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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리더십 스크랩 Noblesse Oblige(노블리스 오블리제) :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이용범 추천 0 조회 78 09.05.21 12: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Noblesse Oblige(노블리스 오블리제) :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지배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격언입니다. 사회 지도층의 책임의식 즉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귀족의 역사가 긴 유럽 사회에서 유래되었으며 오늘날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터에 압장서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런 귀족 사회의 전통적 모럴(morale)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영국의 지도층 자제가 입학하는 이튼 칼리지 졸업생 가운데 무려 2,000여명이 1,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시 위험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고, 철강왕 카네기, 석유재벌 록펠러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 부자들의 자선 기부문화도 이런 전통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귀족사회를 지키려는 일종의 자구책일 수도 있지만 도덕적 의무를 다하려는 지도층의 솔선수범 자세는 국민정신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IPA: /n?bl?s ?bli?/)란 프랑스어로 "귀족의 의무"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사회지도층들이 국민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문제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로마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초기 로마공화정의 귀족들은 솔선하여 명장 한니발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6년 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는 13명의 집정관(Consul)이 전사하였다. 집정관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고위공직자로 귀족계급을 대표하며, 로마의 관리 중에서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한 귀족에 대해서 "아무개 건물" "아무개가 이 도로를 보수하다" 이런 식으로 귀족의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귀족들은 이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법을 제안한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법의 이름을 만들었다.

  • 아피아 가도 (Via Appia): "아피우스의 길" 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312년, 재무관이었던 아피우스가 입안하고 원로원이 가결하고 아피우스 자신이 총감독을 맡아서 건설한 길이다.
  • 라티나 가도 (Via Latina)
  • 티부르티나 가도 (Via Tiburtina)
  • 노멘타나 가도 (Via Nomentana)
  • 셈프로니우스 도로법: 셈프로니우스가 제안한 도로법
  • 율리우스 농지법: 율리우스기 제안한 농지법

이렇듯 로마의 귀족들은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하게 실천했으며, 나라에서도 장려책을 사용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미국

고대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현재 미국에도 전승되어, 미국 법령에 제안자의 이름이 들어가 “매케인-파인골드법”(McCain-Feingold Act) 같이 법률 명칭을 부른다던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멜론 대학교, 은행가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교 식으로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대학등이 현재 미국에 존재한다. 미국은 로마와 같이 상업주의를 추구하며, 법률이 매우 발달해 있으며, 영향력은 전세계적인 점에서도 고대 로마와 매우 닮았다. 원로원민회로 구성된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도 하원상원으로 모방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저명인사나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기피가 매우 오래된 병폐로 잔존하고 있다. 정훈이라고 하여, 군인 정신교육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매우 강조하고 있으나 고대 로마와 로마를 따라하는 미국처럼, 법률 명칭이나 공공시설 명칭 등에 귀족의 이름을 붙여서 “혜택”을 부여하거나 해서, 귀족계층 내부의 유행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기증자의 이름을 붙인 유명한 공공시설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김대중 도서관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조선 정조대왕 당시 흉년으로 인한 기근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을 사서 분배한 거상 김만덕이나 군수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항일운동에 대부분 사용한 최재형 선생,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사회복지로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기타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1945년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얻어 또래 소녀들이 봉사하고 있는 영국 여자 국방군의 구호품 전달 서비스부서에서 군복무하였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주석인 마오쩌둥은 큰 아들이 한국전쟁때 전사하자 인민들과의 형평성을 우려하여, 시체수습을 거부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출처 : 위키백과

 

 

양반문화와 노블리스 오블리제

 

흔히 선진국을 지탱하는 것은 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이라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공공정신을 말한다.

영국 귀족들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러한 정신이 없는가? 우리의 양반문화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다. 우리는 흔히 양반하면 허례허식과 실속없는 체면, 지나친 문치주의 등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떠올리는데,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 놓은 인식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200년 이상을 멸망하지 않고 지속된 나라가 매우 드문 현실에서, 우리나라가 신라 천년, 고려 오백년, 조선 오백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문(文)을 숭상하는 양반 문화가 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양반이라는 개념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동반과 서반을 합친 개념으로 생겨난 것이지만 그 원형과 정신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

양반이 문을 숭상하는 것은 단순히 학문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완벽한 문민통제를 위해 학문(文)은 물론 무(武)에서도 무인과 대등할 수 있는 개인적 수양을 바탕으로 한 고도의 정신수양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양이 되어 있었기에 문신은 무신을 아우르며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사회를 영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심어 놓은 양반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우리 현대사에 발생한 쿠데타는 전부가 군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러나 양반문화가 꽃을 피웠던 조선시대에 있었던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의 주역은 거의 문신이었다. 그만큼 문신들에 의한 문민통제가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 변란기에 활약했던 장수들중 상당수가 문신이었다. 김종서, 권율, 곽재우, 조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은 무신이 아닌 문신이었다. 게다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의병장은 거의 글읽는 선비들이었다. 이들은 국가가 위태로울 때 몸을 바쳐 싸움으로써 오히려 무신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이들이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양반문화 속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선비로서의 자기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양반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거부감이 생길까? 세상의 모든 일에는 긍정 부정, 양면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중 어느 측면을 부각시키는가에 따라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지배하면서 우리가 열등민족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우리의 의식에 끊임없이 주입시켜 왔다. 이를 통해 식민지배를 정당화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출처 : 다음 신지식 veljerbu | 2006-02-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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