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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선생 번역
고향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이천 리 넘게 떨어진, 그리고 이십 년 넘게 못 가본 고향에 갔다.
때는 한겨울이었다.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더 을씨년스러워지고 차가운 바람이 배 안에 파고들며 윙윙 소리를 냈다. 덮개 틈으로 밖을 바라보니 누런 하늘 아래 몇몇 황량한 마을들이 띄엄띄엄 가로놓여 있었다. 내 마음속에 슬픔이 차올랐다.
아, 여기가 이십 년간 떠올려온 내 고향이란 말인가?
내 기억 속의 고향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내 고향은 훨씬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고향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멋진 곳을 말하려고 보니 모습도 떠오르지 않고 말도 사라져 버렸다. 마치 원래 그랬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스스로 고향은 원래 그런 법이라고 변명했다. 그리고 발전이 없다 한들 꼭 나처럼 슬퍼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내 심정의 변화일 뿐이었다. 이번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고향에 내려간 목적은 고향과 이별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우리 가문이 모여 살던 옛집은 이미 남에게 팔렸고 그해 안에 넘겨줘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음력 정월 초하루 전까지 정든 옛집과 이별하고 정든 고향을 멀리 떠나 내가 생계를 꾸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기와 위 수북한 마른 풀들의 잘린 줄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오래된 집이, 주인이 바뀔 수밖에 없는 원인을 설명해주는 광경이었다. 같이 살던 큰집의 친척들이 이미 이사를 나가서 집 안은 매우 조용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집채 밖으로 가니 어머니가 벌써 맞으러 나와 있었다. 이어서 여덟 살배기 조카 훙얼宏兒도 나는 듯이 뛰어나왔다.
어머니는 즐거워했지만 적잖이 처량한 기색을 감춘 채로 나를 앉히고 쉬게 하면서 차를 내왔다. 이사에 관한 일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나를 만난 적이 없는 훙아는 멀찍이 반대편에 서서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이사 이야기를 했다. 나는 내가 사는 지역에 집을 이미 임대했고 또 가구를 몇 개 사놓았다고 했다. 그밖에 이 집의 가구들을 모두 팔아 돈을 보태야 한다고도 했다. 어머니는 그러자면서 짐도 대충 다 싸놓았다고 했다. 옮기기 불편한 가구도 절반쯤 처분했고 돈만 못 받았다고 했다.
“하루 이틀 쉬었다가 큰집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와서 떠나자꾸나.”
어머니가 말했다.
“예.”
“그리고 룬투閏土가 말이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네 안부를 묻더구나.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말이야. 네가 언제 오는지 대충 날짜를 알려주었으니 아마 찾아올게다.”
그때 신비로운 그림 한 폭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검푸른 하늘에 황금색 보름달이 걸려 있고 그 아래 바닷가 모래땅에는 새파란 수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사이에서 은목고리를 건 열한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손에 든 작살로 오소리를 힘껏 찌르고 있었다. 그 오소리는 몸을 한번 비틀더니 그 애의 가랑이 사이로 줄행랑을 쳤다.
그 소년이 바로 룬투였다. 내가 그를 안 것은 열 살이 좀 넘어서이니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 일이다. 그때 나의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셨고 집안 형편도 좋아서 나는 도련님 대접을 받았다. 그 해에 우리 집은 큰 제사를 지낼 차례였다. 그 제사는 삼십여 년 만에 한 번 차례가 돌아왔기 때문에 대단히 신경 써서 치러야 했다. 음력 정월에 조상의 영정을 모시는데 제물도 많고 제기도 신경을 썼으며 손님도 무척 많아서 제기를 도둑맞지 않게 잘 단속해야 했다. 우리 집에 한 명뿐인 망월忙月은(우리 마을에서 일꾼은 세 종류가 있었다. 일년 내내 일해주는 사람을 장년長年이라 하고, 하루 단위로 일해주는 사람을 단공短工이라 하고, 자기 농사를 지으면서 명절이나 소작료를 거둘 때만 일해주는 사람을 망월이라고 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자기 아들 룬투를 데려와 제기를 관리하게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러라고 했으며 그 사실을 알고서 나는 신이 났다. 전부터 윤토라는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애가 나와 같은 또래이고 윤달에 태어나 오행(五行: ) 중 토土가 빠졌다고 해서 자기 아버지가 룬투閏土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 애는 덫으로 작은 새를 잡는 데 명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새해가 오기만 기다렸다. 새해가 오면 룬투도 오게 돼있었다. 겨우 연말이 되었고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윤토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 애는 부엌에 있었다. 보랏빛 둥근 얼굴에 작은 털모자를 썼으며 목에 반짝거리는 은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것은 그 애의 아버지가 그 애를 너무 사랑하고 죽을까 염려가 되어 부처님 앞에서 소원을 빌고 걸어준 목걸이였다. 그 애는 다른 사람 앞에서 무척 부끄럼을 탔지만 내게는 그러지 않았다. 옆에 사람이 없을 때 바로 말을 걸어와서 한나절도 안 돼서 우리는 친해졌다.
