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7-31; 마태복음 6,25-33 새처럼 날고, 백합꽃처럼 피어나리!
사람이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이나 비타민 같은 물질적 영양분만이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사랑을 주고받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등 마음과 정신의 영양분도 필요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믿음이나 소망같은 영적인 영양분도 당연히 사람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사람에게 몸과 혼과 영의 영양분이 필요하다는 말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이같은 영양분, 곧 인생과 생활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옛날 고대 근동에서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나면, 그곳에 왕의 모양을 본 딴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 이 지역의 주인은 아무개 임금이다" 하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27절 앞부분).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 천지만물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다" 하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로 이 세상에 보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를 아릅답게 가꾸는 이 소중한 직분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이 청지기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데, 이런마음을 가리켜 우리는 믿음, 또는 영성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과 영성에서 나오는 영적인 영양분을 섭취하면 섭취할수록 우리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싱그럽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27절 뒷부분: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여기서 사람은 아담 개인이 아니라, 인류, 곧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이 구절을 번역할 때, 인류 (Menschen)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지음받았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번 들으셨기 때문에 되풀이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밀한 기도와 신앙훈련에서 우러나는 영양분과 함께 유익한 사람과 만나면서 얻는 영양분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합니다. 다시말해 신앙을 나누는 만남,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 연인과의 만남, 서로 도울 자세가 되어있는 친구끼리의 만남, 마음을 털어놓고 가슴 속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활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고귀하고 값진 존재로 창조하시며, 서로 어울려 살도록 축복해 주셨는데, 이 인생에 아름다운 목적을 세우고 잘 살려 나가 멋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 28절 뒷부분-30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
'다스리다(radah)'라는 말을 성서에서 보면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말을 자연을 정복하고 동식물들을 우리 맘대로 지배하라는 뜻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날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먹거리 조차 안심하고 사먹을 수 없게 된 데에는 이런 오해가 한 몫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짓밟는다는 말은 포도원 농부가 포도를 따다가 짓밟는다는 말입니다 (Joel 4,13). 포도를 짓밟는 것은 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주 향기롭고 달콤한 포도주나 포도습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짓밟는다는 말은 파괴가 아니라,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일한다” 는 뜻입니다. '다스리다(radah)'라는 말 속에 담긴 두번째 뜻은 가축과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더 좋은 목초지를 찾아 양들을 이끌어 간다, 가축을 돌보며 키운다” 는 뜻입니다 (vgl. Ez 34,4; Ps 49,15; 68,28). '다스리다(radah)'라는 말이 지닌 세번째는 지혜롭고 믿음직한 임금이 “정의와 평화의 정신에 서서 선정 (善政)을 베푼다” 는 뜻입니다 (vgl. Ps 72). 선한 목자의 모습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정복하라는 말씀도 이런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 원문의 뜻을 살려서 창세기 1,26-28을 번역한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돌보아 주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에게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돌보아 주어라!'
창세기 1장 28절을 따로 떼어놓고 읽지 말고, 여섯째 날 일어난 일 전체 흐름 속에 묶어서 읽으면 (22-31), 특히 28절을 22절과 29절, 31절에 연결시켜 읽으면 이런 뜻이 잘 살아납니다. 특히 31절에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것은 사람만 놓고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그 하나 하나가, 그리고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니 보시기에 아주 좋았더라" 는 말씀입니다. 온 피조물이 다 함께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생육하며 번성하고 온누리에 충만하며,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며 살아갈 사람이 있는 이 모습,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고 대단히 좋아하신 창조세계입니다.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말고 다른 피조물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에는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자연과 사람 사이에 층을 쌓지 말고, 자연과 사람을 차별없이 대하면, 자연 속에서 무한한 영성, 끝없는 영양분이 흘러 나옵니다. 푸른 하늘을 보면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을 때, 이름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우리의 영성을 맑아지고, 우리의 믿음이 깨끗해집니다. 이것을 체험한 옛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청산은 날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날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31절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좋다' 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아름답다는 뜻은 눈과 귀와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이 곱고, 행실과 마음씨가 훌륭하고 갸륵하다는 뜻입니다. '아름답다'에서 '아름'이란 말은 '알'이 변한 발음입니다. '알'이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계란을 생각하면 그 뜻이 살아납니다). 밤알이 무르익어 모습이 드러날 때 '아람분다'고 말합니다. '답다'는 '사실과 같다', '사실에 꼭 맞는다' 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사실 그대로 표현된 것을 가리켜 본문에서는 '아름답다' 고, '보시기에 아주 '좋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겉사람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영화도 들판에 피어있는 들꽃만도 못하다고 예수게서 말씀하셨듯이, 속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속에 들어있는 진실이, 영혼 속에 들어 있는 영성이 겉으로 살짝 들어날 때, 사람이 지닌 아름다움이 진정 드러납니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무르익어 밖으로 표현될 때 우리는 인생의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는 이 알차고 아름다운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늘 신약본문에 나오는 염려입니다.
