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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함,꼼꼼하심,솔직함,부지런하심,성실하심,
모두 다 갖추고 계신 선배님,
그중에 하나만 나보고 말하라면
정이많고 성실하신 선배님이라 대답하고 싶은
박상천 선배님을 찾아 뵈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사방의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온다.
“성령을 믿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앞에 문을 두드려야 하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께 구하는 삶 입니다. 라고 끝을 맺는다.”
후배를 보시자 좋으신가보다.
연신 웃으시며 반가히 대해 주신다
도시락을 싸오셔서 점심을 드신다며 내밥도 가져 오셨다고 같이 먹자신다
정성껏 싸온 육게장 국 두그릇과 김,빈대떡 ,고추며르치 졸임,야채 셀러드,
김치 등등과 맛있게 먹었다.
식사전 기도시 후배를 사랑하시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았다.
대담자 ( 채한병 )
박상천
** 선배님 , 안녕 하셨어요? 그간 별고 없으셨지요,
항상 건강하게 보이십니다.
이렇게 일할수 있게 해주심은 하나님이 역사하심 때문 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하나님 이야기로부터 인터뷰는 시작 되었다>>
** 가족 사항부터 여쭤 보겠습니다.
매일 도시락 싸주는 네살 아래 돼지띠인 형준 엄마와 아들,딸,
며느리, 손녀, 이렇게 5명 이지요.
<< 아들(박형준,금융회사) 은 3년전에 결혼 두살된 딸이 있다,
외동딸( 박지은,패션 디자이너) 은 아직 미혼이다 >>
이유는 없고, 하늘을 날으는 비행기가 어렸을때부터 멋져 보였어요.
한양대학교 공대 전기공학 과 졸업하고 부평에 있는
직업훈련원(국가에서 운영) 교사로 합격통지 받은 시점에,
대한항공 사무장 응시해서 합격 되어서 비행을 하게 된거지요.
<<선생님 타입도 어울리실것 같다니까 ,그렇게 보여 하며 싱글싱글
웃으시는게 아직도 젊게 느껴진다.>>
** 5기 이시지요?
한성봉이 하고 동기 이잖어. << 동기 라면서 좋아하신다,
두분은 서로 아직도 서로 성봉이, 박상천이 , 하며 어린애들 처럼
정답게 부른다>>
** 70년도에 입사 하셨는데 퇴사 하실때 까지의 경력 말씀 부탁 드릴까요?.
7년 동안 열심히 재미있게 비행 한후 77년도에 잠시 승무계장 (1년) 하다,
78년도부터 교육검열 과장 (2년)했고.
그런후에 KI ( 김포 출국과장,카운터 과장), 약 4년.
84년도 부터 사우디 다란공항 소장 으로 규정된 임기 2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와서 86년부턴 귀빈실 근무하다가 88년 6월 달에 퇴직하고
두달후(8월18일) 이민 왔어요,
<HL-5201, 대한항공 첫번째 비행기인가 보다 > <정석규,정상천,박상천,이창호, 5기 동기생들, >
**그럼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입사한 다음해에 형준이 엄마 중매로 만났지..
<<광화문, 금란 다방 에서 조금 더 내려가서 ..??..
내가 여왕봉 다방이냐니까 건너편 하며 과거를 더듬어 찾으려 했지만
기억을 못해냈다. 부산이 형수님 고향이시라고도 말해 주신다.>>
** 형수님이 교통사고로 좀 불편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하고 4년전 크리스마스 다음날에 일 끗마치고 귀가 하다 .
충돌사고로 좀 다쳐서 수술을 받았어..
몸이 약해져서 우리 모임에 잘 참석 못해서 미안 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이해해 주세요...
<1988 년 미국오기 바로전 사진> < 파리에서, 언제 또 두분이 파리를^^**>
** 그럼 다시 회사 근무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억 되고 계신 비행 편수 있으신가요?
우리 동기 최천일이가 속초 서울구간에서 납치범 쏴 죽이고
해변에 불시착 한 비행이 가끔씩 떠 오릅니다..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납치범 (김상태) 이 원래 사흘전
나의 스케쥴에 예약돼 있었다고 그러더군요.
가정을 종종 해 보고 있어, 나는 어떻게 대처 했었을까? 하고요..
** 비행중에 있었던 사건은 없으십니까?
글쎄 말이야, 아마 보잉 720 기종이었을꺼야.
KE 601 편 SEL/OSA/TPE/BKG 구간 FLT에서 김포공항 이륙(Take off )
하자마자 비상 Escape Slide ( 미끄럼틀)가 기내 안으로 터졌어요..
나는 Jump Seat (승무원자리) 에 앉아 있었는데 내쪽으로 순식간에
터져오면서 방향을 바꿔 승객 좌석으로 뻐쳐 나가는데
재치있게 여승무원이 겔리에 있다가 칼로 찔러 바람을 뺐어요.
