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 산행기(3)

[시몽]

08:30. 이제 공룡능선으로 접어든다.

우리는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들 모양 비장한 모습으로 얼굴에 화장을 한다. 썬 크림으로 얼굴에 덕지덕지 허옇게 바르곤 창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한다.

멀리 앞쪽으로는 공룡능선의 화려한 암봉들이 우리를 압도하며 반갑게 부르고 있고, 뒤돌아보니 마등령 능선과 세존봉이 정겹게 배웅을 하고 있다. 나한봉을 지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능선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땀을 식혀준다.

능선 왼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천화대 암릉과 범봉의 자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용아장성과 가야동계곡의 모습. 앞쪽에 멀리 보이는 대청봉과 중청봉의 웅자. 능선길 암봉 틈에는 솜다리꽃이 곳곳에 수줍게 피어있다. 낙석을 조심해야 하는 곳도 있고, 위험 구간 곳곳엔 보조자일이 달려있는 곳도 나온다.

조관휘 화백은 조설모 별명답게 항상 선두에서 잘도 달린다. 조성숙 선생은 조람쥐란 별명처럼 몸놀림이 날렵한데, 산행 중에도 취나물을 뜯는 여유를 보인다. 오늘 점심때 먹을 거라나. 김영환 선생은 제일 커다란 배낭을 매고도 힘든 기색이 없다.

10:50. 드디어 공룡능선에서 제일 높다는 1275봉 아래에 도착.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간식을 먹는다. 김문갑 화백이 준비해 온 미숫가루를 타서 먹으니 뽀빠이 시금치 처럼 다시 힘이 솟는다.

대한항공 산악회팀이 도착하더니 몇몇은 1275봉 암봉을 올라간다. 아침에 마등령에서 만난 노부부는 뒤에 오는지 아니면 마등령 코스로 갔는지 한 번도 볼 수가 없다.

<그 해 대청봉을 내려와 반대 방향에서 마등령을 향하다가 해가 저물어 공룡능선에서 야영을 했었다. 하필 텐트를 친 곳이 바람골이어서 밤새 텐트가 흔들리고 무지무지한 바람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었다>

13:00. 신선봉에 도착. 이곳에서 뒤돌아보는 공룡능선의 모습이 가장 환상적이다.

▼공룡능선

멀리 1275봉과 오른쪽으로 범봉. 각자 독사진을 찍었는데 나만 사진이 안 찍혔다. 이래서 카메라 가진 사람만 늘 손해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찍으려고 갈 수도 없고.

무너미고개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양폭산장에 15:10에 도착. 방을 예약하고 물가로 내려가 발을 담근다.

▼양폭산장 

 우리가 배정 받은 방은 산장 1층으로 13명에서 20명까지도 잘 수 있는 방이다.

우리 외에도 원주에서 온 부부팀 5명, 아가씨팀 4명, 산장주인의 배려도 더 이상은 인원을 들이지 않았다.

다른 방은 주인 말에 의하면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밖에 나가보니 바깥 평상에서 잠자리 준비하는 사람, 자리가 없어 밤늦게 플래시 키고 하산하는 사람 등 연휴라 대단한 인파였다.

벌써 눈을 붙이기에는 시간이 이르고 하여 김문갑 화백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막걸리와 도토리묵, 감자전을 시켜놓고 다들 나오라고 해도 꿈쩍도 않는다. 내가 퇴직했다고 이것들이 이젠 명령도 안듣는다. 고이언것들.....

매점 여주인을 방으로 심부름 보냈다. 여주인은 시킨 대로 우리 방에 가서 "화백산우회 다들 나오래요"했다. 이 말에 조관휘 화백이 나왔다.

방안에 남은 우리일행 3명. '화백'이란 말에 그림 그리는 화백이냐고 묻는 원주 부부팀에게 이화영 선생이 새우눈 한쪽을 깜짝이며 의뭉을 떤다. 밖에 나간 세 사람 모두 화백이며 전공은 동양화라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고 허풍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졸지에 인물화가, 정물화가, 누드화가 까지 만들어 버렸으니 우린 어쩌란 말인가?

양치질하러 나온 아가씨들을 붙들어 앉히고 막걸리를 먹이던 김문갑 화백은 또 능청스런 거짓말이 나온다. 자기는 인사동에서 일년에 두 번씩 전시회까지 여니 언제 한번 구경 오라고.

우리는 22:00 산장이 소등되고 다들 잠든 후에 라야 방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서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 잠을 깨울 새라 04:50기상, 05:10 밥도 안 먹고 양폭산장을 탈출하였다.

양폭산장 탈출에 전원 성공한 우리는 귀면암,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에 도착.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척산온천에서 땀과 피로를 씻고 속초로 향했다.

속초 중앙시장 지하 활어센타 '가진횟집'. 우리를 알아보고 반기는 여주인.

광어, 우럭 싱싱한 회를 배터지게 먹고 매운탕까지. 서울 김용완 선생에게 전화 걸어 약 좀

올리고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만보]

만보, 올해는 꼭 공룡능선 올라 타 봐야 될텐데... 일정과 겹치는 업무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