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서 펌>
『生과 死의 틈새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AK47, 자살用 수류탄 1발은 기본장비… 가장 두려운 것은 對전차미사일
이라크·아프가니스탄·서부 아프리카에서 人質납치는 수지맞는 사업
● 主고객은 위험지역 진출하는 다국적기업 ● 시장규모 2000억 달러(2005년) ● 2004년 이라크 팔루자전투에서 美軍 지원 ● UN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17개국에서 1만1700여 명 활동
● 납치 48시간 넘으면 무장단체는 몇만 달러 받고 더 큰 무장단체에 인질 넘겨 ● 납치 일주일 넘으면 국제조직에 인질 넘어간다. ● 해당 국가가 직접 협상에 나서면 인질 몸값만 올려 ● 분쟁지역에 가는 기업·NGO, PMC 활용 고려해야
프랭크 존스 (가명·한국인·34) 스웨덴 PMC「다인세크」社 근무
군대 일을 대신하는 민간기업, PMC
내 이름은 프랭크 존스(가명)다. 가명으로 외국인 이름을 쓰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나이는 34세이다. 민간군사기업(PMC) 중 하나인 스웨덴 「다인세크」社의 개인밀착경호요원(PSD: Personal Security Detail) 겸 보안컨설턴트로 근무 중이다. 종종 25kg의 중무장을 하고 高위험도 임무를 수행하지만, 권총만 휴대한 채 低위험도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지난 수년 동안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서 산업보안 업무를 수행해 왔다. 나는 휴가를 얻어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대우직원 납치사건, 소말리아에서의 어선 납치사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한 샘물교회 봉사단 납치사건이 연거푸 터지는 상황을 지켜봤다. 한국정부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피랍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됐다. 한국사람들에게는 낯선 PMC의 직업세계를 설명하고, 해외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당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PMC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傭兵(용병)」 정도로 이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용병과 전혀 다른 일을 한다. PMC는 하나의 산업이다. 쉽게 말해 군대 업무를 대신 맡아 운영하는 민간기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南아프리카와 영국 합자 기업인 「익제큐티브 아웃컴」, 「샌드라인」 등과 같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활동하는 「용병기업」은 있었지만, 군수·수송 등 군대 업무 자체를 대신하는 기업은 없었다. 국제법 준수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가 높아진데다, 自國(자국) 군인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용병기업의 자리를 PMC들이 메우고 있다. PMC의 主고객은 다국적기업 PMC는 2003년 제2차 이라크전쟁 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진 「블랙워터」, 지금은 「L3」로 합병된 「MPRI」, 「아머그룹」 등과 같은 기업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송차량 호송, 軍需(군수)물자 호송, 식당운영은 물론 對民(대민)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PMC들은 保安(보안)을 이유로 정확한 계약규모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PMC들은 2004년 이라크 팔루자지역에서 미군을 직접 지원했고, 최근 대형 PMC 「아머그룹」이 분쟁지역에 있는 美 대사관 경호를 책임지는 계약을 맺었다. 많은 서방국가들이 분쟁지역의 외교인력 보호와 軍작전 지원, 군사고문단 지원 역할을 PMC에 맡기고 있다. 우리의 고객은 軍隊(군대)뿐만이 아니다.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이나 기업, 분쟁지역을 취재하는 언론인, 분쟁지역을 방문하는 국제기구나 각국 정부 관료들과 NGO 단체 등이 우리의 고객이다. PMC의 主고객은 다국적기업이다. 주요업무는 회사의 인력과 자산 보호,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직원납치, 현장습격 예방 등이다. 최근 10여 개 국제적인 PMC들이 모여 IPOA(국제 평화유지활동협회)를 만들었다. IPOA는 自國 군대를 분쟁지역에 보낼 수 없는 나라를 대신해 유엔의 분쟁지역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한다. PMC 산업은 2005년 말 현재 200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되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나는 개인경호를 맡고 있다. 활동하는 곳이 분쟁지역인 만큼 방탄복·소총·권총으로 무장하고 고객보호를 위해 실제 전투를 벌인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호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EMT 역할을 맡기도 했다. EMT란 氣道切開(기도절개) 등과 같은 외상처치를 할 수 있는 응급처치전문가를 말한다. 총상을 당하면 폐의 공기가 빠지지 못해 폐가 팽창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 주사바늘로 총상 입은 동료에게 응급조치를 해주는 것이다. 北유럽계 PMC인「다인세크」그룹의 교육훈련장 모습. 차량경호 중 습격에 대응하는 훈련 모습이다.
