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이란 무엇인가
성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도시들은 30~50m 높이로 솟아있는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왜 고대 유적들은 땅속에 묻혀 있으며 높은 언덕을 이루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성서고고학의 핵심적인 연구과제다.
성서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은 오늘날의 중동지역과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고대 유적지들은 독특한 형태의 언덕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폐허의 언덕을 아랍어로는 `텔(Tell)'이라고 부른다.
옛날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할 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를 선택했다. 우선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며,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 관측과 방어에 유리한 곳이어야 한다. 또 주위에 경작할 수 있는 비옥한 들판이 있고, 교통의 요충지로 무역로와 군사로를 통제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성서의 대표적인 도시인 예루살렘 헤브론 브엘세바, 실로, 세겜, 사마리아, 도탄, 벳샨, 므깃도 등이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텔은 흙벽돌이 부식돼 부서진 흙과 기초로 사용됐던 돌이 오랜 세월 쌓인 언덕이다. 대부분의 흙벽돌건물은 우기의 비바람과 건기의 열풍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오래 견디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버린다. 다시 집을 지을 때는 무너진 잔해를 평평하게 고른 다음 새로운 흙벽돌과 돌을 가져다가 새 건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너진 옛 집터에 수북이 쌓인 돌과 흙더미를 성 밖으로 치우지 않고 그 위에 새 집의 기초를 놓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이 수 천년동안 지속되면 주거지의 지반이 상당히 높아져서 전형적인 텔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텔은 어떻게 발굴되기 시작했을까.
1871년 10월11일 이른 아침 소아시아의 서쪽에 위치한 `히싸를릭크 언덕' 위에서 10여명의 인부들이 한 독일 갑부의 지시에 따라 보물을 찾기 위한 삽질을 시작했다. 이곳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그리스 영웅들의 전쟁터인 트로이로 확신했던 고고학자 슐리만은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투입해 트로이전쟁의 역사성을 밝히려 했다. 발굴단의 인원은 1백 명으로 늘어났고 매일 새로운 유물들이 나왔다. 로마시대의 웅장한 신전 터가 발견됐지만 그는 그러한 유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트로이의 성벽을 향해 계속 땅을 팠다.
이듬해 4월 재개된 두 번째 발굴에서 그는 트로이의 언덕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성벽과 건물들이 지어지고 무너졌기에 그 상관관계를 잘 분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파면 팔수록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한 도시의 잔해 밑으로 또 다른 도시의 유적이 나타나 모두 아홉 개나 되는 도시들이 층층이 쌓인 것을 확인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밑바닥의 도시는 금속을 사용할 줄 몰랐던 선사시대의 도시로 밝혀졌다. 문제는 호메로스의 트로이가 9개 도시들 중에 어느 것인가 하는 점 이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맨 밑에서 여섯 번째의 도시를 프리암과 헬렌 왕비의 전설적인 트로이로 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비로소 성서고고학 발굴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인 `주거층론(stratigraphy)'이 탄생됐다. 주거층이란 한 세대 또는 파괴되지 않고 일정기간 지속된 고대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터전을 말하며, 주거층론이란 그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1890년 봄 영국 출신의 이집트 고고학자 페트리는 이스라엘 남부 네겝 광야의 한 언덕을 주목했다.`텔 엘 헤시'라 불리는 이 언덕의 동쪽에 흐르는 `와디'는 고대 도시를 절반쯤 침식시켜서 그 잔재를 드러내게 했다. 그는 이곳이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점령했던 성서의 라기스로 확신하고 6주간에 걸쳐 발굴해 냈다. 특히 페트리는 당시 다른 고고학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수많은 토기 조각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슐리만의 트로이 주거층론에 영향을 받은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주거층의 연대는 함께 출토된 토기들의 모양으로 결정된다는 토기연대측정법을 처음으로 고안해 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달리 쉽게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고대도시 발굴에서 페트리의 토기연대는 성서고고학의 달력으로 인정돼 이제는 토기의 아가리 부분 한 조각만 있으면 그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성서고고학사에 일대 획을 긋는 페트리의 텔 엘 헤시 발굴은 90년에 1백주년을 맞았고 예루살렘에서는 국제성서고고학학술대회를 열어 이를 기념했다.
황무지로 버려져 있던 흙먼지 날리는 언덕을 화려한 고대도시의 보금자리로 여기고 꾸준하게 인내하며 발굴했던 슐리만과 페트리는 둘 다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 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땅속 깊은 곳에 묻힌 먼 옛날의 유적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지녔다. 트로이와 텔 엘 헤시 발굴을 통해 고대 근동지역 수백 개의 텔들이 성서 도시들의 무궁무진한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 창고임이 비로소 밝혀졌다. / 김 성 교수(협성대 성서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