그때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윤토가 무척 즐거워했고 읍내에 와서 전에는 모르던 것들을 많이 보았다고 한 것만 기억이 난다.
이튿날 내가 새를 잡으러 가자고 하니까 그 애는 말했다.
“안 돼. 큰 눈이 와야 할 수 있어. 모래땅에 눈이 오면 그걸 쓸어서 공터를 만들지. 그리고 짧은 막대로 큰 대나무 광주리를 받치고 거기에 낱알을 뿌리는 거야. 그렇게 해놓고 새가 와서 먹으면 멀리서 막대기에 맨 줄을 잡아당기는 거지. 새는 광주리 안에 갇히고 말아. 별의별 새가 다 잡혀. 물새, 꿩, 산비둘기, 팔색조…….”
그래서 나는 눈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룬투는 또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지금은 너무 추워. 너, 여름에 우리 마을에 와. 우리는 낮에는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줍지. 빨간 것도 있고 파란 것도 있고 ‘귀신 겁쟁이’, ‘관세음보살 손’도 있어. 저녁에는 아빠랑 수박을 지키러 가. 너도 가자.”
“도둑이 있어?”
“아니. 길 가던 사람이 목이 말라 하나 따서 먹는 정도는 훔친 걸로 안 쳐. 우리 마을에서는 그래. 우리가 지키는 건 두더지나 고슴도치, 오소리 같은 거야. 달이 떴을 때 어디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면 그건 오소리가 수박을 갉아먹고 있는 거야. 그럴 때는 작살을 쥐고 살금살금 다가가서는…….”
세상에 그렇게 신기한 일이 많을 줄은 나는 꿈에도 몰랐다. 바닷가에 갖가지 색깔의 조개가 있고 수박에 그렇게 위험한 사연이 있다니! 나는 수박이 그냥 과일가게에서 파는 것인 줄만 알았다.
“우리 마을 백사장에 밀물이 밀려오면 날치 떼가 펄떡펄떡 뛰어오르거든. 걔들은 개구리처럼 다리가 두 개란다.”
아, 룬투의 가슴속에 무궁무진하게 담긴 신기한 일들은 내 보통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 것들이었다. 룬투가 바닷가에 있을 때 그 애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마당의 높은 담장 안에서 네모난 하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월이 지나고 룬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엉엉 울었고 그 애는 부엌에 숨어서 울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자기 아버지에게 끌려 돌아가고 말았다. 나중에 그 애는 자기 아버지를 통해 내게 조개 한 꾸러미와 새의 예쁜 깃털 몇 개를 보내왔다. 나도 한두 번 물건을 보냈지만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지금 어머니가 그 애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번개처럼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이 전부 되살아나, 나의 아름다운 고향을 보게 된 듯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것 참 잘 됐네요. 그 애는…… 어떻게 지내죠?”
“걔? …… 걔 형편도 퍽 여의치가 않아…….”
어머니는 말하면서 집 밖을 슬쩍 보았다.
“그 사람들이 또 왔구나. 가구를 산다면서 손 가는 대로 물건을 막 집어가더라. 내가 나가봐야겠다.”
어머니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서 여자 몇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훙아를 가까이 불러 이야기를 붙였다. 먼저 글자를 쓸 줄 아는지, 다른 지역에 가서 살고 싶은지 물었다.
“기차 타고 가요?”
“기타 타고 가지.”
“배는요?”
“먼저 배를 타고…….”
이때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와, 이렇게 변했네! 수염도 나고!”
나는 놀라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광대뼈가 불거지고 입술이 얇은. 쉰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바지 차림에 양손을 허리께에 대고 두 다리를 벌린 그 모습은 꼭 길고 가는 콤파스 같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 몰라? 내가 안아주곤 했잖아!”
나는 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행히 어머니가 들어와 옆에서 말했다.