용변은 차 안에서 해결 개인경호를 맡은 필자 팀 차량(사진 중앙의 SUV)이 이라크 바그다드의 피격현장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 회사가 일하는 곳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중남미·아프리카·중앙아시아의 분쟁 및 치안불안 지역이다. 일반인들은 가지 않고, 갈 수도 없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활동하려면 무장은 필수다. 7.62mm 총탄을 막아낼 수 있는 방탄차량, AK47, M4 등과 같은 군용 자동소총, 9mm 구경 오스트리아製 글록17, 45구경 콜트 M1911 권총이 기본 무장이다. 액션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개인용 對空(대공)미사일 같은 중화기 사용을 짐작할지 모른다. PMC 요원들은 현지 국가와 분쟁지역을 관할하는 유엔이 허용하는 수준의 무장만 하게 돼 있다. 출동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탄약과 의약품 키트를 챙겨 들고 나간다. 차량용 소변통과 담요는 꼭 챙긴다. 차량에서 나오는 즉시 총탄세례를 받기 때문에 용변은 차 안에서 해결한다. 그러려면 소변통은 필수다. 일교차가 큰 사막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담요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많은 交戰(교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절대 선제공격은 하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용병처럼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때만 총을 쏴야 한다. 내가 장난으로 쏜 총알 한 발이 고객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100발의 총탄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PMC 직원들이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한 사고가 있었다. 2004년 이전의 일이었다. PMC들이 거대해지고 정상적인 기업으로 변모하면서, 자질이 모자란 사람들은 교육과정에서 걸러진다. PMC가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이라크다. 나는 이라크에서 현장지원 업무를 맡았다.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지만 특별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라크서 S국 기업인 보호 임무 수행
우리 회사의 활동무대는 바그다드와 「그린 존」(미군 특별경비지역), 공항이었다. 수많은 군인과 외국인 엔지니어들, 공무원, 이라크인들이 生業(생업)을 위해 돌아다니는 지역이다. 우리는 군인이 아니다. 공격을 당하면 교전에 집중하지 않고 고객을 보호하면서 바로 도망쳐야 한다. 영화 같은 活劇(활극)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이라크에 있을 당시 우리는 S국에서 온 기업인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방탄 차량 4대로 팀을 구성해 바그다드內 내무부 청사를 방문하고, 그린 존 내부와 외부 숙소를 다니는 일이었다. 중무장을 한 채 움직였기 때문에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아, VIP들 행렬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이 말은 같은 곳을 두 번 지나가면, 우리 차량들이 바로 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항으로 고객을 픽업하러 나가는 날이었다. 社內(사내) 고위직인 팀리더가 직접 경호책임자를 맡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손에 익지 않은 개인 응급 장비들을 챙기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영어실력이 개선되고는 있었지만, 혹시나 無電(무전)을 잘못 이해할까 봐 신경이 쓰일 때였다. 나는 「제발 제가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의 부상자만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의료 매뉴얼을 한 번 더 읽었다. 그날은 팀리더가 계속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이 전화가 결국 우리를 살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나와 같은 차에 타는 영국군 공수부대 출신 고참 데니(가명·46)는, 꿈자리가 안 좋았는지 다른 때와 달리 말수가 적었다. 데니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는 바람에 아이들과 前妻들이 유럽 전역에 살고 있다. 양육비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한다. 잦은 戰場(전장) 스트레스로 경미한 기억상실 증상이 있다. 神氣(신기)가 있는 점쟁이처럼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는 사람이다. 그는 계속 「개인밀착경호요원」으로 근무하고 싶어 하지만, 나이 때문에 메이저 회사에서는 더 이상 계약연장이 어려울 것 같다. 작전 출동 前 음식을 조금 먹는 이유 우리 팀은 쿠르드系(계) 이라크인 운전기사가 싸 가지고 온 진짜 중동식 커피―에스프레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쓰다―를 마시며 다시 한 번 차량內 탄창과 총기류, 무전기, 배터리들을 꼼꼼히 챙겼다. 유고슬라비아 푸줏간 주인 출신인 레이(32)가 『곧 「게이 컨벤션」이 있으니 집합하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여자구경을 못 하는 남자들끼리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이라크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 「여자 구경」 그 이상이 가능하지만, 잘못하면 성기가 잘린 채 그것이 입 안에 처박혀 거리에 뒹굴 수 있으므로 다들 자제한다. 지시사항을 들은 후 커피와 에그 스크램블, 영양보충용 간식 「프로틴 바」 2개를 아침으로 먹었다. 「프로틴 바」를 추가로 전술조끼에 챙겨 넣었다. 김빠진 「박카스」 맛인 「레드불」이라는 음료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럴 땐 정말 한국의 박카스 생각이 간절하다. 음식이 뱃속에 많이 들어가면 기분은 좋지만, 혹시라도 총상이나 파편상을 입으면 복잡해진다. 치료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이요, 가끔 음식물이 역류해 기도가 막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응급처치전문가(EMT)를 맡은 내 입장에선 이럴 때 해야 하는 인공호흡이 정말 싫다. 내가 토하는 것도 싫다. 차 안에 음식물을 토해 놓으면 토사물과 피냄새가 섞여 오랜 시간 우리의 상처를 되새겨 주기 때문이다. 총성과 같은 고주파 소음을 줄여 주고, 일정 데시벨로 유지시켜 주는 「펠토」(전자식 청력보호기 기능의 전투고글)는 무전기와 연결이 가능하고, 귀마개처럼 생겨 폭발물이 터졌을 때 몸을 보호하는 데 적격이다. 그러나 펠토를 착용하면 멍청해 보이기 때문에 『펠토는 여자들의 性慾(성욕)을 떨어뜨린다』는 말이 생겼다. 규정상으로는 항상 헬멧을 써야 하지만, 총알보다 무서운 脫毛(탈모)에 대한 두려움과 머리를 다림질한 것처럼 달라붙는 상태가 싫어서 차량 천장에 달아 놓는다. 자살用 수류탄 한 발 꼭 갖고 다녀 우리는 「부시마스터」(美軍이 사용하는 M16을 민간용으로 개조한 것) 같은 총은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개인장비 목록은 다음과 같다. AK47 한 자루와 조끼에 넣을 탄창 8개, 추가로 차에 놓을 여분의 탄창 6개와 탄통 1개, 가슴에 매달 글록17 권총 한 자루와 탄창 2개, 다리에 찰 콜트45 권총 한 자루와 탄창 2개, 나이프 2개, 수류탄 1발, 앞뒤로 넣을 방탄판, 가위, 무전기, 신분증, 신용카드, 현찰, 휴대전화, 지도…. 나는 권총을 꼭 두 자루 챙긴다. 한번은 작전 中 타이어가 터져 차가 전복됐다. 다가오는 이들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데 다리에 찬 권총이 장비에 끼는 바람에 뽑을 수 없어 기절할 뻔했다. 이라크에서 낙오해 잡히는 일이 생기면, 참수당한 후 그 동영상이 공개될 확률이 90% 이상이다. 그런 모습으로 마지막을 남기고 싶지 않아 수류탄 한 발을 갖고 다닌다. 그런 나를 보면서 데니가 『옆구리는 어쩌려고?』하고 한마디 거든다. 전술조끼와 방탄복을 입어도 항상 옆구리가 비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총탄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여자 핸드백처럼 생긴 「사이드 패널」이라는 방탄장비가 있지만, 예전에 입었다가 몸이 무거워서 차에서 못 내릴 뻔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데니는 이스라엘 경기관총인 「우지」와 「글록」만 들고 다닌다. 탄환은 스웨덴製(제) 9mm를 쓴다. 똑같은 9mm라도 스웨덴제 탄환은 관통력이 뛰어나다. 스웨덴으로 훈련하러 가는 특수부대원들은 항상 이 실탄을 얻기 위해 난리다. 우리는 부상을 당하면 이라크 현지병원보다는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미군 응급의료팀을 찾는다. 식도출혈과 흉부총상 등 사망률 80% 이상인 부상자들이 이곳에서 살아나는 경우가 흔하다.
