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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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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베트남어는 한 음절이 한 형태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하나의 음이 한 단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립형태소는 그 수량이 106개 정도로 많지 않으나 100여개 정도는 자주 쓰인다. 베트남어에서 형태소를 이루는 음절은 그 수가 약 4만개쯤 된다고 하며, 이 음절은 ‘모음’, ‘모음+자음’, ‘자음+모음’, ‘자음+모음+자음’형태로 나타난다.
셋째, 베트남어의 단어형태는 변화지 않는다. 즉 격, 수, 인칭, 성, 시제와 같은 문법적인 특징에 의해서 변하는 어미가 없다는 것이다.
넷째, 베트남어는 성조어이다. 이 때문에 베트남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베트남어는 어렵다고 말해진다. 그것은 같은 음일지라도 성조에 따라 단어들이 전혀 다른 뜻을 갖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조는 ‘ ’, ‘́’, ‘̀’, ‘̉’, ‘̃’, ‘̇’ 등 모두 6개가 있다. 이를 육성(六聲)이라 하며, ‘마(ma:마귀)’, ‘마(má:어머니)’, ‘마(mà:그러나)’, ‘마(mả:무덤)’, ‘마(mã:말)’, ‘마(mạ:모)’의 형태이다.
베트남어의 발음에 대한 차이는 국가 내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때문에 베트남인들에 대한 발음 구분을 크게 하 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발음, 후에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발음, 그리고 호 찌 밍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발음으로 나눈다. 대체적으로 북부발음은 정확하여 듣기가 수월하며, 남부는 비음이 많아 익숙하지 않으면 듣기 어렵다. 특히 중부발음은 베트남인들도 가장 듣기 어렵다고 말해진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어는 지역간에 문법적인 차이가 없다. 다만 지역간의 역사적 배경, 남북간의 긴 지역적 특징, 그외 기타 문화적 여러 요인들로 인하여 남북간에는 서로 달리 표현하는 단어들이 다수 있다. 예컨대 ‘아버지'와 ‘어머니'가 북부에서 ‘보(bố)'와 ‘매(mẹ)’라면 남부에서 ‘바(ba)'와 ‘마(má)’, ‘비싸다'가 북부에서 ‘닷(đắt)’이라면 남부에서 ‘막(mắc)', ‘과일’이 북부에서 ‘꾸아(quả)’라면 남부에서 ‘짜이(trái)', 질문에 대한 긍정대답 ‘예’가 북부에서 ‘벙(vâng)’이라면 남부에서 ‘자(dạ)', ‘부끄럽다’가 북부에서 ‘써우 호(xấu hổ)’라면 남부에서 ‘막 꺼(mắc cỡ)’로 표현되는 경우이다.
언어학자는 물론 대다수 베트남인들은 언어에 대한 정통성(표준어)을 놓고 남북간에 논란이 많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어느 지역의 발음을 정통으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위에서 언급했던 역사, 지역, 문화적인 여러 요인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할 때 무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굳이 발음의 정통성을 언급한다면 필자가 베트남역사를 전공한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북부가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베트남사의 기원이 북부 홍강 평야를 기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2. 쯔 놈(Chữ Nôm)
중국의 지배와 함께 중국의 한자가 베트남에 유입되었다. 문자가 없었던 베트남은 떠이 선왕조(Tây Sơn:西山, 1789-1802)의 통치기를 제외하고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한자를 공식문자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정치 독립과 함께 문자 독립을 끊임없이 추구하였으니, 쯔 놈의 창제가 이에 대한 하나의 산물이 되겠다.
쯔 놈은 베트남인의 글 혹은 꾸옥 엄(quốc âm:國音)의 의미로 ‘宁字 喃’이라고 쓰며, 베트남어로는 ‘chữ nôm’으로 쓴다. 이는 고유명사로 ‘chữ’는 글자를, ‘nôm’은 베트남을 의미한다. 일부에서는 북쪽 중국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南方’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근거로 놈(nôm)자가 ‘죠 놈(gió nồm:동남풍)’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즉 ‘죠(gió)’는 바람, ‘놈(nồm)’은 동남향이라는 뜻인 바, ‘죠 놈’은 여름에 동남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Southern script'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쯔 놈은 ‘쯔 놈(宁字 喃)’이라는 고유명사 자체로 칭하고 표기해야지 우리나라의 일부에서처럼 ‘자남(字喃)’의 형태로 칭하거나 표기해서는 안 된다.
