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민주항쟁 1980년 5월 민주항쟁 -제8화-

[대한민국 친위대]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 전남도청

1980년 5월 30일 광주시 전남도청
박남선을 위시한 시민군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놓인 시신들을 보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지난 열흘간의 항쟁에서 영웅적인 민주화 투쟁을 보여준 윤상원이 뜨거운 불꽃에서 싸늘한 양초로 변했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김정수 중령은 시민군들을 보며 한쪽 구석에서 병째로 고통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윤상원의 죽음. 너무 괴로웠다. 1980년 5월 27일 도청 전투때 죽은 윤상원이 이제는 도청에서 계엄군이 던진 수류탄을 막으려다 장렬하게 죽어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걱정되었다. 투쟁위원장 김종배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항쟁을 이끌어간 사람은 윤상원이었다. 투사회보를 발간하고 시민궐기대회를 열어 광주시민들을 ‘하나’로 만들어 항쟁을 이끌어갔었다. 그런 윤상원이 없는 상황은 너무 걱정스러웠다. 구심점이 없다면 광주 시민들의 목숨은 전두환에게 달릴 판이었다.

“대대장님.”

김정수 중령은 숙인 고개를 올렸다. 채경식 상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김정수 중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실 말 있으세요?”
“옛. 대대장님께 건의를 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채경식 상사는 케블러를 벗고는 김정수 중령의 옆에 앉았다.

“상사님. 건의하고 싶은거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말씀해 보십쇼.”

말하기 전에 채경식 상사는 먼저 김정수 중령의 표정을 살폈다. 뭔가에 충격을 받고 패닉에 빠진 모습. 도청에서의 전투때 김정수 중령이 엄청난 숫자의 계엄군이 광주시내에 온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여유만만하게 농담을 하던걸 생각하면 지금 김정수 중령의 표정은 이중인격자의 얼굴처럼 완전히 바뀌었다.

“광주교도소에 대한 공격을 건의합니다.”
“...광주교도소 공격이라. 계속 말씀해 보세요.”
“공수새끼들이 아까 항쟁지도부를 기습한거 아십니까? 놈들이 또 피를 보려고 작정한 이상 우리도 이에 합당한 보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커다란 보복을 하지 않는다면 놈들은 우리를 더욱 고립시키고 말려 죽이려고 작정할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전두환 그 개새끼가 한 만행들 말입니다. 공군기 출격시켜서 폭탄 떨구고도 남을 놈입니다.”

채경식 상사는 많이 격양되었다. 3일 전. 계엄군에게 양민들이 학살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것과 많이 달랐다.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억울하게 강제 연행된 많은 숫자의 시민들이 광주교도소에 있습니다. 어른 아이 학생 노인 가릴 것 없이 많은 숫자가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빨리 구해내고 전두환 개새끼에게 큰 충격을 줘야합니다. 건의합니다.”
“...”

김정수 중령은 채경식 상사의 말이 끝나자 생각해 보았다. 매일매일 인간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죽어나가는 시민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소리 듣고 공수부대원이 휘두르는 진압봉에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살이 찢겨지고. 더 이상 떠올리기 싫었다.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서 몸서리를 치고는 눈을 떴다.

“그럼 전두환 개새끼를 깜짝 놀라게 합시다. 상사님의 건의 받아들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채경식 상사는 간단하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상무관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정수 중령은 지금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갔다. 타임슬립 했을 때만 해도 패닉에 빠지긴 커녕 재빨리 계엄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계엄군의 공격을 막았었다. 그러나 XX동에서 양민학살이 벌어지고 상무관과 지원동에 갔다 오면서부터 속된 말로 맛이 간 것 같았다. 타임슬립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나타난 건지.
마누라가 생각났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마누라가.




1980년 5월 30일 광주시 동부경찰서
“이거 미치겠군...”