차량 타이어 펑크는 곧 死亡 우리는 주로 차로 이동한다. 상황이 나빠지면 믿을 건 역시 두 다리와 동료들밖에 없다. 출동時 지정된 항목들을 챙겨 넣는다. 빼먹을 때마다 일이 터지기 때문이다. 모두 「프로」들이라 남에게 미루지 않고 스스로 장비들을 챙긴다. 레이는 운전기사와 같이 차량을 점검한다. 타이어 공기압, 기름과 오일들이 밤새 이상이 없는지, 차량內 폭발물은 없는지 차량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차량內 공용화기 PKM 2정, 트렁크에 설치한 기관총좌(기관총 발사대)를 다시 점검했다. 방탄차량은 중량이 무겁고 연비가 좋지 않다. 타이어가 터지거나 제때 멈추지 않으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할 수 있다. 레이는 무척 어렵게 성장한 친구다. 그는 나중에 경비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아직 장가를 못 간 이유는 여자를 보는 기준이 가슴 크기에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들은 예쁘긴 한데 가슴이 작다』면서 시큰둥해했다. 그래도 그는 일을 잘하는, 똑똑한 친구다. 차량점검이 끝나면 교통이 막히지 않게 움직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팀장은 근처에서 도청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무장단체 때문에 무선코드를 바꾸고 싶어하고, 우리는 『하루만 더 쓰고 바꾸자』고 우긴다. 우리가 보기엔 무장단체들이 연합군, 이라크 軍警(군경)을 도청하기 바쁠텐데, 제3선인 우리까지 도청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팀 전원이 장비를 챙기고 모였다. 그 중에서 짐이 제일 많은 사람은 나였다. 넉 대의 차량은 시동을 걸고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옥상 위에 있는 해병대 정찰병 저격수 출신 친구가 엄지손가락을 펴 보인다. 그러고 나서 가운뎃손가락을 보여 환송인사를 해준다. 나는 한국식으로 답례해 주고 간다. 이제 우리의 「세이프 존」을 나왔다. 무전 내용부터 서서히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다인세크」의 2004~2005년 통계를 보자. 이라크에서는 하루 평균 70~80회 공격이 일어난다. 때로는 하루 150회 이상 공격이 있는 경우가 있다. 폭발물 매설공격이 26%, 차량사고가 25%, 로켓추진對전차화기(RPG-7)는 4%, 소화기 공격이 15% 정도를 차지한다. 가장 겁나는 것은 對전차화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로켓추진對전차화기의 공격이다. 초당 254m를 날아가는 이 무기는 射手(사수)를 즉시 발견해 사살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경계임무를 할 때 이 화기가 제1타깃이다. 발사時 나오는 검푸른 연기를 먼저 보았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群衆(군중)과 교통체증은 임무 중 피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다. 우리를 노리는 敵들은 민간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열 살 안팎의 아이들 뒤에서 총질을 하는 놈들이 있다. 그렇다고 달리는 차에서 쐈다가는 敵들을 잡기 전에 아이들을 잡을 게 뻔하니 빠른 속도로 현장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검문소를 지나갈 때마다, 앳된 얼굴의 美軍들이 눈에 띈다. 눈은 피곤함으로 찌들어 있지만, 그 와중에 농담을 주고받는다. 19~20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를 위해 입대한 용기는 볼 때마다 가상하다. 『전쟁의 시작은 틀렸지만, 미국과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참전했다』는 미군 병사들이 많았다. 힘이 들어 눈물을 보이는 병사들도 만났다. 한 병사는 『동료들 앞에서 울 수 없기 때문에 외부인인 당신과 이야기하다가 눈물이 터진 거니까 이해해 달라』고 했다. 美軍들에게 사살당하는 동종업계 사람들이 있다. 미군이 관리하는 「체크포인트」는 규정상 속도를 지켜야 한다. 유럽 출신들이 주로 큰 사고를 낸다. 한번은 PMC 요원들이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그대로 달리다 美 해병대의 중화기에 차량 2대가 박살났다. 3명이 즉사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정지하지 않은 이유는 「미군 통제를 받기가 싫었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한 친구가 현지적응을 한답시고 현지인처럼 온몸을 천으로 둘둘 싸매고 총을 바깥으로 꺼내 놓았다. 그것을 본 「체크포인트」의 미군 병사들이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본인과 운전사 모두 즉사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는 날은 미군이나 우리 모두 정말 짜증나는 날이다. 