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 언덕에 처음 왕궁을 만들었던 사람은 벨라4세로 몽고 침입 이후에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난을 온 후에 방어적인 기능을 잘 갖출 수 있는 높은 지역에 만들었다. 지금은 당시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14세기에 여러 왕들이 새로운 왕궁을 만들었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룩셈부르크의 지기시문트 때에 고딕형태로 왕궁을 넓혔다. 그리고 성벽도 쌓았다.
마티아스 왕 시절(1458-90)엔 부다 지역과 왕궁이 황금기였다. 그는 고딕양식의 건물들을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형했고 새로운 건물들도 가미했다. 궁전은 중부유럽의 문화, 예술,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거대한 도서관을 만들면서 학자들과 문필가들이 모여들었다. 오스만 제국시절 왕궁은 피해를 입었으며 도서 와 궁전 내부의 물건들이 없어졌다. 1686년 기독교 연합국이 3개월간 포위했을 때 왕궁은 많은 손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부다에서 터키를 물러가게 만들어다. 그 뒤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가 헝가리를 다스렸다.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는 203개의 방을 가진 큰 왕궁을 건설 했다. 그 후 이곳은 오스트리아 왕실에서 차지 하게 되었다. 186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 형성 되었을 때 이곳에 지금의 세체니 도서관 건물을 설계 했고 1893년에 완성 했다.
그리고 돔을 올렸으며 지금과 같은 대칭형 건물은 1905년에 완성 한 것이다. 그러나 1944-45년에 공습으로 완전히 불에 탔다. 1950년대에 복구를 시작 했으며 복구하는 동안 묻혀 있었던 중세 왕궁 터가 드러났다.
그리고 내부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신 고전주의 양식의 돔을 올리고 다른 지붕들을 단순하게 하면서 1980년대에 완성했다.
현재 왕궁은 국립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헝가리 출신 화가들이 그린 역사적인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과 헝가리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 중 뭉카시의 작품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견줄 만큼 튀어난 솜씨로 그려져 있다. 또한 오래된 왕궁의 지하와 왕실에서 사용했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일반에게 공개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