조재헌 상사는 커다란 대검으로 사과 껍질을 깎으며 투덜거렸다. 주변의 하대치 병장과 강지현 중사, 박경아 중사, 김영우 중사는 그런 조재헌 상사를 보며 끼리끼리 수군거렸다. 쌓인게 많은지 조재헌 상사는 사과 깎는걸 멈추고는 대검으로 사과를 내리쳤다. 퍽퍽퍽퍽. 멀쩡하던 사과는 조재헌 상사의 엄청난 힘에 무채도 아니고 깍두기도 아닌 이상한 물체가 되었다.

“상사님. 뭐하세요? 상사님이 무서운척 하니까 갑자기 무섭다...”

해병대 박경아 중사가 벌벌 떨든 말든. 조재현 상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부서진 사과를 쳐다보았다. 부서진 사과. 부서진 사과와 함께 뇌수가 드러난 사람의 머리가 오버랩 되었다. 정말 상상하기 싫은. 10여 년 전 이라크에서 시체를 많이 봤었지만 사흘 전 도청 전투때 계엄군의 시체만큼이나 잔인하지는 않았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떠올리기 싫었다.
그때가 아마 2007년 6월 즈음인 것 같았다. 고국으로의 귀국을 몇 개월 앞두고 있던 하사 계급의 조재헌 상사는 어느날 쿠르드족 자치공화국군 병력과 대민작전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동 중 갑자기 이라크 저항군으로부터 로켓포 공격을 받고, 10여 분간의 교전 끝에 조재헌 상사는 재수 없게 이라크 저항군에게 납치되었다.
귀국을 앞두고 웬 지지리 재수 없는 일이 벌어졌냐 하며 불평했지만 몇 년 전에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김 모 씨처럼 개죽음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순순히 이라크 저항군의 아지트로 끌려갔다. 아지트에 도착한 뒤, 조재헌 상사는 저항군 간부들로부터 취조를 받고 미국인들이 있는 감옥에 일주일가량 감금되었다.
일주일 동안 조재헌 상사는 감옥에서 빠져나갈 방도를 생각하였다. 그런 가운데 저항군 아지트가 미 공군기로부터 폭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이라크 저항군의 아지트가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자동소총과 대검을 탈취해서는 이라크 저항군 수십여 명을 죽이고 같이 있던 미국인 10명과 아지트를 탈출하였다.
아지트를 탈출할 때 미치는지 알았었다. 대검에 목이 날아간 시체, 벌집이 된 시체, 뇌가 터져버린 시체. 탈출하기 위해 저항군들을 죽였다고 하지만 조재헌 자신이 저항군들을 잔인하게 죽일지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탈출 후 조재헌 상사의 엄청난 활약(?)에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수여받고, 자이툰 부대 사단장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게 되었다.
이라크에서의 엄청난 활약 덕분에 국내의 밀리터리 매니아들로부터 “목따는 빠다꼬꼬낫(...)” “해병대의 람보”같은 별명을 얻고, 문제없이 상사로 진급했지만 저항군 아지트에서 탈출했을 때의 일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하기 싫었다.

“박중사님. 조상사님께서 많이 힘들어 하시나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화내시면...”
“걍 그러려니 하고 싶지만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네...”

김영우 중사는 담담하게 혀를 찼다. 김영우 중사 입장에서 조재헌 상사는 존경스런 해병대원이었다.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이라크 전장에서 이라크 저항군에게 납치되어서는 해병대 정신을 발휘해 이라크 저항군들을 몰살시키고 미국인 10명을 구출 했다는건 아무나 발취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재헌 상사가 귀국한 후에 일부 시민단체들이 조재헌 상사를 살인마로 매도하는걸 보면서 조재헌 상사를 비난하는 시민단체들을 향해 일종의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근데 목따는 빠다 꼬꼬낫이라...”

뭐가 재밌는지 하대치 병장은 조재헌 상사의 별명을 꺼내며 웃었다. 그 말에 김영우 중사는 그런 하대치 병장을 노려보았다.

