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30일 (일) 날씨 : 맑음
아침일찍 1부 예배를 드리고 다솜이와 배선애샘집으로 가서 배선애샘 가족과 함께 영종도 국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항상 꿈꾸고 가기를 열망하였던 그곳 지중해로 출발이다
과연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 잘 해쳐 나갈것인지 ...
미지의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기대된다
김미영티는 여행중에 찐한 로멘스도 한편 만들어 보라고 했고,
이미숙티는 아마도 내가 여행 끝날 즈음에는 마호메드나 압둘라의 세 번째 부인쯤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더니
언니! 누가 언니같이 늙은 사람을 쳐다나본데 착각하지 말라며 여지없는 냉수 한사발로 정신이 나게 한다.
1시 34분 KLM(네델란드항공)에 오르고 영화3편에 기내식2번 삼양컵라면 하나, 이렇게 흘러간 시간이 12시간이다.
드디어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는데 일행중 마산팀에 문제가 생겼다.
입국심사관리가 너 돈 얼마가지고 있냐 라고 물으니 경황중에 빌려온 신용카드를 보여준거다. 여권의 이름과 신용카드의 이름이 달랐던거다. 그래서 마산팀은 통과하지 못하고 다른 사무실로 가서 내가 훔친카드가 아니고 잠시 빌려온 거다 등등 상황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아테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3시간소요).
아무것도 한일 없이 비행기만 타는데도 배는 왜 그리 때가되면 여지없이 고프게 되는걸까 ? 주는데로 끊임없이 챙겨먹고 아테네 스파타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테네시각으로 시계를 맞추었다 한국시간 7시29분 현지시간 00: 29분
영종도 국제공항에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아테네까지 대기시간 빼고 15시간을 날아왔다.
지금은 현지시간 몇시니까 한국시간은 몇시겠군 이렇게 생각이 들지만 여행이 진행될수록 차차 한국시간 자체를 잊어버리겠지 .
12월 31일 (월요일)
(파르테논신전에서 )
BC 5세기경에 만들어진 파르테논 신전을 보기 위하여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님의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설명으로 재미있게 듣고 깔깔대기도 하며 BC 438년에 완공된 파르테논 신전 곳곳을 둘러보며 신전으로 쓰이다 비잔틴시대에는 소피아 교회로 그리고 오스만 터키시대에는 회교사원으로 쓰여 시대에 따라 힘있는 세력의 밑에서 그들의 쓰임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 파르테논 신전,
수없는 역사의 흐름과 아픔과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테 지금은 파괴된 채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우뚝 서있다. 박물관에는 코가 떨어져 나간 많은 조각상이 이었는데 가이드님의 설명에 의하면 침략자들이 파괴할 때 시간이 있으면 철저히 파괴를 했으나 시간이 없을때에는 목을베었고, 그래도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코를 베버렸다고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코에 그 생기를 불어 넣으셨으므로 코를 베어버리면 그 생명을 거두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의여신 아르테미스, 승리의 여신 니케, 그리고 많은 여자들의 조각상에 아리 아리한 미소가 피어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정교하게 그 미소를 잘 표현하고 있었는데 입술에 피어나는 희미한 미소를 아르카이 미소라고 한다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님의 설명을 듣고 난 김다솜은 조금만 내가 심기가 불편해도 "아르카이 스마일 알쥐" 하며 양념을 친다
(아테네고고학박물관에서)
유럽문명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을 이해하고 미술품을 관람하기 위해 간 아테네의 고고학박물관에서 몇시간째 남자 거시기를 눈에 눈물이 나도록 보았다
신중의 신 제우스, 태양의 신 아폴론, 바다의 신 포세이돈, 술의신 디오니소스, 전쟁의 신 아레스, 에로스, 헤라클레스등등 대리석에 남자의 근육과 섬세한 부분까지 너무도 정교하게 조각해논 조각상을 감상하는데 헤라클레스의 조각상 앞에서 조동식 현지가이드 왈 헤라클레스 거시기의 새알 두쪽 중 하나는 위에 있고 나머지 하나는 살짝 밑으로 쳐져있는데 이것은 창조주의 섭리라는 것이다. 만약 새알 두쪽이 똑같이 나란히 있으면 두알이 서로 부딪쳐 깨져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혜정언니(아직 결혼하지 않았음) 내곁에 살짝 다가와 하는말
손영옥샘! 정말 남자 거시기의 새알이 저렇게 생겼어요 ?
음 쩝쩝 .....
(점심식사)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타베르나(그리스 식당)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결국 수퍼에 가서 우유, 물, 러시아샐러드, 토마토, 오렌지를 사서 국립고고학 박물관 벤치에서 해결하였다. 배선애샘은 동현, 철용과 니어카에서 파는 크룰리빵을 샀는데 배가 고파 허겁지겁 먹다 철용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다른 벤치로 뛰어가는 거다. 옆을 보니 벤치 주위에 누군가가 토해 논 흔적이 있고 쓰레기 등등 아휴 더러워, 입맛이 딱 떨어졌다. 철용에게 앞으로 더러운 곳은 혼자서 보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주의 아닌 주의를 주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허겁지겁 먹은 빵, 딱딱한 깨뿌려진 크룰리 빵, 더러운 벤치등등 이 모든 환경이 소화를 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점심 식사후 푸른 지중해 앞 바다를 끼고 있는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수니온 곳으로 가는 동안(약 2시간소요) 멀미가 나서 계속 취침을 했다 실눈을 뜨고 에게해의 해변을 감상 했다를 반복하였다.
수니온 곳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노래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모셔 진 신전이다. 바닷 바람을 쐬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오늘이 12월 31일 2001년 마지막날, 지금이 현지시각 오후 5시 그러면 한국시간 자정 한국에서는 지금쯤 이종래 목사님이 송구영신예배를 인도하고 계시겠구나. 나도 기도를 해야지, 수평선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렸다. 영국으로 연수간 은미티가 서로 위해서 기도해 주자고 했는데 생각이 난다. 이틈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를 보며 은미티의 영국어학 연수를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푸르는 바다, 바다너머로 지는 태양, 그리스 겨울의 차가운 바람속에 내가 서있다니, 이건 꿈만같다. 수니온곶은 우리나라 정동진처럼 석양이 아름다워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연인끼리 온 사람들이 차가운 바람속에 서로 부둥켜않고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속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서혜정언니왈 "이 아름다운 곳에 연인끼리 와서 밀어를 속삭여야 되는데 연인은 어디가고 지금 내 곁에 왜 손영옥샘이 있는거야? "
(2001년 마지막 밤을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2001년 마지막날인데 호텔에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아래 배선애티와 함께 얘들은 재우고 단둘이 신타그마 광장(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곳)으로 향한 시간은 저녁 10시 30분
수많은 아테네 시민들과 외국인들도 모두 나온 것 같았다,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 안기도 하고 가족끼리 연인끼리 서로서로 손을 잡고 노래하기도 하고 몸을 흔들기도 하면서 백인, 흑인, 황인 할것없이 모두들 신타그마로 모여들었다. 신타그마 광장에 마지막 밤을 위한 TV생중계를 위한 대형 무대가 설치되고 오케스트라, 가수, 성악가 등이 나와 공연을 하는 거였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중 5명과 합류하여 도합 7명이 너무 복잡하여 일단 빠져나가기로 하고 플라카 거리를 헤매였다. 영화에서 보면 마지막 12시 종이 울리면 옆에 있는 사람과 KISS를 하던데 이 아테네 시민들은 어떻게 하는지 너무 궁금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신타그마에서 너무 멀리 와 있던 관계로 12시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12시 이후에 불꽃놀이가 있었는데 플라카 거리에서 보아야 했다. 아이구 원통해라. 배선애티는 그리스 음악이 늘어져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다며 그 가락을 시시때때로 흉내를 내며 날 즐겁게 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또 한해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새해의 소원을 빌며 플라카 거리를 헤메이며 새해를 맞이했다.
