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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일본시모노세키에 파견갔다 오신
부산시청직원이 쓰신글인데
배드민턴과 관련된 글내용이 좋은것같아서요
올려봅니다..
일본에 가보고 싶네요 민턴하러..
일본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매달 생활비는 조금씩 모자랐고,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는 아들을 향해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계속되고 있었고,
아무리 맥주를 마시며 ‘긴장을 풀 것,
아이들에 잔소리하지 않을 것.’
을 다짐해도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을 하기 위해 부산에서 가져 온
배드민턴 라켓은 우리의 생활을 상징하는 듯
한쪽 구석에 쳐 박혀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 ‘간다초등학교’
체육관에서는 매일 저녁 여러 가지 운동을 하고
있는 듯 했지만 우리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끔 집 근처를 산책하는 정도였다.
여름이 다가오는 6월말 어느 날, 우리는 용기를 내어
“지금 이곳에서 무슨 운동을 하는가?”를 물었다.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고 했고 우리도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배드민턴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의 일본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외국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클럽활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 한 가지 운동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운동이라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표준화된 놀이고,
몸을 통한 의사소통이므로 같이 땀을 흘리다보면
주변 사람들과 쉽게 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어떤 단체이든 외적인 부가활동이 있기 마련이기에
그런 기회를 통해 현지 언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고,
현지 생활을 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같다.
인근 슈퍼에 언제, 어떤 품목을 싸게 파는지,
맛있는 우동집이 어디인지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배드민턴 덕분에 우리는 그해 여름 비어가든
(호텔의 옥상 등의 야외 공간에 여름기간 동안 여는 맥주집)을 처음 가 보았다.
일본에서는 학교 내 체육관은 필수시설이다.
저녁시간에는 인근 주민을 위해 시설을 개방한다.
각 클럽은 활동상황을 연 1회 학교에 알리고 학교는
각 클럽의 활동 결과를 취합하여 시청에 보고한다.
각 클럽들은 시설 사용 후에 모든 것을 사용 전의 상태로
정확히 정리·정돈을 하기 때문에 학교 측으로부터는
어떤 간섭도 없으며 모든 것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모노세키시 내에는 50여 개의 배드민턴 클럽이 있으며,
학교의 클럽활동으로 배드민턴은 빠트릴 수 없는 주요 종목이다.
관련 협회에서는 수준에 맞는 다양한 대회를 열어준다.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의 원칙이 그러하듯
이곳의 모든 클럽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대회의 우승이나
실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이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는 매년 상호방문을 하면서 배드민턴 교류를 하고 있으며
2005년 9월 부산협회 팀이 이곳을 방문해서 교류경기를 가졌다.
그때 협회임원은 “한국에서는 A·B급의 잘하는 선수는
보통 초보자와는 시합상대를 해 주지 않으며,
초보자는 전문 코치의 레슨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한국의 생활체육은 일본과는 운영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동호회에 가입해서 운동 그 자체의 ‘즐거움’ 이상으로 엘리트 체육처럼
‘실력 향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다초등학교의 배드민턴 동호회는 1993년 창립되었다.
2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회비는 매달 500엔이다.
클럽의 회장과 총무의 주요 역할은 행정적인 서류를 정리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와서 체육관 문을 열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설치하고 셔틀콕을 준비한다.
또 회원을 위해 물과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오이짱’(아저씨)이라고 부르는 회장과 ‘미짱’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총무는 회원을 위해 매주 화·금요일
체육관 문을 열고 녹차를 준비하는 일을
10년 이상 변함없이 계속하고 있다.
오이짱의 유일한 권위는 복식으로 하는 경기에 선수를 지정해 주는 것이다.
‘누구와 누구가 조를 짜라’는 이 한마디에 모든 회원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 의견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이짱은 50대 중반으로 어구용품점을 경영하는데
자신이 5대째 경영자라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육상을 했으며 멋진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
1년 6개월 동안 배드민턴을 하면서,
그가 화를 내는 경우를 한번도 본 적도 없고 언성을 높인 적도 없었다.
우리는 간신히 물 만난 고기처럼 생활의 중심을 배드민턴에 두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운동에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곧 팀의 핵심 회원이 되었다.
배드민턴을 시작하면서 일본생활에 중요한 원칙을 하나 정했다.
무엇이라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절대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
이 원칙은 매우 유효했으며 보다 빠르게 일본생활을 적응하게 해 주었다.
언젠가 시모노세키 국제과에 근무하는 직원과 술 한잔 했을 때
그는 “정상이 무섭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왜 그렇냐.’고 물었더니
“어떤 경우라도 거절하지 않고 뭐든지 OK하는 것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배드민턴은 무엇이든 도전하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많은 일들을 스스로 찾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우리는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배드민턴은 그해 10월부터 한국어 강좌를
시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배드민턴클럽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는 듯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에는 시모노세키에서 자동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먼 곳까지 벚꽃구경을 데려가 주었고,
한여름 밤에는 숨죽이며 반딧불을 보러 갔고,
1박 2일의 캠프도 함께 갔다.