이일로 정비본부 이사와 한참 승강이도 했었지..
<<그일로 인해서 비행할적마다 점푸씨트(승무원 자리) 에 앉으면
혹시나 또 하는 생각이 난 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신나게 그상황을 설명하시며 재미있어 하신다>>
<.멀리 7410 점보 비행기가 보인다….>
** 또 다른 비행에서의 기억 있으신가요?
아마 이후락씨 일겁니다.그당시 도피중 이었는지 해외에 머물다,
타이페이에서 입국 하실적 인가봐.
비행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기자들이 집으로 몰려와 인터뷰 하자
한적 있었어요. 당시 이영일 승무과장께서 숨으라 하시더군요.
그후 승무과장 승인하에 몇몇 기자들과 단체 인터뷰 하였습니다.
기내에서의 표정, 식사,음료수 무얼 드셨냐 등등 묻더군요.
** 기억좀 더 해 보시지요?
나는 지상 근무를 많이 하다보니 비행에서 특별히 있었던 일들이
더 이상 없는것 같아요.
그런데 특별 비행 이랄가? 쏘련 무르만스크에 동체 착륙했었던 비행 ,
파리에서 엥커리지 오는 도중 항로 이탈해서 난 사건.
그곳(쏘련)에 억류?(머물렀던) 승객과
승무원(사무장 9기 주명룡<전,뉴욕한인회장> 팀) 들 을
필란드 헬싱키 에서 부터 데려오는 Flight 한적 있는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고참들<4기 임정웅 씨가 팀장으로 > 14명 이
헬싱키에서 엥커리지 거쳐 서울로 계속 CREW 교대없이 오느라
힘들었지만 , 인상이 남네요.
승객들이 우리를 보자 표정이 참 뭐라 그럴가? 반가움에, 또 안도라 할가?
비행중에는 피곤한지 다들 지쳐 보였어요.
그리고 , 나는 아직도 내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기억이 하나 있어요.
이름이 뭐드라?(성은 알겠는데 이름은 잊었다,) 여승무원인데….
비행 중에 잘못을 지적 했는데 기분이 언짢었는지?
얼마뒤 그만둔 것이 나 때문이 아닌가 해서 아직도 마음이 안 좋아요.
**지상 근무시 있었던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저희 객실부에서 계셨을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우리 후배들이 지시사항 잘 안따러 주어서 내가 윗분들 한테
질책 받은일도 종종 있었지.
그때 우리 승무원들이 개성들이 워낙 강해서 …..
<< 말씀하시면서 나를 힐끗보시며 웃으신다, 힘들었던것 같은 느낌이시다>>
** 기준검열 (교육검열) 과장시 하신일이 많으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들 생각하나? 기분이 좋네요.
초창기에는 비행안전에 대한 책크리스트 만들어 배포해서 비행전후 꼭
책크리스트에 의한 사전 검열하고 비행에 들어가도록 했었고.
그후에는 정진구(7기),김승일(10기) 사무장등과 같이
객실 승무원 MANUAL 만들었지요.
참 이때 당시 자재본부장 이셨던 조양호이사(현 대한항공 회장)에게 가서
결재 받았던 일도 생각나네요..
** 김포공항 KI 계셨을때 저희 승무원들과의 관계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모두들 선후배 대접을 다 잘 해주어서 없었어요.
그리고, 내 가 015편
근무 였었을 때 인데.
안개로 인한 착륙시의 화염에 쌓였던 비행기를 뻔히 보고서도 통제된
상황이라 도움을 못 주고 바라 보았을때가 가슴이 아펐습니다.
** 그럼 이번에는 해외 지점( 사우디 다란)에 계셨을때 이야기좀..
도움도 주고 도움도 받고 보람된 근무였어.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우리직원들도 힘들었지만서도.
산업전사들 역시 뜨거운 날씨에 가족들 위해서 열심히들 일하고 있는모습,
건설회사 에서 초청해 주어서 방문해서 그곳의 현장에서 직접 보았지요.
** 내가 다란에 갔었을때 저에게 희귀 나무 하나 주시려고 했던 기억
하시는가요?
석화라고 하는나무인데,
비가 적은 사우디 기후에서 자생하는 선인장과의 나무인데 이쁘지요..
나도 귀국할때 그곳에서 키우던걸 가져와 키우다가 미국 들어올때
김광남(동기) 주고 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 귀빈실에서 저희 회사 근무를 마치셨는데요..
VIP 실 이라고 하는곳 아닙니까?
여기서 고생좀 했어.
청사 이전 하느라 모든걸 다시 셋업 하느라 힘들었어요.
