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 1' 보강) 에서 방문객님이 쓴 내용입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에 무엇을 놓치기 쉽다는 것 말입니다.
처음 접해 본 불교책, 대행스님의 [무]를 보고 전율하여 제정신이 아니였습니다.
무모하다 할 정도로, 주변사람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물질에 대한 마음이 접어졌습니다. 별을 따보겠다는 휘황함에 빠진게지요
아뭏튼 나서기는 한 겁니다.
나서기는 나섰는데 어디로, 어떻게 갈지를 십오년이 훨씬 지나고 있는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곳의 특성상 그랬을 겁니다.)
알음알이 쌓지 말라고 해서 질문도 제대로 못합니다.
물어보면 생각이 많다고, 분별이 많다고 하니 말입니다.
마음은 참 높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시점에서 전 불자라기 보다는 차라리 '양비론자' 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만 드높인다고 법연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요즘 깊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그에 준하여 '조심스러움'도 알 것 같습니다.
[파랑새는 헤메일 때 파랑새인 것이어서]..... 라고는 하지만,
엄청 긍정하지만,
주변에 많은 파랑새들이 낙오되어 스스로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항복하는 것은 연민이라도 자아내죠.
무늬만 파랑새인 것은 좀 역겹습니다. 제가 그렇죠.
끝까지 파랑새이기는 정말 어려운 겁니다.
(이 시점에서 제머리속에 그 놈의 '근기'라는 말이 스쳐지나갑니다.
그 중에서도 '하근기.....'라는 말이,)
온전한 파랑새는 말하자면, 최상근기 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어떻해야 하나요?
저의 경우 '오도가도' 못 할 지경이라서 가야하긴 할 것 같습니다.
그 시점에서 방문객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이치를 이론으로 그저 이해 했다고 해서 만족할 바보는 없을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확연해야겠죠.
방문객님의 노력인 이 엑기스로 인해 불법(교학과 체험)에 대한 맥락을 가지게 된다면
자등명, 법등명의 실천이 훨씬 용이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개념이 없는걸요.
그저 기법만 죽어라 하지만, 문득 보면 언제나 제자리라는 허탈함이 있었습니다.
'머무르지 않음'에 대한 가닥이 이렇게 선명하게 다가온적이 없습니다.
허탈함에 늘 놓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몸부림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너무 부푼 기대인가요?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온전히 제 몫이죠.
해서........
진정 파랑새라면 어떤 상황이던, 장애가 장애가 아닐 것이고요.
저처럼, 무늬만 파랑새라면 고생 좀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헉! 양비론자의 티를 팍팍 내다니.....)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뭐........ 현재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도움이 많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첫댓글 저는 처음...부처님께서 6년 남짓 수행하셨으니, 저도 넉넉 잡아 6년 정도 수행하면 충분할 줄 알았습니다. 더구나 요가기법이 아주 빨리 붙었습니다. 요가에서는...뭐...거으 일사천리...덕분에 여러가지 요가기법을 행할 수 있었죠. 이런 저런 체험을 잡다하게 하다 보니, 반야심경의 내용은 나름 대로 파악이 되더군요. 그런데도 뭔가 미진하더라구요... 그래서 상좌불교에 눈을 돌리게 된 겁니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사리푸타 존자는, 당대의 지식인이자 빼어난 요가행자였음에도,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다시 수행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상좌불교를 건드릴 차례라고 판단한 겁니다. 밀고 나감에 있어, 제가 좀 무자게 단순합니다.
"반야심경을 알기 위해, 먼저 사리푸타 존자의 수준이 되어야겠다"는 처음의 다짐 대로, 밀고 나간 셈입니다. 그런데..."사띠"라는게...참...선명한 측면에 있어서는, 삼매보다 무자게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뭔 표가 잘 나지 않다 보니..."이게 뭔가? 이래 가지고 뭘 알게 되기나 하나?", 이런 의심이 줄기차게 일어났습니다. 의심이 일어나면, 힘이 빠지고 수행에 정열을 쏟기가 어렵죠. 그런데 걍 포기하자니, 뭔가 자존심 같은게 무지 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던 중 "좋다. 화끈하게...불법으로 나를 세뇌시키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를 세뇌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없다. 무조건 불법 대로 판단하고 본다...
