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선거 개표기간이라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정서와 의식상태가 반영된 개표현장를 바라보면서, 20대들의 세상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가능성에 관해 일말의 희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대 이사회에 앞서 대구캠퍼스에서 차기 교수회장이 단식 중입니다.
-성명서 및 단식일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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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는 정상화 되었나?
교과부가 지난 11월 1일자로 우리 대학에 정이사 7명의 명단을 통보해 오면서 17년간의 임시이사체제는 일단 막을 내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구대학교가 드디어 정상화되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 대학은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일까? 이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깐의 역사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 대학은 지난 1988년부터 초대총장인 이태영 총장이 신병치료를 이유로 장기간 대학을 비운 동안 부인인 고은애 씨가 대학의 주도권을 쥔 채 측근을 이사회, 총장을 비롯한 대학본부 등에 포진시켜 파행적 학사운영, 부정비리 등 전횡을 일삼는다. 이 때문에 학원 민주화와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는 구성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고은애씨는 이를 주도한 조기섭, 홍덕률 교수(現 대구대 총장) 등을 전격 해임했고, 이에 반발한 교수·학생들이 학내 집회, 본관점거농성 등으로 맞서면서 1993년 학원 민주화 투쟁의 막이 오른다. 교수·학생들은 지역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촛불집회, 청와대 탄원, 감사원 감사 및 검찰수사 촉구, 단식·삭발·상경투쟁 등으로 고 씨의 전횡을 막아내고자 힘썼고, 결국 교육부는 이듬해인 1994년 2월, 당시 재단(구재단)을 우리 대학에서 퇴출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우리 대학은 직선총장체제를 확립하고 구성원들의 일치단결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역 사회의 자랑스런 민주 대학으로 우뚝 섰다. 이에 교육부는 2006년 우리 대학을 임시이사 파견사유 해소 대학으로 분류, 정이사체제로의 전환을 지시하였고, 우리 대학 법인은 학원정상화추진위원회를 통해 구성원 합의로 ‘정이사 후보 7명’을 선정해 명단을 2010년 교과부에 제출했다. 구재단은 그 과정에서 대학 측의 학원 정상화 과정을 불법이라 주장하며 참여를 전면 거부하는 한편 대학 및 법인 경영자들을 ‘친북좌파’로 몰았다.
그러나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11년 7월 14일 우리대학의 ‘학원정상화 방안’을 최종 결정하면서 구성원 의사를 무시한 채 구재단 추천 3명, 구성원 추천 2명 등 총 7명의 정이사를 선임함으로써 결국 구재단 대학 경영 복귀의 길을 터주고 말았다. 구성원들은 교과부장관에게 재심요청을 촉구하며 맞섰지만 이 역시 10월 28일 장관이 사분위 결정안에 대해 승인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이상이 우리 대학의 지난 20여 년간에 걸친 간략한 정상화 일지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대학은 ‘정상화’ 되었다지만 이상하게도 구재단 지지파와 그 반대파로 나뉘어 분열과 갈등 조짐이 확산되는 등 오히려 1993년의 학원분규가 재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 교과부가 승인한 정이사 가운데 최근 지적 장애인에 대한 인권 침해 및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물의를 빚은바 있는 박영선 창파재단 대표이사가 포함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11월 7일부터는 신임 교수회 의장 당선자가 구재단 복귀를 막겠다며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11월 11일 첫 이사회를 계기로 갈등이 본격화 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이처럼 학원분규 재발 가능성이 오히려 ‘정상화’ 이후에 더욱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학비리세력들과 사분위, 그리고 교과부가 한데 뒤얽혀 구성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오로지 이해관계로만 점철된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교과부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제출한 구성원의 의사를 받아들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구재단과 구성원 간에 합의를 다시금 유도하고 이를 통해 마련된 방안을 정상화 방안으로 확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구성원들은 교과부의 ‘현명한 판단’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비리재단의 복귀는 ‘정상화’가 아니다.
2011. 11. 9
대구대학교 정상화를 위한 범대책위원회 위원장 전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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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일지 둘째날
어제(8일) 밤부터 잦은 설사와 두통 및 헛구역질이 괴롭히더니 이제 한결 나아졌습니다.
어제 오전에 노조 간부들과 행정관리자협의회 분들이 오셔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처지와 입장은 다르지만 창파의 유지를 올곧게 세우는 우리의 의지는 한결같았습니다.
서로의 처지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소통하는 우리는 하나입니다.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분이 사식(?)을 넣어 주셨는데, 행정실로 패스했습니다.
참으로 정성스럽고 맛갈나는 사식이었는데, 그 마음만 받았습니다. 내 영혼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오후에 웬 학생들이 떡을 주었는데 그것도 패스했습니다. 과식을 하였습니다.
저녁에 지인들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11일의 구체적 전략도 세웠습니다.
그 중 한 분이 “단식을 하면 냄새가 많이 나는 법인데, 냄새가 나지 않으니 뭐 먹는거 아냐?” 하기에
“텐트 안에 가면 냄새 많이 나거든!!!” 하며 발끈했습니다.
경건의 시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읽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벗어나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로 이어지는 성전 중건의 역사는 1,400 여km를 40일 금식하며 건너온 그들의 정화작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그들은 성전과 성벽을 중건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재단이사회는 단식하며 걸어온 에스라의 마음으로 정화작업부터 해야합니다.
정화작업의 시작은 학원의 주춧돌을 바로 놓는 일입니다. 주춧돌은 창파의 유지입니다. 장남을 중심으로 학원을 운영하라는.....
저는 이 주춧돌이 어긋나게 놓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는 제가 받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창파의 유지에 반하여 저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용재는 보명학교 1학년 1반(중1)입니다. 정신지체입니다.
컴퓨터를 좋아하고, 아빠, 엄마는 집에, 누나(고1)는 학교집(기숙사)에 있답니다.
왼쪽 귀에 금귀걸이를 한 멋쟁이 통통이입니다. “왜 운동해?” 물으니 ”잠이 안와서.“라고 답합니다. ”별걸 다 묻네.“라는 표정이네요.
그런데 운동 프로그램이 매우 정확합니다. 몸풀고, 걷고, 뛰고, 단거리까지 합니다. 오래된 사이 같은 아저씨와 킥복싱도 하고, 운동기구도 탑니다.
갈 때 산책하는 저에게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도 합니다. 용재는 씩씩하게 잘 자라는 영광학원의, 바로 우리의 아이입니다.
산책 중 이상욱 전 재과대 학장님을 만났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정년 후에도 열심히 운동하십니다. 뛰고, 철봉하고, 고무댕기고... 한마디 하십니다.
“단식한다고? 학교문제로? 나도 매일 새벽기도에 가서 기도해. 영감님(창파) 생전에 내가 비서실(비서실장)에 있었지.
그 때 이미 영감님은 ”애광은 근민이에게, 영광은 근용이에게“라고 정해 놓으셨고, 수시로 말씀하셨지. 그걸 바꾼다고? 그럼 절대 안돼. 그걸 어떻게 바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학원 안팎의 모두가 이런 마음인데, 저들은 어찌 모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