본래 염려 (merimnavw, mevrimna) 라는 말에는 단어 두 가지가 겹쳐 있습니다. 곧 "메리죠" (merivzw) 라는 단어와 또 하나는 음네메 (mnhvmh) 혹은 "누스" (nou`") 라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이 메리죠는 나눈다, 쪼갠다는 뜻 입니다. 음네메는 생각, 기억이란 뜻이고, 누스는 마음, 이성 (理性)을 말합니다. 즉 마음을 나눈다, 생각을 쪼갠다는 뜻이 바로 염려라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두 쪽으로 나누어지면 어떤 일에 집중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정신을 모아서 집중하면 잘 해낼 수 있는 반면에, 쉬운 일이라도 흩뜨러진 마음으로 하면 까딱 잘못되기 쉬운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어떤 일에서나 기대하였던 목적이나 목표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염려가 우리 인생에게 가치는 가장 큰 해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먼저 들여다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25절):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다시말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비교해 봐서, 가장 알짜배기되는 것을 가장 우선 앞세우면, 쓸데없는 일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에 가장 알짜배기되는 것을 어떻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으로 예를 세 가지 들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새 땅 (들판)에 있는 백합꽃 그리고 솔로몬이 누렸던 영화
먼저 공중에 있는 새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일입니다. 여기서 보라는 말 (ejmblevyate) 은 무엇인가 목표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백합꽃을 자세히 관찰하라고 합니다 (katamavqete). 여기서 그냥 새를 보라 하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새, 그냥 백합꽃이라 하지 않고 들판에서 피어나는 백합화를 관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에 목표를 정하고 바라보다 보면, 새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보이고 그 새의 주인이 눈에 보입니다. 들판에 있는 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겉으로 보이는 들꽃이 아니라 그 꽃의 주인이 눈에 뜁니다. 그 다음에 솔로몬의 영화를 되돌아 봅니다. 솔로몬은 7년 동안 정성을 들여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고, 값비썬 재료들을 수입해다가 14년 동안 궁전을 짓는 등, 이스라엘에서 부귀영화의 대명사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디오피아와 커다란 무역거래를 텄으며, 시바의 여왕이 그의 부귀영화를 보러 일부러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솔로문은 이런 일에 그토록 염려하고 조바심을 내며 부귀영화를 추구하였고 그 덕분에 남다른 부귀영화를 잠시 누렷지만, 결국 우상숭배와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좋지않은 최후를 맞았고, 나라마저 두쪽 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솔로몬의 일생을 자세히 되돌아 보면, 이 세상 부귀영화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한 눈에 선명히 들어옵니다.
이렇게 자세히 살피고 관찰해서 깨달은 주인 - 하나님 -을 내 인생의 주인,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1) 우리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사는 사람 (25-6절)이 되고, 2)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사람 (27절)이 되며, 3)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며 인도하심을 깊이 믿는 사람 (30-31절)이 됩니다. 이럴 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 속에 그대로 실현됩니다. 이 말씀은 먹고 입고 마시는 문제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방향을 달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를 앞세우다 보면 염려와 근심이 끊일 날이 없고, 분쟁과 다툼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하늘을 나는 새와 들판에 피어나는 꽃이 지니는 중요한 가치를 새로이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 아줌마들이 많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그중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여인은 비록 콩나물 시루를 머리에 이고 다녔지만, 그 머리 속에도 콩나물을 담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머리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았으며, 마음과 가슴 속에는 하나님과 자식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낼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훌륭한 사업가로 키워 냈습니다. 아들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어머니가 일하러 가기 전에 콩나물 시루를 교회당 문옆에 내려놓고, 열심히 기도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 일, 이 기도 덕분에 오늘 내가 이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내 어머니가 오늘도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는 것만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교회에서 치는 종소리를 어머니의 기도소리로 들었으며, 자기 회사의 심벌 마크를 종(鍾) 으로 정했습니다 (종근당).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내 직업이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손과 발로는 세상의 궂은 일을 하고 있더라도, 우리 마음과 영혼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의 들어 있고, 하나님이 주인으로 게시면, 우리 인생이 언젠가는 새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초월하여 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백합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공중의 새를 보아라. ...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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