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전문인선교, 그 신학적 ISSUE는 무엇인가?
김성욱교수(총신대학교선교대학원)
I. 서론
21세기는 전문인 선교의 시대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전문인선교는 선교전략상 그 효율성에 대해서 지난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큰 신학의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급변하는 해외 선교현장에서 전문인 선교전략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나타난 시기였다. 미전도종족선교을 위해 전문인 선교사의 역할은 현대선교의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전문인선교사가 선교사역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전문인선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가 종종 선교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듣는 소식 가운데 전문인선교사와 목사선교사 사이의 갈등구조를 접하곤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21세기 선교사역은 교회사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전문인선교사역을 강력히 요청한다는 사실을 무색케 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분명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본다.
필자는 본고에서 전문인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에 대해서, 그리고 평신도가 전문인선교사로서 어떻게 활발하게 그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전문인 선교사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전문인선교와 한국교회
한국교회 안에서 전문인 선교사역에 대한 의식을 연구해보면 여전히 현대 한국교회에서는 전문인선교사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부족함을 본다. 전문인선교사가 사역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식자체가 문제로 대두된다. 전문인선교 활성화를 위해 먼저 평신도와 목회자사이에 바른 관계정립이 아쉬운 때임을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목사와 평신도사이, 목사와 장로사이에 누가 큰가?”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심지어 “장로교회는 장로 때문에 성장이 중지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등장하는가 하면, 목회자와 평신도라는 이원론적인 직분에 대한 오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사회가 가지는 문화적인 특수성 때문에 교회 안에도 성경적인 직분론과는 거리가 먼 계급적인 성직이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문인선교의 전략적인 우수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교회에서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실제로 목회자나 평신도 각자가 온전한 평신도에 대한 신학의 부재로 혼미한 가운데 목회현장에서는 여러 다양한 형태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기도 한다. 참으로 온전한 전문인선교의 활성화를 위한 신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문인선교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인 노력은 한국교회 전문인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교회의 “교직”(Church Office )에 대한 오해들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전통적으로 유교적인 배경 속에서 사회 구석구석에 유교적인 질서를 숭상하는 문화적인 특성이 있다. 유교의 탄생지인 중국보다도 더 엄격하게 지켜지는 위계질서의식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가치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교의 삼강오륜과 같은 주장에서 한 예를 들면, 소위 “군사부일체”(君師夫一體)라는 말은 사회에서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수직적으로 하늘과 같은 존재요, 상대적으로 백성과 학생과 자녀들은 땅과 같은 존재라는 계급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우리 한국인의 철학으로 깊이 배어 있기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안에서 직분이해에 있어서 계급적으로 보면서 교회를 수직적 계급적 구조로 몰아가려는 경향이 야기되는데, 이로서 교회 안에 다양한 문제들로 나타나게 된다. 교회 안에서 누가 높은 가에 대해 보이지 아니하는 알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교회의 갈등구조로 발전하면서 더욱 교직에 대한 왜곡된 형태를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계급적인 교회 직분이해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성경적 전문인선교 신학의 정립에서 가능하다고 하겠다.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교회안에서 바른 직분의식을 정립하는데 전문인선교신학은 크게 공헌하리라 본다. 전문인선교신학의 정립은 목회자로 자신이 세도가로서 어떤 권위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다른 평신도를 도와 그들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다 이루게 목양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모든 성도들에게는 그들이 아무런 능력없는 자들의 그룹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의 중요한 지체로서 각기 위로부터 받은 은사를 가지고 각기 부르심을 따라 사역하는 전문인사역자로서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게 하는데 공헌할 것이다.
III. 전문인 선교의 신학적 ISSUES
지난 20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안에 있는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나 평신도신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형성하였다. 평신도사역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이 화란의 신학자 Hendrick Kraemer는 그의 저서 “평신도 신학”(Theology of Laity, 1958)에서 교회“평신도는 교회의 사역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동안 교회안에서 평신도의 위상에 대해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지적하였다. 교회안에서 그동안 평신도의 위상에 대해서 그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바른 관심과 그것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다.
미국교회의 지도자 Elton Trueblood는 지난 20세기 중반기에 벌써 미국교회 안에 평신도 운동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일꾼인 평신도가 하나의 잠자는 거인(a sleeping giant)으로 묘사하면서, 아직도 잠자는 거인인 평신도를 깨운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신도가 그들의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세상일에나 탐닉하는 존재로, 다른 한편으로 교회안에서 지도자들이 평신도에 대한 사역자로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였다.