우리끼리 교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킬 존」으로 들어서다 2006년 10월19일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에서 경찰서를 겨냥한 자살폭탄테러 공격으로 파괴된 차량. 이 공격으로 12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세이프 존」을 나와 都心地(도심지)를 통과할 때, 새로 짠 경로로 들어가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두 번째 차량이 갑자기 무전으로 「정지명령」을 내렸다. 우리한테 「정지」란 죽음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이다. 이어서 『전속력으로 차량을 후진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술운전 훈련에서 배운 대로 전속 후진 후 신호에 맞춰 차를 180。 돌렸다. 그러고 나서 꽁지가 빠져라 차를 몰았다. 이때 뒤에 있던 동료가 『7시 방향 건물 지붕을 보라』고 했다. 한 남자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보니 현지 무장단체의 관측팀인 것 같았다. 「킬 존」을 바로 눈앞에 두고 돌아 나온 것이었다. 아침에 통화했던 미군장교가 우리 차량들이 「킬 존」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무전으로 알려 준 것이라고 했다. 데니는 계속 『기분이 찜찜하다』고 말했다. 갑자기 잠이 몰려왔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잠을 쫓기 위해 다리를 꼬집어 보았다. 데니가 웃었다. 차 안은 무전기 소리로 떠들썩했다. 응급의료팀(EMT)은 팀內에서 가장 보호를 받는 사람이다. 의료실습이 부족한 내게는 조금 버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동료들은 『책 들고 공부하는 놈은 너 하나』라며 놀림 반 격려 반 해줬다. 하지만 기도유지, 호흡확보, 순환유지 등 기본 프로토콜을 외우고 또 외워도 「오늘은 혹시 내 능력 밖의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항상 불안했다. PMC에서는 늘 응급의료팀이 부족하다. 그냥 응급의료요원이 아니라 전술요원 겸 응급의료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한 우리 팀원은 차량 밖에서 주위를 관찰했다. 안전지대가 분명한 걸 알지만, 총기의 안전장치를 풀고, 대응 사격 자세로 자신이 맡은 구역을 계속 관찰했다. 다른 회사팀이 중간에 합류하면서 양측 간의 경비구역이 겹쳐졌다. 그 덕에 잠시 눈을 다른 데로 돌려 봤다. 『제발 인상 좀 쓰고 있어!』 요인 경호 업무에 사용되는 방탄차량의 모습. 요인경호에서 중요한 장비가 바로 방탄차량이다. 한국에서는 방탄차량을 양산하지 않기 때문에 메이커에 주문 제작하거나 해외의 차량 개조업체에 개조를 부탁한다.
우리 고객이 보였다. 여자다. 또 다른 회사팀이 왔다. 우리팀이 황천길 갈 뻔했다는 이야기가 벌써 다 돌았다고 한다. 軍 경력 12년차에 간호사 자격증과 응급 구조요원, 수술실 오퍼레이터까지 했던 왕고참 「조시」가 아는 척을 했다. 성격이 참 호탕한 사람이다. 나를 처음으로 고용한 회사가 풍비박산이 났을 때, 내게 도움을 많이 준 친구다. 조시는 내게 『요인경호 일은 어떠냐』고 물었다. 『텍사스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CEO가 있는데 마침 그곳 요인경호팀에 자리가 있으니 원하면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쿵!』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어딘가에서 터진 사제폭발물 소리였다. 누군지 모르지만 죽지 않기를 바라면서 슬슬 「그린 존」으로 출발준비를 했다. 임무 책임자가 내게 무전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놈의 방긋방긋 표정은 집어치우고 제발 인상 좀 쓰고 있어』 데니가 웃으면서 『제발 사격한 후에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라』면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시아인은 정말 예의 바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다른 회사 호송팀이 『무장세력과 교전해서 ○명을 잡았다』고 무전으로 알려 왔다. 심문해 보니, 무장세력은 PMC 호송팀을 美軍의 물자호송팀으로 착각해 공격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미군 물자호송팀은 바로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 팀은 운이 무척 좋았다. 공격받은 팀은 전원이 살아남은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맥주를 머리에 들이붓고 즐거운 밤을 보낸다. 총탄세례를 뚫고 탈출 아프가니스탄의 폭탄테러 현장.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도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다.