“...재밌나 하병장? 아무리 자네가 늙은 병장이라지만 해병대는 나이보다 기수빨이 통하는 곳이야.”
“아... 알겠습니다!”
“올해 스물 여덟이라매? 하병장. 여자는 있냐? 뭐 서른 처먹은 나도 사실 여자가 없지만... 제길.”
“대대장님은 여자 있잖아요.”
“...”
“...”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김영우 중사는 헛기침을 하고는 수통을 꺼내 물을 들이켰다.

“박중사! 대대장님 관련한건 대대장님 사정이고... 어떤 미친 새끼가 여자 이야기 꺼냈냐? 조상사님 심기가 불편한 상황에서...”
“김중사님이요.”
“...”

김영우 중사는 고개를 홱 돌렸다. 생각 같으면 밖에 나가서 하대치 병장을 갈구고 싶지만 대대장의 무서운 감시의 눈길이 있었다. 사실 하대치 병장은 엉뚱한 이유로 대대장에게 이쁨(?)을 받은 말년 병장이었다. 그것은 몇 개월 전에 있었던 대대 내 독서 감상대회에서 하대치 병장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감상문으로 제출해 대상을 받은 것으로, 웃기게도 태백산맥에 나오는 빨치산이 하대치 병장과 동명이인이었다. 태백산맥 감상문에 대상을 수여한 대대장은 태백산맥을 무려 중학교 때 읽은 조정래 광팬(?)이고. 그 일로 하대치 병장은 대대장에게 이쁨을 받게 되었다.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대대 내 장교들과 부사관들은 당시 포상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들이었다. 그리고 대학교때 문학을 전공했다는 어느 부사관은 하대치 병장의 태백산맥 감상문을 보고는 하대치 병장에게 제대 후에 문학을 해보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이봐 김중사.”
“옛. 조상사님!”

김영우 중사는 조재헌 상사가 자신을 부르자 곧바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자네 나를 너무 생각하는군... 누가 보면 짱친인지 알겠다. 나한테 관심있냐?”
“아... 아닙니다! 관심은요~ 무슨... 상사님이 걱정될 뿐입니다.”
“그래? 걱정 많이 되겠다. 화난답시고 내가 자꾸 발광을 해대니 뭐... 목따는 빠다꼬꼬낫이 무섭긴 하지. 대검으로 이라크 저항군 50명의 모가지를 땄으니까. 난 가서 눈 좀 붙이고 와야겠다.”

대검을 칼집에 집어넣은 조재헌 상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재헌 상사가 사라지고. 박경아 중사와 강지현 중사는 도청이 보이는 창문 앞에 앉았다.

“언니! 그 얘기 들었어요?”
“그 얘기라니?”

강지현 중사는 재밌는 일을 들었다는 듯 박경아 중사를 궁금하게 하였다. 한참을 기다리고, 강지현 중사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공병소대 이수영 소위님께 들은 이야긴데, 대대장님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네요?”
“응? 대대장님한테 여자가 생겼다고?”
“네. 이틀 전이던가...? 구혜선인지 김혜선인지 하는 여자가 대대장님께 드릴거 있다면서 벌꿀을 선물로 주셨다던데...”
“선물? 진짜?”
“네.”

박경아 중사의 물음에 강지현 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경아 중사가 알기로 대대장은 마누라가 있는 몸이었다. 대대장의 마누라를 장교, 부사관 회식때 본 적이 있는데, 대대장의 마누라는 30살 먹은 여자치고는 너무 섹시하고 젊었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미모였다. 그런데 여자가 생겼다니?

연상의 김정수 중령의 마누라

(나이에 비해 참 동안이다;;;라지만 사기 아녀?ㅡㅅㅡ)

“에이 설마~”
“진짜에요. 이수영 소위님께 들은 이야기라니까요?”
“정말? 이수영 소위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야?”
“네.”