“네가 오래 외지 생활을 해서 다 까먹었나보구나. 그래도 기억이 날 거야. 길 건너 사시는 양楊씨 아주머니잖니, 두부 가게 하시던.”
아, 기억이 났다. 내가 어릴 적 길 건너 두부 가게에는 하루 종일 양씨 아주머니라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부 미녀’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때는 하얀 분을 발랐으며 광대뼈도 이렇게 튀어나오지 않았고 입술도 이렇게 얇지 않았다. 더구나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면 어떻게 이런 콤파스 같은 몸매를 유지했을까. 그때 사람들은 그녀 덕분에 두부 가게가 잘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너무 어렸기 때문인지 나는 전혀 감흥이 없었고 결국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런데 이 콤파스 아주머니는 그게 불만인지 깔보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치 프랑스 사람이 나폴레옹을 모르거나 미국 사람이 워싱턴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듯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까먹었단 말이지? 정말 귀하신 분은 눈이 높다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그럼 내가 한 마디 하지. 도련님은 부자가 됐으니까 이런 낡은 가구들은 가져가려면 무겁기만 하고 무슨 쓸모가 있겠어? 그냥 내가 가져가게 해줘. 우리 같은 가난뱅이한테는 쓸모가 있으니까.”
“저는 부자가 아닌데요. 이걸 팔아 딴 데 써야 하는데…….”
“아이고, 고관이 됐다면서 부자가 아니라고? 첩이 셋이나 되고 여덟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출타하시면서 부자가 아니라고?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나 참, 돈 많은 사람이 더 지독하다니깐, 더 지독해…….”
콤파스 아주머니는 화를 내며 홱 돌아서더니 투덜대며 느릿느릿 밖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장갑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 가 버렸다.
그 후에도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대접을 하면서 짬을 내 짐을 꾸렸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나갔다.
날씨가 매섭게 추운 어느 오후,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화들짝 놀라서 얼른 일어나 마중을 나갔다.
집에 온 사람은 룬투였다. 나는 첫눈에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는 내 기억 속의 룬투가 아니었다. 키가 두 배쯤 자랐고 보랏빛 둥근 얼굴은 누렇게 변해 버렸으며 주름살까지 깊게 패였다. 눈도 자기 아버지처럼 가장자리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바닷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온종일 바닷바람을 맞는 탓에 보통 그렇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털모자를 쓰고 아주 얇은 솜옷 한 벌만 걸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종이 꾸러미 하나와 긴 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그 손도 내 기억 속의 빨갛고 둥글게 살이 오른 손이 아니었다. 굵고 투박하며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나는 무척 흥분했지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 룬투…… 왔어?”
이어서 수많은 말들이 구슬꿰미처럼 줄줄이 나오려 했다. 꿩, 날치, 조개, 오소리……. 그러나 뭔가에 막힌 듯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우두커니 선 그의 얼굴에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안 나왔다. 결국 그는 공손한 자세가 되어 분명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나리!”
나는 소름이 끼쳤다. 슬프게도 우리 사이에 이미 두터운 장벽이 생겨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이성水生아, 나리한테 인사드려라.”
그는 자기 뒤에 숨어 있던 남자 아이를 앞으로 데려왔다. 그 애는 딱 이십 년 전의 룬투였다. 단지 조금 더 여위고 목에 은목걸이가 없을 뿐이었다.
“다섯째 아입니다. 세상 경험이 없어서 부끄럼을 좀 타네요.”
어머니와 훙얼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인기척을 들은 모양이었다.
“마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나리가 돌아오신다는 걸 알고 정말 얼마나 기쁘던지…….”
룬투의 말에 어머니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나. 옛날에는 둘이 형제처럼 지냈잖아. 그냥 옛날처럼 쉰迅아, 이렇게 부르게.”
“아유, 마님도 참……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때는 어려서 철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룬투는 다시 수이성을 불러 인사를 시켰지만 그 아이는 수줍음을 타며 그의 등에 바짝 달라붙었다.
“얘가 수이성인가? 다섯째? 다 모르는 사람이니 부끄럼을 타는 것도 당연하지. 훙얼과 나가서 노는 게 나을 거야.”
이 말을 듣자마자 훙얼이 수이성에게 손짓을 했고 수이성은 금세 기분이 좋아져 함께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룬투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룬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의자에 앉았고 담뱃대를 탁자에 기대 놓고는 종이꾸러미를 내밀었다.
“겨울에는 별로 드릴 만한 게 없네요. 이건 저희 집에서 청대콩을 말린 건데 좀 드셔보십시오, 나리…….”