갑자기 유리창이 돌에 찍힌 듯한 자국으로 번졌다. 총격이었다! 유리창에 총알이 맞은 순간, 클라이언트의 차를 세 방향에서 둘러싸고 그 간격을 10cm도 안 되게 유지한 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차들끼리 「쿵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사제폭발물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클라이언트가 탑승한 차량은 별 손상이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이 파편에 의한 찰과상을 입었을 뿐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폭발음은 사제폭발물이 터진 게 아니고 유탄에 맞은 가스통이었다. 나는 몸에 착용하고 있던 방탄패널 위에 총탄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다. 정말 죽은 줄 알았다. 숨쉬기가 답답하고 목구멍까지 비명이 차오를 때, 손이 건조함을 느꼈다. 이상하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재빠른 「전진포복」으로 기어서 그 현장을 탈출했다. 일단 총을 맞고 이동을 못 하거나 방탄패널 위에 맞아서 쓰러졌다면, 가능한 한 소리를 지르지 말고 아픔을 참아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같은 총에 두 번 맞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다. 팀 동료들이 연막탄을 터뜨리고, 나를 구출해 줄 것이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더 위험한 상태에 있다면, 상황에 따라 버려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미군처럼 M-1전차도 없고, 헬기도 없다. 無人(무인)항공기(UAV)도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우리의 차와 두 다리와 동료들밖에 없다. 임무를 끝내고… 임무를 끝내고, 부상자를 응급처치하고, 총기를 청소하고, 탄약·탄창 등 모든 장비를 정리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멍한 눈으로 땀에 절은 옷과 장비들을 바라봤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이라크에서의 생활은 늘 이런 식이다. 이런 임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엔으로부터 평화유지 임무를 받아 수행하기도 한다. 지난 1월31일 현재 유엔의 평화유지 업무는 18개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시아·中東·아프리카·중부유럽까지 골고루 퍼져 있다. 이 중 레바논을 제외한 17개국에서 PMC 직원 1만1740명이 활동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립공원이나 생태보존구역을 지키는 순찰대를 훈련시키는 업무를 하거나,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NGO 단체와 계약해서 보안업무를 수행하는 회사가 있다. 「NGO 봉사단체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무장공격 단체의 암묵적인 룰이 2000년대 들어 깨졌다. NGO 단체에 대한 보안계약은 대부분 低價(저가)로 제공된다. PMC와 용병의 차이
용병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지역민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PMC는 현지 주민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의 경우, 과거 콩고 內戰(내전) 때 백인 용병들과 벨기에 공수부대의 잔혹행위가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무장한 사람을 보면 일단 경계하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제대로 된 PMC 직원들이 오면 대부분 주민들이 반기는 추세다. PMC 회사들은 비정상적인 정부와의 계약은 피하는 편이다. 유엔기구 직원의 경호원으로 일했던 친구 제프는 『평화유지군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西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이 PMC 직원들이 나타나자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세계의 위험한 현장을 누비면서 다른 이를 위해 절제된 무력을 사용하는 곳이 바로 PMC다. PMC의 임무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고, 불구가 된 사람도 있다. 이라크에서 3년은 다른 곳의 10년과 맞먹는다. 영화에서는 총알이 주인공을 피해 가지만, 전쟁터에서는 항상 총알이 내 엉덩이만 따라온다. 내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15년 전 미국에서 만난 한 미국인 때문이다. 미국의 한 사격장에서 만난 그와 관심사가 비슷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용병기업과 PMC가 비슷하게 인식되던 때라 완곡히 거절했다. 몇 년 후 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는 『이제는 PMC가 유엔의 평화유지 업무도 하고 모든 업무가 합법적으로 되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나는 PMC에 합류했다. 까다로운 선발과정 PMC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軍관련 유경험자들이다. PMC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추천을 통해 회사와 만나게 된다. 회사는 일할 사람을 추천받으면 「헤드헌터」를 보내 일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본다. 미국이나 유고 쪽에서는 취업설명회 현장에서 인터뷰를 한 후 뽑기도 한다. 본인이 직접 지원할 경우 경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받아 주지 않는다. 1차 선발된 사람들은 자체 교육과정을 통해 훈련을 받는데 두각을 나타낸 일부만 고용된다. 여기서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은 「블랙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이 명단에 오르면 PMC 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 어렵다. 업계 기업들이 이 블랙 리스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1차 관문 통과자에 대해 회사는 먼저 신원조회와 경력조회를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기록과 軍 경력, 정신과 기록, 지속적인 스트레스下에서의 반응 등을 조사한다. PMC들은 「직업정신」을 중요하게 본다. 까다로운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들은 12~15주 정도의 기능교육을 받는다. 교육 내용은 위협 및 위험 분석 보고서 작성 요령, 작전기획서 작성 실무, 지역별 보고서에 따른 사례, 전술사격, 전술운전, 근접전투방어, 호신술, 전술교육, 이론교육, 응급처치 등이다. 이 교육을 통해 부적격자가 또 한번 걸러진다. 부적격자로 판명된 사람들 역시 「블랙 리스트」에 오른다. 내 경우 교육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일 아침 보는 이론 시험이었다. 문제는 모두 서술형으로 출제됐다. 영어가 능통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시험을 매일 치르니 긴장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밤 11시에 자도 새벽 4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평점 B 이상이 되지 않으면 채용되지 않는다. 후에 나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보니 정보분석과 작전통제에 가장 강점이 있고, 사격과 운전의 경우는 보통 직원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고 돼 있었다. 사격은 권총을 기준으로 하지만, 개인밀착 경호요원의 경우는 권총만큼 장총도 숙달돼야 한다. 나의 최장거리 사격기록은 M900 저격총으로 950m 거리의 목표를 명중시켰다. 운전은 방어운전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사고와 부상 위험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름만 넣고 훈련을 한다. 