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10.11회)
● '순애보의 화신
"경자야! 어제 갖다준 도시락 참 잘 먹었다.
어찌 내 손까락 다친 거 알았나?"
"아니 몰랐지. 엄마가 그저 갖다주라고 해서..."
우연의 일치인가? 경자 어머니의 배려가 너무 고맙다.
(학교근처에서 살면서 외동딸과 동거하는 모친-듣기에는 경자집은
'양산'에서도 이름난 부잣집아라고 했다.)
경자 엄마를 자주 보지는 못했으나 이따금 딸을 통해서 나의 딱한
처지를 무척 안타까워 하신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봉탁이는 받은 도시락 두 개에다 온갖 상상을 담아본다.
동정(同情)인가?
연정(戀情)인가?
한달 뒤 경자는 경남여고로 전학했다. 뜻밖이다.
교사의 장래보다 약사의 길로 바뀌기로 했다는 것이다.
봉탁이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닭 좇던 개의 신세...'
촌닭 봉탁이는 찔끔 눈물이 난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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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시간-
온통 교내 안팎에선 놀라운 소식이 순식간에 퍼진다.
"윤이상 선생과 이수자(국어) 선생이 <결혼>을 한단다."
-윤선생이 누군가?
바로 며달전 수 없이 피를 토하고 '폐결핵 3기'의 진단을 받아 지금은
입원해서 가료 중인 분이 아닌가?.
그런데 결혼은 무슨 결혼?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그보다도 국어를 가르치는 앳띈 '이수자'선생-
그는 어느 남자가 보더라도 탐나는 처녀였다.
그런데...?? 나는...
-문득 소설가 '박계주'의 소설 '순애보'가 떠올랐다.
-소꿉동무였던 '최문선'과 '윤명희'가 떨어져 있다가 20여년만의 다시 만남-
우연한 일로 물에 빠진 '인순'을 건져준 것이 인연이 되어 사랑을 한다. 어느날
괴한의 습격을 받아 인순은 죽게 되고, 문선은 괴한이 던진 유리병에 눈이 멀게 된다.
어느날 불현듯 찾아온 옛 애인 '명희'-이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문선'을 다시 만나
뜨거운 사랑을 엮어나간다는 줄거리-
-환경의 어려운 처지가 어떠했던지간에 사랑했던 사람을 헌신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들-끝내는 <결혼>으로 이어진 소설 속의 '순애보'들-
난 지금의 윤이상과 과 이수자의 '사랑'을 이에 견주고 싶다.
"야! 참 아름답다.
진실된 사랑의 화신이다. 맘껏 손뼉을 치고 싶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18명 교직원과 500여명의 학생들 모두가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당연히 그 칭찬의 대상은 '이수자 선생'-
-그 소문이 퍼지고 나서도 계속 이수자선생은 출근을 하셨다.
그 얼굴에는 조금도 어둔 그림자는 찾을 길 없었고, 상냥한 모습 그대로다.
그는 퇴근하고 나서는 온전히 윤선생의 곁에서 간호해 드리는 게 그 분의 일과였다.
이것이 정상적인 젊은이들이라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야말로 내 몸 다 바쳐서 타는 촛불처럼 온전히 헌신 한 '순애보'의 화신!
그 뒤-학생들 몇몇 병문안을 갔다.
정말로 핼쑥해진 윤선생의 야윈 얼굴-말조차 하기 싫은 연약해진 모습!
우리가 무슨 위로를 드려야 할지.... 한참 곁에 서 있다 오기만 했다.
-한 여름도 어느새 지나고 짙은 가을 단풍잎이 교정에 딩굴고 있다.
총천사 천막 교사 위로 뻗혀 있는 천마산 단풍은 더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거의 반년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다 기적적으로 일어나신 윤선생-
좀 야윈 모습이긴 해도,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건강해 보였다.
우리 모두는 윤선생의 쾌유를 축하했다.
하얀눈이 소복히 내려 앉던 겨울 어느날-
윤이상 선생과 이수자 선생은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많은 학생들과 교직원들뿐-
맘껏 축하를 보냈다.
*윤이상 선생-1956년 프랑스와 독일 베르린, 서독 다름슈타트에서 수학 하셨고,
1959년 서베를린 대를 졸업하셨다. 1982년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 했으며, 그후
북쪽에 가서 해마다 정기적으로 '윤이상 음악제'를 개최 했다.-
1967년도-중앙정보부에서는 베를린에 있던 선생을 서울로 이송 '중형'을 내리기도
했다. 특사로 풀려난 선생은 세계적인 이름난 '음악가'로 지금도 큰 숭앙을 받고 있다.
1995년 11월 3일-한 많은 세상을 하직 했다.
-(계속)- (11회)
●'오리온'의 후예들
-오리온은 여인'아르테미스'를 사랑한다. 그의 오빠 '아폴로'는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한다. 그래서 오리온을 먼 바닷가 어느곳에 세우고 까만 점으로 표시
해둔다. 아르테미스에게 말한다. '네가 이 화살로써 저 까만 점을 맞춘다면 내가
네들 결혼을 허락한다.-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가 쏜 화살로 죽게 한다.
그의 딸의 슬픈 맘을 알게 된 아버지 '제우스'는 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하여 밤 하늘 위에 오리온 별자리를 만들어 준다.
딸로 하여금 밤마다 사랑하던 오리온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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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2학년 전체 학생 부산역 집합!-
저마다 들뜬 기분으로 다 모였다.