나는 그에게 사는 형편을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주 어렵습니다. 일곱째 애도 일을 거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먹고 살기가 힘들군요. 또 세상이 시끄러워서…… 여기저기서 불법으로 돈을 뜯어가는 데다 농사도 시원치 않습니다. 수확을 해서 내다 팔아도 몇 번 세금을 내고 나면 본전도 찾기 힘들지요. 그렇다고 내다 팔지 않으면 썩을 뿐이니까…….”
그는 또 고개를 저었다. 얼굴 곳곳에 패인 주름살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그는 꼭 석상石像처럼 보였다. 고통을 느끼기만 할 뿐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담뱃대를 들고 뻑뻑 피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또 물은 끝에 그가 집안 일이 바빠서 다음날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 아직 점심도 안 먹었다고 해서 직접 부엌에 가 밥을 볶아 먹게 했다.
그가 나가자 어머니와 나는 그의 어려운 처지를 걱정하며 한숨을 지었다. 많은 자식들과 흉년, 가혹한 세금, 군인들, 도적들, 관리들, 지주들이 그를 괴롭히다 못해 목석처럼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어머니는 내게 가져갈 필요가 없는 물건은 모두 그에게 주라고, 그가 골라 가져가게 하라고 했다.
오후에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골랐다. 긴 탁자 두 개와 의자 네 개, 그리고 향로와 촛대, 저울이었다. 그는 재도 필요하다면서(우리 마을에서는 짚을 태워 밥을 짓는데, 타고 남은 재를 모래땅의 거름으로 썼다) 우리가 떠날 때 배로 실어가겠다고 했다.
밤에 우리는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가벼운 이야기였다. 이튿날 아침, 그는 수이성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아흐레가 지나 우리가 떠나는 날이 왔다. 룬투는 아침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수이생 대신 다섯 살배기 딸아이를 데려와 배를 지키게 했다. 우리는 종일 바쁘게 움직이느라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손님도 적지 않았다. 배웅 온 사람도 있었고, 물건을 가지러 온 사람도 있었고, 배웅도 하고 물건도 가지러 온 사람도 있었다. 저물녘이 되어 우리가 배에 올랐을 때, 우리 집의 크고 작은 낡은 물건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가 탄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양쪽 강기슭의 푸른 산들은 황혼 속에서 모두 짙은 보라색이 되어 계속 배 뒤로 뒷걸음질쳤다.
훙얼과 나는 선창에 기대어 함께 바깥의 어렴풋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훙얼이 내게 물었다.
“큰아버지, 우리 언제 돌아와요?”
“언제 돌아오느냐고?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왜 돌아올 생각부터 하니?”
“수이성이 나보고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했는데…….”
그 애는 크고 까만 눈을 뜬 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나와 어머니도 조금 서글펐다. 그리고 또 룬투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그 두부가게 양씨 아주머니가 우리 집이 짐을 싸기 시작한 날부터 매일 꼬박꼬박 집에 들렀는데 그저께 잿더미 속에서 그릇 십여 개를 파냈다고 했다. 그리고 이리저리 따진 끝에 룬투가 그것들을 묻어두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재를 실어갈 때 같이 가져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양씨 아주머니는 그 일을 알아낸 건 다 자기 공이라면서 ‘개 약 올리기’(이것은 우리 마을에서 닭을 칠 때 쓰던 도구다. 나무판 위에 우리를 치고 그 안에 모이를 넣게 하는 도구인데, 닭은 목을 넣어 쪼아 먹을 수 있지만 개는 그럴 수가 없어 보면서 약만 오르게 된다)를 챙겨 줄행랑을 쳤다. 전족(纏足: )한 발로 어쩌면 그렇게 빨리 달리나 싶었다고 한다.
옛집이 내게서 더 멀어졌다. 고향의 자연도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단지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이 사방에 둘러 처져 나를 고립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답답했다. 수박밭의 어린 은목걸이 영웅의 모습도 갑자기 희미해져 슬프기 그지없었다.
어머니와 훙얼이 잠이 들었다.