(배선애샘의 가방)
가방사건1: 12월30일
배선애샘은 아들2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으므로 여행경비가 부담스러워 조금이라도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사연 많은 여행용 가방을 내가 주게 되었다.
중국서안 면세점에서 여행용 가방을 20,000원에 샀는데 살려고 하닌까 그때 함께갔던 권금희티가 날보고 여행용 가방은 좋은 걸 사야 된다면 말렸지만 난 고집을 부리며 단돈 10,000짜리 두장이면 된다고 기어이 사고야 말았다. 그 초록색 가방을 들고 지난 여름 호주 뉴질랜드를 갔을 때 공항에서 가방을 찾으면 한쪽 귀퉁이가 찌그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으면 찌그러진 부분을 피곤 했었던 가방이다
그래서 배선애티에게 아예 가지라고 하면서 한쪽이 눌리면 찌그러지긴해도 괜찮을거라 했다. 배선애티 바퀴는 괜찮아? 라고 묻는 거였다.
"바퀴는 괜찮 을거야 근데 한쪽 귀퉁이는 찌그러져"라고 했더니 배선애티 바퀴만 괜찮으면 된다고 하여 가지라고 주었다.
아테네 스파타 국제공항에서 가방을 찾으니 바퀴가 없는거다
아니 바퀴가 어디 갔냐 ?
결국 배선애티 얼굴이 빨개지며(힘들어서)공항 바닥 호텔 바닥 긁힐까봐 끌지도 못하고 낑낑대며 그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들고 다녀야 했다
배선애티 나한테 하는말
"손영옥 가방 책임져 !!!!"
가방사건2: 1월 1일
첫날부터 가방 바퀴가 빠져 버렸으니 앞으로 터키 이집트까지 저 무거운 가방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며 배선애티와 함께 1월1일 새해 첫날부터 가방사러 아테네의 오모니아광장, 모나스트라키 광장등을 헤메이고 다녔지만 새해 첫날이라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버렸다. 플라카 거리를 헤메이다 문을 연 가게를 발견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배선애티와 표정관리를 외치며 들어갔다.
우리의 TC 김선겸샘 왈 고객이 반드시 살 것 같으면 안깍아주니 절대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된다고 누차 강조했기 때문이다. 시큰둥해야 상점주인이 애걸복걸을 하며 깍아 주기도 하고 적당한 가격에 흥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드케이스의 여행용가방을 발견하고 25,000DC를 부르는 것을 15,000DC에 샀다.
1$=300DC 15,000DC=65,000원
가방가게 아줌마는 보석가게랑 같이 경영을 했는데 갑자기 산적두목같이 생긴 남편이 오더니 작은 손지갑이 정리가 않됐다며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드케이스 여행용가방 색깔이 진한회색과 옅은회색 두가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진한회색이 더 좋겠다며 고르고 있는데 화를내며 저쪽에다 그냥 갖다 두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 그리스 아줌마 우는 얼굴상을 하며 보석가게로 우리를 오라고 하더니 얼마에 사겠냐고 묻는다. 배선애티 25,000DC 불렀으니 날보고 20,000DC에 하자고 하라고 한다. 난 15,000DC를 전자계산기에 눌렀더니 이 아줌마 그렇게 하란다. 이 그리스 아줌마 서랍에서 20달러를 꺼내더니 배선애샘이 낸 15,000DC와 함께 남편에게 갖다 주는 것이었다.
남편한테 꼼짝도 못하는 불쌍한 그리스 아줌마를 뒤로하고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너무 잘 샀다며 신나서 호텔로 향했다.
가방사건3: 1월 19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마지막날
쉐라톤 호텔(별5개)에서 밤 12시 50분에 로비에 집결하여 이제 이집트를 떠나 네델란트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집트에서 전용버스가 좁아서 우리일행들의(모두 19명)짐을 실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짐을 지붕에 싣는다. 모두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차에 싣도록 갖다주고 차에 올라탔다. 어둠이 덥힌 카이로의 밤을 온몸으로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탁 소리가 나는 거다
우리 전용버스 운전사가 지붕에 짐을 싣다가 누군가의 짐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린거다. 서로 자기 가방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확인한 결과 세상에 그 많은 가방중에 하필 배선애샘의 가방이 차 지붕에서 떨어져 버린거다.
그리스에서 산 하드케이스 가방이 ....
가방은 손잡이 옆 부분이 움푹 들어가 찌그러져 있는 것이었다.
배선애샘 한동안 침묵 ....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할수가 없는 손영옥도 침묵....
한참만에 입을 연 배선애샘 "바퀴만 괜찮으면 계속 쓰지 뭐"
1월1일(화요일) 날씨 비가 추적추적 내림
(플라카 거리에서 그리스 군인들과 함께 비속에서)
그리스의 국교는 그리스 정교다.
전 인구의 95%가 그리스 정교회 신도라고 한다.
터키의 400년 동안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단결의 구심점으로서 독립을 향한 의지를 키워준 것이 바로 그리스 정교라고 한다. 1월1일이면 정부 고위 관리들, 전대통령, 현대통령, 현수상등이 모여 함께 그리스 정교회에서 신년예배를 드린다고 한다.1월1일 플라카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있는 것이었다. 배선애샘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궁금하여 가보았더니 관악대, 경찰들, 그리고 수많은 군인들이 고위 관리들을 호위하기 위해 사열해 있었다.
우린 한참을 구경하다 현직 대통령과 수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우리가 플라카거리를 찾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방사야했음)발길을 재촉하여 그 수많은 남자(군인)들의 야릇한 미소 세례를 받으며 사열되어 있는 군인들 곁을 유유히 지나갔다. 그 순간 우리의 위대한 TC김선겸샘을 만났는데 이런 장면은 쉽게 볼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 ? "
"그럼요"
좌우에 수백명의 군인들이 일렬로 쭉 정렬이 되어있는 플라카 거리에 몇발자국 들어가 군인들을 배경으로 미소 지으며 사진 한장 찰칵했다.
(리까비토스 언덕에서)
맥도널드 햄버거와 치킨 너켓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우리패밀리(손영옥,배선애,김다솜(초6),이철용(초4),이동현(초3))는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한 아테네시내와 멀리 에게해의 푸른 바다까지 파노라마처럼 전경이 펼쳐지는 295m의 리까비토스 언덕에 올랐다. 언덕길에 커다란 선인장이 많이 있었는데 선인장잎에 한국인들이 누구누구 왔다감이라고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을 발견한 것은 철용이었다.
이렇게 자연 식물이나 문화유산에 흠집을 내는 어글리 코리언이 되면 안된다고 일장 설교를 하고 언덕정상에 오르니 그리스 겨울바람이 우리를 맞는다. 멀리 파르테논신전과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산 정상에 오르면 야~호 하는 오랜 습성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한다. 김재홍을 외쳐 불렀다. 창피하다는 김다솜의 거북해하는 눈빛을 받으며
야~ 호 !!!(큰목소리로)
김재홍 (약간 큰목소리로)
아이 러브 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1월2일(수요일) 날씨 : 날씨는 쾌청하나 바람 엄청 붐 나뭇가지 비틀비틀
(코린트와 미케네유적지에서)
아테네의 티타니아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그리스의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를 가기 위해 피레우스항으로 향하였으나 풍랑이 심한 관계로 피레우스항의 모든 배가 묶여 우리 일행은 일정을 바꿔 코린트와 미케네로 가기로 했다.
다시 티타니아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코린트(성경의 고린도지역)로 향했다.
코린트는 고린도전후서, 데살로니가, 빌립보서, 요한계시록의 배경이 된 곳이다. 사도바울 선생님이 얼마나 힘있게 전도를 했을 것인가. 이 역사의 현장에 있을수 있다니 정말 감격스럽다.
사도 바울 선생님도 괜히 머리속에 그려보곤 했다
코린트 운하에는 에게해의 푸른 바다위로 배가 유유히 항해하고 있다.
