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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대학교 60주년 기념으로 바치는 글
칼빈대학교 60년 사(史)
(칼빈대학교 昨·今日 그리고 來日)
집필자 : 한강 려 용 덕 박사
<칼빈대학교(칼빈大學校; The Calvin University)>가 설립된 것은 행정적으로는 1996년 12월 <학교법인 칼빈신학원>의 <칼빈대학교>이지만, 그 설립의 시작은 1954년 4월 23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9회 총회 176명의 총대들이 참석하여 이원영(李源永)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고, 많은 안건 중에 총회야간신학교를 설립결의 하였다.
1962년 6월 29일 총회야간신학교의 명칭을 칼빈신학교로 개칭한 후 성장하여, 본 칼빈대학교는 60년의 역사의 성장은 파란만장한 사건으로 교단 분열에 따른 학교분열로 인하여 분열된 서울장신대학교와 두 개의 흐름에서의 초대 이사장이 김윤찬 목사였다는 점에서 두 개의 대학교는 공히 신학교 시대의 초대 이사장을 김윤찬(金允燦) 목사로 하고, 교장을 김규당(金圭唐) 목사로 하고 있다.
필자가 본 칼빈동산에 몸담은 지 50여 성상 되었고, 칼빈대학교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칼빈대학교 60년사(史)>를 집필한다.
I. 칼빈대학교 역사
1. 제39회 총회에서 총회야간신학교로 설립
총회야간신학교 설립자는 김윤찬(金允燦) 목사, 이환수(李煥秀) 목사, 박창목(朴昌睦) 목사, 안광국(安光國) 목사, 김규당(金圭唐) 목사였으며, 1954년 7월 28일 개교행사는 설립위원 중 한 사람인 안광국(安光國) 목사의 인도로 진행, 응시자중 67명이 1학년 학생으로 허가받아 29일부터 수업을 시작하였다.
총회에서 총회신학교의 이사장 안두화(安斗華; Edward Adams) 목사는 “우리 학교에 야간부를 설치하기로 하였습니다”라는 보고를 하여 서울특별시 중구 동자동 동성교회당(東星敎會堂)에서 시작하였는데, 이 날이 1954년 8월 9일 자 <기독공보>를 참고하면, “총회 직영 야간신학교는 7월 28일 오후 7시에 총회신학교에서 드디어 개교식을 거행하였다”라고 기록되었다.
2. 총회야간신학교 교수진
초대 강사진은 계일승(桂一勝) 목사, 김양선(金良善) 목사, 김규당(金圭唐) 목사, 안광국(安光國) 목사, 김윤찬(金允燦) 목사, 최의원(崔義元) 목사였다.
김윤찬 목사가 초대이사장으로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역임하였다. 1956년 11월 14일 오후 7시, 동성교회당에서 김규당 목사의 교장취임식이 거행되었으나, 이사회가 성립되지 않았으므로 성립되어 정식 임명 될 때가지 서리(署理)로 봉사하였으며, 초대 이사회는 김규당 목사를 교장에 인준하고, 김윤찬 목사의 사회로 진행, 안광국 총회 총무의 기도, 김윤수 목사의 성경봉독, 이환수 목사의 신학교 연혁보고, 조봉하 목사의 교장 약력보고, 교장 김규당 목사의 설교와 박형룡(朴亨龍) 목사의 축사로 진행하였다.
1956년 11월 19일 총회야간신학교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 58번지에 위치한 대지 221평위에 세워진 128평 목조 2층 건물 평안교회당(平安敎會堂)으로 교사를 옮겼다.
3. 칼빈신학교 시대
1961년 총회신학교 시대에서, 이사회 결의에 의해 칼빈신학교로 명칭을 개명하였다, 이사회 결의에 의해 초대 이사장 김윤찬 목사가 도합 8년간 봉사, 제2대 이사장에 김장호 장로, 제3대 이사장에 최훈 목사, 제4대 유문빈 목사, 제5대 장옥기 목사, 제6대 이사장 김진웅(金鎭雄) 목사, 제7대 이사장 박신봉(朴信奉) 목사로 현재에 이르렀다.
