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신년벽두 설계사무실에 근무할 때이다. 당해년도에 문화재보수기술자 면허를 취득한 해로 잊을 수 없는 해이기도 하다. 세월이 지난 이야기이나 그 때를 추억하며 답사기를 쓴다]
1997년 소의 해를 맞았다. 간밤에 자명종 시계를 아침 6시에 맞추어 놓았다. 어김없이 울어대는 자명종 소리에 퍼득 잠에서 깨어났다. 평상시 아침 8시가 다 되어야 일어나던 습관인지라 눈이 좀처럼 떠지지가 않았다. 좀더 잘까 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휴일이면 도로마다 정체로 난리를 치루는데 늦장 부리다가 답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 같아 벌떡 일어나 냉수로 세면을 했다. 잠은 잠을 부르지만 깨어나고자하는 열망이 잠을 몰아 낼 수 있었다.
계란 후라이에 후레이크에 우유를 한 컵 붇고 대강 아침 요기를 하고 저녁에 챙겨 둔 가방을 들고 밖을 나섰다.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희뿌연할 밝음 속에 먹구름이 가득 몰려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제까지만해도 쾌청하고 포근한 날씨었는데 밤새 비구름이 몰려 온 모양이다. 우산을 펴 들고 청주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시간은 7시 10분 자동 발매기에 일만원권 지폐를 넣고 부여행 선택 번호를 누르니 4,000원 이라고 찍힌 조그만 차표가 툭하고 떨어진다. 시외버스가 청주 시내를 차분하게 빠져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의자 깊숙히 몸을 묻자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얼마를 달렸을까 버스는 조치원과 공주를 거쳐 부여에 접어들고 있었다. 차창 밖으론 어느덧 빗방울이 함박눈으로 변하여 사납게 퍼붇고 있었다. 보아하니 바람도 심하게 부는 것 같았다.
부여에 다달았을 즈음 도로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버렸고 차량의 속도가 갑자기 거북이 운행으로 변하였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온통 사방이 눈과 빙판길인데 답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이쯤해서 집으로 그냥 돌아갈까 하다 내친김에 강행키로 마음을 굳혔더니 한결 맘이 느슨해진다.
차들이 거북이 운행으로 드문드문 오고 갈 뿐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한산한 거리이다. 신정 연휴라고 하지만 구정과는 달리 고향을 찾는 인파가 드문 모양이다. 택시 운전사에게 첫번째 답사지인 정림사지를 안내 받고 미리 준비된 답사 일정표를 참고삼아 찾아갔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약 십여분 정도 걸어서 정류장 맞은편으로 정림사지가 위치하고 있었다. 정림사지를 둘러 감싼 긴 담장이 눈앞에 들어왔다. 도로와 평행으로 나 있는 담장을 따라 남측으로 걸어가니 협문과 매표소가 보인다. 이하 중략(부여 정림사지는 추후 기재키로함)
무량사를 향해 외산면으로 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림사지에서 너무 떨어서인지 버스 안은 너무도 포근하고 편안하였다. 외산면에 도착했다 면소재지에서 무량사까지는 걸어서 가기엔 좀 먼 거리이다. 차령산맥의 지류인 만수산에 무량사가 위치하고 있다고 조사 자료에 기록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질풍같은 눈보라가 뼈속까지 파고들 기세였다. 택시를 타려고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조그만 면소재지에 차같이 생겨먹은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갈 수 밖에 옷깃을 최대한 여미고 무량사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뛰다보니 몸에 열도 나고 추위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산사의 진입로는 설경으로 장관을 이루었다.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표가 나타났다. 곧이어 '만수산무량사'라고 쓴 현판이 일각문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일주문 밖은 마을과 도로로 빈약한 가로수가 몇그루인데 일주문 안쪽은 울창한 수목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수목 사이로 세찬 바람이 스쳐 갈때마다 쉬이익 휘이익 쌔애액 하고 소리가 나면서 앙상한 나무가지마다 목화솜 같은 눈꽃이 하늘 가득 날리는 모습이 봄에 피었다 지는 벚꽃같다 참으로 아름다운 설경이다. 울창한 수림을 좌우에 끼고 터널처럼 나있는 진일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애써 지우지 않아도 세속의 오욕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사천왕문이 서서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열린 대문 안으로 중층의 무량사 대웅전이 절묘한 어울림으로 고정되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깜빡 천왕문 밖 우측 담장 밑에 있는 당간지주를 지나칠 뻔 했다. 사천왕문에 서서 극락전을 바라보면 산지가람에서 엿 볼 수 있는 지형의 레벨차와 산만스러운 모습은 발견되지 않는다. 산지가람을 이곳에 붙이기엔 왠지 어색하다(참고로 김봉렬 교수가 쓴 한국의 건축에서 무량사는 구릉형도 아니고 폐쇄적 중정을 가진 산지형도 아닌 평지형사찰 형식으로 백재가람의 면모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평지가람에서 느낄 수 있는 평형성을 느끼게 한다. 석등(보물 233호)-오층석탑(보물185호)-극락전이 주축을 이룬다. 우편으로 같은 지형에 부속채가 탑을 향한 정면으로 접해있고 좌측편은 낮은 지대 위에 건물들이 비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산지가람이면서 평지가람의 지형성을 도입하고 있는 절충식이라고 보아야(개인적 생각) 할 것이다.
