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보 시론 (1998. 3. 14)
교회의 대외신인도 회복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저명 일간지는 사설에서 현금의 국가적 경제 위기에 대해 한국의 교회나 사찰 등 종교계도 적지 않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 동안 물신 숭배와 물량주의, 기복 신앙에 매몰되었던 종교계의 대각성 운동을 촉구한 바 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 새겨듣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 교회는 그 동안 수적으로 크게 성장한 반면, 사회에 대한 책임은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그저 영혼 구원에만 힘쓰면 되는 것이지, 사회에 대해서는 신경 쓸 바 아니라는 이원론적 사고가 팽배했었다. 그래서 대다수 한국 교회는 그 동안 말로만 하는 전도에 총력을 기울이고, 예배당 증축과 교육관 신축에 많은 재정을 쏟아 부었으며, 여력이 있으면 개척교회를 지원하고 해외선교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도 있어야 하고 교육 시설도 필요하다. 따라서 그런 것들을 짓는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복이며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개척교회 지원과 해외선교를 위한 노력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한국 교회는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곧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계명이다. 형제야 굶주리든 말든, 사회야 병들어 썩어가든 말든 오로지 교회 성장만을 위해 매진해 온 것이 그 동안 대다수 한국 교회의 일반적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대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칼빈에 의하면 고대 교회는 재정을 4등분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첫째 부분은 성직자들을 위해, 둘째 부분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셋째 부분은 교회당 건물의 유지와 보수를 위해, 넷째 부분은 감독에게 주어 가난한 자를 돕고 나그네를 대접하도록 했다고 한다(「기독교 강요」 제4권 4장 7절). 그러니 고대 교회는 교회 재정의 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과 나그네를 위해 사용한 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100여년 전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복음전파와 함께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그리고 여러 가지 문화사업을 동시에 펼침으로써, 희망을 잃고 방황하던 구한말의 사회에 한 줄기 빛을 비추어 주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7, 80년대의 성장주의 바람에 교회는 양적 전도에만 매달리고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은 등한히 하고 말았다.
교회가 외적 성장과 자기만족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사회는 교회에 대해 무서우리만큼 냉담하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제 어지간해서는 전도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왜 그런가?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해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곧 이웃 사랑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너무나 이기적인 단체가 되어버렸으며, 사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거추장스런 존재로 비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의 ‘대외신인도’가 땅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교회의 대외신인도는 엄청나게 추락하여 전도의 문이 거의 막혀버리게 된 지경에 오고 만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국가적 경제 위기를 맞이하기 몇 년 전에 한국 교회는 이미 이런 위기를 맞이하였었다. 한국 교회의 위기에 뒤이어 한국 경제의 위기가 닥쳐왔으며, 한국 교회의 대외신인도 하락에 이어 한국 경제의 대외신인도 하락이 뒤따랐다. 한국 교회와 한국 경제, 이 둘 사이에는 표면상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깊은 영적 상관관계가 있다. 교회가 그 속한 사회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는 썩고 병들게 되며, 그것이 진전되면 곪아터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의 한국 사회의 위기의 중심에 한국 교회의 위기가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결의 중심에도 교회가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현금의 한국의 위기는 빨리 극복될 수도 있고 더디게 극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 중요한 것은 올바른 복음 전파와 더불어 교회의 대외신인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곧, 교회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떠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것은 초대 교회와 고대 교회가 행했던 것처럼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늘어만 가는 실직자들, 실의에 젖어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 의지할 데 없는 소년소녀 가장들과 외로운 노인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다시금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때, 얼어붙었던 불신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질 것이며 전도의 문이 다시금 열릴 것이다. 그리할 때 한국 교회는 다시금 침체의 늪을 벗어나서 성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우리나라도 활력을 되찾아 아름답게 발전해 갈 것이다. (기독교보 1998년 3월 14일자 시론. 변종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