불이 나도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거쳐 PMC에서 일하게 되는 사람들의 나이는 20代 후반에서부터 40代 초반까지다. 軍경력은 10년 이상이며 실전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軍 경력이 짧은 사람들도 있는데 정보분석, 의료기술 등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이다. 의사 수요는 많은 편이다. 한국의 전문의들이 자리를 알아본다면 무척 환영을 받을 것이다. 첫 交戰 나의 첫 번째 임무는 200△년 10월, 서남아시아 국경지대에서의 정보수집이었다. 우리 팀은 현지 운전기사와 현지인, 영국인 선임자 등 네 명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밤, 지역 반군세력이 우리가 묵고 있는 마을로 쳐들어오는 바람에 사막의 고산지대를 10시간이 넘게 걸어서 탈출했다. 나의 첫 교전은 200△년 5월, 中東지역에서 있었다. 로켓추진대전차화기 공격, 소화기 공격, 사제폭탄 공격이 동시에 진행됐다. 수송차량은 파괴됐고 팀원이 죽었다. 이때 우리 팀원 중 한 명은 敵의 바로 앞에서 소총이 고장 나는 바람에 권총을 빼서 다섯 발을 쏘았는데 한 발도 맞추지 못했다. 敵 또한 당황해 제대로 총을 겨누지 못했다. 긴장한 그는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에 권총을 집어던지고 칼을 뽑았다. 다행히 뒤에 있던 다른 팀원이 敵을 사살해 무사할 수 있었다. 이 교전의 피해는 매우 컸다. 결국 내가 처음으로 개인밀착경호원(PSD)으로서 참여한 팀과 회사 전체가 와해돼 버렸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멘토」 역할을 해주신 분을 이때 잃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다. 당시 수행한 작전들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자세히 밝히기 곤란하다. 모험심과 영웅심리만 갖고 PMC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지원자들은 처음 들어올 때 10명 중 9명이 『이라크, 아프간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교육이 종료될 때쯤 되면 10명 중 1명도 안 가려고 할 때가 종종 있다. 그중에는 10년 이상 특수부대에서 근무한 경력자들도 있고, 단기간 軍복무한 사람도 있다. 지원자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상상과 현실의 차이다. 정규군과 달리 선제공격을 해서는 안 되는데다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해외에서의 실전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야 평상시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만, 한국처럼 국내에서만 근무한 軍 출신들은 그런 차이를 알고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차량이동 중 좌전방에서 7.62mm 총탄과 대전차로켓탄이 날아온다고 가정하자. 그럼 후미에 있던 차량이 좌측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몸으로 때워야 한다. 만약 후미에 있던 차량이 방탄차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그냥 죽는 것이다. 방탄복은 식도출혈과 흉부손상을 막기 위한 장비일 뿐 우리 몸 구석구석에 있는 대동맥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방탄차가 꼭 필요한 것이다. 내가 이라크에서 근무할 당시 동북아시아 국가의 대사가 자신은 벤츠 방탄차량을 타면서 현지인 경호팀에게는 일반 차량을 제공해 주변의 보안담당자들을 황당케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저렇게 다니다 무장세력에게 공격받으면 모두 죽을 텐데…』라며 혀를 내둘렀다. 방탄차 또한 대전차로켓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로켓탄이나 폭발물 공격은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 차량이동 중 사제폭발물(IED), 지향성폭발물(EFP), 대전차로켓(RPG), 불꽃발사기(Mortar) 공격을 받으면 차가 「윌리」(앞바퀴를 들고 주행하는 것) 또는 「잭나이프」(뒷바퀴를 들고 주행하는 것)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차는 자전거나 오토바이와는 달리 그대로 몇 바퀴 굴러 버린다. 온갖 장비와 방탄패널, 기타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찬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SUV)이 전복되면 차 안에서 몸과 장비가 함께 구르게 된다. 이때 나는 눈과 치아를 보호하는 데 신경을 집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은 시야 확보를 위한 것이고, 치아는 임플란트를 한 거라 비싸기 때문이다. 차가 구르면, 탑승자들은 自國(자국)의 언어로 떠든다. 신기하게도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 한국말을 알아듣는 덴마크 사람이 있고, 아랍어를 알아듣는 미국인, 스웨덴어를 알아듣는 영국인이 있다. 나 또한 고등학교 이래로 해본 적 없는 프랑스어를 알아들었다. 공격을 받으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각국 군대의 특성을 볼 수 있다. 미군은 공격이 끝나면 바로 달려와 주변 경비, 부상자 처치 등을 해주며 도와준다. 영국군은 달려오기는 하지만 「립서비스」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군은 멀리서 지켜만 본다. 도와 달라고 다가가면 짜증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는 이라크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린다.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 사람이 운영하는 병원에 잘못 가면 납치될 수 있고, 이라크인들이 부상자나 사망한 동료의 휴대전화나 카드를 주워 팔거나, 전화詐欺(사기)에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斬首를 하지 않는 이유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김선일씨가 도움을 호소하고 있는 동영상.
이라크에서만 일어나는 또 다른 위협은 바로 拉致(납치)와 斬首(참수)다. 나이지리아나 소말리아에서는 납치와 몸값 흥정이 일종의 사업이다. 이라크는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외국인을 납치하면 협상과 관계없이 참수를 해 동영상을 찍었다. 최근에는 잡히면 처음 단계에서는 협상을 통해 돈을 받은 후 풀어 주거나, 다른 큰 조직으로 인질을 넘겨 참수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들은 참수 대신 총을 사용한다. 칼을 사용해 참수하다 보면 참수하는 자도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PMC 직원들은 로켓탄 공격을 받아 낙오해서 무장 세력에게 납치될 경우 수류탄 자폭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수 동영상이 공개될 때 가족과 동료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렇게 위험한 전장이다 보니 죽거나 불구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때론 불구로 은퇴를 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큰 장애를 입고도 다시 돌아오는 분이 있다. 나 또한 폭탄테러를 여러 번 목격했고 다치기도 했다. 다행히 불구가 되지는 않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폭탄테러는 종류가 다양하다. 자살폭탄, 「RCVBIED」(차량에서 폭발물을 넣어 원격폭발을 일으키는 것), 「IED」(부비트랩과 같은 폭발물 매복)…. 폭탄테러현장에서는 직접적인 희생자 말고 폭풍에 의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다. 구토에서부터 운동능력 상실, 때에 따라서는 신체기능의 일부가 영구히 손상된다. 이런 공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고참 요원과 신참 요원의 이야기는 그 내용이 다르다. 