오늘의 상황에서 평신도의 사역적인 위치에 대해 지금까지 목회자나 평신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갖는 특수한 의미와 그에 따르는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목회자로써 자신의 사역과 아울러 평신도를 훈련하고, 양육하는 ministry에 충분치 못하며, 아울러 평신도 자신들도 그들 고유의 역할에 깨닫지 못하므로 무지하여 효과적인 사역이 아쉬운 현실이다.
심지어 “평신도를 깨우면 문제가 있으니 그냥 내버려두자”는 교역자들의 의식은 교직 독점주의(Clericalism)로 몰고 가고, 그와는 정반대 편에 퀘이커 교도와 같은 교회직제 자체를 부정하는 무교직주의(Anticlericalism)도 비성경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아울러, 한국교회 현장에 가장 큰 문제는 사역자로서의 자신의 사역을 쉽게 포기하는 맹목적인 평신도상이다. 많은 평신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특권과 아울러 맡겨 주신 책임으로서 사명의식을 망각하고 그들의 사역을 묻어버린 한 달란트처럼 잊혀져 있는 모습이 많다. 오늘의 선교현장에서 평신도사역자들을 활성화하는 길은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관계에서 평신도의 분명한 정체성의 확립이 필요하다. John Stott는 목회자의 역할로 평신도를 사역자로 세우며, 교회를 “봉사”하는 자며, 성직자(Clergy)라는 말보다 목회자(Minister)라고 칭하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John Stott는 먼저 신약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의 상을 오늘의 목회자상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약성경의 목회자개념은 교회의 모든 사역을 경쟁적으로 자기의 수중에 장악하므로 평신도의 사역을 무시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평신도를 도와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여 그들로 각자 자신의 은사들을 발견하고 훈련하여 사역케 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오늘의 목회현장에 있는 모든 사역자에게 가져야 할 바른 모습이라 본다.
John Stott는 지금까지 존재해 온 잘못된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관계들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첫째는 이들의 관계가 불균형적인 것으로 한 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지적한다. 너무 성직자를 높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평신도를 낮추는 맥락에서 설명한다. 평신도에 대한 오해가 결국 한 쪽으로 치우친 관계상을 연출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세시대에 로마 카톨릭교회에서의 성직자의 위치와 평신도의 모습이라 볼 수 있겠다. John Stott는 “평신도에 대해서 너무 낮게 보게 되는 것은 성직자에 대해 너무 높였기 때문이요, 성직자에 대해 너무 높게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교회를 낮추어 본 결과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John Stott는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으로 현재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회구조에 나타난 대로 이원론적인 것으로서 이것은 비성경적인 구조라고 비판한다.(The dichotomy between the clergy and the laymen is not biblical.) 서로 간에 불간섭을 원칙으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성직자의 독재적인 평신도지배는(the clerical domination of the laity) 비성경적인 형태로 비판한다. John Stott는 성경에는 모든 사역이 한사람의 수중에 집중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온전한 사역들을 부정하는 세속적인 계급적인 성직독점주의는 발붙일 곳이 없다고 강조한다.
J. Stott와 함께 평신도신학에 많은 관심을 표현한 Harvie M. Conn은 개혁주의 선교학을 대변하는 학자로 평신도의 선교적인 역할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선교를 위해 “교회의 장로와 평신도들을 어떻게 훈련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으며,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신학 교육이 몇몇의 엘리트만의 신학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신학교육이 하나님의 사람을 교육할 수 있는 기관이 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도시선교”(Urban Mission)라는 선교저널에서 오늘날 도시 선교를 위해 “잊혀진 도구”(forgotten tools)는 바로 교회집사의 역할임을 부각해서 강조하고, 어떻게 하면 평신도들을 도와서 하나님의 전체 백성들의 선교사역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가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평신도의 신학적, 성경적 정체성을 제시하면서, 평신도가 소극적 의미에서 성례를 받고 목사의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들의 역할, 세상에서의 그들의 선교적 책임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이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 안에서 사역도 성직자 중심의 계급적인 교직주의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교회안에 계급적인 차별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직제는 성도상호간에 계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에 따라 교회를 봉사하는 청지기의 원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한 은사의 구별에 따라, 모두가 주님을 섬기는 청지기이므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한 몸으로, 한 성령을 모시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은사에 따라 교회의 사역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Harvie Conn은 개혁주의 선교학자로서 기존의 평신도사역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잘 보녀준다. “평신도의 선교사역은 목회자의 사역에 비해 그 수준이 낮다”고 보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평신도 사역에 대한 오해는 1)교회 사역에 대한 오해와 2)만인 제사장론에 대한 오해(misunderstanding)에서 나온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전문인으로서 