이사회 결의에 의해 제1대 김규당 목사, 제2대 교장에 노진현 목사, 제3대 교장 박형룡 목사, 제3대 교장서리 신복윤 목사가 역임, 4대 교장 김윤찬 목사가 26년을 봉사, 제5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장으로 한 이주영 목사, 제6대 학장 임충곤 목사, 제7대 학장 강문석(姜文碩) 목사가 취임하였다.
1954년 7월 28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9회 총회 결의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동성교회당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야간신학교로 개교, 1954년 7월 28일 초대 교장으로 김규당 목사 서리 취임 후 이사회의 성립으로 교장 취임, 1956년 11월 10일 동성교회당으로부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서소문동 58-19 평안교회당으로 교사 이전, 1959년 11월 총회의 합동, 통합 분열에 따른 일시 폐교, 1960년 3월 재 개강, 1960년 3월 제2대 교장 노진현 목사 취임, 제3대 교장 1961년 3월 박형룡 목사 취임.
본래 4년제 신학과에 1961년 3월 이사회 결의로 성서과 2년제 증설, 1962년 2월 제3대 교장서리 신복윤(申福潤) 목사 취임, 1962년 6월 29일 이사회 결의로 총회야간신학교를 칼빈신학교로 교명 개칭, 1963년 2월 15일 칼빈신학교이사회의 결의로 기독교교육과 2년제 증설.
이사회 결의에 의해 1963년 12월 6일 제4대 교장 김윤찬 목사 취임, 1967년 8월 평안교회당으로 이전에 따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순화동 609로 신축 교사 이전, 1968년 1월 16일 이사회의 결의에 의하여 종전의 신학과 4년제를 3년제로 변경하고, 여자 전수과 3년제와 신예과 3년제를 주간부에 신설하였으며,
1970년 9월 25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5회 총회에서 지방신학교로 인준, 1976년 12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3가 134번지 소재에 칼빈신학교 건물을 짓고 신축교사로 이전, 이사회는 4년제 대학부를 설립 결의하고 수업시켰다.
1986년 11월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제5대 교장 이주영 목사 취임, 명예교장으로 김윤찬 목사 추대하고 신갈 제2캠퍼스가 준공되어 칼빈신학교는 서울용산구 청파동 소재 건물 용산신학교에서는 3년제 신학부를, 경기도 기흥구 마북리에 소재한 건물 신갈신학교라 하는 곳에서는 4년제 대학부를 수업시켰다.
4. 칼빈대학교 시대
총회야간신학교로 시작한 칼빈신학교는 만고풍상을 겪고 산고의 해산(解産)으로 칼빈대학교를 탄생시켰다.
학교법인 칼빈신학원 초대 이사장 최훈 목사, 이사회 결의 하고 대한민국 교육부의 승인에 의해 1996년 12월 대한민국 교육부로 4년제 칼빈대학교 인가로 1997년 1월 3일 초대 총장 이주영 박사가 취임하고 칼빈신학교 학장을 겸임하여 병행 운영 하다가 칼빈신학 제6대 학장 임충곤 목사, 제7대 학장 강문석 목사가 현재 운영하고 있다.
초대 이사장 최훈 목사, 2대 이사장 유문빈 목사, 3대 이사장 장옥기 목사, 4대 이사장 김진웅(金鎭雄) 목사, 초대총장 이주영(李主榮) 목사, 2대 총장 김의환(金義煥) 목사, 3대 총장 길자연(吉自延) 목사, 4대 총장 김재연(金在淵) 목사.
1977년 1월 29일 이사회 결의로 이사장 최훈 목사 취임, 1980년 12월 대한민국 문교부에 대학령에 준한 각종학교 인가 신청, 1981년 11월 야간부 신학과 4년제 신설, 유아교육과 2년제 신설.
1986년 7월 28일 경기도 교육청에서 재단법인 칼빈학원 인가.
1986년 11월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이주영 박사를 제5대 교장으로 취임케 하고 김윤찬 박사를 명예교장으로 추대, 1987년 6월 25일 신갈 제2캠퍼스 준공, 1988년 2월 22일 신갈 제2캠퍼스 칼빈예배당 봉헌, 1990년 8월 제2캠퍼스 여자생활관(에스더관) 준공, 1990년 8월 대강당(은천당) 준공 2,100석, 1991년 7월 미국 시카코 소재 노스팍 대학(Northpark College Theological Seminary)과 자매결연하고, 교수 교환 및 양교 학력인정 체결.