나는 누운 채 철썩철썩 배 밑창에 부딪치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나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와 룬투는 비록 이런 지경까지 멀어졌어도 우리의 후손들은 아직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훙얼은 수이성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가. 나는 그 애들이 더 이상 나 같지 않기를,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서로 소원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애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 함께 나처럼 괴로움에 뒤척이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룬투처럼 괴로움에 지쳐 마비되는 것도, 남들처럼 괴로움으로 인해 난폭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애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나는 희망을 떠올리다가 별안간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나 그런 것을 잊을까 한심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의 희망이라는 것도 어쩌면 내가 만든 우상이 아닌가. 단지 그의 소망은 가까운 일을 향한 것이고 나의 소망은 먼 일을 향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내 눈앞에 바닷가의 초록색 모래땅이 펼쳐졌다. 그 위의 검푸른 하늘에는 황금색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도 같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져 길이 생겨난 것이다.
19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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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鄕〔1〕
我冒了嚴寒,回到相隔二千余里,別了二十余年的故鄕去。
時候旣然是深冬;漸近故鄕時,天氣又陰晦了,冷風吹進船艙中,嗚嗎的響,從篷隙向
外一望,蒼黃的天底下,遠近橫着几個蕭索的荒村,沒有一些活氣。我的心禁不住悲涼起來
了。
阿!這不是我二十年來時時記得的故鄕?
我所記得的故鄕全不如此。我的故鄕好得多了。但要我記起他的美麗,說出他的佳處來
,卻又沒有影像,沒有言辭了。仿佛也就如此。于是我自己解釋說:故鄕本也如此,――雖
然沒有進步,也未必有如我所感的悲涼,這只是我自己心情的改變罷了,因爲我這次回鄕,
本沒有什么好心緖。
我這次是專爲了別他而來的。我們多年聚族而居的老屋,已經公同賣給別姓了,交屋的
期限,只在本年,所以必須趕在正月初一以前,永別了熟識的老屋,而且遠離了熟識的故鄕
,搬家到我在謀食的異地去。
第二日淸早晨我到了我家的門口了。瓦楞上許多枯草的斷莖當風抖着,正在說明這老屋
難免易主的原因。几房的本家大約已經搬走了,所以很寂靜。我到了自家的房外,我的母親
早已迎着出來了,接着便飛出了八歲的侄兒宏兒。
我的母親很高興,但也藏着許多淒涼的神情,敎我坐下,歇息,喝茶,且不談搬家的事
。宏兒沒有見過我,遠遠的對面站着只是看。
但我們終于談到搬家的事。我說外間的寓所已經租定了,又買了几件家具,此外須將家
里所有的木器賣去,再去增添。
母親也說好,而且行李也略已齊集,木器不便搬運的,也小半賣去了,只是收不起錢來。
“你休息一兩天,去拜望親戚本家一回,我們便可以走了。”母親說。
“是的。”
“還有閏土,他每到我家來時,總問起你,很想見你一回面。我已經將你到家的大約日
期通知他,他也許就要來了。”
這時候,我的腦里忽然閃出一幅神異的圖畫來:深藍的天空中掛着一輪金黃的圓月,下
面是海邊的沙地,都種着一望無際的碧綠的西瓜,其間有一個十一二歲的少年,項帶銀圈,
手捏一柄鋼叉,向一匹猹〔2〕盡力的刺去,那猹卻將身一扭,反從他的胯下逃走了。
這少年便是閏土。我認識他時,也不過十多歲,離現在將有三十年了;那時我的父親還
在世,家景也好,我正是一個少爺。那一年,我家是一件大祭祀的値年〔3〕。這祭祀,說
是三十多年才能輪到一回,所以很鄭重;正月里供祖像,供品很多,祭器很講究,拜的人也
很多,祭器也很要防偸去。我家只有一個忙月(我們這里給人做工的分三種:整年給一定人
家做工的叫長年;按日給人做工的叫短工;自己也種地,只在過年過節以及收租時候來給一
定的人家做工的稱忙月),忙不過來,他便對父親說,可以叫他的兒子閏土來管祭器的。
我的父親允許了;我也很高興,因爲我早聽到閏土這名字,而且知道他和我仿佛年紀,
閏月生的,五行缺土〔4〕,所以他的父親叫他閏土。他是能裝■捉小鳥雀的。
我于是日日盼望新年,新年到,閏土也就到了。好容易到了年末,有一日,母親告訴我
,閏土來了,我便飛跑的去看。他正在廚房里,紫色的圓臉,頭戴一頂小氈帽,頸上套一個
明晃晃的銀項圈,這可見他的父親十分愛他,怕他死去,所以在神佛面前許下願心,用圈子
將他套住了。他見人很怕羞,只是不怕我,沒有旁人的時候,便和我說話,于是不到半日,
我們便熟識了。
我們那時候不知道談些什么,只記得閏土很高興,說是上城之后,見了許多沒有見過的
東西。
第二日,我便要他捕鳥。他說:
“這不能。須大雪下了才好。我們沙地上,下了雪,我掃出一塊空地來,用短棒支起一
個大竹匾,撒下秕谷,看鳥雀來吃時,我遠遠地將縛在棒上的繩子只一拉,那鳥雀就罩在竹
匾下了。什么都有:稻雞,角雞,鵓鴣,藍背……”
我于是又很盼望下雪。
閏土又對我說:
“現在太冷,你夏天到我們這里來。我們日里到海邊檢貝殼去,紅的綠的都有,鬼見怕
也有,觀音手〔5〕也有。晩上我和爹管西瓜去,你也去。”
“管賊么?”