평신도의 효과적인 사역으로서 행6의 집사들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예증하고, 행7장과 8장에 나타난 초대교회 집사들의 선교사역의 모습을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중요한 선교의 도구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onn은 여러 교파가 평신도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개혁주의 교회가 이 분야에서는 뒤처져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대부분의 신학 교육이 오직 목회자 배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인선교사역을 위해 평신도사역의 활성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부족한 현실임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평신도의 선교사역을 위해 신학교육을 평신도들에게 개방해서, 신학적인 훈련과 지식으로 준비하여 효율적인 전문인선교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V. 교회역사와 성경에 나타난 전문인선교
앞에서 평신도에 대한 교회의 시각들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사역적인 위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의 99%를 차지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군대인 평신도가 사역자로서 잘 감당할 수 있는가? 그리고 평신도로서 21세기 세계선교와 교회성장에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세계복음화와 교회성장을 위해서 바른 평신도사역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이 필요하다. 목회자에게 그리고 평신도 모두에게 새로운 신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 1974년 스위스 로쟌에서 열렸던 로쟌 세계복음화대회에서 모두가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는 전 교회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복음전파의 동역자들(fellow-workers)이 되는 특권을 주신다” , 그리고 “목사, 선교사, 전도사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신자들에게 그의 증인으로서 부르시며, 지역교회를 통해서, 가족관계, 사업장, 시장, 친구관계 등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로쟌대회에 참석한 미국의 Madison Ford는 “이제 평신도들도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특히 “생명을 변화시키는 사역에”(Life-Changing Business)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평신도가 사역할 수 있는가에 대해 미국에서 전도폭발운동을 시작한 James Kennedy는 “평신도야말로 교회성장과 세계복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인데, 그러나 오늘날 가장 사용되지 아니하는 것”이다.(Laymen are the most strategic and also the most unused key to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그러므로 평신도 사역에 대한 보다 확실한 근거는 교회역사와 신구약 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1. 초대교회사와 전문인 선교
어떻게 평신도가 어떻게 사역할 수 있는 가에 대해 교회역사는 여러 가지로 많은 교훈을 제공한다. 사실, 교회역사에서 평신도의 선교사역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간하배 선교사는 교회역사에서 평신도들의 사역은 “잊혀진 평신도사역”으로 설명하였다. 교회사를 연구하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교회사역에 있어서 풍성한 평신도들의 참여로 성장하였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였던 초대교회가 박해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행8:4).
Roger Greenway는 초대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세상 앞에서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제자로써의 삶으로 여겼으며, 이러한 모습이 “바로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의 원동력이었다.” Adolf von Harnack은 “초대교회의 기독교전파사”에서 초대교회의 특징적인 일들로 “신앙고백자들”, “순교자들”과 같이 “비공식적인 평신도 선교사”의 존재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것은 곧 일반신자들로서,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신자들도 자신들의 믿음을 전파함으로 그들의 불신 이방족속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었다. “우리는 초대 교회에서 실제로 많은 선교의 역사가 비공식적인 평신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주저없이 주장한다.” Michael Green은 초대교회의 이러한 평신도의 획기적인 사역에 대해서, “교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전도를 자기의 직업으로 여겼다”고 한다. 복음전파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최대의 의무와 책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J. H. Bavinck (1960, 39-40)는 사도행전에서 선교사역의 특징으로 "자주 언급된 평신도 설교자들"을 들었다. 바빙크의 이러한 평신도들을 “비공식적 설교자”로 불렀다. 바빙크에 따르면, 이 모든 남녀들은 비공식적인 선교사들로서 초대교회의 선교사역에 막중한 역할을 했는데, 바로 그들은 “신자”라는 직책 외에는 다른 어떤 위치도 없는 평범한 남녀 신자들이었다.
Michael Green은(1991, 173) 초대교회에 있어서 “전도는 모든 신자들의 혈액 바로 그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기지를 중심으로 그들이 가는 모든 곳에서 자신들에게 있는 기쁨, 자유, 그리고 새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Green은 그들이 전한 내용과 그들의 삶이 일치가 되었기에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 Harnack은 그들의 높은 수준의 도덕적인 삶이 비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너희 빛을 비추어 너희의 선행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성경말씀대로 생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복음을 평범하면서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다.