1991년 에스라관(도서관) 준공, 1993년 5월 개인기도실(12실) 준공, 1993년 5월 보육교사(2급 정교사) 양성교육과정을 보건사회부로부터 인가받고 9월 개원.
1994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9회 총회에서 신학연구원 설립인준, 1994년 10월 개인기도실(12실) 증축 준공, 1995년 10월 개인기도실(12실) 증축 준공, 1995년 10월 신갈 제2캠퍼스 운동장 4,000평 확장, 1996년 2월 제1·2캠퍼스 내 컴퓨터실, 어학(LAB)실 완비. 1996년 8월 칼빈대학교 이사회 결성, 1996년 10월 대한민국 교육부로부터 학교법인 칼빈신학원 인가, 1996년 12월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3가 134-1에 백한기념도서관 준공(손두환 교수 봉헌).
1996년 12월 교육부로부터 4년제 칼빈대학교 인가(신학과 정원 40명), 이사회 결의에 의해 1997년 1월 3일 칼빈대학교 초대 총장 이주영 박사 취임, 1998년 10월 교육부로부터 신학과 증원 인가(40명에서 60명으로 증원), 1999년 6월 29일 윤성개발 박윤성 회장 마북리 산 10-6번지 임야 19,265㎡ 기증, 1999년 11월 2일 교육부로부터 칼빈신학대학원(Calvin Graduate School of Theological, 목회학 석사 과정) 신설 인가. 2000년 2월 14일 칼빈대학교 대학원 교사 엘리야관 완공(1,674㎡, 지상 4층).
칼빈대학교총동문회 주관으로 대한민국미술협회 이사장 한강 려용덕 박사의 친필휘호로 <칼빈대학교> 교문패와 <개혁의 요람 칼빈대학교(改革의搖籃 칼빈大學校)> 대비문 건립.
2000년 7월 18일 교육부로부터 칼빈대학교 대학원 신학석사(Th.M.) 문학석사(M.A.) 신설 인가, 2000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791-1219에 기숙사 신축 착공, 2000년 11월 10일 칼빈신학 운영이사회 조직, 2001년 2월 20일 제1회 학사학위 수여식, 2001년 7월 26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칼빈대학교 선교학과 증과 신설인가(50명), 2001년 8월 6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칼빈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 인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2002년 3월 제2대 총장으로 김의환 박사 취임, 2002년 8월 칼빈대학교 부설 칼빈어학원 개원.
2002년 10월 30일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칼빈신학대학원 철학박사 과정(Ph.D.) 신설인가, 2003년 11월 11일 제3대 이사장에 장옥기 목사 취임, 2003년 11월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칼빈대학교 교회음악과(20명), 아동보육학과(20명) 분과 승인, 2004년 3월 칼빈대학교 부속기관 성지연구소 개설.
2006년 3월 제4대 이사장 김진웅 목사 취임, 이사회에서 김의환 총장이 재선 총장 취임하였으나 수개월 후 사표에 의해 의원사직하고, 이사회 결의에 의해 2007년 12월 제3대 총장 길자연 목사 취임, 2008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칼빈대학교 평생교육원 학점은행제 운영기관으로 인정받았으며.
이사회 결의에 의해 2011년 12월 29일 제4대 총장 김재연 목사 취임하여 오늘에 이른다.
Ⅱ. 칼빈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의 분열의 아픔
필자는 칼빈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의 머리인 칼빈신학교의 분열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처음 소개하는 얘기는 서울장신대학교50년사에 수록된 분열 원인과 분열사를 먼저 소개하고 칼빈대학교의 입장을 말하고자 한다.
1. W.C.C.와 N.A.E.의 문제
1948년 암스텔담에서 WCC가 조직 될 때 장로교에서는 김관식(金冠植) 목사가 참석했고, 1954년 또 WCC 에반스톤회의에는 명신홍(明信泓) 목사, 김현정(金顯晶) 목사, 유호준(兪虎濬) 목사가 참석하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와의 연결을 맺고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39회 총회 설교에서 명신홍 목사는 한국교회가 신신학(新神學)을 거부해야하고, 성경적인 도덕 생활을 장려하며, 신령한 지식과 복음(福音)의 도리(道理)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 호소의 절규에 앞장선 김윤찬 목사나 명신홍 목사는 그 시대에 한국 장로교회를 일으키기 위해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개와 복음으로 다시 위대한 공동체를 형성 할 수 있는 헌신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외친 것이다.