고참 요원들은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亡者(망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얘기한다. 신참의 얘기는 무용담에 가깝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서로 무용담을 나누는 거 같지만, 잘 들어 보면 이야기의 초점이 전혀 다르다. 1인당 연간 보험료만 1만5000달러 아프가니스탄의 지뢰밭. 아프가니스탄에는 20년 이상 치러진 전쟁 때 매설된 수백만 개 이상의 지뢰들이 남아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하고 긴박한 상황을 알게 되면 「살고 봐야지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PMC 회사에서의 실무교육이 끝날 때쯤이면 많은 이들이 이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는다. 일을 시작한 사람들 중에서 첫 장기휴가 때 고국으로 가서 복귀 안 하는 사람이 생긴다. PMC 사람들의 근무강도를 일반적인 회사와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 강하다. 일반적인 근무규정으로 보면 정규 개인밀착경호나 PSS(퍼스널 시큐리티 스페셜리스트)의 경우 하루 12시간씩 週 6일 근무한다. 3개월마다 1개월의 휴가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건 규정일 뿐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하루 24시간 週 7일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정도의 근무 강도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뭔가 엄청난 인센티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PMC 근무에 나름대로 이점이 있다. 급여와 복지가 좋다는 것. 사람마다 액수가 달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비교적 높은 급여와 잘 정비된 복지는 만족할 만하다. 위험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각종 부상과 사망에 대비해 전쟁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한다. 연간 보험료로 내는 돈은 1인당 1만5000달러 정도다. 사망시 10만~15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는다. 또한 우리의 서비스를 통해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객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단점 또한 일과 관련 있다. 추측할 수 있듯이 치명적인 부상의 위험이 높은데다, 부상을 입을 경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므로 팀 동료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는다는 점이다. 인종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이 크다. 나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빨리 진급한 데다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신입 사원들이 지시를 잘 안 따른다. 분쟁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선술집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마치 또 다른 지구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용병은 유엔의 인권규약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무장을 한 사람들이다. 용병기업은 보통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 개입하지만, PMC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PMC는 유엔과 현지 정부와의 협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약거래·국제범죄조직과 철저히 거리 PMC들은 고용주인 정부 또는 고객의 명예, 브랜드 가치와 株價(주가), 설립이념을 존중한다. 또한 IPOA(국제평화유지활동협회)가 합의한 대로 유엔 인권헌장의 준수와 교전규칙을 따르며, 활동국가의 법률을 준수한다. 무엇보다 장기간의 사회경험과 작전경험을 통해 현지인들과의 조화에 노력한다. PMC들은 합법적인 일만 한다. 고객은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이나 개인에 국한된다. 마약거래상이나 국제범죄조직과는 철저히 거리를 둔다. 용병은 다른 사람에게 총을 쏘아 이익을 얻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 대신 총을 맞으면서 이익을 얻는다. 우리 업계에는 솔선수범하고 성실한 사람이 많으며, 미국인과 영국인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약속이라도 개의치 않고 누구에게라도 총을 겨눌 수 있는 용병과 법을 준수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모인 직장인이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납치」는 하나의 사업 최근 분쟁지역에서는 납치나 유괴가 사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분쟁지역에서는 늘 위험이 존재한다. 물리적인 힘과 對주민 유화정책을 병행해야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 예를 들면, 中東의 어느 나라에 진출한 한국 회사 두 곳이 있다. PMC와 계약을 한 후 현지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A社)과, 아무런 조치를 취해 놓지 않은 기업(B社)이다. A社와 B社의 직원이 자재수송 중 공격당했다고 하자. 무장세력은 로켓 공격을 시작으로 트럭 3대에 나눠 타고 공격한다고 가정한다. A社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보안계약을 맺은 PMC에서 즉각 대응조치에 들어간다. 30분마다 연락해야 하는 통신망이 두절되는 시점부터 행동이 시작된다. PMC 측은 주변 지역의 미군 또는 현지 정부에 연락하고 주변에서 작전 중인 위기관리팀을 사고장소로 이동시킨다. 5분 정도 지나면 협조관계인 다른 보안회사에서 이 공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15분 정도 지나면 미군이나 현지 정부로부터 연락이 온다. 30분 정도 지나면 현장에서 『상황이 종료됐다』는 소식이 들어올 것이다. 무장세력들은 첫 공격과 동시에 도로 좌측 후방에서 PKM(舊소련군 공용화기)을 쏘면서 트럭 3대에 나눠 타고 공격해 온다. A社 호송팀은 퇴출을 시도했으나 컨테이너 트럭 2대가 공격으로 파손됨과 동시에 운전사들이 도주해 버려 차량 후송을 포기한다. 한국인 직원을 태운 차량과 다른 호송 차량 1대는 약 5km 떨어진 제3지점으로 이동한다. 남은 호송차량 2대는 연막탄을 발사하는 동시에 GPMG로 제압사격을 실시한다. 또한 저격수가 상대방의 기관총 사수, 로켓탄 사수, 운전사를 차례로 저격해 무장세력 차량 1대를 격파하고 무장세력 일부를 체포한다. 호송팀은 체포된 무장세력 요원을 지역 보안군과 관련 보안회사 직원에 인계한 후, 상황실에 보고한다. 현지 위기관리팀은 A社 본사에 「파손된 화물과 차량에 대해서는 계약대로 보험을 이용 전액 배상에 대한 조치를 완료했다」고 보고할 것이다. 분쟁지역에 보안 취하지 않고 진출하면 죽거나 납치 가능성 높아 B社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자재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 트럭 12대가 고속도로에서 RPG-7(로켓추진대전차화기)과 AK47자동소총, RPD(舊소련군 공용화기)로 무장한 현지 세력에게 습격을 당한다. 이 공격으로 차량 일부는 파손되고 화물은 모두 탈취당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승한 한국인 직원들은 죽거나 혹은 납치될 가능성이 높다. 무전기와 휴대폰 등의 비상연락망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재밍」이 되는 순간, 기지국이 파괴되는 순간, 위성신호가 안 잡히는 모든 통신수단이 먹통이 된다. 미군과 현지 보안군, 현지에서 고용한 보안팀과 통신이 연결돼 있다고 해도 자기들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일단 민간인은 부차적인 상황이 된다. 몇 개월을 사선에서 같이 있어 온 자기들의 동료를 보호할까? 