“不是。走路的人口渴了摘一個瓜吃,我們這里是不算偸的。要管的是獾豬,刺 ,猹
。月亮地下,你聽,啦啦的響了,猹在咬瓜了。你便捏了胡叉,輕輕地走去……”
我那時幷不知道這所謂猹的是怎么一件東西――便是現在也沒有知道――只是無端的覺
得狀如小狗而很凶猛。
“他不咬人么?”
“有胡叉呢。走到了,看見猹了,你便刺。這畜生很伶俐,倒向你奔來,反從胯下竄了
。他的皮毛是油一般的滑……”
我素不知道天下有這許多新鮮事:海邊有如許五色的貝殼;西瓜有這樣危險的經曆,我
先前單知道他在水果店里出賣罷了。
“我們沙地里,潮汛要來的時候,就有許多跳魚兒只是跳,都有靑蛙似的兩個脚……”
阿!閏土的心里有無窮無盡的希奇的事,都是我往常的朋友所不知道的。他們不知道一
些事,閏土在海邊時,他們都和我一樣只看見院子里高牆上的四角的天空。
可惜正月過去了,閏土須回家里去,我急得大哭,他也躱到廚房里,哭着不肯出門,但
終于被他父親帶走了。他后來還托他的父親帶給我一包貝殼和几支很好看的鳥毛,我也曾送
他一兩次東西,但從此沒有再見面。
現在我的母親提起了他,我這兒時的記憶,忽而全都閃電似的蘇生過來,似乎看到了我
的美麗的故鄕了。我應聲說:
“這好極!他,――怎樣?……”
“他?……他景况也很不如意……”母親說着,便向房外看,“這些人又來了。說是買
木器,順手也就隨便拿走的,我得去看看。”
母親站起身,出去了。門外有几個女人的聲音。我便招宏兒走近面前,和他閑話:問他
可會寫字,可願意出門。
“我們坐火車去么?”
“我們坐火車去。”
“船呢?”
“先坐船,……”
“哈!這模樣了!胡子這么長了!”一種尖利的怪聲突然大叫起來。
我吃了一嚇,趕忙抬起頭,卻見一個凸顴骨,薄嘴唇,五十歲上下的女人站在我面前,
兩手搭在髀間,沒有系裙,張着兩脚,正像一個畫圖儀器里細脚伶仃的圓規。
我愕然了。
“不認識了么?我還抱過你咧!”