6·25 전쟁을 치룬 한국의 온갖 사정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고, 복음적 열망으로 하늘에 호소하고, 온갖 시대적 상처를 겪었던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 속에서도 창조적이며, 종교적 순수성과 봉사의 자발성과 열정으로 모여든 이들로 하여금 제39회 총회는 교권이나 지역적 편견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을 깨뜨려 밀알이 되고자 하는 헌신자들을 찾았다. 이들에게 시대적 사명완수를 위해서 총회는 총회야간신학교로 출발시킨 학교였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장로회 문제로 그 귀속이 문제되던 경기노회에서는 WCC에 대표 파송에 대한 문제로 혼미가 계속되고 있었다. 경기노회 제62회 정기노회가 비상 정회까지 할 정도로 문제가 꼬이고 있었다. 경기노회가 WCC에 대하여 그것이 “성서유오설(聖書有誤說)과 자유신학(自由神學)”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거부(拒否)” 방침을 뚜렷이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총회 정치부 서기 김현정(金顯晶) 목사는 WCC의 정체에 대하여 완곡한 말로 설명을 했다.
그러나 1958년 일부에서는 세계교회협의회(世界敎會協議會;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WCC)에 대하여, 특히 NAE(National Associataion of Evangelcals) 계에서는 비판이 컸고 “WCC 탈퇴 건의서”를 총회에 접수시켜 WCC 탈퇴를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한 유호준(兪虎濬) 목사 반박은 “WCC는 가톨릭적 제도와 혼합체 운동을 지향하거나 자유주의, 신신학(新神學), 이단운동도 아니라”면서 “이들은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영향아래에 있다”고 비판하면서 “박형룡(朴亨龍)박사를 국제기독교연합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ICCC)의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yre)와의 접선자”로 지목 하였다.
2. 당시 장로교계의 정치적 흐름
필자는, 당시의 총회야간신학교가 칼빈신학교와 서울장로회신학교로 분열된 상황의 이해를 위하여 당시의 정치적 국내외의 기독교 단체들을 요약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W.C.C.는 1948년 8월 23일 암스테르담에서 창설, 창설당시 144개에 불과하던 회원교단이었는데, 현재는 전 세계 140개국에 속한 349개 교단으로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한국기독교장로회·기독교대한감리회·대한성공회 등 4개 교단이 가입하였다.
국제기독교연합회(國際基督敎聯合會; 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ICCC)는 세계적인 기독교연합기관이며, WCC의 에큐메니칼 노선과 공산주의를 반대하였으며,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 노선을 따랐다. 1948년 암스텔담에서 창설된 ICCC 창설, 창설자이면서 30여 년간 회장직을 수행한 사람은 미국인 맥킨타이어(Carl Mclntire)목사 였다.
대한기독교연합회(大韓基督敎聯合會;DCC)는 보수교단의 연합기관으로, WCC계 에큐메니칼 운동측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1967년 12월에 창립, 창립주요 인물은 회장 김윤찬 목사를 비롯한 당시의 지도급 인물들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고신·예수교대한성결교회 등이 교단 혹은 개인적으로 가입하여 협력했으며, 1974년에는 국가 권력에 대한 복종 문제 때문에 KNCC와 갈등을 빚었다.
1958년 장로회 NAE 계열에서의 WCC 탈퇴 추진 문제는, 1951년 전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부산에 임시수도를 옮겨 피난 중 북괴 공산당과 싸울 때, 고려파에서는 국회의원 22명의 명의로 한국의 장로교회는 공산당을 용납한다는 말인 용공(容共) 단체라고 비난 비판, 장로교 총회가 국제적인 교회 연합기구, 곧 공산국가들의 교회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관련이 있다고 하여 정치적인 문제가 불거진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국내사정으로는 진보라고 표현되는 KNCC 계열교회와 보수계열교회라고 표현되는 DCC 계열 교회가 양대 산맥적인 교회 정치의 굵은 줄기가 되어 한국의 장로교회의 분열의 깊은 골이 되었다.