무슨 일을 접하면...무조건 조건을 살피고, 오온 중 무엇인지 살피고, 인과를 살피고... 등등... 어떻게 보면, 그게 제가 처음 일으킨 신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불법으로 세뇌시키겠다는 결심을 하기 전에는, 신심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생활하다 보니...뚝뚝 떨어져 있던 지식이나 판단들이, 점차 나름의 체계들을 이루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화엄의 기초가 성립하기 시작했던거죠. 처음에는 이치를 이해하지만, 점차 이치를 발견합니다. 어느 정도 확고한 신심과 함께 한다면...신심이 확고한 만큼 그렇습니다. 이치를 발견한다...본다...확연하게 안다... 신심과 서원을 알게 되었을 때, 대승의 불자일 수 밖에요...
선불교에 "평상심이 도"라는 표현이 있죠? 불성, 색즉시공 내지 공즉시색, 일심 혹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등등...얼마든지 그럴싸한 교학을 가져다 붙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오묘한 뜻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놓는 겁니다. 달라붙어 위로 올려 놓은 이것이, 저것과 평등할 수 있도록...연기의 이치에 따라, 내려 놓는 것이죠. 특별하다면, 형성을 여읠 수 없습니다. 달라붙어야만 특별해 집니다. 불법조차 '방편이라는 방편'의 이치에 따라 내려 놓는 마당에, 알량한 성취야 말할 바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방편이라는 방편'을 설하심에, "법조차 버려야 하거늘 비법임에야..."라고 하셨죠...
이전에 적은 바 있는데...'비구'의 뜻이, '거지'입니다. 성직자를 거지라고 이름하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재가신도라고 함은, 거지가 아니라는 뜻이죠. 모든 이가 거지일 수는 없어요. 모든 이가 거지가 되면, 거지 즉 비구도 있을 수 없거든요. 불법을 보존할 가장 일차적 의무를 부담하는 전문집단이 존립할 수 없는 거죠. 그러면 불법이 보존되기 어렵죠... 저는 비록 거지는 아니지만, 거지가 아니기에 저의 알량한 성취로부터 보다 자유롭습니다. 수행의 관점에서...재물 보다 수행의 성취를, 소유하려는 작용이 더 위험할 겁니다. "앎, 선명하게 이치를 본다"는, "서원을 담은 확고한 신심"의 과보입니다.
어떤 관점에서...'스스로를 세뇌시키는 것'은 '광신'의 다른 말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작업이 유쾌하지는 않죠. 저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그런데 저같은 경우...모르고 지나간다는 사실과 함께 하는 유쾌하지 않음이, 스스로를 세뇌시킨다는 사실과 함께 하는 유쾌하지 않음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죠.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제 자신을 세뇌시켜서 알게 된 것이, 어떻게 저의 성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를 불법으로 세뇌시켰을 뿐인데 말입니다. 화엄의 이해로 부처님께 철저하게 승복한 후...'스스로를 세뇌시켰다'는 사실에서 일어나는 별 다른 유쾌하지 않음은 없습니다. 불자가 된거죠...
[특별함에 대한 갈망을 놓는 겁니다] .... 참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스스로 명분을 잃는 것이라는 겠지요. 시작이 그것과 함께 했으니까요. 그 기저에는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시작이 요란하고, 그 신념에 맞춰 삶의 형태를 결정하였으니,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든 '어때? 내 선택의 결과가........'......' 하고 내보이고 싶겠죠. 본말이 전도되는 이 어처구니 없음에 참으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 말씀들이 예리하고 시원합니다.
불자가 되야겠죠.
사마타 위주의 기법은 재미가 있어서 탈이라는..................
돌아가기에는...이미 너무 먼 길을 왔다는 사실을...문득 발견할 때...그것을 조건으로, 여러 사실들이 일어납니다. 뭐...하루 24시간 중 그러한 조건이 유지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그것을 조건으로 형성된 경향성은, 상당히 지속적일 수 있습니다. 후회, 오기, 조급함, 분노, 슬픔등...의도와 결합한 것들... 잠이 든 아이가 겪을 험난한 인생을 예견하며 측은해 하듯, 험난한 인생을 버텨 왔고 버틸 자신도 측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스미는 슬픔...그러한 슬픔은 후회, 오기, 조급함, 분노등을 평안으로 인도합니다. 그러한 슬픔에 침잠하는 것은, 살아 남은 것들의 평안입니다. 슬픔도 화두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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