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함과 음주로 인해 눈을 붙인 시간도 잠시,
이국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짧게 지나가고 미처 늦잠을 즐겨볼 겨를도 없이 바로 아침 식사인데...
이게 뭔가?
뷔페식으로 차린 아침은 기름에 볶은 야채 몇 가지와 그리고 만두와 흰죽이다.
김군의 설명인 즉 중국인들의 아침은 대개 만두와 죽 뿐이란다.
목 넘김이 힘들어 몇 숟갈 들다말고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비취곡(翡翠谷)에 도착하여 계곡으로 향하니 원목으로 깎아만든 멋들어진 지팡이가 한화로 3개 천원이라
저걸 산성에서 팔면 1개 천원은 족히 받을텐데....하는 장삿속이 마음속에 일어나 혼자 쓴 웃음을 지었다.
매표소를 지나니 땀을 비오듯 흘리는 많은 가마꾼들이 한화 2만원이면 가마를 타고 비취곡 일주 관광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우리의 60년대인들 이보다 달랐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뭉클하며 안쓰러워진다.
◇비취계곡 가는 길 (와호장룡 촬영지)
오르는 길에 특히 대나무가 많다.
곳곳이 대나무 숲이다.
김군이 그 중 유독 넓게 우거진 한 숲을 가리키며 "와호장룡"[주4] 촬영지 임을 일러준다.
주윤발과 장자이의 그림같은 대나무숲 결투장면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더블 익스포져(double exposure) 되는데
분위기는 느껴지나 아무래도 영화속 만큼 환상적이지는 않다.
◇와호장룡에서 주윤발과 장쯔이의 대나무 숲 결투장
◇가이드 김송춘군(연변인) 과 영감
좋아하는 남녀가 함께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정인교(情人橋)라는 다리를 건너자
수정같이 맑은 계곡의 물은 정말로 녹색 비취빛이다.
혹자는 하늘과 풍경의 색이 난반사되어 그렇다고 하지만 실제는 계곡에 있는 바위들 속에 비취가 많아
깎인 바위가 씻겨 나가면서 물에 비취가 조금씩 녹아 있단다.
믿거나 말거나....
6km에 달하는 계곡은 곳곳에 소(沼)와 담(潭)이 있는데
용봉지(龍鳳池), 녹주지(綠珠池) 화경지(花鏡池)등 저마다 바위에 이름을 새겨 놓았다.
녹색 비취빛의 맑고 깨끗함과 주변경관의 수려함은 있으나
크게 웅대하지도 별로 아기자기하지도 않아 오히려 영감의 머릿속엔 자꾸 백담사나 내원사 계곡이 오버랩(overlap) 되면서
혹서(酷暑)속에 흘린 땀이 조금은 아까운 생각이 든다.
◇화경지 (물이 녹색이다)
◇와호장룡에서 장쯔이가 뛰어 내린 폭포. 영화에서 보다 규모가 너무 작다.
◇비취계곡에서 영감
중식 후 황산의 운곡 케이블카로 향했다.
케이블카는 2840m의 길이로 편도 소요시간이 8분으로, 높이의 차는 773m이며
걸어서 등산할 경우 약 5시간의 소요된다고 한다.
황산[주5]은 예로부터 멀리서 보면 검다하여 이산(黑+多 山)이라고도 했는데
크게 전산(前山), 후산(後山)으로 구분하는 바, 자광각(慈光閣)쪽이 앞산, 운곡사(雲谷寺) 쪽이 뒷산이다.
일반적인 산행은 후산으로 올라 전산으로 내려온다.(後山上,前山下)
◇황산
◇황산
황산은 하나의 봉우리로 된 산이 아니라 7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악지대로
최고봉인 연화봉(1,864m)과 나란히 있는 천도봉(1,810), 광명봉(1,860m) 등 3대 주봉이 해발 1800m 이상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황산의 삼기(三奇)는 기송(奇松), 기암(奇巖), 운해(雲海)인데
중국 10대 명승지중의 하나로 1990년에 UN에 세계 자연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케이블 카 안에서 본 황산
케이블카가 닿자 좋은 장면을 담아 보려고 필사적으로 앞자리를 확보하여 앉았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케이블카 내에서의 수분(數分)간은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절경의 웅대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곡(谷)마다 채워진 운해는 한켠으로 빠져나가면 또다시 밀려오곤 하는데
저마다 이름들을 가진 기석(奇石) 노송(老松)들의 배열은 그야말로 거대한 입체 산수화의 완성이다.