코린트 박물관을 관람하고 코린트 유적지에서 김선겸샘 샘물소리 안들리냐고 묻는다.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들리는 샘물소리라나 ? 우린 전혀 들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직접 보여주겠다며 피레네의 샘으로 우릴 안내한다. 피레네샘은 사랑하는 아들이 잘못 날아온 원반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엄마가 매일 눈물로 지새웠고 결국 눈물이 그녀의 몸을 녹여 그 물로 샘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샘에 들어가 물을 만졌고, BC 3000년경부터 코린트 지역에 사람이 살았으니 이 피레네 샘은 언제부터 흘렀는지 알수 없으나 수없이 흐르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피레네의 샘소리를 들으며 우린 다시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발굴한 미케네의 유적지로 향했다. 미케네는 트로이의 전쟁영웅 아가멤논왕이 다스리던 곳으로 아테네의 고고학 박물관의 미케네방에 있는 유물들이 이곳 미케네에서 발굴한 것들이라고 한다. 고고학박물관의 미케네방의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앞에서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었었다.
미케네 유적지에서 올리브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한그루의 올리브나무를 보고 김다솜과 올리브 열매를 관찰할 수 있었다.
(김다솜 배선애샘 나 이렇게 셋이서 올림픽스타디움 찾아 헤맴)
밤에 189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곳을 찾아 헤매었다. 올림픽스타디움 인줄 알고 찾아간 곳이 테니스 경기장 이여서 너무 황당했다. 그곳 그리스인에게 물어 찾아간 올림픽 스타디움은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경기장 좌석과 말굽처럼 생긴 운동장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BC 495년 페르시아 전쟁때 마라톤이란 지역에서 아테네의 승전보를 가지고 한 병사가 아테네까지 달려 "니께 싸메"라는 아테네의 승리를 알리고 죽어서 기원이 됐다는 마라톤에 대해 김다솜에게 침튀겨가며 설명을 열심히 하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김다솜 졸립고 다리 아프다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배선애샘과 나 밤에는 이제 얘들은 호텔에 두고 오자고 다짐을 할 수밖에....
그래도 김다솜 여행일기는 꼭 쓰고 잤다
장하다 내 딸, 위대하다 내 딸 (이건 순 아부성 발언임)
일기 끝에 올림픽경기장에 갔는데 다리아파 죽음, 졸려죽음이라고 썼다.
1월3일 목요일 날씨 : 맑음
(델피에서)
2400M의 파르낫소스산으로 둘려 쌓여진 델피는 성스러운 장소다. 거대한 바위산이 델피를 중심으로 하늘과 맞닥드려져 있고 산 전체가 올리브나무로 덮혀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제우스가 황금으로 된 독수리를 동·서로 각각 한 마리씩 날렸더니 두 독수리가 이곳 델피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이곳 델피를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델피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너무 지나치지 않게」라는 신전벽에 쓰여진 글귀를 보고 많은 깨우침을 받기도 했던 곳이다.
델피의 아폴론신전은 개관시간이 9시부터 오후2시 30분까지 인데 우리 일행은 2시 40분에 도착했더니 관리직원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거다. 몇번을 사정했지만 결국 열어주지 않아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누군가가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오시죠 ?" 하니
우리 일행 중 50가까이 되신 남자선생님(세계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난 다시 못 와 영혼이나 올까" 이렇게 답변을 하신다.
그 말씀에 왜 그리 가슴이 찡한지.
우리네 짧은 인생 정말 하나님 잘 섬기고 감사하며 이해하며 용서하며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폴론신전 밑에 원형신탁이 있는데 그곳은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원형신탁에서 유적들을 관람하고 있는데 생리적 현상이 급한거다
관리직원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갑자기 화장지를 주더니 이곳에 하란다. 원형신탁은 넓은 산이다. 안보이는데 가서 실례를 하라는 거다. 그것도 내가 원하지도 않는 화장지까지 친절하게 챙겨주면서
세상에 이럴수가 이 유적지에 실례를 하라니 설마 내가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겠지
내가 한 영어는 대충 이런거다
일단 미소를 짓고
"excuse me"
"could you speak English ?" -> 고개 끄덕
"Where is the toilet ?" -> 화장지 꺼내주고 손가락으로 산 오솔길 가르키며
"this plase"
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 no problem "
(밤에 얘들은 호텔에, 배선애샘과 난 베나끼 박물관으로)
베나끼 박물관은 아테네에 있는 개인 박물관인데 많은 그리스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유물들을 보니 코가 가장 중요했나보다. 눈,입,귀는 조각상들이 대충 만들고 때론 생략했어도 코는 반드시 크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사람의 호흡 있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베나끼 박물관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목요일은 관람시간이 밤12시까지였고 박물관 관람료가 공짜였다는 사실,
(그리스의 늘어진 개팔자)
그리스 아테네 거리를 다니다 보면 돌아 다니는 개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꼬리를 치며 따라오기까지 한다. 순하디 순한 눈을 해가지고 몸에는 살이 쪄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그리스 국교가 그리스 정교인데 새나 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잘해주는 것이 자선을 베푸는 것과 같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에게 먹이도 주고 더운 여름에는 물을 사서 자기는 안 마셔도 개에게 뿌려 주기까지 한다고 한다
기름기 흐르는 몸을 해 가지고 돌아 다니는 개들을 보면 우리 일행들은 군침을 삼1키며 저놈 된장 바르면 딱 좋겠네, 산으로 끌고 가야 되는데 하며 한마디씩 한다
1월4일 금요일 날씨 눈 엄청내림
(아테네를 떠나며)
아테네에 15년만이라고도 하고 20년만이라고도 하는 눈이 펑펑펑 쏟아졌다.
아침에 티타니아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니 호텔직원이 TC김선겸샘에게 너희들 터키가는 비행기 못뜨면 방 비워둘테니 다시 오라고 했단다.
한번 신토리니행 배가 출항금지 되어서 체크아웃 했다가 다시 체크인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농담을 한거다
아끼야빠라스깨비 도로가 눈 때문에 막혀 스파타 국제공항에 가는 길이 엄청 막혔다. 허겁지검 도착하여 공항에서 남은 드라크마를 US달러로 환전하고 보딩하였다. 배선애샘의 막내아들 동현이가 암스테르담에서 아테네로의 입국스탬프를 받지 못하고 들어와 (밀입국자가 됨) 한동안 실갱이를 했고 가방속의 젖가락 때문에 검색대에서 걸려 Chopsticks라고 설명한 후 일단 통과하였다. 또 배선애샘 "내 여권!" 하는 바람에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가방속을 샅샅이 뒤쳐 여권 찾아내고 A21 GATE로 냅다 뛰었더니 기상악화로 연착이랜다. 남은 3,500드라크마로 면세점에 가서 그리스 꿀 3병을 샀다.
아 ! 땀나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콜렉트 콜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집 떠난 6일만에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다.
아 ! 이 무심 ...
너무했다고 서혜정샘 의 한말씀
터키에 가면 가끔 싱그러운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으래나
남편의 목소리가 밝아 한시름 놓였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쳐다보며 "오늘 하루밤을 또 아테네에서 보낸다면 이제 아테네를 싫어할거야" 라고 중얼거리는데 GATE가 열려 TK 1846편으로 터키의 이스탄불로 향하게 되었다
오! 하나님 이스탄불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쁜 스튜어디스에게 How long does it take a from atena to istanbul ? 하고 물으니 대략 1시간 40분 걸린댄다.
(터키의 이스탄불)
눈이 펑펑 내리는 이스탄불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너무 멋진 도시 이스탄불이다
좋아 죽을 것 같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먼저 환전을 했다
1달러 = 1,350,000 리라
40달러 환전하니 오천사백만원이다
터키의 모든 돈에 동그라미가 하도 많아 정신이 없다.
배선애샘과 기분이다 이제 터키에서는 화폐단위를 리라라고 하지 말고 원으로 하기로 합의를 보고 몇 억 쓰고 가자고 하며 깔깔 댔다.
머큐라 호텔에 여장을 푼후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패밀리는 밖으로 나가 한접시에 1,300,000원하는 쇠고기 양고기 밥 등을 시켜 먹었다. 5명이서 9,600,000원어치(한국돈 9,200)를 먹었다.