믿기 힘들다는 표정. 박경아 중사는 도청을 바라보았다. 도청을 보면서 문득 김혜선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1980년 5월 30일 광주시 전남도청
해병대 지휘관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김정수 중령은 모이는 지휘관들을 보며 채경식 상사가 했던 건의를 떠올려 보았다. 지휘관들이 모두 모이고. 김정수 중령과 지휘관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 이렇게 모인 이유는 채경식 상사님께서 광주교도소에 대한 공격을 건의하셔서 이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

김정수 중령의 말이 끝나자 지휘관들은 일제히 수군거렸다. 이를 본 이주영 소령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왜 이렇게 시끄러! 조용!”

이주영 소령의 호통에 주변이 조용해지고. 김정수 중령은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에게 테러 행위를 했습니다. 바로 어제 말입니다. 놈들이 작정하고 테러를 저지른 이상 우리도 이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광주교도소를 공격해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시민들을 구출하고 전두환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줘서 경고해야 합니다. 광주시민들을 계속 학살한다면 이대로 앉아 있지만은 않겠다고 말입니다.”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지휘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김정수 중령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기만 하였다. 한편 다른 지휘관들은 김정수 중령의 말이 군사작전을 의미한다는 걸 간파하고는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럼... 작전을 실행하실 겁니까?”

지휘관들 중 전현빈 중위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그 질문에 김정수 중령은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대대장님! 광주교도소는 공격하기 힘들텐데...”
“힘듭니다. 네. 광주교도소에 공수부대가 수백 명은 배치되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방어만 할 겁니까? 방어만 하다가 옥쇄하게요? 뭐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전두환 씹새끼가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 북괴의 사주를 받아 공산혁명을 일으킨다고 개지랄 할겁니다. 그 개새끼한테 광주교도소 공격은 광주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아주 좋은 기회겠지요. 하지만! 계속 방어만 하면 언젠가 우리가 괴멸될 건 분명하고, 어쩌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옆에 있던 채경식 상사가 바톤을 잡았다.

“광주교도소 공격은 내가 건의했네. 혹자는 이 건의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겠지. 교도소를 왜 공격합니까? 상무대나 31사단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범죄자들이 득실대는 교도소 입니까? 라고... 뭐 잘못된 말은 아니야. 하지만 지금 광주교도소에는 살인범이나 강간범, 흉악범 같은 쓰레기들 보다 시위하다가 연행된 시민들이 더 많이 있네. 공수부대의 진압봉에 구타당하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그들을 구해야 하네. 그리고 광주교도소 공격을 통해 계엄군의 광주시내에 대한 포위를 풀어야 하네. 포위를 풀지 못하면 대대장님 말대로... 우린 끝장이야. 산다 해도 북괴 간첩으로 몰려서 전원 총살당하겠지. 음...”
“...”

총살! 이 단어는 군인들이라면 몸서리 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총살대에 끌려가 M16 소총탄을 맞고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대대장님. 언제 작전을 결행하실 겁니까?”
“언제? 빠르면 빠를수록 하는게 좋을 겁니다. 지금 당장이 될 수도 있고...”
“!!!”

일제히 경악하였다. 지금 당장이라니? 지휘관들은 다시 수군거렸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보통 침투작전을 준비하려면 최소 이틀이나 사흘은 걸리는 법인데, 김정수 중령의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뭔가 숨겨둔 비책이라도 있다는 건지.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중위!”
“옛. 대대장님!”

김정수 중령의 호명에 전현빈 중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전중위. 자네 소대가 최강의 소대인거... 맞나?”
“그렇습니다만... 아니. 맞습니다 대대장님!”
“하긴. 27일 전투 때 공수여단 특공조 몰살시키고, 어제 도청에 역 침투해 공수놈들을 죽였으니까...”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김정수 중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는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대원들은 들어라. 우리는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광주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개시한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작전이지만 제군들은 그동안 대한민국 해병대답게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고 주어진 임무를 잘 완수해 주었다. 이번 작전은 너무 중요한 작전이다. 이 작전을 실패하면 우리 대한민국 해병대는 최후에 옥쇄를 각오해야 한다. 전현빈 중위의 소대를 중심으로 최정예 소대들을 뽑아 특공대를 조직하라. 그리고 시민군에게 협조를 부탁해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우리의 목표는 광주교도소에 갇혀있는 시민들을 구출해내는 것이다. 이상.”