K. S Latourette (1939, 1:116)은 초대교회의 기독교의 확장은 전문적인 사역자들보다 세속사회 속에서 생업을 가지고 일하던 남녀 평신도들이 그들의 생업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았다고 주장한다. 여행자, 상인, 무역인, 노예 등이었다.
F. F. Bruce (1964, 354)도 2세기말 초대 영국선교사역에서 평신도의 활동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곧,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Gaul에서 온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날마다의 사업장을 통해서 선교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초대교회의 평신도 사역은 그야말로 오늘의 평신도 전문인 사역의 “본보기”이다. 복음전도를 위한 삶의 전 영역을 드리고 담대히 전도를 시행함으로 초대교회의 무서울 이 만큼,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인격적인 삶을 통해, 그 사회 속에서 진정으로 “빛”이었다.
2. 구약성경과 전문인선교
전문인선교의 중요성은 신구약성경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평신도가 전문인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은 전체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요한 성경의 내용은 구약에서 창12:1-4, 출19:4-6, 그리고 사43:21에 나타나고,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서신서를(벧전2:9; 엡4:11-12)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창 12:1-3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소명과 사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선교사역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아브라함에게 4 가지 약속들, 곧 새 땅, 수많은 후손들, 신적 보호,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약속이 나타나 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은 땅의 모든 민족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창 12:3 후반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부름과 함께 잃어버렸던 족속에 대한 회복이 함께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선택은 곧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섬김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이며 그들이 가지는 선교적인 책임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평신도의 사역은 출 19:5-6에서 제사장나라의 사역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3 가지 이름이 나타나는데, 1) 하나님의 소유로서 보배로운 백성(5절, 세귤라)으로, 그리고 제사장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적 소명으로서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요,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그들을 부르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6절에서 나타난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쓰심을 위해 특별히 분류된” 백성이라는 말로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결성”보다 “하나님의 특별목적”을 위한 사역자로서의 구별의 의미를 지닌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속적으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통해 잘 나타난다. 이사야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은 암흑과 혼동의 포로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교적 관심을 보여준다. 어려운 시기에도 하나님의 그의 백성에 대한 관심은 그의 백성에 대한 주재권과 언약관계를 앞서 가시며 이끄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불변하신 약속 곧 버리지 아니하시며 계약관계는 여전히 변함없음을 증거한다. 여기 사용된 21절의 동사 “지었나니”(히브리어 רצי)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목적을 나타내며, 특히 분명한 “목적있는 지음”(to form purposely)을 보여주는 동사이다. 사43:21은 이스라엘의 특권과 책임은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21).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놀라운 구원의 활동들을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목적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 백성의 선교적 소명을 제시한다. 신약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 성경을 인용하여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자로서(벧전2:9)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려 함이라”)(To Proclaim)고 하였다. 나라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전파하는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3. 신약성경과 전문인선교
신약성경에 나타난 전문인선교사역은 사도바울과 사도 베드로의 서신에서 분명한 평신도의 사역에 관한 성경적인 기초를 살펴볼 수 있다(엡4:11-12; 벧전2:9).
먼저 엡 4:11-12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의 사역론을(Every Member Ministry) 제시한다. 엡4:11절에 나타난 영적인 은사들은 교회사역의 중요한 부분으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감당하여야 하며, 칼빈은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양하게 모든 성도들에게 나눠주심을 강조하면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은사들을 나눠주시지 않았다면 교회사역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H. Ridderbos는 교회에서의 은사들의 사용은 인간들의 고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여된 신적 부과이다. 그리고 다양한 은사는(고전12:12; 롬12:4)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은사는 그 사용에 있어서 “청지기 의식”을 기지고 개인적인 이해가 아니라, 전 회중을 위한 유익과 봉사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하며 결코 은사문제로 경쟁하거나(Rivalry) 또는 무질서한 교회직분관도 비성경적인 것이며, 각기 “은혜의 분량에 따라”(롬 12:3-9) 주신 것이다.
엡4:12에 성도는 온전케 되어 봉사의 일을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모든 평신도가 수행해온 소극적인 의미의 봉사에서 적극적인 사역에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그러므로 엡4:11-12은 모든 평신도들이 다 교회 안에서 감당할 사역이 있다고 가르친다.