1월5일 토요일 눈이 펑펑펑평 내림
밤새 눈이 펑펑 쏟아졌다.
호텔앞 광장에서는 40년만에 내린 폭설 때문에 터키인들이 나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 호텔앞에서 바라본 보스포러스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과연 tour를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 자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어제 오후 투어를 했어야 하는데 아테네에서 2시간 연착을 했고 터키에서 이미 투어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어제오후 일정까지 오늘 해야 했으므로 마음이 바빠졌다. 그런데다 걷기에도 곤란할 정도로 눈이 쌓여있고 또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아침 로비에서 호텔명함과 이스탄불 지도, 김선겸샘의 주의사항을 잠시듣고 전투용사처럼 이스탄불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늘 투어 행선지는 대충
①돌마바체궁전 ②아야소피아 ③불루모스크 ④히포드롬 ⑤톱카프궁전 ⑥지하물저장고 ⑦그랜드바자르 및 이집션바자르등등 가야 한다
동현 철용에게 오늘 투어를 잘하면 상금으로 한국돈 천원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호텔앞에서 돌마바체 궁전까지 택시비 400만원(약3달러)를 주고 도착했다.
이스탄불은 눈이 내려도 우리나라처럼 추운 북풍이 부는것도 아니고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는 것도 아니여서 그냥 소담스런 함박눈만 펑펑 내릴 뿐이다
① 돌마바체궁전은 오스만 터키의 세력이 약화되던 시기에 압둘메시드 1세가 베르사이유의 궁전을 본따서 만들었는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고 궁전건축에 소요된 막대한 재정으로 인해 결국 오스만 터키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궁전이다. 1인당 하렘투어를 포함하여 천만원이고 카메라사용료가 500만원이다. 궁전내에서 영어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안내하며 열심히 영어로 설명을 한다. 대충 알아먹는 것은 알아먹고 넘어가는 것은 넘어가고, 방이 무려 285개, 홀이 43개로 궁전 내부가 너무 크고 넓어서 가이드 없이는 미로속에서 헤매일 것 같았다. 궁전의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되어 모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 돌마바체궁전 앞에서 아야소피아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뒤에 앉은 동현이 볼을 만지며 귀엽다고도 하고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또 택시에서 계속 덜덜거리는 소리가 나는거다. 그러면 한참 운전을 하다 운전석 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고 살펴보다 또 문을 닫고 출발했다를 반복한다. 그러면 난 운전석 옆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터키의 택시기사들 very nice, wonderful를 연발하며 장단을 맞춰준다. 택시기사 입이 찢어진다. 목적지에 다달으니 택시비 430만원 나왔는데 그냥 400만원만 주랜다. thank you very much를 큰소리로 외치며 택시문을 닫고 돌아서면 또 하나의 산을 넘은 기분이다. 배선애샘과 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깔깔대고 배꼽을 잡는다.
②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하기로 하고 레스토랑에서 케밥을 먹었다.
5인분 식사 3,500만원.
③ 아야소피아 : 아야소피아는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손꼽히는 건물이다. 762년 기독교의 본부로 사용되었으나 서로마의 카돌릭과 분리된 이후에 그리스정교의 본산으로 사용되다 1453년 오스만 터기의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임) 점령후에는 회교 사원으로 개조되어 거의 500년 가까이 모스크로 사용되다 지금은 터키의 국부인 아타튀르크가 박물관으로 만든 후 종교의식은 금식된 곳이다. 아야소피아 내부에는 원래 교회였기 때문에 벽면에 성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슬람의 오스만터키에 의해 회벽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알라와 마호멧이라고 쓴 커다란 둥근판이 있고 예수님 상과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1인당 입장료 500만원)
④ 블루모스크 : 무료입장
누가 교회의 내부가 화려하다고 하는가 !!!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블루모스크는 화려한 샹드리에 내부타일장식,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네랄(첨답)이 6개 있는 화려한 모스크이다
모슬림의 지도자인 이맘이 하얀 모자를 쓰고 코란을 읽는 건지 설교를 하는건지 모르지만 강단 앞에서 열심히 뭔가를 말하고 있다. 불쌍하게도 모슬림 여자들은 출입문 옆쪽 조그만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였다. 남자들이 예배드리는 그 넓은 공간을 두고서, 어찌 이런일이
⑤ 히포드롬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
BC 1500년 이집트 투트모스 3세가 룩소르에 세운 오벨리스크를 AD 390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져와 히포드롬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중앙에 청동제 뱀기둥이 있는데 이것은 BC479년 그리스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만들어진 것을 콘스탄티노스 1세때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상형문자가 세겨진 오벨리스크를 배경으로 사진 찰칵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⑥톱카프 궁전 : 입장료 500만원
술탄들이 입었던 의류 장신구등을 보고 보석관으로 들어갈려는데 입구에서 관리가 별도로 보석관은 돈을 내야 한단다. 애시당초 보석관 입장료까지 받지 보석관 입장권을 끊기 위해서는 또 눈보라를 헤치고 톱카프 궁전 입구의 office box 까지 가야한다는게 힘이들어 관리에게 우리 아이들이 매우 피곤하고 힘들다. office box 까지 못가겠다. 500만원 줄테니 그냥 들여보내 주라라고 얘기 했더니 들여보내 주었다. 사실 이부분은 우리가 office box의 안내문을 아예 읽지도 않고 표를 끊었기 때문이다. 보석관을 제외한 다른 곳들은 입장료가 500만원이고 보석관을 포함한 궁전관람은 천만원으로 애시당초 다른 사람들은 천만원짜리 입장권을 끊어왔다.
보석관에서 오스만터키의 술탄들이 사용했던 루비, 다이아몬드, 에머랄드, 사파이어, 진주등이 박힌 용상 단검 허리띠등 온통 보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감탄을 연발하였다. 보석들이 하도 많이 박혀있어 일일이 셀수도 없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86캐럿 다이아몬드가 중앙에서 빛을 발하며 뭇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⑦지하물저장고 : 입장료 300만원
어느덧 햇님이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안녕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어두움이 내려 앉을 즈음 지하물저장고로 향했다. 336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지하물저장고의 맨 안쪽에 들어가면 그리스 신전에서 옮겨온 메두사의 머리가 기둥을 받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메두사의 머리가 거꾸로 되어 있다. 메두사를 보는 사람은 모두 돌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일부러 메두사의 머리를 거꾸로 놓았다고 한다.
⑧이집션바자르로
눈은 쌓여 길은 질척거리고 눈은 계속 흩날리는 이스탄불 거리를 걷고 또 걸은 하루였다. 이집션바자르에 가서 저녁밥을 먹기로 하고 택시비 400만원에 택시기사와 흥정을 하고 출발하였다. 1660년 세워진 재래시장인데 이집트사람들이 바친 조공으로 세워져 이집션바자르라고 한다. 어느덧 사람들도 상점문을 닫을 채비를 하고 있어 쇼핑은 하지 못한 채 밥을 먹기 위해 케밥집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입장료 및 점심값으로 대부분의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배선애샘과 내가 가진 남은 터키돈으로는 저녁을 해결할 수 없어 6달러로 저녁을 해결했다.
⑨마지막 머큐라호텔로
이집션바자르에서 머큐라호텔까지 600만원에 가기로 택시기사와 흥정을 끝내고 택시에 탔다. 배선애샘 택시요금을 내는데 100만원짜리 한 장 50만원짜리 한 장을 낸거였다. 순간 택시기사 뭐라고 하는데 우린 돈을 더달라는 줄 알고 we have no money 했다. 택시기사 얼굴이 노랗게 변해가는거다. 알고보니 배선애샘이 600만원을 내야 하는데 100만원짜리 한 장 50만원짜리 한 장 이렇게 150만원만 준거였다. 결국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내가방 뒤지고 배선애샘 가방뒤쳐 600만원을 만들어 주고 내렸다. 둘다 택시에서 내리니 터키돈 일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터키의 돈에는 왜 그리 동그라미가 많은지 ....
벌써 일억이 넘은 돈을 썼다.
