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아이스쇼를 보다가 평소 스케이팅 보다는 배경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오늘도 역시 배경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그 중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란 음악이
나를 사로 잡는다,
다음,네이버 통틀어 검색을 해보다가 마침내 목적하는 음악을 찾아내 올려 본다.
출처 : http://rock93 egloos.com 버려진 숲
멜론의 Sidd라는 사람의 칼럼을 퍼왔다.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기억하나요?
기억하나요? 손과 손이 마주 닿았을 때
그것은 첫사랑의 여행이었답니다.
이것은 제프 버클리 음악과 처음 만났을 때 필자의 얘기다. 또한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의 노래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할 때, 혹은 어긋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때 영혼이 잦아들고 있을 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없으리라 보는데. 이쯤에서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졌다고 느낀다면 코믹분위기로 갈 수도 있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힘들듯 싶다.
왜냐하면 제프 버클리라는 포크 뮤지션에 대해 소개할 것이고 그는 요절했기 때문이다. 뭐 사실 따지고 보면 요절한 뮤지션은 쌔고 쌨다. 모차르트부터, 김광석, 마빈게이, 성-커트 코베인 까지 요절이 뭐 훈장도 아니고 그리 권장할 만한 일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절한 예술가들은 공통점이 있다. 너무 예민했고 너무 잘났다. 너무 잘나서 예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영원히 늙지 않을 작품을 남겼다는 거 아닌가. 그리하여 본 명곡의 재발견에서는 첫 번째로 굵고 짧게 살았던 제프 버클리가 선정되었고 이제부터 남아있는 많지 않은 작품 중 그의 레퀴엠이 되었던 노래-할렐루야에 대한 이야기가 곧 시작될 것이다.
아니, 할렐루야-라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 아닌가! 설마 97년 박중훈 주연의 안습 코메디 영화 얘기는 아닐 테고 주를 찬미하라-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이제 그 본연의 이미 보다 여기저기 패러디되어 블랙-코메디의 방점처럼 쓰이고 있으니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허나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다행히 그러한 의미가 아니며 제프 버클리의 대표곡 할렐루야는 엑스파일의 미결된 사건 같은 곡이다.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하고 미리 유언이나 한듯 죽은 것 처럼, 제프 버클리 또한 본 곡을 노래하고 얼마 안돼 사망했기 때문이다.
제프 버클리는 60년대 포크 싱어송라이터 팀 버클리의 아들이다. 하지만 생전에 아버지를 본 것은 단 한번. 이미 그가 태어났을 때 생모인 메리 귀버트와 생부 팀 버클리는 남남이었으니 오호라. 통제라. 팀 버클리는 76년에 자신의 공연 백 스테이지에 불과 아홉 살이었던 제프와 메리를 초대했고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를 본 제프는 그와 나흘간을 같이 지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만남 두달 후 팀 버클리는 약물중독으로 사망했고 엄밀히 말해 팀 버클리와 제프 버클리는 피 섞인 것 이외에 큰 의미는 없었다. 아버지 팀 버클리의 장례식에 조차 초대받지 못했으니까.
도대체 인간극장 특집도 아니고 세익스피어도 일지기 이런 얘기는 생각지 못했을 터 비극도 그런 비극이 없겠다. 한마디로 팀 버클리와 제프 버클리와의 관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과 그 아비의 관계, 혹은 밥 딜런과 그의 아들 제이콥 딜런 같은 관계였다. 대단한 아버지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식으로서 사랑받지 못했으나 부모의 후광에 영향 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 혹은 음악을 했다는 것이랄까.
어쨌거나 제프 버클리는 1966년 11월 17일, 오렌지 카운티에서 태어나 97년 5월 29일 미시시 미시시피 강에서 익사해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정규앨범으로는) 할렐루야가 수록된 [Grace] 단 한 장만을 남겼다. 그것은 진정성을 담은 포크, 블루스 그리고 하드록의 명반이 되었으며 그를 영원하게 만들었다.
물론 살아남은 자의 슬픔까지는 아니겠으나 살아남은 우리는 그런 종류의 음악을 들을 때 잠시나마 그 음악의 주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을 관통한다는 둥, 음악에 만취하게 된다는 둥의 닳고 닳은 미사여구는 이제부터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겠으나 그런 미사여구 대신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Hallelujah)가 얼마나 곳곳에서 커다란 울림을 주는지 얘기는 꼭 꺼내줘야겠다. 이제 이 매력남의 위대한 유산을 위해 가슴에 꽃을 꽂고 경청을 바라마지 않으며.
