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에 썼던 <바로크 시대의 음향>가운데 발췌입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하더라도 바로크 음악의 정확한 음고는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옛 음악의 해석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펼친 서스턴 다트(T.Dart)의 <The interpretation of music>(음악해석, 1953년)에서 조차 바로크 시대의 기악 음악은 현대 음고보다 대략 반음 낮은 음고로 연주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악기학과 음악학의 발달과 많은 음악 자료들이 발견됨으로서 바로크 시대의 음고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으로 a=440Hz(혹은 442Hz)가 표준 음고로 사용되고 있으나, 바로크 시대에는 상이한 여러 가지 음고가 쓰였음을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즉 국가와 도시에 따라, 연주하는 장소에 따라, 연주하는 작품의 종류에 따라 다른 종류의 음고가 사용되었다. 이는 일견 복잡하고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이러한 현상은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크반츠(J. J. Quantz)가 저 유명한 <Versuch einer Anwei sung die Floetetraversiere zu spielen>(플루트 주법에 관하여, 1752년)에서 보인 바와 같이 어떤 악기, 어떤 음악도 그와 잘 어울리는 특정한 음고가 있으며 따라서 연주자는 연주하는 작품과 연주장소, 그밖에 환경을 고려하여 적절한 음고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크 시대의 연주자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대의 플루트나 오보에게 수 개에서 일곱 개에 이르는 여러 크기의 접합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크반츠의 Versuch에서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음고는 크게 교회음악을 위한 코어 톤(Chorton)과 실내악과 기악음악을 위한 캄머 톤(Kammerton)으로 나뉘는데 이는 국가에 따라 다시 몇 가지의 표준화된 음고로 다시 세분화된다. 18세기의 음악 이론가들은 당시 몇 개의, 어느 정도 표준화된 음고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먼저 요한 마테존(J. Mattheson)은 <Das neueroeffnte orchester>(새로운 오케스트라, 1713년)에서 "코어 톤은 오페라-캄머 톤(Opera-Kammer Ton)보다 9콤마에서 14콤마 높다"고 말했다. 9콤마는 1온음, 14콤마는 단 3도에 해당된다.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J. G. Walter)는 <Musikalisches exicon>(음악사전, 1732년)에서 "캄머톤은, 코어톤 또는 코르넷톤(Cornet Ton)보다 1온음 또는 단 3도 낮다"말했다.
야코프 아들룽(J. Adlung)은 <Musica mechanica Organoedi>(악기학, 1768년)에서 "오르간은 캄머톤보다 한음 또는 한음 반 높은 오늘날의 코어톤으로 조율되어 있다. 어떤 곳에서는 한음 반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18세기 중엽 독일에서 채용되고 있었던 음고에 관한 보고인데, 여기서 '코어톤' 또는 '코르넷 톤'으로 불리는 음고와, `캄머톤'이라고 하는 음고가 존재하였다는 것과, 양자의 차이가 1온음 또는 단 3도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코어톤에 두 종류가 있었는지, 혹은 캄머톤에 두 가지가 있었는 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음에는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 음고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살펴보자. 바흐의 제자의 한 사람이었던 요한 프리드리히 아그리콜라(J. F. Agricola)는 <Anleitung zur Singkunst>(가창법 입문, 1757)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의 쳄발로와 그 밖의 악기는 매우 높게 조율되어, 그들의 음고는 통상의 코어톤 또는 트럼펫톤(Trompetenton)보다도 반음만 낮다. 로마에서는 매우 낮고 프랑스와 대략 같으며, 코어톤보다 장 3도 낮고 독일의 많은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소위 A-kammerton보다도 반음 낮다." 