장대한 자연의 작품에 취한 듯 어린 듯 입에서는 탄성과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손으로는 연신 셔터 누르기에 바쁜 가운데 백아령에 첫발을 디뎠다.
◇케이블 카 안에서 본 황산
잘 다듬어진 돌계단으로 된 등산로로 얼마를 가니
기이하게도 마치 서 있는 학(鶴)을 닮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이름하여 공작송(孔雀松)이라...
황산에서 이름이 붙여진 기송(寄松)들만 해도 그 수가 한 둘이 아니다.
암석과 비바람 속에 특이하게 자란 형태들인데 사람들은 無石不松, 無松不奇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공작송
뿌리가 땅위로 올라와 퍼진 모습이 용의 발톱 같다하여 용조송(龍瓜松)
수직암벽에서 수평으로 자라 나와 운해로 향했다 해서 탐해송(探海松)
바위를 깨고 자라 나온 파석송(破石松)
땅에서부터 같은 굵기로 두 가지가 나란히 하늘로 뻗은 연리송(連理松)
중국 민족의 수와 같이 거대한 소나무의 가지가 56개라하여 단결송(團結松)
그 외 흑호송(黑虎松), 봉황송(鳳凰松) 등 황산에서 이름을 가진 노송(老松)만 해도 31수를 헤아린다하나
그 중 유명한 영객송(迎客松)은 연륜이 천년이나 된다고 한다.
◇단결송
처음 모택동이 다자송(多子松)이라 했으나 후에 강택민이 단결송이라 하였다.
◇단결송 앞에서 영감
돌계단으로 된 산행로를 약 600m 오른 후 광명정을 지나 비래석으로 향했다.
비래석(飛來石)[주6]은 손오공이 하늘에서 복숭아를 먹다 던져 바위가 되었다고 하여
일명 선도봉이라고도 하는데 천길 벼랑 위에 한 쪽이 약간 패인 모습으로 기이하게 얹혀있다.
한번 만지면 복운(福運), 두번 만지면 재운(財運), 세번 만지면 관운(官運) 그리고 네 번 만지면 애인이 생긴다는 김군의 설명에
모두들 삼대독자 아들 감싸듯 무슨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지 등을 돌리고 만지는데
곁눈질을 하여 세어 볼래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감은 하다보니 여섯번을 만졌는데 김군에게 물어보니 답은 '효과 없다'였다.
◇비래석
잠시 휴식하기 위하여 배운정(排雲亭)[주7]으로 갔는데 주위에 안전을 위해 쳐놓은 체인에
자물쇠가 엄청난 숫자로 채워져 있었다.
부부나 연인이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는 풍습이라는데
아이러니하게 바로 그 옆에 자물쇠 장사가 따로 있어 제법 붐비는 걸 보곤 저절로 스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빈틈없이 빽빽한 곳이 더 많다.
황산 일대에는 절대 금연구역이지만 흡연이 지정된 장소가 바로 여기 배운정이다.
흡연 적발시 1000 위엔 벌금에다 5시간 교육이라
더더구나 그 무시무시한 중국 공안원이 주위에 수시로 눈에 띄니 정립님, 대우님등은 이제야 그동안 참았던 끽연(喫煙)을 마음껏 한다.
영감도 앞으로 있을 몇 시간의 산행에 대비해 연거푸 서너대를 피웠더니,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어지러운데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이 모두들 숨어있는 오소리 잡느라 뿜어대는 연기에 소방헬기 뜰까봐 적지아니 걱정스러웠다.
◇금연에서 흡연으로
◇배운정
멀리 서해대협곡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만 보아왔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산허리에 걸린 운해(雲海)를...
그 절벽의 허공에 매달려 벽을 감고 돌아가는 돌계단들을.....
◇서해대협곡에서 본 황산
서해대협곡은 1979년 76세의 나이로 걸어서 황산에 올랐던 등소평이 그 전경에 감탄하여 개발을 지시한 후
12년 간의 설계 기간과 9년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1년에야 완공하였다고 한다.