개중에는 다 큰애들인데도 '수학여행'이라고 몇몇 학부모도 보인다.
기차는 떠난다.
2반 남녀 학생은 56명- 둘째칸을 이용했다. 남녀공학이라고는 하지만 교실에서 남녀 함께 앉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공학의 결점은, 남자는 여성다워지고. 여성은 남자다워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머슴애들이 확실히 유약해 보인다. 그 중 짓궂은 봉수 같은 놈은 별종이다. 기찻간에서도
여전하다. 여학생 보따리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싶이 뺏어 온다. 물론 장난이지만 심하다. 담임 천선생은
빙긋이 웃고만 있지 그렇게 나무라지는 않는다.
드디어 해운대 해안선을 따라 오른다. 칙칙폭폭 조금 비탈 길인가 기차는 숨 가뿐 소리를 낸다.
이 동해남부선-2년전- 바로 이 철로를 따라 내려오던 '촌닭 봉탁이-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처음 타보는 기차, 처음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멋진 광경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두 해가 지난 지금- 똑 같은 광경을 바라보며 올라가고 있다.
"야! 촌닭 반장! 다 왔어. '불국사역이야-"
"아. 벌써?"
늦가을이라 단풍도 많이 찌들고 있다. 곱디 고운 잎새들도 거무틱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길가에 딩구는 낙엽들- 우리는 신나게 노래 부르며 오른다.
-불국사 여관-
여장을 풀고 난 뒤 불국사 경내를 끼리끼리 모아서 돌아다닌다.
신라 천년의 옛향기는 그대로 숨쉬고, 천년 그대로 변함 없는 고적들-
'석가탑' '다보탑'-
서쪽에 기우는 석양이 무척 곱다.
노을에 비친 빨간 구름들! 저 아름다운 그림들이 내 동시의 대표작
'꽃구름동동'의 배경이 될 줄 나도 몰랐다.
-저녁밥-
밥 한 공지는 금새 후닥딱-
저마다 아우성이다.
"주인요, 밥 더 주소..."
오늘 밤 이 여관은 몽땅 손해 보는 장사일 것 같다.
그래도 수지는 맞는지 노상 싱글벙글이다.
남학생보다 여학생 방이 더 야단이다.
밤 11시-취침을 알리는 조장의 목소리-
벌써 골라 떨어진 놈들 -그 얼굴에는 어느새 검은 수염 투성이다.
저마다 서로 보고 웃는다.
-점호-
촌닭 반장에게 알리는 최후 통첩-
"야! 반장! 김정호 안 보인다?"
"아니 12시 '통금시간'도 지났는데?"
3반 반장 신구가 급히 들어온다.
"어이, 봉탁아! 우리반 '장영미'도 안 보인다."
놈들은 이구동성으로 야단법썩이다.
"그러면 그렇지, 평소에도 낌새는 조금 보였잖아?"
"도대체 이 한 밤 중에 두 사람이 어디에 갔단 말인가? "
이제는 조장보다 3사람 담임선생이 더 앙달이다.
"전원 일어나!!"
전체 지휘하시는 1반 담임 김주봉 선생의 다급한 목소리다.
"자! 불국사 뒷쪽 숲속으로 샅샅이 뒤져 봐!"
학생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수색 시작-
새벽 3시가 넘어서 저쪽 등성이 산허리에서 고함을 친다.
"야! 여기 있다."
현장에 모였을 땐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두 남녀는 꼭 부둥켜 안은채 아무 말 없이 누워 있다.
"아니 이거 약 먹었지 않나?"
덜컹 겁이 났다. 꼭 죽은 것만 같다.
두 연인-
김정수. 장영자-안타깝고 애처로운 생각이 앞선다.
모두는 서두른다.
조장 둘, 반장 셋이 선발대로 이들을 업다 싶이 해서 부산으로 이송했다.
병원에 도착해도 별 차도가 없다. 의사는 "아마 약물..." 하다말고 입을 다문다.
"조금 있어봅시다."
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그들은 드디어 깨어났다.
그리고 나서도 둘은 일체 말이 없었다.
그저 눈가엔 눈물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슬프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좋은 결말을 보지 못했다.
훗날 '장영미'는 어느 부잣집 며느리로 시집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말았다는 말을 들었고, 정호는 지금도 서울 근교의 어느 병원에서 혼자 여생을 보내고 있다.
간혹 만나볼때면-
"도저히 그 여인의 환상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으니 내가 어찌 장가를 가겠느냐?"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혼자 사는 노총각(?)-
과연 이들이 '오리온'의 후예들은 아니었던가?
★봉탁이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니 동문님들께 조금은 미안하고 쑥스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의 간추린 이야기들만 골라서 쓰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여러 동문님들께 <유익한 삶의 자취>를 보내지 못함을 양해 바라며 그저 그런 인간의
하찮은 <인간고백>임을 아시고 심심풀이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회 김상련-
"
첫댓글 정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촌닭이 반장도 하셨군요...
저희들은 언양에서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다녔는데 형님께서는 울산으로 가서 기차로 부산으로 가셨군요...
순애보가 소설이 아닌 현실 이야기로~~~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또 기다릴께요
당시 사랑 이야기는 영화에서 보는 듯 합니다.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배독 했습니다 다음 얘기가 많이 궁금합니다
읽어갈수록 더욱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