물한병에 35만원, 화장실 한번 가는데 25만원, 감자칩 하나에 400만원
밤에 호텔에서 일행들의 오늘 일정의 무용담을 듣는데 다른팀은 바가지를 썼다. 분명 500만원짜리를 냈는데 순간 택시기사가 50만원짜리 받았다고 박박우겨 결국 택시비를 더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우린 오히려 50만원짜리 주고 500만원짜리 냈다고 알고 있어 이스탄불 택시기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니 한국의 무서운 아주마의 저력이 여기까지 미치는건 아닐까 ?
1월6일 일요일 변함없이 눈이 펑펑 내림
(주일날 김다솜과 하나님께 예배)
어김없이 6시10분이 되면 모스크에서 울려나는 코란 읽는 소리와 함께 깨어나는 도시는 이스탄불이다. 보스포러스가 보이는 머큐리 호텔에서 이스탄불을 바라보며 또 하루의 문을 연다. 골든혼과 보스포러스 마라마라해엽으로 둘러쌓인 이스탄불에는 물새들이 건물 지붕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다.
오늘은 주일이어서 다솜이와 아침 일찍 일어나 모스크에서 퍼지는 코란 낭송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고 김다솜이 특송, 손영옥과 김다솜 돌아가며 기도하고 마지막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끝냈다. 오늘 김다솜 여행일기에는 엄마 기도 엄청 길었음이라고 썼다. 이 모슬림 땅에도 하나님의 복음의 깃발이 울려 퍼지는 날이 속히 임하기를, 이스탄불 전역에 모스크임을 알리는 무수히 많은 첨탑이 십자가로 바꿔지기를 ....
(이스탄불에서 차나칼레로 출발)
계속 내리는 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스탄불의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쌓인 눈이 얼지 않아서 빙판은 만들지 않는다는 거다.
터키인들은 호텔앞 광장에서 밤늦도록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자기들보다 더 큰 눈사람을 만들어 놓기로 하였다.
폭설이 내린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차나칼레로 향하여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 제설차가 눈속에 빠져 교통에 혼잡을 주기도 하였고 어떤 버스는 전복되어 길가에 버려져 있기도 했다. 아침 7시 45분 출발 10시간은 버스를 탔나보다.
트로이에 들려 트로이 목마와 유적지를 보았다
터키인 English guide인 위미트의 말이 이렇게 추워보기는 처음이랜다.
시베리아 벌판에 온것처럼 칼바람이 몹시 불어 손이 꽁꽁얼고 입이 얼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추위속에서도 트로이 유적지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녁은 에오스에서 호텔부페로 쏘았는데 너무 맛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공짜밥이 아니겠어 !!!
1월 7일 월요일 눈은 그침
(터키의 개인 영어 교사와 함께)
너무 피곤하여 잠이 들었나보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방에 쾌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창문을 여니 호텔앞에 웬 공장에서 (사실 주택이였음) 계속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난 창문쪽으로 코를 내밀고 정신없이 공해를 들이마시며 잠이 든거였다. 새벽4시 30분이다. 화가 나서 일단 세수를 한 다음 Reception으로 항의하기 위해 내려갔다. 호텔 복도에도 매캐한 냄새가 가득하다. "이 냄새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림셉션에 있는 호텔직원이 스팀 라지에터에서 나오는 냄새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거다. 아니다 난 머리가 아프다 라고 했더니 추우니 일단 난로 옆에 앉으랜다. 그리고 이 남자 자기는 밤에 근무를 하는데 너무 지루하다는 거였다. 영어를 너무 잘했다. 나의 틀린 회화까지 정확한 문장으로 다시 고쳐주는 거다. 그리스에서 터키로 일단 넘어왔다고 했더니 그리스남자와 터키남자가 어떻느냐고 물어서 "Turkish nice more than greek" 라고 했더니 좋아서 입이 찢어진다. 호텔 레스토랑에 전화를 했나보다. 모닝커피 두잔을 요리사가 들고 왔다. 1시간 30분정도 대화를 나누고 6시에 호텔로 올라오니 1시간 30분동안 영어 개인지도를 받고 올라온 기분이다. 터키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좋다고 했더니 터키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터키식 인사를 했다. 자고 있는 배선애샘 방에 문을 두드려 배선애샘이 가지고온 볼펜을 얻어 한국산 초코렛과 자이리톨 한통을 준비하여 이 터키인에게 주었다. 내 여행중에 가장 잊혀지지 않는 만남이었는데 난 그 터키인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터키인의 English)
영어는 이젠 지식의 과시나 시험에 패스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생존의 수단이다. 특히 터키인은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 레스토랑,호텔,선물가게,기념품가게,택시드라이버등 대부분의 터키인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잘하는 것 같다.
시험을 위한 수단이 아닌 실생활에서 필요한 도구로 영어가 쓰여져야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터키는 국토면적이 우리나라의 8배로 면적이 넓어 전용버스를 타고 투어를 해야 했으므로 English guide가 동행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터키 가이드는 위미트인데 보스포러스 대학을 나왔고 대학의 모든 수업이 영어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단 1년동안 영어공부를 한 다음 일정수준에 도달해야 상위 class로 진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를 너무 잘한다. 너무 부럽다.
모든 나라의 박물관에는 그 나라 언어로 된 설명과 반드시 영어로 된 설명이 함께 되어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지들은(외국인) 우리나라 말을 배우지도 않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을 제외하고) 왜 우리만 죽자 사자 영어를 공부해야 하느냐며 반박하는 것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에 빠져 볼거야 라고 다짐을 해본다.
아! 아! 영어, 영어
(차나칼레 에서 베르가마로 이동)
요한게시록에 주의 이름을 굳게 잡고 죽임을 당할 때에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은 교회로 칭찬을 받은 버가모 교회가 있는 곳이 베르가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버가모 교회는 페허가 되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세월의 흐름속에 기독교가 찬란하게 빛을 발한 이곳이 지금은 이슬람국가 아래 마을 곳곳에 이슬람 사원임을 알수 있는 첨답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쓸쓸한 가슴을 쓸어내릴 수 밖에, 하나님! 나의 짧은 인생 속에서도 믿음 변질되지 않게 해 주세요!!!
(에페소의 성요한의 무덤에 가다)
에페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자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곳에서 모셨고 죽어 묻힌 곳이다.
성 요한의 무덤앞에서 사진 한 장 찰칵
(쁘리야 뽀스)
에페소 유적지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점이 즐비하게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남자의 성기가 성기부위부터 시작하여 얼굴까지 오는 형상을 한 이상한 남자 목상이 있었다. 모두들 그 목상을 보고 궁금하였겠지만 가이드에게 물어보지를 못하는 거였다. 내가 누구인가 또 궁금한 것 못 참지 않는가.
위미트에게 다가가 what is this? 하고 물으니 this is a priapos 라고 답변을 하며 the god of productivity라고 알려준다. 잠시 후 난 중계방송을 우리 일행들에게 열심 하였다. 저건 신인데 생산의 신이다. 과거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해야 축복이었으므로 남자의 성기를 신성시 한 것 같다는 둥
쁘리야뽀스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와의 사이에서 난 생산의 신이다
1월 8일 화요일
(이즈미르에서 파묵칼레로 이동)
cotton castle을 뜻하는 파묵칼레는 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야외 온천이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혀있는데 우린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모두들 파묵칼레의 따뜻한 온천속으로 들어갔다. 으으 좋아라 아이고 따뜻해
사진 한 장 그럴듯하게 찍으려고 온천 밖에서 한껏 폼을 잡고 난 다음에는 발 시러 죽겠다고 난리다. 동현 철용 바지 다버림. 이날 배선애샘 호텔에서 빨래하느라 힘깨나 썼다. 온천수 바로 위에는 드넓은 지역에 펼쳐진 로마시대의 유적지인 히에라폴리스가 자리잡고 있다. 로마시대의 석관이 널려 있었는데 석관마다 눈으로 덮혀있어 안타까웠다. 누군가가 눈으로 여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는데 너무도 잘 만들어 가슴의 꼭지 부분까지 만들어 논거다. 우린 그 눈사람을 보며 깔깔대는데 배선애샘 아들 저질이라며 어지없이 무너뜨려 버린다.