쯔 놈의 출현 시기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다. 학자들 간에 서로 엇갈리는 주장을 하고 있는 바, 대략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한월어(漢越語:베트남어의 한자음 표기)의 형성시기에 근거하여 북속시대 전기인 2-3세기 후기로 추론, 둘째는 북속시대의 말기인 8세기로 추론하는 설, 셋째는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설 등이다. 이 세 가지 설 중에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쯔 놈작품이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문학작품이 나오기까지는 어휘와 쓰임 등을 위한 긴 과도기를 거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쩐왕조(Tran:陳, 1225-1400)에 와서 쯔 놈은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쯔 놈으로 쓰인 국어시와 음악가사가 발달하게 되었다. 응우옌 투옌(Nguyễn Thuyền)과 응우옌 시 꼬(Nguyễn Sĩ Cố)는 당대의 유명한 쯔 놈작가로 유명하다.
쯔 놈의 기록들은 비문, 시, 부, 소설 등에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응우옌 주(Nguyễn Du, 1765-1820)의 끼에우(Kiều)傳은 베트남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쯔 놈은 중국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호왕조(Ho:胡, 1400-1406)를 열었던 호 꾸이 리(Hồ Qúy Lý)는 자신이 직접 시경의 무일편을 쯔 놈으로 번역하여 투언 똥(Thuận Tông:順宗)의 교육교재로 사용했는가 하면, 여승들로 시경 전체를 쯔 놈으로 번역하여 후비와 궁녀들의 교육교재로 사용케 했다.
쯔 놈의 구조는 크게 보아 한자의 원형을 그대로 쓴 것, 형성체(形聲體)를 만들어 쓴 것, 회의체(會議體)를 쓴 것, 가차체(仮借體)를 쓴 것 등 4가지가 있다. 형성, 회의, 가차 등은 한자를 변화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한자의 원형을 그대로 쓴 것도 완전한 한자를 사용한 것과 한자의 일부분을 사용하여 글자를 만든 것이 있다.
수많은 쯔 놈자 중에 몇 가지 글자의 구성체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그 말의 어원이 한월어로서 뜻과 음이 한자와 동일한 것은 그 어원이 동일한 한자를 사용한 경우로, ‘官=quan’, ‘民=dân', ‘主=chủ', ‘客=khách' 등이다. ② 한자에 어원을 두고 있으나 음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거나 완전히 다르지만 뜻에서는 변동이 없는 경우로, ‘孤=cô', ‘局=cục’, ‘家=gia’, ‘役=dịch’ 등이다. ③ 말의 어원이나 뜻은 상관하지 않고 그 말의 음이 한자와 비슷한 경우에는 그 한자를 빌려 썼다. 예를 들면, ‘아버지’를 의미하는 ‘보(bó)’를 ‘천’을 의미하는 ‘포(布)’로, ‘어머니’를 의미하는 ‘까이(cái)’를 ‘덮다’를 의미하는 ‘개(蓋)’로, ‘하나’를 의미하는 못(một)을 ‘가라앉다’를 의미하는 몰(沒)로, ‘지나다’를 의미하는 꾸아(qua)를 창을 나타내는 ‘과(戈)’로 썼다.
쯔 놈의 구성도 한자의 육서(六書) 중 형성, 가차, 회의에 의한 것인바, 이중에서도 형성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쯔 놈의 형성체를 예로 들어보면, ‘도착하다'를 의미하는 ‘至典(điển)'은 ‘도착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지(至=chí)’와 음을 표기하는 ‘전(典=điển)’과 결합, ‘해(년)’를 의미하는 ‘南年(nam)’은 뜻을 나타내는 ‘년(年=niên)’과 음을 나타내는 ‘남(南=nam)’과 결합하는 형태 등이 있다.
쯔 놈은 한자의 변형에서 비롯된 것인 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에 대한 깊은 지식이 먼저 요구되었다. 따라서 쯔 놈은 한자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지식인들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쯔 놈의 출현은 고유의 민족문자를 통한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옥상 위에 옥상이란 의미처럼 학자 위에 학자라는 새로운 식자층의 양성이란 사회적 폐단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쯔 놈이 함축하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민족자주정신이라 할 것이다. 즉 일 천년 이상을 중국의 지배 하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종주종속의 관계를 주장하며 독립과 주권을 위협했던 중국으로부터 자주권을 유지하는 차원에서의 민족어 창제가 간절했을 것이다. 이 같은 염원은 딩왕조(Đinh:丁, 968-980)를 세웠던 딩 보 링(Đinh Bộ Lĩnh)이 국호를 다이 꼬 비엣(Ðại Cồ Việt:大瞿越)이라 했던 것이나 호 꾸이 리가 쯔 놈을 조정의 공식문자로 지정한 것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떠이 선 농민왕조의 꾸앙 쭝(Quang Trung, 1788-1792)황제가 쯔 놈을 국가의 공식문자로 선포하고 쯔 놈에 의한 과거를 실시했다고 하는 것은 정치는 물론 문화로부터의 중국탈피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 더불어 쯔 놈은 역사 속의 문자로 남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