벧전2:9은 그리스도인들에게 4가지 이름을 제시하면서 평신도로서의 다양한 사역을 보여준다. 평신도의 선교적 역할은 그 이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택한 족속”의 뜻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특권만이 아니라, 선교를 봉사와 섬김에의 소환령으로 세상에 복음전파를 위한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왕같은 제사장들”이라는 말은 평신도전문인의 영광스러운 사역의 부요함을 나타내는 말이다(Kistemaker). 이 말은 출19:6의 “제사장 나라”와 연관되는 말로서 “왕같은 제사장” “제사장 나라”의 시민으로 모두가 왕적인, 제사장적인 위치와 의무들과 특권들을 나타낸다. “제사장들의 공동체”는 모든 성도들의 선교적 역할과 책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나라”는 말은 출 19:6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구별된 역할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세속 사회 속에서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쓰임을 위하여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구별된 위치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상징한다(God's ownership of his people). 그리고 9절 하반절에서 평신도의 분명한 선교사명을 제시한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V. 결론: 21세기 선교전략으로서 전문인선교
지금까지 21세기 전문인선교의 활성화를 위한 신학적인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전문인 선교가 정착하여 효과적인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평신도가 전문인으로서 사역자의 위상을 갖도록 필요한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평신도와 목회자 관계를 살피면서, 교회역사와 신구약성경에 나타난 평신도 소명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사실 현대교회 선교전략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평신도전문인 선교이다. 전문인선교는 현대의 마지막 선교지역인 미전도종족을 선교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미전도종족 선교전략이다. 구미 각 교회출신의 선교사들이 전문인선교사로 오늘의 선교현장에서 많은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평신도들에게 전문인선교사로 자신의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지금까지 선교의 문이 닫혀있는 지역으로 목사선교사의 비자가 아니라 전문인의 비자를 받아 들어가서 그곳에서 선교하는 선교전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의 선교현장은 이제 이러한 평신도 전문인선교사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평신도가 선교할 수 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교회선교가 효율적이고 전략적이 되도록 교회지도자나 평신도 모두가 전문인선교사의 Vision을 새롭게 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본다. 전문인선교의 비전을 한국교회가 극대화하기 위해서 목회자들의 목회철학이 평신도를 훈련하여 전문인사역자가 되게 하는 폭넓은 시각을 가져야하며, 목회자가 독단적으로 사역을 주장하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 평신도들은 보다 적극적인 소명과 자세로 지금보다 전문인 사역자로서의 자세를 확립하여 마지막 선교사역 완수에 임하여야 한다.
Bibliography
Bavinck, J. H. 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Missions,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 1960.
Bruce, F. F. The Spreading Flame: The Rise and Progress of Christianity from its first beginning to the conversion of the English, Grand Rapids: Eerdmans, 1964.
Cadoux, Cecil J. 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 Edinburgh: T. & T. Clark, 1955.
Conn, M. Harvie, “Training the Membership for Witness (Elders and Laity)”, In Training for Mission, RES Mission Conference, 1976.
Conn, M. Harvie Conn, “Theological Education and the Search for Excellence”,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Vol. 41:311-363.
Congar, Yvs, Lay People in the Church, Maryland, Westminster Press, 1957.
Edge, Findley, The Doctrine of the Laity, (Nashville: Convention Press, 1985).
Green, Michael, Evangelism in the Early Church, (Grand Rapids: Eerdmans), 1991.
Greenway, Roger S., ed. Discipling the City, Grand Rapids: Baker, 1992.
Harnack, Adolf von.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New York: Harper & Brothers, 1962.
Kennedy, James, Evangelism Explosion. Wheaton: Tyndale, 1985.
Kistemaker, Simon J., New Testament Commentary: Exposition of the Epistles of Peter and of the Epistle of Jud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7.
Kraemer, Hendrick, A Theology of the Lait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8.
Kromminga, Carl G. The Communication of the Gospel through Neighboring. Free University doctoral dissertation, 1964.
Kromminga, Carl G. Bringing God's News to Neighbors. Nutle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6.
Kung, Hans, The Church, London, Burns & Oates, 1967.
Latourette, K. S. 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the Christianity,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39.
Mott, John R. Liberating the Lay Forces of Christianity,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12.
Neill, Stephen C. and Hans-Reudi Weber, The Layman in Christian Histo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4.
Ridderbos, Herman,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75.
Stott, John R. W. One People, Downers Grove: IVP, 1982.
Stott, John R. W. The Message of Ephesians, Downers Grove: IVP, 1979.
Stevens, Paul, Liberating the Laity, (Downers Grove: IVP Press, 1985).
Stevens, The Equipper's Guide to Every-Member Ministry; (Downers Grove: IVP, 1992).
Van Engen, Charles, God's Missionary Peopl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