이날 저녁은 에오스 에서 쏘았다.
호텔에 온천장이 있다는 말에 잔뜩 기대를 걸고 호텔에 체크인을 한 다음 배선애샘은 호텔에서 저녁 식사 후 온천을 하겠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 후 하기로 하고 다른 일행이 오기 전에 난 서둘러 온천장으로 향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쉬면서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난 피로가 쌓여 15분도 채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맛사지실로 갔다. 50세 이상의 터키 남자가 맛사지실에 들어오는 거다. 난 "I need a womam" 했더니 여기에 여자는 없단다 자기가 맛사지를 할 것이며 전혀 문제가 없고 매우 시원하다고 계속 설명이다. 망설이다 맛사지를 받았는데 너무 시원했다. 그 터키남자 날보고 컴퓨터 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오른쪽 어깨가 안 좋다며 계속 혀를 끌끌 차고 집중적으로 풀어준다. 맛사지가 끝나고 나오니 우리 일행 중 서혜정샘과 청주팀 2명이서 맛사지를 예약 할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하면 좋냐고 묻는다. 난 조용히 한마디만 던지고 맛사지사에게 팁1달러를 주고 사라져버렸다.
"처녀는 안하는게 좋아"
후일담 : 이 3명 모두 처녀였는데 내 한마디에 예약을 취소하고 온천만 하고 나오자 계속 터키남자 째려보았다고 한다
서혜정샘이 무릎이 아팠는데 받으라고 할걸 하고 한편 후회도 했다.
1월9일 수요일
(파묵칼레에서 콘야를 거쳐 네브시힐로 이동)
아침에 짐싸는 것은 이제 숙련된 조교다.
별5개의 리치몬드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끊없는 평지를 달리고 또 달려 지하도시 가파토키아를 향해 달려갔다. 이 넓은 평지를 가지고 있는 터키가 못산다는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주위의 많은 나라들이 터키를 싫어한다. 도와주지 않는거다.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도 반대한다. 터키가 못사는 것을 고소해 한다. 특히 그리스인들은 터키를 싫어했는데 오스만 터키 시대 때 무려 400년 동안을 터키의 압제속에서 그리스인들은 살았고 당시 그리스인은 4분의 1의 인구가 감소했다고 한다. 우린 36년 동안의 일제의 압제 속에서 지금도 반일 감정이 남아 있는데 그리스인들은 오죽하랴. 그리스인이 터키로 여행을 할려고 하면 그리스 할머니가 손주도 보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키는 1290년부터 1923년까지 오스만터키의 술탄이 통치를 했고 그후 아타튀르크가 터키공화국을 창설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여성의 지위향상, 모자와 터반의 분리, 라틴글자의 도입, 교육의 개혁등 터키의 근대화를 위해 이바지했으며 자식이 있으며 부정부패를 할 수 있다 하여 자식도 낳지 않고 부인과도 이혼하고 재혼도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아타튀르크를 존경하고 모든 터키의 돈에는 그의 사진이 있다. 그러나 아타튀르크가 하지 못한 것이 바로 토지개혁이다. 오스만 터키시대의 귀족들이 전국토의 90%를 차지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종교상의 이유다. 터키는 이슬람국가이므로 모든 것을 "인살랴" 라고 생각한다
※ 안양팀중에 가장 얌전하게 생긴 샌님의 한말씀 제1탄
제목: 매일밤 귀에서 떠나는 귀걸이
이유: 남편이 삼킬까봐
※ 안양팀중에 가장 얌전하게 생긴 샌님의 한말씀 제2탄
제목 : 얄미운년 시리즈
10대 : 얼굴도 예쁜X이 공부도 잘하는X
20대 : 성형했는데도 표도 안나는X
30대 : 개차반처럼 놀았는데 시집만 잘가는X
40대 : 맨날 골프만 치고 놀았는데 자식이 일류대 가는X
50대 : 남편이 유산 많이 남겨 놓고 죽은X
60대 : 남편이 아직도 월급 착착 갖다 주는X
1월10일 목요일
(네브시힐 에서 가장 큰 도시 가파도키아 에서)
화산활동으로 생긴 자연 지형으로 이루어진 가파토키아는 40년만에 내린 폭설로 덮혀있다. 이즈미르에서 가파도키아 까지 하루 종일 달려온 길에 가시철조망 나무들 심지어 전깃줄까지 온통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끊없이 펼쳐진 평원에 가운데 도로만 놓여있고 도로 좌우의 평원에는 사람의 흔적조차 없이 내린 눈으로 모든 것들을 덮고 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를 형성한 당시의 크리스찬들의 믿음 때문에 지금 우리가 편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도시와 지하교회를 가보았는데 당시 지하도시에는 25.000명이 살았다고 한다. 미로처럼 되어 있어 가이드 없이 들어가면 길을 잃는단다. 지하도시에서 짐승도 키우고 학교, 교회도 있고 공동생활을 한 곳이다. 박해를 피해 지하에서 사람들이 카핏을 짜고 도자기 보석세공을 해서 생계를 유지했으므로 지금도 가파도키아에서는 이 세가지가 유명하다고 한다.
(카파토키아에서 밸리댄스를)
저녁7시 저녁식사와 밸리댄스를 관람하기위해 석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춰 터키 민속춤을 구경하고 밸리댄서가 나와서 열심히 배를 이용한 밸리댄스를 춘다. 이슬람 국가에서 지배계층의 암묵적 승인 내지는 허락하에 지배층들만이 즐겼던 밸리댄스, 온통 모든 여자를 차도르로 감싸게 하고 신체의 일부도 들어나서는 안되는 이슬람사회에서 배꼽을 내놓고 아슬아슬하게 보일 듯 말듯하게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한 밸리댄서의 춤은 당시 지배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흥겨운 음악만 나오면 모두 중앙 플로어로 나가 흔들어댔다. 특히 서혜정언니 완전 춤과 음악에 뿅 갔는데 서혜정언니의 선천적 타고난 소질에 우리도 뽕갔다.
김선겸샘왈 : 선생님들이 얘들은 안 가르치고 모두 춤만 췄나봐
1월11일 금요일
(가파도키아- 앙카라 - 이스탄불로)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하루의 소임을 다하고 떠나가는 석양의 해와 마주하였다. 어느 누가 창조주의 솜씨인 그 아름다운 빛깔을 인간이 만든 색으로 다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붉게 물든 노을을 마주하고 하이웨이를 힘차게 달린다. 석양이 9시 방향에서 이제 12시 방향이다. 터키의 인기가수 타르칸의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바라보는 신의 창작물인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난 가진게 너무 많은 인간이다.
(다시 이스탄불로)
난 이스탄불이 좋다.
무작정 좋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가 좋다.
그리고 터키사람이 좋다.
반드시 다시 오리라 생각한다.
1월12일 토요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의 첫날)
공항에서 일단 이집트파운드로 100달러 환전함
1달러= 4.57파운드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에 도착하자 마자 우릴 반기는 것은 친절을 가장한 위선이다. 뚱뚱보 아줌마 공항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건네주고 비누와 손씻으라고 친절을 베풀며 팁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화장실 칸이 3개 밖에 없는 좁은 화장실에 왜 뚱뚱보 아줌마가 버티고 있단 말인가? 웬 비즈니스...
화장지는 화장실에 비치해 두면 될걸 화장지는 그녀의 손에 있고 화장실 안에는 화장지도 없다. 이집트는 공항 화장실 사용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팁 (이집트에서는 팁을 박시시 라고 한다)은 줘도 되고 안줘도 되지만 얼굴표정이 장난이 아니다. 이집트 일정 내내 이 박시시와의 힘겨운 싸움은 계속된다.