我愈加愕然了。幸而我的母親也就進來,從旁說:
“他多年出門,統忘卻了。你該記得罷,”便向着我說,“這是斜對門的楊二嫂,……
開豆腐店的。”
哦,我記得了。我孩子時候,在斜對門的豆腐店里確乎終日坐着一個楊二嫂,人都叫伊
“豆腐西施”〔6〕。但是擦着白粉,顴骨沒有這么高,嘴唇也沒有這么薄,而且終日坐着
,我也從沒有見過這圓規式的姿勢。那時人說:因爲伊,這豆腐店的買賣非常好。但這大約
因爲年齡的關系,我卻幷未蒙着一毫感化,所以竟完全忘卻了。然而圓規很不平,顯出鄙夷
的神色,仿佛嗤笑法國人不知道拿破侖,美國人不知道華盛頓似的,冷笑說:
“忘了?這眞是貴人眼高……”
“那有這事……我……”我惶恐着,站起來說。
“那么,我對你說。迅哥兒,你闊了,搬動又笨重,你還要什么這些破爛木器,讓我拿
去罷。我們小戶人家,用得着。”
“我幷沒有闊哩。我須賣了這些,再去……”
“阿呀呀,你放了道台〔7〕了,還說不闊?你現在有三房姨太太;出門便是八抬的大
轎,還說不闊?嚇,什么都瞞不過我。”
我知道無話可說了,便閉了口,黙黙的站着。
“阿呀阿呀,眞是愈有錢,便愈是一毫不肯放松,愈是一毫不肯放松,便愈有錢……”
圓規一面憤憤的回轉身,一面絮絮的說,慢慢向外走,順便將我母親的一副手套塞在褲腰里
,出去了。
此后又有近處的本家和親戚來訪問我。我一面應酬,偸空便收拾些行李,這樣的過了三
四天。
一日是天氣很冷的午后,我吃過午飯,坐着喝茶,覺得外面有人進來了,便回頭去看。
我看時,不由的非常出驚,慌忙站起身,迎着走去。
這來的便是閏土。雖然我一見便知道是閏土,但又不是我這記憶上的閏土了。他身材增
加了一倍;先前的紫色的圓臉,已經變作灰黃,而且加上了很深的皺紋;眼睛也像他父親一
樣,周圍都腫得通紅,這我知道,在海邊種地的人,終日吹着海風,大抵是這樣的。他頭上
是一頂破氈帽,身上只一件極薄的棉衣,渾身瑟索着;手里提着一個紙包和一支長煙管,那
手也不是我所記得的紅活圓實的手,卻又粗又笨而且開裂,像是松樹皮了。
我這時很興奮,但不知道怎么說才好,只是說:
“阿!閏土哥,――你來了?……”
我接着便有許多話,想要連珠一般湧出:角雞,跳魚兒,貝殼,猹,……但又總覺得被
什么擋着似的,單在腦里面回旋,吐不出口外去。
他站住了,臉上現出歡喜和淒涼的神情;動着嘴唇,卻沒有作聲。他的態度終于恭敬起
來了,分明的叫道:
“老爺!……”
我似乎打了一個寒噤;我就知道,我們之間已經隔了一層可悲的厚障壁了。我也說不出
話。
他回過頭去說,“水生,給老爺磕頭。”便拖出躱在背后的孩子來,這正是一個卄年前
的閏土,只是黃瘦些,頸子上沒有銀圈罷了。“這是第五個孩子,沒有見過世面,躱躱閃閃
……”
母親和宏兒下樓來了,他們大約也聽到了聲音。
“老太太。信是早收到了。我實在喜歡的了不得,知道老爺回來……”閏土說。
“阿,你怎的這樣客氣起來。你們先前不是哥弟稱呼么?
還是照舊:迅哥兒。”母親高興的說。
“阿呀,老太太眞是……這成什么規矩。那時是孩子,不懂事……”閏土說着,又叫水
生上來打拱,那孩子卻害羞,緊緊的只貼在他背后。
“他就是水生?第五個?都是生人,怕生也難怪的;還是宏兒和他去走走。”母親說。
宏兒聽得這話,便來招水生,水生卻松松爽爽同他一路出去了。母親叫閏土坐,他遲疑
了一回,終于就了坐,將長煙管靠在桌旁,遞過紙包來,說:
“冬天沒有什么東西了。這一點干靑豆倒是自家曬在那里的,請老爺……”
我問問他的景况。他只是搖頭。
“非常難。第六個孩子也會幇忙了,卻總是吃不夠……又不太平……什么地方都要錢,
沒有定規……收成又壞。種出東西來,挑去賣,總要捐几回錢,折了本;不去賣,又只能爛
掉……”
他只是搖頭;臉上雖然刻着許多皺紋,卻全然不動,仿佛石像一般。他大約只是覺得苦
,卻又形容不出,沉黙了片時,便拿起煙管來黙黙的吸煙了。
母親問他,知道他的家里事務忙,明天便得回去;又沒有吃過午飯,便叫他自己到廚下
炒飯吃去。
他出去了;母親和我都嘆息他的景况:多子,飢荒,苛稅,兵,匪,官,紳,都苦得他
像一個木偶人了。母親對我說,凡是不必搬走的東西,盡可以送他,可以聽他自己去揀擇。
下午,他揀好了几件東西:兩條長桌,四個椅子,一副香爐和燭台,一桿抬秤。他又要
所有的草灰(我們這里煮飯是燒稻草的,那灰,可以做沙地的肥料),待我們啓程的時候,
他用船來載去。
夜間,我們又談些閑天,都是無關緊要的話;第二天早晨,他就領了水生回去了。
又過了九日,是我們啓程的日期。閏土早晨便到了,水生沒有同來,卻只帶着一個五歲
的女兒管船只。我們終日很忙碌,再沒有談天的工夫。來客也不少,有送行的,有拿東西的
,有送行兼拿東西的。待到傍晩我們上船的時候,這老屋里的所有破舊大小粗細東西,已經
一掃而空了。
我們的船向前走,兩岸的靑山在黃昏中,都裝成了深黛顔色,連着退向船后梢去。
宏兒和我靠着船窗,同看外面模糊的風景,他忽然問道:
“大伯!我們什么時候回來?”