김재석 목사, 노진현 목사, 이환수 목사는 박형룡 목사가 총회신학교를 떠나면 한국교회가 신신학이 된다고 하였다. 1959년 NAE 계와 분열의 조짐은 마침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합동과 통합의 분열을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당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에서 경기노회 회원권 문제로 12번 정회를 하는 등 소란한 중에 총회장 노진현 목사의 결의 선포에 대하여 임원불신임안을 안광국 목사가 낭독하여 산회되었으며, 9월 29일 서울 연동교회당에서 속회한 측이 통합측이고, 승동교회당에서 속회한 측이 합동측이다.
이와 같이 국제적인 관계에 관련된 큰 정치적 상황은 총회야간신학교가 결국 칼빈신학교와 서울장로회신학교로 분열에 이르게 된 원근내외적(遠近內外的) 원인 조건이었으며, 이와 같은 뿌리를 둔 칼빈신학교-칼빈대학교, 서울장로회신학교-서울장신대학교로 발전한 것이다.
3. 칼빈신학교와 서울장로회신학교의 분열
1959년 신학년 수업에 평안교회당에서 하는 측과 피어선성경학원을 빌려서 수학하는 측으로 나뉘었고, 이사장 김윤찬 목사, 신복윤 목사, 손두환 목사, 실무자 이주영 전도사와 행정 담당 강석희 집사가 합동측에 섰다.
이사회 결의로 1960년 2월 10일 개강예배와 3월 제2대 교장에 노진현 목사를 추대, 몇 개월 후 제3대 교장에 박형룡 박사를, 제3대 교장서리 신복윤 목사를 임명하였다.
총회야간신학교는 합동측에 선 칼빈신학교와 통합측에 선 서울장로회신학교로 분열되었다.
1961년 총회야간신학교 이사회는 신학교 명칭을 칼빈신학교로 하고 초대 이사장 김윤찬 목사의 후임으로 제2대 이사장 김장호 장로를 임명하고, 김윤찬 목사는 제4대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흔들림 없이 만고의 시험을 당당하게 딛고 일어서서 오늘에 종합대학교인 학교법인 칼빈신학원 칼빈대학교에 이르기까지의 연혁의 원줄기가 되었다.
Ⅲ. 칼빈대학교총동문회 및 신학교 학우회, 대학교총학생회 및 원우회
1954년에 설립된 총회야간신학교는 1958년 신학과 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 칼빈신학교 졸업생 기록 명단은 김민자 김병도 김석동 김옥균 김용화 김인걸 김인봉 김정균 김학용 박승천 박초선 서재승 안병의 이규성 이대로 이재철 이정호 이준영 이준영 이춘매 이희전 정병기 정석순 조주섭 최영관 최인석 최정준 홍학표이고, △ 서울장로회신학교 졸업생 기록은 권영관 김명룡 김민자 김보환 김석동 김순구 김용화 김익상 박승천 박초선 서재승 안병의 이규성 이대노 이재철 이정호 이우영 이춘배 이희전 전석순 정병기 조주섭 최인석 최정준 홍향수. △ 칼빈신학교 기록의 1959년 신학과 2회 졸업생 김갑기 김거복 김계순 김대은 김병련 김부환 김소덕 김인식 딤정권 김희식 안성수 유용섭 이삽선 이춘택 정봉운 차철수. 1960년 신학과 3회 졸업생 김희용 김승도 박춘화 염애경 이기복 이인성 임은환 임창재 장기순 장출용 장훈 조흔혜. 1961년 신학과 4회 졸업생 김기순 김기영 박진옥 유성일 이기재 이종부 최성오. 1962년 5회(칼빈명 1회) 졸업생 강문석 고복선 김광선 김지화 원희천 정재숙 김봉숙 이순화. 1963년 신학과 6회 졸업생 유장식 이춘삼 고덕희 이길우 이만호 이흥록 조용빈, 성서과 1회 홍용진, 1964년 신학과 7회 졸업생 강흥수 김문규 병홍엽 이성진 이수자, 성서과 2회 한문화 등이 졸업하였으며, 2012년 56회 졸업생까지 약 10,000여명이 넘는 의 졸업생과 칼빈대학교 졸업생 명부가 있다.