그렇게 경내를 살펴보고 있는 중에도 눈보라는 그칠 줄 모른다. 바람따라 이리로 저리고 휩쓸려 날리는 눈발 때문에 시야가 흐려지고 사진을 찍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돌아와 남는 것은 사진이 전부인 답사객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일랑 못 찍더라도 건물이나 찬찬이 살펴볼 요량으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꼼꼼히 관찰하였다.
무량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중층건물의 극락전이다. 우리나라의 중층건물의 유구로는 남북한 통틀어 '충북속리산법주사 대웅보전, 충남마곡사 대웅전, 전남구례화엄사 각황전, 정림사 대웅전(소실), 평안남도 순천 안국사 대웅전. 강원도진양 장안사 대웅전, 사성전 등 十指로 꼽을 정도(앞의 나열은 사찰로 보았을 경우이고 外 많은 궁전 정전이 여기에 속한다) 극락전 공포는 아랫층이 외내부 3출목이고 위층은 내외 4출목으로 세부 수법은 외부 첨차살미는 화초형을 각주하고 내부는 일정하게 모두 연봉형의 운공이다. 천장은 중,종량에 의지하여 우물천장을 가설하였으며 그 아래에 위치한 대량에서부터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쳐서는 충량을 결구하였고 충량 머리엔 용두를 조각하였다.
[무량사 안내판 해설]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 준령 아래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중수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사찰 경내의 현존 건물로서 보물로 지정된 극락전을 중심으로 사천왕문,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 등이 있고 석조물로는 극락전 앞의 5층 석탑을 비록하여 석등, 당간지주, 부도 등이 남이 있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변 숲속에는 도솔암, 태조암, 무진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생육신의 한 분인 김시습 선생의 부도와 영정이 보관되어 있어 더욱 뜻 깊은 사찰이라 할 수 있다.
법당 보살님이 날 이쁘게 보셨는지 뜨끈한 떡국 한 그릇 먹고 가라고 대방으로 날 자꾸 이끄신다. 못이긴척 하고 따라가 기름기 없는 맑고 시원한 떡꾹으로 배를 채웠다. 마침 점심때가 막 지나서 인지 떡꾹 맛이 꿀맛이었다. 갈길이 바빠 더 머물고 싶었으나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첫댓글무량사 정말 좋죠..저두 두어번 가본적이 있거든요..절에 그리 많이 놀러 가본기억은 없지만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풍경은 저로서는 처음 봤거든요 언제 시간내서 다시 한번 가볼 예정이예요 그런데 절간 잎구에 무서운것,,거뭣이냐.. 꿈에 나타날까 무셔버~~ㅎㅎㅎ..
첫댓글 무량사 정말 좋죠..저두 두어번 가본적이 있거든요..절에 그리 많이 놀러 가본기억은 없지만 이렇듯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풍경은 저로서는 처음 봤거든요 언제 시간내서 다시 한번 가볼 예정이예요 그런데 절간 잎구에 무서운것,,거뭣이냐.. 꿈에 나타날까 무셔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