당신의 믿음은 굳건했지만
그래도 당신은 그 증거가 필요해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는 그녀를 보게 되었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달빛은 당신을 관통해버렸지.
그녀는 당신을 부엌의자에 묶은 다음
당신의 옥좌를 부수고,
당신의 머리를 자르고
마침내 당신의 입술에서 할렐루야를 끌어내고 말았지.
하지만 그대, 사랑은 결코 승전기념 퍼레이드가 아냐.
그건 단지 싸늘하고 망가진 할렐루야 일뿐이야.
하지만 잊지마. 내가 당신 속으로 왔을 때
저 성령의 비둘기도 같이 옮아왔다는 걸.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그 호흡은
모두 할렐루야 였다는 걸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Hallelujah 中
성서의 다윗 왕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라며 시작되는 이 음유시는 대충 듣기엔 종교음악처럼 들리기도 하나 실은 인생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얘기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본 곡은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1985년 앨범 [Various Positions]에 처음 수록했던 노래였으나 1994년 제프 버클리가 자신의 첫 앨범인 [Grace]에서 리메이크하면서 원곡을 뛰어넘는다는 찬사를 받았던 노래가 됐으니 레너드 코헨이 제프의 스승은 아니라도 청출어람이 이렇게 어울리는 상황도 드믈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게 무겁고 경건한 레너드 코헨의 원곡에 비해 제프 버클리의 버전은 슬픔으로 정화되는 자기최면과 황홀한 흥분을 느끼게 한다. 이 후 우리의 우심방 좌심실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곡은 존 케일(John cale),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마이라(Myrra),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등에 의해 다시 불렸으나 이중 으뜸은 제프 버클리의 버전으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으니 몇 편 소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로드 오브 워 (Lord Of War, 2005) ★★★ 가난한 이민자 2세로 무기매매와 무기밀거래를 통해 엄청난 부를 손에 쥐게 되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주인공, 니콜라스 케이지! 그의 삶은 미국의 문제나 무기를 가난한 나라에 팔아대는 미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데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 하던 중 주인공의 무기밀매 근거지를 부인과 아들에게 들키고 가족 사이의 해묵은 배신이 확인되는 순간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가 절절히 흐른다.
슈렉 (Shrek, 2001) ★★★★ 열 말 필요 없이 너무나 사랑받았던 영화. 공주의 성으로 함께 가는 여정 속에서 사랑이 싹트게 되는 피오나 공주와 슈렉.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가. 어이없는 오해로 둘의 감정은 엇갈리게 되고 서로 사랑을 거부당했다고 느끼며 돌아서던 발걸음을 더욱 비참하게 했던 루퍼스 웨인 라이트의 할렐루야. 이 보다 더 어울릴 수 없겠다.
리틀러너 (Saint Ralph, 2004)★★★★ 아픈 엄마를 위해 달리는 어린 아들의 이야기로 마라톤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역시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 때로는 음악이 나레이션을 대변하며 그럼으로써 호소력은 더욱 두배가 된다.
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2004) ★★★☆ 영화가 사회드라마, 가짜 역사수업, 진부한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동안 여운을 남기고 있었던 것은 영화의 메시지가 아니라 결국 후반부를 장식한 주인공의 눈물과 제프 버클리의 공허한 목소리였다
웬 예쁘게 생긴 남자가 모피코트를 입고 곱슬머리는 산발을 해가지곤 걸어 들어왔어요. 바에서 가서 기네스 한 잔을 시키고 나서 펜더를 꼽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맛이 가버렸어요. 누구였냐고요? 제프 버클리였죠.
- 트레비스
(구리구리하나 여전히 위풍당당한 하드록의 전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에게는 노래 한곡으로 공간의 공기를 대번 바꿔 버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 여전히 짱짱한 유투, 뮤즈, 앨러니스 모리셋 등에게 흠모를 받았고 심지어 금발미남 브래드핏 마저 제프 버클리의 일대기 영화를 찍고자 했으니 그의 그 초강력 홀림 포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수줍고 우울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삶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그가 불렀던 노래,
할렐루야. 마치 주를 찬양하라-처럼 들리는 이 노래는 사실 펫보이 슬림의 당신을 찬양하라 : Praise You와 같은 곡이라는 것을 아는가? 그리하여 그 노래들은 어떤 정치적 힘 보다 더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따뜻한 바람은 차가운 폭풍보다 강하며, 나그네의 외투를 스스로 벗게 하리.
마지막으로 감히 말하건데 (물론 이 말에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어쩌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U2의 정치적인 음악 보다는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 같은 음악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