가을에는 자동차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까지 코스모스를 보러 갔다.
매년 11월 세 번째 목요일, 전 세계에 동시 시판된다는
‘보졸레 누보’가 나오면 오이짱은 그의 집에 우리를 초대해 주었다.
겨울에는 그의 집에서 대게 파티를 했다.
맥주공장의 빈 공터에 조성된 코스모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후쿠오카현 아마기시(福岡縣 甘木市)에 있는
기린 맥주공장은 공장의 빈터에 봄에는 봄꽃을,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심어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도시락을 먹고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코스모스만 보면 이 맥주가 연상될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우리는 미짱이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가을을 이렇게 멋지게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돌아 갈 것이라는
생각에 맥주를 많이 마셨고 잠이 들었다.
잠을 깨자말자 나도 모르게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노래를 중얼거렸다.
왜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코스모스를 보며 이 노래를
불러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 었다.
우리는 코스모스 향기가 없어지기 전에 한국어
강좌수업에서 이 노래를 가르쳤다.
모두들 가을바람에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흔들리 듯
몸을 가볍게 흔들며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내년에 다시 코스모스 피는 가을이 오면
우리를 생각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한국어를 배운 일본사람들이
이 노래의 한 구절을 잊지 않는다면 2005년 가을,
우리는 배드민턴의 오이짱으로부터 매우
특별한 선물을 받은 셈이리라.
매년 여름 여름캠프를 가는데 가지고 가는
장비의 규모가 얼마나 엄청난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여름캠프를 위한 준비, 역할 분담, 캠프장 설치부터
돌아갈 때까지 모든 것이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장에서 바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장비 일체를 포함하여
15인용 규모의 큰 텐트가 2개, 2~3인용의 작은 텐트가 6개 정도,
야외용 의자 인원수분, 야외용 식탁 3개, 고무보트 2개, 가스통,
가스버너 설치를 위한 벽돌, 그리고 기본적인 음식, 그릇 등
1박 2일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전부 가지고 간다.
특히 돌아갈 때 점심으로 먹는 야키소바(철판에 볶아 먹는 국수)는
오이짱이 직접 만드는데 국수는 물론이고 야채, 돼지고기,
소스 등을 넣어 엄청난 양을 만든다.
큰 가스통과 가스버너, 2명이 들어도 무거운 큰 철판을 올릴 수 있도록
벽돌을 둘러치는데 벽돌의 양이 작은 집을 지어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다.
1박 2일의 캠프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담배꽁초 하나
남기지 않고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해 두고 돌아간다.
야키소바용 큰 철판을 받치고 있는 그 벽돌이 꺼멓게 색이 변한 것을 보면
배드민턴 클럽의 역사만큼 오랜 세월동안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05년 봄, 한국 유학생과 팀을 이뤄 초급자
배드민턴 대회에 나갔고 우승을 했다.
상장과 배드민턴용 양말 한 컬레를 부상으로 받았다.
다음날 경기 결과가 지역 신문에 나왔다.
전부 40여 팀이 참가했으며 학교에서 클럽활동을 하는 중학생이 많았다.
이들은 학교수업을 마치면 부 활동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선택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모든 운동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즐겁게’ 하는 것에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그날 배드민턴회장은 “배드민턴을 하는 것은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마음의 힘까지 기르는 것.
”이라며 상대를 존중하면서 즐겁게 하기 바란다고 인사말을 했다.
배트민트를 하는 것이 마음의 힘까지 기른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그 목적과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의 2년간 배드민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초등학생의 어려운 숙제처럼 부담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배드민턴클럽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받은 것을 다 갚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산의 바쁜 생활에서 배드민턴을 계속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들을 초청하여 교류시합을 갖지 못하게 될 런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수염을 멋지게 기른 우리의 오이짱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 마인(Don't mind)”
첫댓글 잘읽어보았습니다. 일본에 가신 그분은 정말 색다른경험을 하셧나봐요..그리고 배드민턴이 ,신사적인운동이고,,일본인.. 임원진은 봉사정신이 매우 투철해보입니다,,우리도,,서로서로 도우면서 배려하고 운동하는 동호회 인이 되엇으면 좋겠습니다..
한일 클럽 모든분들 너무너무 분위기 좋고,협조가 잘 이루어지는것 같아서,부러움을 가득 안고 돌아 왔는데요.
좋 은글 감사합니다 .민턴이 생활체육인만큼 즐겁게 하는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이짱 .미짱 두분게 박수를 보냅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즐거운마음으로 운동합시다 *^^*
에구.감독님처럼 예쁜 맘,울 회원님들 반만 가졌으면 소원이 없겠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