아니면 아시아에서 온 회사 직원들을 보호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무장세력에게 포격을 당하고, 직원들이 사살 혹은 납치된 상황에서 회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급격히 상승하게 마련이다. B社는 즉각 간부들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열 것이다. 언론의 집요한 추적으로 납치된 사람의 신원이 알려지고, 이들의 신원은 곧바로 해당 국가의 무장세력에게 알려질 것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캠프 빅토리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 병사들이 바그다드 시내 순찰에 나서기 전, 원을 그린 채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48시간 이내에 납치문제 해결해야 납치 사건 발생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부 대책반은 협상 전략과 협상價(가) 선정, 무력한 현지 정부와의 협조 등을 논의하느라 즉응 조치를 못 할 게 확실하다. 납치 48시간이 지나면 납치범들은 몇 만 달러의 돈을 받고 자신들보다 더 큰 무장단체로 인질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납치가 일어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무장세력들은 더 큰 국제조직에 인질을 넘긴다. 국제조직은 막대한 몸값과 함께 정치적인 요구를 한다. 결국 B社는 어쩔 수 없이 엄청난 몸값을 지불하고 인질을 데려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인을 납치해도 후속조치가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中東 지역에서 한국인 납치가 빈번해질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상황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에 테러리스트들의 「돈줄」 노릇을 했다. 몸값을 주고 풀려난 인질은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이 세계 160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670만 명에게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최근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납치극 역시 현장이 오지인 탓에 한국 정부와 해당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유전 개발 등을 목표로 이라크에 진출할 경우 사정이 더 나빠질 수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매순간 수많은 공격이 있지만, 미군이 전적으로 호송을 맡을 때보다 PMC 회사가 호송 서비스의 일부를 맡으면서부터 화물 손실량이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 어떤 보안회사는 自社(자사)의 깃발을 달고 다닌다. 그 차량들이 나타나면 지역 무장세력들이 일단 공격을 자제한다. 그 깃발이 우리는 미군이 아니라 「프로」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쟁지역의 토착 무장세력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PMC들의 전투력과 친화력 때문이다. 정보수집, 분석과 代案(대안) 실행에서 PMC들은 높은 숙련도를 갖추고 있다. 현지 사정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회사 직원 중에는 이라크 전쟁이 있기 전 택시를 대절해 이라크 곳곳을 누비고 다닌 사람이 있다. 이라크의 지형과 지역內 역학구조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현지 주민과 PMC의 친화력은 파병 군인들과는 다르다. 예로 이라크에 주둔 중인 다른 나라 군인들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줄 때 땅바닥에 뿌려 버리지만, PMC 직원들은 아이들의 손에 쥐어준다. 이런 작은 행동이 분쟁지역에서의 안전을 좌우한다. 자이툰 부대와 한국 기업들을 아는 쿠르드人들은 모두 한국을 좋아했다. 이들은 내게 『자이툰 부대가 철수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종종 말했다. 해외에 있는 쿠르드族도 마찬가지였다. PMC들은 한국군처럼 유화책과 무력, 협상력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위험상황을 통제하고 무력충돌을 예방한다. 최근에 일어난 나이지리아 납치극에서 PMC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나이지리아 납치범들은 납치극에 국가가 나서면 인질의 몸값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인질석방 협상을 우리 쪽에 의뢰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는 인질들의 신속한 석방을 위한 협상을 몇 차례 성공시킨 적이 있다. 高위험보안산업(PMC)에서 한 번의 실패는 곧 회사의 존립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건을 맡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 업계 불문율이다. 성장가도에 오른 PMC산업 이런 점을 고객에게 알려 주지만 때로 자신들의 경험을 과신해 PMC를 배제한 채 무장세력과 직접 교섭에 나서는 정부나 기업이 있다. 이런 실수는 특히 아프리카 쪽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이 저지른다. 그 결과는 대부분 처참하게 끝난다. 아프리카에는 납치산업이 발달해 외부에서 원정 오는 무장세력이 있다. 이런 세력들에게 잘못 걸릴 경우 재산만 빼앗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PMC 업계는 성장가도에 있다. 정확한 수익은 서로 비밀로 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지만 최근 「아머그룹」은 美 국무부와 분쟁지역의 美 대사관 보호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 외에 미국의 대표적인 PMC인 「블랙워터」의 성장 또한 눈부시다. 10년 전 허허벌판에 사격장만 있던 「블랙워터」는 현재 전술운전연습장 5개에 헬기훈련장이 있으며, 지금은 B-747급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를 건설 중이다. 세계 PMC 시장의 80% 이상은 미국과 영국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전투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외 나머지 나라의 회사들이 20%의 파이를 나눠 먹고 있다. 살아 있는 방패막이 어설픈 영웅심이나 호기심, 모험심으로 PMC에서 일해서는 안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고객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PMC의 일은 살아 있는 방패막이 되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에게 잡히면 목이 잘려 나가는 일을 감수해야 하고, 아프리카에서는 고객과 함께 혹은 홀로 납치돼서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매년 계약 갱신을 하기 때문에 평생 이 일을 하기는 어렵다. 영어는 기본이고 해당지역 언어를 신속하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6년 이상의 해외작전 경험이나 실제 전투경험이 필수다. 영화에서 보는 건 환상일 뿐이다. 환상을 버려야 한다.● --------------------------------------------------------------------------------
▣ 무장세력에게 피랍시 행동요령 1. 총성이 나면 즉시 몸을 낮춰라. 2. 인질범의 지시사항에 따르라. 3. 조용히 하라. 4. 모든 동작을 가능한 한 줄여라. 5. 결박할 경우 반항하지 말라. 7.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 8. 납치가 장기화될 경우, 납치범 중 제일 말을 많이 거는 이와 친분을 가져라. 9. 납치범들의 특징, 대화, 순찰방식, 비상구 등을 관찰하라. 10. 구조팀이 오면 최대한 신체를 낮추고 氣道를 유지하라. 위 기사의 출처는 월간조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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