주말에 나갔다가, 정말 명절에도 근무해야 되고 그리고 힘든 현장으로 가셔야 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받는 보수는 연예인이 받는 보수와 비할 바가 안 되죠, 비할 바가! 그렇죠?
그러면 보세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보수를 적게 받는 직업들이 많다는 거죠. 그들은, 기능론자들은 중요한 일을 하니까 많이 보상을 해주는 거고요. 중요하지 않으니까 적게 보상해 준다고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는 더 중요한 일을 하는데도 적게 받고, 덜 중요한 사회에 그렇게 그런데 워낙 많이 받고. 원체 많이 받고, 이런 경우가 사실은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면서 비판하는 거죠.
셋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가 어떤 가정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거예요. 예를들어 어떤 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운동도 잘 했어요. 그래서 야구를 시키고 싶었는데
결국 야구를 못 시켰던 것은 야구를 하려면 ... 왜 포기를 했냐면 요즘은 그렇다네요, 여러분, 운동을 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들고, 엄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바탕이 되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본도 그다지 많지 않고, 부모님이 일을 하셔야 되기 때문에 헌신적인 뒷바라지도 할 수 없는 가정인 거죠. 그래서 못 했어요.
즉 다시 여기 얘기하면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실은 그것을 꽃피울 수 없는 그런 상황들도 굉장히 많이 있다는 거죠. 바로 이 얘깁니다. 가족 배경.
기능론에 맞는 사례 하나와, 갈등론에 맞는 사례 하나가 소개됐네요. 167쪽.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김OO씨는 고3 때 처음 쇼핑몰을 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고 감각도 뛰어나다 보니까 친구들은 항상 김 씨의 옷을 보면 어디서 샀냐고 입어보고 싶다고 했고 나중에는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사다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어요.
이런 그를 유심히 보던 한 교사가 그에게 '인터넷 쇼핑몰을 차려보라'고 했고, 그 말이 떨어진 지 이틀 만에 창업을 했습니다. '교과서 덮어버리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 카페, 창업 사이트를 뒤지며 창업 준비를 했어요. 잘되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이유를 연구하기도 했지요.
이 사람 26살 김OO씨는 재능이 있죠! 타고난 패션 감각이 있고, 그것들을 잘 노력을 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해서 연 매출 수십억 원을 올리고 있습니다. 재능과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수십억 원의 사회적 자원을 보상받죠. 차등적, 보상을 받았죠. 기능론적 시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다음 볼까요, 우리나라 만 20세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부호' 중에서 주식 자산이 1천억 원 이상 되는 사람들, 여러분 1천억 원 정말 얼마일까요? 1억원도 아직 못 봤는데! 억이 100개도 아니고 1000개.
그렇게 1천억 원 이상인 사람이 무려 40명이나 된답니다. 20~40세 사이인데! 이 돈은 계속 불어나겠죠, 돈이 돈을 낳겠죠?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재벌 2세로 부의 대물림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기업을 창업해서 성공한 자수성가형 주식 부호는 단지 3명밖에 없었대요.
또 포브스지가 발표한 한국의 100대 부자를 살펴봐도 창업한 사람들은 22명. 나머지 78명은 모두 대물림 받은 거죠. 여러분 이 사례를 보면 어떻습니까?
권력, 부 이런 것들은 가정 배경이나 권력에 따라서 대물림되고 있는 거 같죠? 갈등론의 시각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갈등론의 사례 하나, 그리고 기능론의 사례 하나를 봤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두 가지의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현실에서는 기능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갈등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있기 때문이예요.
두 가지를 모두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갖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사회 불평등 현상에 대해서 요약 복습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이번 시간에는 사회 계층 현상이에요.
(후략)
첫댓글 교육계의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답글을 씁니다. 우선 김진필 샘께서 보시는 이비에스 강의 및 현 논술 교육의 문제에 대한 씁쓸한 감정을 저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변명을 드리자면 이비에스 강의는 대중 교육 강연이기에 어떤 사회의 제 문제에 대한 어느 한 편의 시각으로 제공하기에는 매체 그 자체의 특성 상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회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각 두 가지를 소개한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결론은 좋게 말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라는 주문을 한 것이죠. 물론 이것으로 학생들이 주체적인 사회의 시
각을 형성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소개와 논의를 디딤돌 삼아 기능론과 갈등론의 문제를 학생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해야겠지요. 즉, 논술 교육은 답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소개된 논점에서 자신의 문제 의식과 틀, 해결 방안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를 훈련시키는 교육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비에스 교육의 한계는 명료하게 드러나면서 또 거기서부터 진짜 교육의 출발이 가능한 디딤돌 역할을 합니다. 그럼 대중 교육 방송이 아닌 실제 논술문 쓰기 교육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기능론과 갈등론은 사회학의 오랜 주제입니다. 평범한 결론으로는 사회의 구성과 문제점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모두 해석가능하며, 어느 특정한 관점으로만 사태를 해석하는 것이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이 통상의 결론일 것입니다. 다만 제 주체적 관점에서는(학생들, 혹은 이 문제를 대하는 현실 주체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관점에서 오늘의 사회 현상을 분석할 텐데요. 아마 김진필 샘께서는 쓰신 내용으로 보아 기능론과 갈등론을 두루 살피면서 갈등론의 해석에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시는 듯합니다. 저 또한 우리 사회의 제 문제를 성찰하면서 긍정적인 해석보다는 현실의 많은 자본주의적 폐해를 보면서 갈등론의 관점을 옹호하게 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입체적이 듯이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은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지혜로운 판단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주체적 결론은 기존의 기능론과 갈등론의 분석적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더 나은 분석틀과 관점을 제기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즉, 둘 다 사회를 설명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이론들이라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보통 인문학에서는 질문 자체를 바꾸어 질문 자체에 모순적 상황을 타개합니다. 저는 질문을 좀 바꾸어 보겠습니다. 왜 갈등론과 기능론을 묻는가? 그 의도는 무엇인가? 학교에서 어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을 가르치려 하는가? 학교는 진리를 가르치는가? 아니면 문제를 제기하는 곳인가? 또 김진표 샘이 이곳에 이런 문제제기는 교육을 문제 삼고자 하는가? 아니면 지
아니면 사회불평등 구조에 대한 대안 찾기, 혹은 연구자적 호기심인가? 등등. 결국 제 질문은 질문을 질문자에게 돌리는 방식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진리를 드러내고 딜레마적 갈등상황을 타개하는 창조적 대안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위에서 쓰신 가격의 문제는 사용가치과 시장가치(교환가치)의 개념을 사용하시면 쉽사리 해결되리라 봅니다.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시장가치(가격)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 그것은 시장가치는 희소성과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정확히 지적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듯 안 하듯 언어가 미리 주어진 것처럼 시장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이라서 그것은 윤리성을 따지기는 어렵군요. 다만 시장의 가격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주체들의 동의하에 변동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하겠습니다. 끝으로 교육계의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교육이 희망이 되기보다는 문제가 되는
상황에 일말의 책임감과 죄송함을 아뢰는 바입니다. ^^;;;
진지하고 성실한 답변에 감복합니다. 질문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합니다. 그리고, 학교의 교육현실을 본격적으로 문제제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그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한 대안부족이 아쉽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쯧쯧-하는 혀차는 소리를 낸 것인데, 매우 불손하였군요. 사과드립니다.
자세한 설명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사과는 몰요^^;; 선생님의 진지한 성찰에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삶을 좀 가볍고 대충 살자는 주의인데 선생님은 자못 진지하신 듯합니다. 나중에 세미나 때 한번 뵙죠 평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