1980년 5월 30일 광주시 금남로

강우혁 병장의 사랑 이수영 소위님. 하앍하앍.
(이수영 소위님이 대대 내 노래대회에서 이수영의 휠릴리를 부르는 모습)

도청 앞 분수대로 군용트럭들과 장갑차들이 몰려들었다. 사막위장복 차림의 해병대원들은 트럭이 오자 장비를 트럭에 싣고, 각자 개인화기를 점검하였다. 시민군들도 M1 소총, 카빈총, M16 소총을 들고서 각자 트럭과 장갑차에 올랐다. 주변은 북적거렸다. 이수영 소위는 전투를 준비하는 해병대원들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수영이 누나! 누나 보니깐 넘 섹시하다. 헤헤~”
“강병장! 자꾸 누나라고 하지 말랬지?”
“누나! 제가 누나보고 누나라고 하면 안돼요? 솔직히 나는 누나같이 섹시하고 청순하고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좋은데... 나보다 두 살 더 많은 여자는 더더욱 좋고.”
“이... 이게!”

이수영 소위는 주먹을 휘두르는 척 하고는 이내 참았다. 강우혁 병장의 행동이 너무 닭살스럽지만 행동이 닭살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체벌을 할 수는 없었다. 강우혁 병장은 정신 나간 초딩처럼 웃기만 하였다.

“우리 수영이 누나 넘 섹시하다. 헤헤헤헤...”

군용트럭 한 대가 공병소대원들 앞에 멈춰 섰다. 소대원들은 각종 장비를 들고는 군용트럭에 옮겨 실었다. 장비들이 모두 실리고, 소대원들은 하나 둘씩 트럭에 올랐다.

“아~이 씨발. 강해병님. 지금 작전 나가는겁니까?”
“그런거 같은데? 왜?”

불만이 많은지 소대원 한명이 노골적으로 투덜거렸다. 강우혁 병장은 군복에서 껌을 꺼내서는 입에 넣고 씹었다.

“에라 망할. 작전 나가면 강해병님이 소대장님하고 붕가붕가 못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뭐라고?”

험상궂게 생긴 소대원의 말에 소대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원조 미지왕처럼 생긴 소대원은 험상궂게 생긴 얼굴과 달리 은근히 변태끼가 있었다. 얼마나 변태끼가 있는지 쉬는 시간에 경험담(?)을 들려주는 건 기본이고,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는 그 둘이 뜨거운 밤을 보내길 기원(?)하는 기도를 할 정도였다.

“강해병님. 이수영 소위님 좋아하시죠?”
“응. 대대장님도 아는 사실인데?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소대장님하고 진작 해버려야 하는 건데... 소대장님은 강해병님의 마음을 왜 모르실까...”

혀를 찼다. 강우혁 병장은 너무 어물쩡거리는 것 같았다. 해병대원이라면 과감성이 있어야 하는데 강우혁 병장은 군 생활 할 때만 과감성이 있지, 여자를 대할 때는 누나를 좋아하는 초딩들 처럼 어물쩡거리곤 하였다. 하지만 강우혁 병장이 소심해서 어물쩡거리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장교라는 것 때문에 잘못하면 영창에서 계급장 떼이고 헌병들에게 욕 잔뜩 얻어먹으며 뻉뺑이를 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수영 소위는 해병대 장교이기 전에 여자였다. 제아무리 이수영 소위가 해병대 군복에 위장크림 바르고 유격훈련 받으며 남자들 못지않게 욕설을 퍼부어도 군복을 벗으면 청순한 외모의 여자였다. 친구들과 같이 수다떨고, 폰 카메라로 셀카 찍고, 화장품 들고서 꽃단장 하고...

“야! 유상병! 뭐가 어쩌고 저째? 진작 해버려? 시끄러 개새꺄.”

벼락처럼 날아온 이수영 소위의 호통에 소대원은 아무일 없다는 듯 부동자세를 취하였다.