■ 칼빈신학교학우회(칼빈神學校學友會) 초대 회장 서재승(1954) 2대 안성순 3대 홍성덕 4대 최성오 5대 강문석 6대 이춘삼 7대 이성진 8대 정봉구 9대 변우상 10대 양재돈 11대 황선용 12대 신의철 13대 박호출 14대 조태권 15대 계정남 16대 려용덕 17대 임병준 18대 노범옥 19대 장옥기 ▲신학부 20대 최광선 21대 김안옥 22대 장수관 23대 윤길수 24대 이상태 25대 윤용규 26대 임충곤 27대 신규식 28대 류재은 29대 김희재 30대 나석산 31대 김기철 32대 안영호 33대 송정수 34대 현상대 35대 주우찬 40대 정연성 41대 이종만 ▲대학부 초대 유충국·이지원 2대 황학우 3대 김숭년·김상현 4대 김금만 5대 누두진 6대 곽용섭·지병용 7대 이성수·지병용 8대 이동훈 9대 양일룡 10대 박선식 11대 김영두 12대 윤종헌 13대 이두형 14대 조태희 15대 백정엽 16대 정상익 17대 문태인 18대 김성룡 19대 이성주 20대 임병만 21대 임주순 22대 엄기섭
▲칼빈대학교(칼빈大學校) 학부(學部) 총학생회(總學生會)와 대학원 및 신학대학원원우회(院友會) : △총학생회 초대 회장 김백수(1999) 2대 김용성 3대 권세라 4대 박민병 5대 이대원 6대 박태보 7대 안진호 8대 박영국 9대 김현철 10대 김두환 11대 이성주 12대 김우랑 13대 김경수 14대 황주현 15대 나요한. △원우회 초대 회장 김종국(2000) 2대 국호영 3대 류호상 4대 한광희(2004, 2005년 없음) 5대 황경수(2005) 6대 황지현 7대 이광재 8대 이익수 9대 조성원 10대 박수열(2010년 1학기) 이연식(2011년 1학기) 11대 안진호(2011년 2학기-12년 1학기) 12대 김영중(2012년 2학기-13년 1학기).
■ 칼빈신학교동문회(칼빈神學校同門會,이하 칼빈신)는 총회야간신학교(總會夜間神學校,이하 총야신) 시대 초대-4대 회장 서재승(1958-1961), 칼빈신학교동문회 초대-3대 회장 강문석(총야신 5회, 1962년 칼빈신 1회생, 1962-1074) 4대-5대 원희천(1975-1976) 6대-7대 회장 정봉구 8대 황금만 9대-11대 장옥기 12대-14대 최광선 15대 김진웅 16대 박성순 17대 려용덕 ▲신학부 18대 김동필(1989 신학부) 19대 한금석 20대 목부균 21대 강신호 22대 신규식 23대 임충곤 24대 강형식 25대 김희재 26대 최신만 27대 김경일 28대 이영범 29대 신만식 30대 임충곤 31대-32대 윤도기 33대 문이순 34대-35 박신봉 36대-37대 박진국 38대-40대 연용희 41대 이규삼 ▲대학부 초대-2대 회장 황학우(1989 대학부-1990) 3대 박광원 4대 조대천 5대 지병용 6대 이동훈 7대 양일룡 8대 이동훈 9대 황학우 10대 박광원 11대 박경문 12대 박경문 13대-15대 심재승 16대 윤종현 17대-18대 이두형 19대-20대 강성근 21대- 23대 소치영 24대 윤익세 ▲D.P.M. 동문회 초대회장 김수원(1991) 2대 김일천 3대 김주원 4대 안기영 5대 최광선 6대 한금석 7대-16대 최복규(1997-2013현)
■ 칼빈대학교총동문회(칼빈大學校總同門會) 시대가 된 것은, 1961년 칼빈신학교와 서울장로회신학교로 분열된 다음 졸업생은 양신학교(兩神學校)에서 배출되어 각자의 계승을 하였는데, 60년 역사에 칼빈신학교로 이어진 동문 1만여 명과 서울장로회신학교로 이어진 동문이 1만여 명이 되며, 대한민국 문교부에서 4년제 칼빈대학교 인준하여 배출한 후로, 칼빈대학교총동문회가 조직되었다.
▲칼빈대학교총동문회 초대회장-4대 장옥기(1997.5.22.) 5대 최광선 6대 김진웅 7대 서공섭 8대-10대 려용덕 11대 황학우 12대-14대 박신봉 15대 박광원 목사 16대-17대 박진국(2013현). ▲칼빈대학교동문이사회 초대 이사장-4대 장옥기(1997.11.10.-2008, 임기 2년) 5대- 7대 강문석(2008-2013현).