** 이민은 어떻게 오시게 되셨습니까?
내가 8남매중 4째 입니다,
형제 초청으로 오게 되었지요.
** 혹시 후회라 할까 ?
정년까지 회사에 있지 않고 미국에 오신점 에 대해서.
나는 회사 근무 하면서 참 즐거운 마음으로 나 나름대로 보랍된 시간을
보냈기에 후회 물론 없어요,
이곳 미국으로 오게 된것도 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려 한것 같고.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놀랍다는걸 알았어요.
내가 미국에 안 왔으면 아마 하나님 모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 지금의 현재 를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보는대로 지금 잘 아는 분의 세탁소 메니저로 있어요.
처음 미국와서 나도 세탁소를 6년(89년 10월9일~95년 )동안
벨리 에서 했었어요.
안하던 일 하려니 참 힘들더라고..그래 그만 두었었는데,
간곡히 청하는 데 뿌리칠수가 없어서 바로 다음해 부터 이 세탁소를
메니저겸 주인같이 하고 있는데 벌써 10년 을 여기서 일하고 있네요.
이곳에서 일하게 된것이 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계기가 되었나 봐요.
** 하루의 일과는 ?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서 간단히 운동하곤 집을나서
바로 이곳 근처에 있는 영락교회 아침 예배( 5시30분) 를 보고 와서는
청소하고 간단히 아침 먹고 가게 7시 오픈 하지요,
저녁 6시 문닫고 집에 가면 하루 일과 끝이지요.
** 열심히 하나님 믿고 사십니다.
오늘 인터뷰가 하나님 간증 하는것 같습니다.
저희 대한항공 후배들과 또 동우회 회원들께 한마디 하시고
싶으신 말씀 해 주십시요.
현재 비행하는 후배들에게 긍지와 보람을 갖고
서비스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승객 뿐만 아니라 본인들도 즐거운 비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남가주 동우회원들에게는 글쎄?
우리 동우회야 그런 대로 잘 되지 않나 생각되는데,
아쉽다면 아직 함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이 조금 아쉬워요,
그리고 우리 모두 자기일 같이 보다 더 협조 했으면 좋겠는데,,
나부터 잘 못하니까 미안해요. <<겸손하신 말씀을 하신다.>>
** 끝으로 하실 말씀 또 있으시면 해 주실까요?
난 지금도 비행하는 꿈을 꾸고 있어요,
레이오버 (해외체류) 하면서 로비에서
동료,선후배가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필름이 나타나는
꿈을 자주 꿉니다,
그리고, 함께 정들게 비행한 후배들이 하나님품으로
하나,둘 갔다는 소식을 접할때 마다 슬퍼져요,
모두 건강 하고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 장시간 일하시며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더 건강 하십시요?.
그래요, 그럼 가는건가요? 조심해서 가시고요. 수고가 참 많습니다.
그럼 이제 송년모임 에서 보게 되나요? 잘가요..….
<< 11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부터 라고 말씀 드리니, 가계 문 닫고 서둘러 오시겠다고 하신다.>>
****
인터뷰 하시는 동안
과거를 돌이켜 보는게
참 기쁘신것 같았다.
비행편수 라든가
사람 이름까지 기억해 내시며
즐거워 하신다.
나의 노트북 보시며 얼마냐?
나도 노트북을 살까?
교회에서 컴퓨터 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잘 배워 두었다면
지금쯤 본인도 함께 남가주동우회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 갖을수 있을텐데 하시며
아쉬움을 표하신다..
인터뷰 하기전에 카페 가입도 하셨고,
E-MAIL 주소도 만들으셨다.
앞으로 편지를 주고 받을수 있다는 즐거움에
보이지 않는 미소를 띠우신다.
싸오신 점심
함께 하면서
엥커리지 아파트 숙소에서
팀별로 모여 밥 해 먹고,
파리,스위스 호텔 방에서 살짝
라면 끓여 먹었던 추억,
등등 나누며,
그 당시를 되돌려 보았다.
인터뷰 하면서도
사과를 깍아주시며, 오렌지 벗겨 주시며
먹으라는 선배님.
녹차는 몸에 좋아 하며
녹차도 만들어 주신다.
우리의 선,후배
다시금 고마움과 긍지를 느꼈다.
다음은 ( 11월 6일 )
즐겁게 하루하루 택시 운전 하는 후배
21 기 조시현 사무장 인터뷰 합니다.
첫댓글 늘 신실하게 살어가는 박 상천씨를 Lax에서 다시맞나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읍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 가는 삶이 더욱 복되기를 빕니다.
후배들에게 항상인자하신 미소지으시며, 매사를 원만하게 처리하셨던 선배님 !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늘 들으시면서 생활하시는 선배님을 존경합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반갑습니다.선배님 뵈니 옛날 생각납니다.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