이집트 카이로가 벌써부터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나라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녁을 먹으러 쉐라톤호텔에 여장을 푼 후 호텔부근의 식당으로 나갔다. 횡단보도도 물론 없고 차도를 향해 죽음을 무릎 쓰고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했다. 간신히 일단 중앙선까지 건넜는데 웬 이집트인 남자가 반대편에서 건너오더니 이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므로 자기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겠단다. 웬 수호천사(?) 무사히 이집트인의 도움으로 건너자 이 남자 자기가 선물가게를 하는데 한번 구경하라는 것이다. 우린 피곤하고 배도 고프고 오렌지를 사려고 한다고 했더니 그 남자 가게로 우릴 안내한다.
오렌지 1kg에 1파운드 25피아스타(100피아스타는 1파운드)라는 것을 이미 알고 갔으나 1kg에 2파운드라고 한다. 니가 도움을 준 대가다 그래 내가 바가지 써줄게 하며 그냥 샀다. 계속 이 남자 자기 선물가게로 가서 1분만 보랜다.
"너 내가 이미 알아봤어. 내가 터키 남자는 좋아해도 이집트 남자 No Good이야 임마"
됐다고 완강하게 뿌리치고 서둘러 맥도날드를 찾아 햄버거로 저녁 한끼를 해결했다. 맥도날드에서 내려오니 9살정도의 웬 거지 여자얘가 서있는 것이다. 아! 불쌍타. 나의 감정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거지소녀에게 2파운드에 산 오렌지 3개중 한 개를 건네주었다. 김다솜 나의 거지소녀를 본 순간의 표정, 봉지를 열어 오렌지를 꺼내준 모습 등을 흉내내며 배꼽을 잡는다. 잠시 후 난 약간의 돈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중간 중간에 웬 경찰들이 총을 들고 서있는데 경찰이 모두 범죄자처럼 보이는 것은 웬일
아!! 그리워라 터키 남자들 ....
눈만 마주쳐도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는데
1월13일 일요일
오늘은 주일이어서 김다솜과 단둘이 터키의 이스탄불에서처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 오늘 기도 이스탄불보다 더 길었음.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서)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이다
반드시 하루 종일 보고 시간 제약 없이 천천히 보아야 한다
직접 미이라 방을 들어가 왕비의 미라도 보고 1922년에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투탕가멘의 황금마스크와 황금의자 보물들 그리고 황금관등을 보고 정신이 빠져서 필름이 감기고 있는 카메라를 열어버리고 필름을 잡아 빼버렸더니 카메라가 기절을 하고 말았다. 아 고장난 카메라여 ..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너 때문에 계속 속상하면 여행의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잊어버리기로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한 템포 늦추는 지혜가 필요함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카이로의 칸 카릴리 시장에서)
질척거리는 거리, 곳곳의 쓰레기 더미, 콧수염의 까무잡잡 이집션들이 반기는 칸카릴리 바자르에서 이집트 파라오의 이름표인 은에 히에로클리프(상형문자)를 새겨주는 카르투시를 주문했다. 저녁 6시 15분 meeting이므로 6시까지는 카르투시를 다 해 준다는 말에 다솜, 금희, 미숙 3개의 카르투시를 영어 5글자에 13파운드씩 흥정하여 무려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흥정하는 것도 웃긴다. 일단 한 개당 12파운드에 흥정이 끝났는데 영문자를 써 보랜다 쓰면 영문자 4개가 12파운드고 니가 하고자 한 글자는 5글자이므로 15파운드가 last price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실갱이를 하다 13파운드에 합의를 보고 신청을 하였는데 마산팀이 가게로 들어와 마산팀2개까지 5개를 6시까지 해주기로 하고 가게 안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보스인 뚱보남자 열심히 자기 노키아 핸드폰 자랑이다. 그러자 가방속에서 배선애샘 "너만 있냐, 나도 있다 쨔샤 우리 한국은 대부분 핸드폰 다가지고 다녀"하며 삼성 핸드폰 짠 꺼내니 뚱보보스 눈이 동그래지며 480달러에 팔라고 성화다.
항상 정도를 걷는 배선애샘 "이 핸드폰은 이집트가 서비스지역이 아니여서 이곳은 안된다. 그리고 안판다." 계속 설명을 하니 뚱보보스 500달러로 돈을 올린다
그래서 마산샘과 내가 공짜로 받은 핸드폰 500달러에 팔고 새로 하나 장만하라고 부축였다. 그러자 배선애샘 아마도 이 뚱보가 500달러에 산 다음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팔겠다고 승낙을 했다. 옆가게 에서 어떤 이집트인 자기 핸드폰 삼성 폴더형이라며 가지고 와서 자랑이다. 이 뚱보 작동해 보더니 안되닌까 결국 거래가 되지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 뚱보 보스 마술쇼, 불쇼, 손가락쇼 온갖쇼를 하며 정신을 홀라당 빼놓는다.
아이고 정신없어라
자기가 6개국 언어를 할 줄 안다며 자랑이다
인사말 정도가지고 6개국 언어를 한다고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암튼 영어는 잘한다. 학교에서 배웠다는데 프리토킹이 가능하다. 6시가 다 되어 우리 빨리 가야하니 달라고 했더니 1분이면 된다고 하고 또 5분이 흐르고 결국 15분이 다되어 우리 빨리 가야 하니 달라고 했더니 버스 있는 광장가지 가잖다. 가게가 거기 있다며
우리 일행은 뚱보를 따라갔다.
아휴 미쳐 이 짜샤 내가 너 정신 홀라당 빼 놀 때부터 알아봤어
우리팀 모든 사람이 6시 15분 까지 버스안에 집결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마산팀과 나는 카르투시를 찾아 뚱보를 졸졸 따라갔다.
직접 카르투시를 만드는 가게에 갔더니 세상에 카르투시를 만드는 인간은 또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뚱보와 우리 일행이 들이닥치자 뚱보 뭐라고 아랍어로 한참을 떠든다. 그러자 밥 먹고 있는 인간이 온 얼굴을 찌푸리며 오히려 더 화를 낸다. 다시 이 뚱보 날 보더니 분명 이 가게에서 카르투시를 6시까지 해준다고 했다. 5분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5분이란 바로 밥 먹고 있는 인간의 식사 끝 시간이었던 것이다. 6시 30분에 카르투시를 찾아 정신없이 버스로 튀었다. 15분을 기다리고 있는 나머지 일행에게 너무 미안하여 머리가 다 서는 것 같았다.
아! 사연 많은 카르투시여 ........
(카이로의 한국식당에서)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를 함께 모여 한국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비록 1인당 30파운드였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음식으로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한국식당의 주인 아줌마 손이 요술사 같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 외국인들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빙과 모든 궂은 일은 이집트인이 하고 주인 아줌마는 요리만 하나보다. 주인 아줌마 손을 잡고 아줌마 손은 요술쟁이 손인가 봐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했더니 금방 입에 미소가 피어난다.
아줌마 이역만리 타국 그것도 선진국도 아닌 아프리카의 나라 이집트까지 무슨 사연을 안고 오셨나요. 성공하세요
(밤 10시 30분 람세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
밤10시 30분에 람세스역을 출발한 기차는 아침 10시30분에 아스완역에 도착하였다. 꼬박 12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1등칸을 탔는데 새벽에 추워 실내복 바지 티 남방 모자 목도리까지 있는대로 꺼내 동현 철용 다솜 배선애샘 나 덮고 잤다. 다솜티하나를 꺼내 옆칸에서 추워 쭈구리고 자고 있는 서혜정샘 몸에 덮어주고 왔다. 아침에 화장실에 갖다오니 배선애샘 전부 개놓았다. 아침은 객차직원에게 뜨거운 물 7파운드에 사서 농심 신라면으로 해결을 했다. 역시 라면이 최고야. 한국에 돌아가면 농심에 건의해야지. 왜 국내용에도 영문 사용법이 없냐고요
1월14일 월요일
(필레신전에서)
아스완의 이시스호텔에 여장을 푼후 필레신전으로 향하였다. 필레신전을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건설한 하이댐의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여 있었는데 유네스코와 이집트 정부의 8년간의 문화재 보호 작전으로 아글리카성으로 신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이 신전은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의 어머니인 이시스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수백년에 걸쳐 완성된 곳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카이로의 나일강은 오염되어 감동을 주지 못했는데 아스완의 나일강은 맑고 운치가 있다
내개는 필레신전보다 세계에서 가장 긴강 나일강을 유람하는 것이 더 좋았다.