▲칼빈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및 신학대학원동문회(同門會) : △학부동문회 초대 회장-10대 김백수(2003-2013현). △신학대학원동문회 초대 회장-9대 이상준(2005-2013현). △대학원동문회 초대 회장-4대 정중헌(2010-2013현).
Ⅳ. 칼빈대학교의 비젼
필자가 만난 칼빈대학교 총장 김재연 박사는 칼빈대학교의 뿌리가 되는 칼빈신학교 설립자 제1대 이사장 김윤찬 박사의 아들이다.
학교 비전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다음 같이 말하고 있다.
“칼빈대학교는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성과 지성을 함양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칼빈대학교는 세계적인 영적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날마다 엎드려 기도하며, 진실 되고 신실한 창조적 지도자, 실력 있는 비전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칼빈대학교가 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열정적인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칼빈대학교는 하나님의 젊은이들이 꿈과 비전을 성취토록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 칼빈대학교 이념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성과 지성을 함양하고 사랑을 실천한다.
■ 목표
1. 하나님, 나라, 민족을 사랑하는 일꾼 / 2.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꾼 / 3. 세계를 살리기 위한 꿈을 가진 일꾼 / 4. 성경대로 배우고, 믿고, 행하는 일꾼을 양성하는 대학교.
■ 교육목적과 목표
칼빈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개혁주의 교리에 따라 칼빈주의 교리에 따라 칼빈주의 학문의 심오한 이론과 효과적인 방법을 교수 연구하며, 교회와 국가의 발전에 교역자 및 기독교지도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목표는 1. 경건의 훈련을 통한 영성함양(영성) / 2. 칼빈주의적 학문 탐구를 통한 지성함양(지성) / 3.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사랑과 봉사의 실천(인성)
■ 김진웅 이사장과 김재연 총장이 밝힌 발전계획
▲ 1단계에서 새 사람, 새 역사에 대처하기 위한 대학원 건축과 교수충원 및 조직 강화, 학교 세계화, 세계선교를 위한 선교학과 증설, 보다 내실화를 위하여 도서관 및 전산화 확대, 한국 보수신학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칼빈대학교 평양 및 해외 분교 설립 추진, 외국학교와 연결해 협력강화를 이룬 것도 있고, 추진 중인 것도 있다.
▲ 2단계는 도약기로서, 정통보수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선두교육기관으로서 특성화 대학의 위상을 정립시키면서 제2의 도약을 도모한다. 이를 위하여 제1단계 준비기간 동안의 실적을 토대로 하여 정원증원계획, 교수 충원 계획, 건설계획, 환경미화 계획이 이뤄진 것을 포함하여 모든 계획을 재조정하면서 제3단계 비상기(飛翔期)를 바라본다.
▲ 3단계는 도약비상기(跳躍飛翔期)로서 2019년에 목표깃대를 꽂고, 변하는 시대에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2020년을 바라보는 전진교육의 목표아래 개혁신학의 교육전문화 계획을 재수립 한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목회자 및 평신도지도자의 육성을 위하여 교육과정을 전문화, 세계화하며, 전공인 신학 과목의 정보화를 재정립한다.
학교의 시설은 분배원칙 활용의 원칙, 자율의 원칙에 의거하여 학교와 교단과 국가와 사회에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이사장 김진웅 박사는 “이를 위하여 이사회에서는 학교 이전계획을 결의한 바 있다”고 이사회의 장기 계획을 밝혔다.
■ 학술교류와 총동문들의 학교사랑하기
미국 시카코 소재 노스팍 대학(Northpark College Theological Seminary)과 자매결연하고, 교수 교환 및 양교 학력인정 체결 한 것을 비롯하여 15-6개의 미국, 영국, 필리핀, 대만 등지의 유수 대학교와의 학술 교류와 자매결연 등을 체결하여 학문 연구와 발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칼빈대학교총동문회는 학교 발전을 위하여 동문들의 관심과 모교 사랑과 후배 사랑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총동문회장 박진국 박사는 밝혔다.
(본문은 한국교회신문 제 864호 2013년 4월 29일자 8면에 게재원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