“回來?你怎么還沒有走就想回來了。”
“可是,水生約我到他家玩去咧……”他睜着大的黑眼睛,癡癡的想。
我和母親也都有些惘然,于是又提起閏土來。母親說,那豆腐西施的楊二嫂,自從我家
收拾行李以來,本是每日必到的,前天伊在灰堆里,掏出十多個碗碟來,議論之后,便定說
是閏土埋着的,他可以在運灰的時候,一齊搬回家里去;楊二嫂發見了這件事,自己很以爲
功,便拿了那狗氣殺(這是我們這里養雞的器具,木盤上面有着柵欄,內盛食料,雞可以伸
進頸子去啄,狗卻不能,只能看着氣死),飛也似的跑了,虧伊裝着這么高底的小脚,竟跑
得這樣快。
老屋離我愈遠了;故鄕的山水也都漸漸遠離了我,但我卻幷不感到怎樣的留戀。我只覺
得我四面有看不見的高牆,將我隔成孤身,使我非常氣悶;那西瓜地上的銀項圈的小英雄的
影像,我本來十分淸楚,現在卻忽地模糊了,又使我非常的悲哀。
母親和宏兒都睡着了。
我躺着,聽船底潺潺的水聲,知道我在走我的路。我想:
我竟與閏土隔絶到這地步了,但我們的后輩還是一氣,宏兒不是正在想念水生么。我希
望他們不再像我,又大家隔膜起來……然而我又不願意他們因爲要一氣,都如我的辛苦展轉
而生活,也不願意他們都如閏土的辛苦麻木而生活,也不願意都如別人的辛苦恣睢而生活。
他們應該有新的生活,爲我們所未經生活過的。
我想到希望,忽然害怕起來了。閏土要香爐和燭台的時候,我還暗地里笑他,以爲他總
是崇拜偶像,什么時候都不忘卻。現在我所謂希望,不也是我自己手制的偶像么?只是他的
願望切近,我的願望茫遠罷了。
我在朦朧中,眼前展開一片海邊碧綠的沙地來,上面深藍的天空中掛着一輪金黃的圓月
。我想:希望是本無所謂有,無所謂無的。這正如地上的路;其實地上本沒有路,走的人多
了,也便成了路。
一九二一年一月。
〔1〕 本篇最初發表于一九二一年五月《新靑年》第九卷第一號。
〔2〕 猹 作者在一九二九年五月四日致舒新城的信中說:
“猹字是我據鄕下人所說的聲音,生造出來的,讀如査。……
現在想起來,也許是獾罷。”
〔3〕 大祭祀的値年 封建社會中的大家族,每年都有祭祀祖先的活動,費用從族中
“祭産”收入支取,由各房按年輪流主持,輪到的稱爲“値年”。
〔4〕 五行缺土 舊社會所謂算“八字”的迷信說法。卽用天干(甲乙丙丁戊己庚辛
壬癸)和地支(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相配,來記一個人出生的年、月、日、時,各
得兩字,合爲“八字”;又認爲它們在五行(金、木、水、火、土)中各有所屬,如甲乙寅
卯屬木,丙丁巳午屬火等等,如八個字能包括五者,就是五行俱全。“五行缺土”,就是這
八個字中沒有屬土的字,需用土或土作偏旁的字取名等辦法來彌補。
〔5〕 鬼見怕和觀音手,都是小貝殼的名稱。舊時浙江沿海的人把這種小貝殼用線串
在一起,戴在孩子的手腕或脚踝上,認爲可以“避邪”。這類名稱多是根據“避邪”的意思
取的。
〔6〕 西施 春秋時越國的美女,后來用以泛稱一般美女。
〔7〕 道台 淸朝官職道員的俗稱,分總管一個區域行政職務的道員和專掌某一特定
職務的道員。前者是省以下、府州以上的行政長官;后者掌管一省特定事務,如督糧道、兵
備道等。辛亥革命后,北洋政府也曾沿用此制,改稱道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