얼핏 600여명이 공사중 낙사(落死)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해대협곡 난간에서 영감
위로는 깎아지른 암봉(岩峰)이요 아래는 천길 단애(斷崖),
절벽 중턱을 가로지르는 허공계단 위에 떠 있는 몸은
차마 시선을 둘 곳조차 없어 아예 눈을 감게 만드는데
과연 마환세계(魔幻世界)라 불리는 것이 털끝만큼의 과장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심장 약한 영감은 다리에 힘이 빠져 후들거리며 어쩔거나 하고 있는데
옆의 충호님은 아예 난간 쪽으로는 모자로 시선을 가리고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인 채
한 계단 한 계단 밟는 시간이 여삼추(如三秋)라
슬쩍 쳐다 본 영감은 용기백배 하여 이리저리 구도 잡기에 바빳다.
그러나 애석타.
너무 힘들어하던 대우님, 영철님 부부는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오는 길목에서 쉬고 있었으니
이 아쉬움을 어이할꼬
◇용기내어 난간에서 한 컷 찍은 충호님 부부
바위산이 가로막힌 곳엔 인위적으로 두 군데 굴을 뚫고 계단을 깎아 좁은 통로를 만들었는데
하나의 길이가 대략 30-40m는 됨직 해 보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사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감탄 섞인 한숨 반, 물음 반으로 흘리는 말에
가이드 김군의 단순 명료한 답변은 모두들 할 말을 잊고 배를 잡게 만들었다.
"당(黨)이 하라면 합니다."
◇서해대협곡 난간에서 영감
◇서해대협곡에서 역광 받은 영감
모두들 소금에 절인 김장배추 마냥 후줄근한 모습으로 숙소인 북해빈관(北海賓館)에 도착하니
저마다 오늘의 혹사(酷使)로 지칠대로 지친 다리를 가누지를 못해
계단에 또는 난간에 그냥 걸터 앉는다.
로비에 들어서니 등소평 및 태국국왕이 체류하고 간 사진이 자랑스러운 듯 걸려있는데
시설은 제법 깨끗한 편이나 욕실에 욕조 없이 샤워 부스만 있는 건 다른 호텔과 똑 같다.
정상 호텔 이름들이 북해(北海)니 서해(西海)니 하는 것도 아마 황산의 운해를 보고 지은 말일 듯...
어스럼 속에서도 눈아래는 그대로 바로 구름 바다다.
다들 피로에 젖어 담소 하는데 제아무리 시(詩)를 모르고 묵(墨)에 문외한이라도
저절로 묵객시인(墨客詩人)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북해빈관 앞에서 영감
◇기호님
김군에게 은근히 황산과 장가계(張家界)[주8]의 비교를 물어보니
장가계는 여성스러우며 올려다 보는 산이라 했고
황산은 남성스러우며 내려다 보는 산이라 한다.
집 떠난 나그네 객창한등(客窓寒燈) 아래
과연 내일 아침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저으기 걱정하며 잠을 청하는데
장도님의 눈치는 아무래도 "미용중심(美容中心)"을 찾는 듯 하다.
[주4] 와호장룡(臥虎藏龍)
이안(李安) 감독의 2000년작
왕도려의 오부작(五部作) 중에서 와호장룡(臥虎藏龍)이 원작이며 주윤발(周潤發), 양자경(楊紫瓊), 장자이(章子怡) 주연의 무협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주5] 황산(黃山)
안휘성 남부, 북위 30° 06', 동경 118° 09' 에 위치하고 있고
황산산맥은 남북으로 약 40km, 동서로는 약 30km, 면적은 1200㎢이며 그 중 관광지는 약 154㎢ 이다.
[주6] 비래석(飛來石)
높이 7.5m, 폭 1.5-2.5m, 체적 210㎥, 무게 약 544t
[주7] 배운정(排雲亭)
기념품점, 휴식소, 담배 피는 장소
[주8] 장가계(張家界)
장가계는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2년 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관광지 면적은 390만㎢로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삭계협곡, 천자산 자연보호구, 양가채풍치구 등으로 이루어졌다.
약 3억8천만년 전 망망대해였으나 후에 지구의 지각운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올랐고
자연의 영향으로 오늘의 깊은 협곡과 기이한 봉우리, 물맑은 계곡의 자연절경이 이루어졌다.
人生不到張家界(인생부도장가계)
百歲豈能稱老翁(백세개능칭노옹)
사람으로 태어나서 장가계를 와보지 않고
백세를 살았다해도 어찌 늙었다 말할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