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시인의 시집 [백운대의 가을]이 왔다.
2009년 5월 도서출판 토방에서 나온 시집이다.
이용식 시인은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문학세계}, {문학저널}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고
시집 [난간을 스치는 깃털구름]을 낸 바 있으며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나는 한 때 성악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힘든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노래이고,
노래는 소리가 나는 시라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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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더 우리말을 갈고 다듬어 고유의 아름다움을 생동감 있게 응축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의 본질을 모색하고 새롭게 가꾸어 나가려합니다."
'느린 시간 읽기의 시학'이라는
정수자 시인의 해설이 권말에 붙어 있다.
다음은 해설 중 발췌한 부분이다.
"... 이용식 시인의 시조에서는 묵은 시간의 힘 같은 게 묻어난다.
그런 시간은 간혹 반성이나 회한을 동반하지만,
느긋이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여유를 담보한다. 몇 발 물러섬의 자세가
존재와 풍경의 다른 면모를 읽고 성찰하는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담담한 어조나 평이한 진술을 주조로 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그런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신선한 묘사와 표현을 구사한 작품들은 시조의 묘미를 한결 살리고 있다.
이런 측면을 더 천착하면 노(老)의 진경을 여는 동아시아 미학의 또 다른 격조와 운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 얻는 작품이란 비슷해지기 십상이라 주의를 요한다.
더 새로운 발상이나 기법에 대한 고민 그리고 긴장이 늘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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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리고 출발선 / 이용식
지나간 사연 위에 내 사연을 덧씌우고
흘러간 물길이라도 물레방아 돌리고픈
제자리 지워졌건만 뼈다귀는 살아있다.
아프던 그 시절로 되돌리는 파란 꿈을
손안에 잡힐 듯한 물러앉은 힘든 한 때
버티고 버틴 시달림 꿋꿋하게 남아있다.
잘못한 일들일랑 되살려내고 싶고
과거는 비싼 재산 곰삭을 줄 알았으나
끝이란 시작을 위한 또 하나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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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 / 이용식
소 떼가 판문점의 황폐함을 건너간다
숨죽인 뜨거운 긴장
안아보던 실향의 눈
신열의 군사분계선
쪽문 열고 나설는지.
혈육의 끈을 잇는 어렴풋한 자유왕래
화답 속 물꼬를 터
헐어낼 마음의 벽
행렬이 질곡을 풀어
문은 정녕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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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물전 할머니 / 이용식
할매는 늙었고 낙지는 싱싱하다
속일 줄도 모르는 일그러진 천성이다
비릿한 하늘을 당기면 끌려오는 잔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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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에게 / 이용식
햇 싹의 작은 힘이 세상을 열고 있다
연록이 껍질 깨고 바위덩이 밀어내고
하늘도 말씀의 숨결 그윽한 손 내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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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 이용식
응어리 삭히면
단 맛의 물이 된다
정감의 앙금마저
살빛으로 고여 올라
번지듯
숨 쉬는 고요
햇살 담긴 마법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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