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9일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에 대한 토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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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별관(외교부청사)에서 열린 헌법개정시안에 대한 공개토론회.<사진=장명섭 jms1101@korea.kr> |
정부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은 15일 서울 세종로 도렴동 외교부 청사 2층 강당에서 지난 8일 발표한 헌법개정시안에 대해 헌법학회와 정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각계 헌법전문가를 초청해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헌법전문가들은 정부 헌법개정시안의 핵심인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 한하여 1차 중임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 전반적으로 찬성하면도 대통령 궐위시 총리 대행 등 개정헌법 시안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먼저 발제를 맡은 윤장근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번 개헌에 대한 노 대통령의 구상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라며 “하나는 대통령의 임기를 국회의원과 같이 4년으로 하고 대통령을 다음 선거를 통해 1차 연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를 최대한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윤장근 상임위원 “4년 연임제로 대통령제 책임정치 제도화 가능”
그는 개헌의 필요성과 관련, “연임제는 대통령제에서 책임정치의 제도화를 통해 단임제에 따른 책임정치의 무력화, 정당정치 저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통한 국정 저효율화 등 단임제의 부작용을 방지한다”며 “2기 집권에 성공할 경우 높은 수준의 정치적 권위가 형성돼 안정된 국정운영의 기반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를 최대한 일치시키면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거나 근접하게 일치시켜 선거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다음 정부에서 개헌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이 원포인트 개헌을 이뤄내야 하는 적절한 시기”라며 개헌을 할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상진 경상대학교 교수는 “개헌문제는 헌법학회가 작년 1년 동안 논의해 책자까지 만든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개헌 발의권을 행사한 것은 명분과 논의할만한 실리가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그러나 “이번 개헌에 실효성이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며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실험을 하면서 이념적 갈등구조와 지역주의 등을 극복할 특별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개헌을 통해) 효율성은 향상될지 모르지만 민주성은 손상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주 변호사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연임제 정착”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추천으로 참석한 법무법인 정민 김병주 변호사는 “대통령 5년 단임제는 과거 독재 권력에 의한 폐해로 인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것”이라며 “현시대의 민주적인 업적을 고려할 때 연임제는 필요하고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연임제가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헌법개정시안이 제시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주기 일치 방법 중에는 “동시선거를 실시하면서 예정된 정치일정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2012년 2월에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제1안’이 가장 자연스럽게 개헌취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김상겸 정책위원장은 “헌법은 국민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연임제는 대통령이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측면보다는 선심성 정책남발로 재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연임제가 아닌 8년 단임제가 될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반면 김주환 광운대 교수는 “현행 분리선거는 여소야대를 초래하거나 여야간의 정치적 대립 장기화로 민생과제의 어려움이 있다”며 “두 선거 간 선거주기가 불규칙해 중간평가로서의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동시선거가 합리적”이라고 개헌에 찬성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교수는 특히 “차기 대통령 임기를 4개월 늘려 2012년 4월 총선 때 대선과 총선을 실시하면 좋을 것”이라며 헌법개정추진지원단이 제시한 3개안은 정치권의 반발을 살 수 있거나 지나치게 인위적인 문제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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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개정시안에 대한 공개토론회에서 패널이 토론하고 있다.<사진=장명섭> |
오관영 사무처장 “개헌 필요성 공감하나 적절성엔 의문”
‘함께 하는 시민행동’ 오관영 사무처장은 “시민사회는 대부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헌의 적절성에 대해선 여러 이견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개헌논의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어야 하는 데 현재 정치상황상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개헌발의가 무산될 경우 향후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 개헌논의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이 추천한 법무법인 홍익 이헌 변호사(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 겸직)는 “대통령 임기 중간에 총선을 치르는 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라고 봐야 한다”며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중간평가 기회가 없어 자칫 1인 독재와 1당 독재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반대했다.
정태호 교수 “개헌문제 정략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태호 경희대 교수(좋은 헌법 만들기 국민운동 대표)는 “대통령 연임제는 집권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성과 정책의 연관성과 지속성 문제에 있어 꼭 필요하다”며 “시대적 요구인 대통령 연임제에 대한 개헌논의는 옳다”고 역설했다.
정 교수는 “차기정부에서의 전면적 개헌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에 찬성한다. 개헌문제를 정략으로 보는 것은 대선판세를 흔들 수 있는 결선투표제나 정·부통령제 등이 개헌안에 포함돼야 하는 데 이번 시안에는 판세가 흔들릴 위험성이 없다”며 “개헌문제는 공익관점에서 봐야지 정략관점에서 보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국민의 역량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개헌문제를 보는 입장이 갈릴 것”이라며 “우리나라에는 지난 20년 동안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 한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정혜영 교수 “4년 연임제 폐해 막을 제도적 장치 필요”
정혜영 영산대 교수는 “한법개정시안이 갖고 있는 헌법적 문제점, 즉 헌법 조문 상호 간의 조화가 중요하다”며 “4년 연임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대통령 궐위시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국무총리에게 권한대행을 맡기는 것보다는 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대통령 임기에 대한 중임 제한 없이 국회의원처럼 임기만 정하면 된다”는 방청석 제안도 나왔다.
사회를 맡은 이관희 경찰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는 결론으로 “지금 시스템(5년 단임제 등 헌법제도)은 한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헌법개정시안을 확실히 마련해 개헌논의에 대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