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아문명과 미케네 문명 비교설명&에게 문명의 역사적 의의
크레타 문명(미노아 문명)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한창 발달할 무렵 소 아시아 지방에 살던 사람들(페니키아 인)이 지중해 서쪽으로 새로운 땅을 찾아서 항해 하다가 찾은 땅이 그리스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리스에 앞서서 에게 해의 한 섬에서 이미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크레타 섬의 사람들은 갈색 피부의 사람들인데 어디서 왔는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페니키아 인들과 이집트 인들의 혼혈인 듯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함대와 해군력을 바탕으로 800여년이나 번영을 누렸던 민족입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당시 가장 빠르고 넓고 긴 장삿배로 지중해 무역을 독점해서 엄청난 부를 쌓았습니다.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북부 아프리카 등지 등 지중해와 연결되어 있는 땅들의 교역권을 손에 쥐고 무역을 독점한 겁니다. 크레타 왕국의 수도는 크노소스라는 곳인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궁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본토 사람들은 크레타 사람들을 통해서 물건을 사고 바깥 세상의 소식을 듣고 해서 크레타 사람들은 그리스 본토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이득을 취했습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장화를 신었으며 몸에 기름을 바르거나 머리카락을 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진 "미노타우로스" 라는 신을 섬겼는데 미노타우로스라는 말은 미노스의 소라는 뜻으로 그리스 전설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에게 미노스 왕은 신이 준 소를 바쳐야 하는데 바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세이돈이 술수를 부려 미노스의 왕비가 소와 사랑해서 괴물을 낳게 했답니다. 이것이 미노타우로스인데, 미노스 왕이 미궁을 만들어서 가뒀다고 합니다. 하지만 괴물은 곧 신령스런 힘으로 크레타 섬을 장악했고 신에게 재물로 바치기 위해서 매년 그리스 본토에서 7명의 소년과 7명의 소녀를 잡아 와서 미궁속으로 바쳤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 괴물은 나중에 테세우스가 죽이게 됩니다.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미노스 왕이 가장 뛰어난 왕이었는데, 그가 지배할때는 크노소스 궁전은 황금으로 가득찼다.. 라는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크레타 인들은 처음엔 장사꾼으로 그리스에 오기도 했지만 점차 자신들의 힘을 믿고 교만, 방자해져서 해적질, 강도질과 그리스 사람들을 하인 부리듯 하고 잡아다가 노예로도 쓰며 사고 팔기까지도 했답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이 크레타 인들에 대해 앙심을 품게 되었는데, 마침 기원전 15세기경에 크레타 섬의 산토린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켜서 크레타가 자랑하는 함대들이 전부 불에 타 없어지게 됩니다. 강력한 함대를 믿고 궁전에 성벽조차 쌓지 않은 크레타 인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복수를 감행한 그리스 본토인들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미케네 문명
크레타 문명이 그리스 본토인들에게 망한 후 그 문명의 씨앗은 고스란히 그리스 본토로 넘어갔고 미케네 문명이 꽃피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크레타 문명이 에게 문명 전기라면 미케네 문명은 에게 문명 후기입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펼쳐졌는데요. 건축물은 크레타 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내부 벽화는 크레타 문명과 굉장히 유사하다고 합니다. 미케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방의 유력한 도시이름이고 미케네 말고도 티린스라는 유명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미케네 문명의 특징은 건축양식과 내부 장식에서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마스크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미케네 성의 사자문이 유명하고,문자도 있는데 지금은 전부 해독했습니다. 미케네 문명이 또하나 중요한 점은 이때에 방랑시인이 생겼다는 겁니다. 각 성마다 돌아다니며 옛일을 노래로 읊으면서 모임을 즐겁게 해주던 역사가, 이야기꾼들인 방랑시인..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작가인 호메로스도 방랑시인입니다. 이들이 부른 노래를 랍소디 라고 하지요. 일리아드는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 왕이 그리스의 수장이 되어 트로이와 싸우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