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은 나라에서 정한 책의 날이었다. 또 예로부터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등화가친의 계절이니 해서 1년 중 가장 여유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기로 일컬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런 세간의 통설을 무색케 한 지
오래이다. 가을에마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세태는 자연히 출판계의 불황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아이엠에프 이후 출판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아이엠에프로 타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나 업종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출판계는 자본의 영세성과 유통상의
좋지 않은 관행 때문에 특히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파를 지금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소매서점이 문을 닫았고, 소매서점의 감소가 도매서점의 부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끊이질 않는다. 실제로 최근에 나름대로 특징 있는 역할을 해 왔던 도매상 한 곳이
부도나면서 출판사들은 아이엠에프 때처럼 부도사태가 되살아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어디 부도뿐인가.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을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갈등으로 출판계는 반 년 넘게 벌집을 쑤셔 놓은 듯이 혼란스러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사태들을 겪으면서 경제적인 손실 이상으로 출판계를
피폐하게 만든 것은 신뢰의 상실이다. 그 단적인 예가 `사재기' 문제이다. 몇 달
전 일부 출판사가 자사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기 위해 대형서점에서
조직적으로 사재기를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뒤, 출판계는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극단적인 불신이 팽배해진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과연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이번
기회에 출판사들이 좀더 진지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베스트셀러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시장규모와 독자들의 독서경향 그리고
정보나 지식의 가치 등을 두루 고려할 때 책의 질보다는 지나치게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나 변칙적인 방법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지 않으면 위에서 말한 불신을 치유하기
어려울 뿐더러 낙후되고 왜곡된 출판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지금의 유통구조는 당장 책을 많이 밀어내는 출판사에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과 같이 불황이 장기화되고 시장 자체가 위축되면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출판사의 진지한 노력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은 독자들의 현명한
선택이다. 단순한 재미나 유행을 추구하기보다는 양질의 지식과 정보의 전달이라는
책의 고유한 기능과 책의 다양성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소비자로서의 독자들이
많아질 때 우리의 출판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현숙/출판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