“유지훈! 말 조심해. 내가 제아무리 수영이 누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진작 해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 하지 마. 너 저번에...”
“강병장! 이 개새끼야, 뭐? 수영이 누나? 작전 끝나고 나 보자. 응?”
“...”
“...”

소대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욕을 잘 안하는 이수영 소위가 욕설을 퍼붓자 두려운 반 걱정 반으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출발합니다!”

운전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군용트럭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980년 5월 30일 광주시 금남로
김찰흙삶과 지승훈은 서둘러 군용트럭에 올랐다. 다른 시민군들도 둘을 따라 트럭에 올랐다. 트럭에 오른 시민군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는 김찰흙삶만 빼고.“

“아~ 미치겠다. 씨발 공수새끼들 죽이러 간다. 헤헤...”

지금 김찰흙삶이 어떻게 된건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도민장을 치루고 난 이후 완전히 미쳐버리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예비군 대위가 김찰흙삶을 작전에서 빼려 했지만 김찰흙삶은 예비군 대위에게 작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빌었다. 김찰흙삶의 행동에 예비군 대위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결국 작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미치겠군. 잘못하다 총기 오발사고 벌어지게 생겼네.”

시민군들 중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어느 미국영화에 나오는 군인처럼 탄띠를 몸에 두르고 M60 경기관총을 든 듬직한 체격의 젊은이가 김찰흙삶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아저씨! 찰흙삶 아저씨가 겉모습은 이래도...”
“이봐 학생. 나도 가족을 잃은 몸이야. 근데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대체 이건...”

젊은이는 김찰흙삶의 옆에 앉아있는 지승훈에게 불쾌함을 나타냈다. 아까부터 김찰흙삶과 지승훈이 같이 붙어 다니는게 기분 나빠 보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정신병 환자 같은 김찰흙삶과 붙어 다니는 지승훈이 불쌍해 보였다.
지승훈은 사내를 유심히 보고는 이름을 물었다.

“저... 아저씨.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 알아서 뭐하게? 고자질 하려고?”
“그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 이름은 신동진. 너는?”
“저는 광주고 지승훈이요. 아, 옆에 아저씨는 김찰흙삶 아저씨에요...”

신동진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항쟁 때 동생을 잃은 몸이었다. 항쟁 당시 전남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신동진의 동생은 시내에서 다른 대학생들과 함께 공수부대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투석전이 치열해지고 시내 상황이 악화되면서 공수부대와의 투석전 중에 재수 없게 공수부대에게 연행되었다. 동생이 공수부대에 연행된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되고, 분노한 신동진은 시민군이 조직되자마자 시민군에 들어가 시민군이 되었다.

“저, 아저씨. 근데 찰흙삶 아저씨를 아세요? 아까 찰흙삶 아저씨가 가족 잃은거 아는 것처럼 말하시던데...”

신동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까 말한 거? 그냥 해본소리야. 여기 시민군들도 십중팔구 가족 잃은 사람이 있는데......”

아까 신동진은 마치 김찰흙삶이 가족을 잃은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 했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김찰흙삶을 처음으로 보았었다. 그리고 김찰흙삶이 가족을 잃었으려니 하고 그냥 말했을 뿐이었다.

“너 이름이 지승훈이라고 했지? 옆에 있는 사람이 김찰흙삶이라고 했나? 이름이 특이하네? 하하...”
“...”
“미안. 근데 찰흙삶 아저씨하고 친해? 자주 붙어다니던데...”
“오래 전부터 친한 건 아니고. 사흘 전에 처음 만났어요. 그때부터 친해졌는데, 시민군 재편성 될 때 같은 조가 됐거든요.”
“음... 그래?”

신동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걱정이다. 누굴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미쳐버리면 큰일인데...”
“걱정 마세요 아저씨. 찰흙삶 아저씨가 미쳐도 사람을 함부러 죽일 정돈 아니에요.”
“그래그래...”

신동진은 지승훈의 등을 툭툭 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측은한 눈빛으로 김찰흙삶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