그리고 크반츠는 <플루트 주법>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우 낮은 프랑스의 음고는, 플루트나 오보에, 파곳, 그 밖의 몇몇 악기에 있어서는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을 채택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매우 높은 베네치아의 음고도 목관악기의 음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그런고로 나 자신은 코어톤보다도 단 3도 낮은 독일에서 말하는 A-캄머톤이 가장 좋은 음고라고 생각한다." 아그리콜라와 크반츠가 말하는 'A-캄머톤'이란 이 음고에 있어서의 C음이 코어톤에서의 A음에 대응하는 음고를 뜻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상의 기록에서 18세기의 유럽에는 다음과 같은 음고가 존재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1) 코어톤(또는 코르넷톤)
2) 베네치아/롬바르디아의 음고
3) 캄머톤
4) A-캄머톤
5) 프랑스/로마의 음고
그러나 아직은 음고의 상대적 높이만을 알 수 있을 뿐 그것의 절대 음고는 다른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19세기에 알렉산더 존 엘리스(A. J. Ellis)가 유럽의 유서깊은 오르간들을 조사한 보고서인 <On the History of Musical Pitch>(음악적 음고의 역사, 1880년)에 비추어 보는 것으로써 18세기 음악의 절대음고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수의 바로크 오르간이 엘리스 시대에 이미 개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양호한 상태로 보존된 당대의 관악기들을 조사하는 것도 당대의 절대 음고를 알아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오늘날 많은 연구에 의해(특히 바흐 초기 칸타타의 기보법에 관한 연구) 당대 사용되던 음고의 상대적 차이가 약 반음 정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스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낮은 프랑스 피치는 약 390Hz로서 현대의 음고보다 약 온음 낮으며 현존하는 초기 프랑스식 세부분 플루트의 가장 낮은 음고인 a=약392Hz와도 일치한다. 이 음고는 크반츠에 의해 목관악기에 가장 적합한 음고로 간주되었으나 크반츠 시대에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듯 하다. 반면 이보다 반음 높은 A-캄머톤은 기악의 연주를 위해 실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이를 입증하는 것은 동시대의 악기들로서, 아우구스트 그렌저(A. Grenser)와 로텐부르크(Rottenburgh)일가가 만든 네부분 플루트로서 각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일곱개의 접합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의 음고가 a=약415Hz이며 가장 높은 것은 440Hz전후이다. 또한18세기 후반 하프시코드 명 제작자인 파스칼 타스캥(P. Taskin)이 가지고 있던 소리굽쇠는 a=409Hz의 음고를 가지고 있다. 바로크 오르간으로서는 후기에 속하는 고트프리트 질버만(G. Silbermann)의 오르간은 a=약 415Hz의 음고로 측정되었다.
엘리스의 보고, 18세기 이론서에 적힌 음고에 관한 기술과 바흐 칸타타의 기보법에 비추어 보면, 가장 높은 음고인 코어톤(코르넷 톤)은 a=약 490Hz로 오늘날의 표준음고인 a=440Hz보다 약 1온음 높은셈이 되며, 가장 낮은 프랑스와 로마의 음고가 a=약 390Hz로 오늘날의 것보다도 약 1온음 낮은 셈이 된다. 그리고 a=410Hz 주변의 A-캄머톤은 약 반음 정도 아래이고, 캄머톤은 오늘날과 대략 같은 a=440Hz 주변, 베네치아와 롬바르디아의 음고는 오늘날보다 약 반음 높은 것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르간을 사용하지 않는 순수 기악곡이 어떠한 음고로 연주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현존하는 18세기 당시의 관악기는 음고를 조절하기 위한 매우 많은 접합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음악을 어떤 음고로 연주하였는가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과 크반츠의 말을 비추어볼 때 당대 기악의 연주는 오르간을 동반한 교회 음악에 비해 상황에 따라 비교적 융통성 있는 음고로 연주되었다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a=415Hz만이 바로크의 피치이며 440Hz는 모던 피치라고 하는 일반의 인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며 어떤 기악 작품을 연주함에 있어서 피치의 선정은 매우 조심스럽게 당대의 연주 관습을 조사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