(아스완시장에서)
아침은 물도 주스도 기타 음료수가 제공되지만 대부분의 호텔이 점심, 저녁식사를 할 때는 일체의 마실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물조차도. 서비스맨이 와서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 하고 묻는다. 우리는 모두 NO, thank you 라고 변함없이 답변을 한다. 왜냐 비싸기 때문이다. 1파운드면 살수 있는 물도 호텔에서는 6파운트를 내야 한다. 이부분에서는 배선애샘과 합의를 본게 있다. 우리가 돈이 없다고 하지 말고 외화유출 내지는 낭비하지 말아야하기 때문이라는 얄팍한 애국심을 갖다 붙이기로 합의한 부분이다.
1파운드도 아까워서 슈퍼에서 1.5리터 짜리 물을 사서 항상 가지고 다니고 되도록 끓는 물은 공짜로 얻어서 라면 끊여먹고 (주의사항: 반드시 차기 여행객을 위하여 흔적을 없애야 함. 절대 호텔에 라면 부스러기를 놓으면 안됨. 애초에 컵라면의 국물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음 한 방울도 남는일은 절대 없으닌까 우린 봉지에 담아 묶어서 도로변의 쓰레기통에 넣었다)돈받는 화장실은 되도록 참고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 1파운드면 250원정도인데도 절약 절약하게 된다. 아마도 한국에서 이렇게 살았으면 진즉 부자가 됐을 것이다.
아스완 시장에서 다음날 먹을 음료수와 과일을 사가 지고 오는데 어떤 꼬마애가 배선애샘을 보고 1파운드라며 자꾸 신발을 닦으라고 하는 거였다. 너무 불쌍하게 생겨 배선애샘 과감히 구두통에 발을 올려 놓았다. 이 꼬마 구두 딱으면서 자꾸 텐파운드 하는 것 같았다. 알고보니 1파운드라고 해놓구선 10파운드를 요구하는 거였다. 못주겠다고 하니 삐져서 그냥 구두통 메고 가는 거다
"오냐 그래 이 나쁜놈아 ! 니 그러면 안돼, 불쌍해서 도 울려고 신발 닦으려고 한건대 받기 싫음 말아라"하고 우린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내가 뒤돌아보니 시장통의 사람숲을 헤치고 이 꼬마가 막 뛰어 오는 거다.
난 투어리스트 폴리스에 가지고 협박하고 결국 맘씨 좋은 배선애샘 2파운드를 주었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이집트에선 가격 흥정을 잘해야 한다.
어느새 돈의 단위가 파운드에서 달러로 바꿔치고, 50피아스타는 0.5파운드인데 50파운드를 50피아스타로 우기고, 마차타는데 일행 모두 5파운드로 흥정하고 호텔까지 오면 어느새 한명 당 5파운드다 라고 우기는 것이다. No 박시시라고 흥정해놓고선 내내 박시시 달라고 조른다. 1파운드면 한국돈으로 300원정도다
이집트! 이집트남자들...
지나가기만 해도 "웰컴" "웰컴"하며 소리치며 환영한다. 먼저 하는말 "재패니스?" 하고 묻는다. 그러면 우린 "No, 서울 코리아"라고 답변한다.
이집트에 적응될 즈음이면 떠나게 될 것 같다.
아! 적응 안되는 이집트
"원달라 원달라 박시시 박시시...."
관광지에서건 화장실에서건 이집트인들은 도에 넘치게 친절하다. 그리고 모두 박시시를 요구하는 거다. 그리고 주지 않으면 No good이라고 한다. 눈빛이 모두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가여운 새 같기도 하다.
매표소의 관리가 한달 월급이 40파운드라고 한다
(확실하지 않지만 정확하다면 우리나라 돈 12,000정도이다)
가난하고 생계를 꾸려가야 하기 때문이리라
때론 연민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안되는 것도 없고 되는것도 없는게 이집트다
1월15일 화요일
(아부심벨사막을 거쳐 아부심벨을 향하여)
몇 년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 정부에서는 단체관광객이 이동할 때는 경찰이 에스코트를 하게 되어 있다. 경찰에스코트는 새벽4시와 오후 1시에 있는데 이 시간을 제외한 다른 시간에 경찰 에스코트를 요청하게 되면 별도로 100달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새벽4시 아부심벨로 향하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태운 투어 버스가 어둠이 깔린 아스완에 집결하여 맨 앞에 경찰이 에스코트하고 계속 10여대의 투어버스가 일정 간격으로 줄지어 아스완 에서 아부심벨 까지 사막을 횡단하여 단 한번도 쉬지않고 3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 사막 가운데 아부심벨로 가는 도로만 포장되어 있고 좌우 모두 물 하나 없는 흙사막이다. 불모의 땅, 메마르고 거친 땅이다. 풀 한포기 없고 여기 저기 작은 바위산이 나타난다.
6시 50분경 사막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대면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였다
사막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다니
너무 기쁜 아침이다. 사막에서 맞이하는 또 하루
해는 붉은 빛을 띄며 서서히 가슴 벅차게 떠오르고 있다
이 감격, 이 기쁨 실로 놀라운 일이다
아! 난 행복한 사람이다.
(펠루카를 타고)
어제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야간기차로 12시간을 달려왔기 때문에 몹시 피곤하여 필레 신전을 다녀온 후 다솜이에게 20파운드를 주고 난 잠을 잤다. 다솜이는 마산팀에 섞여 펠루카를 탔단다. 기분 좋~아했다
오늘은 사막의 떠오르는 태양을 만나고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과 네페르타리신전과 나세르 호수를 들러보고 점심 무렵에 이시스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점심은 호텔에서 박시시 1파운드 주고 뜨거운 물 얻어 라면으로 해결하고 오후에 펠루카를 타러 갔다.
펠루카 누비아인 선장과 1시간에 10파운드로 가격 흥정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어떤 이집트인이 다솜이를 보고 " 너 어제 내 펠루카 탔다, 넌 내 친구다 하며 자기 펠루카를 타라고 하는 거였다" 결국 우리를 두고 두명의 이집트인이 가격 경쟁을 하더니 5파운드에서 3파운드까지 내려가는 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운데서 어정쩡하게 있는데 정의의 사도 배선애샘 맨 처음 흥정한 사람에게 가자며 정리정돈의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5파운드 No 박시시"로 결정을 하고 펠루카를 탔는데 이 누비아인 계속 가격 경쟁을 시킨 그 인간 나쁘다고 욕을 해대는 거다. 자기는 15년 동안 펠루카를 조종한 진짜 캡틴이고 그 이집트인은 "He's garage"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히스 개라~쥐"
그놈이 차고 인건지 "he's garbage" 라고 해야 맞는 것인데 그 누비아인이 단어선택을 잘못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계속 흥분된 상태다. 결국 저 누비아인 제명에 못살겠다며 10파운드 주기로 배선애샘과 합의를 보고 우리가 너한테 10파운드를 주겠다고 했더니 마음이 놓이나 보다.
캡틴이 누비아차 나나를 즉석에서 끊여주어 한잔 마시고 10파운드에 박시시 50피아스타를 주었다. 캡틴은 자기 손님들이 세계 각처에서 보내온 엽서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자랑이다
아스완에서 펠루카를 타고 룩소르까지 2박3일동안 가는 여행 코스가 있는데 2박3일동안 펠루카에 의지하여 나일강을 따라가면 서로가 마음의 빗장이 풀어져 서로를 껴안을 수 있게 되나보다.
결혼했냐고 물으니 아직 안했단다. 자기는 이집트여자도 싫고 누비아여자도 싫단다. 여행객중에서 결혼하고 싶단다. 어느 나라 사람하고 하고 싶냐고 물으니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단다. 그러면서 "인살랴"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 나일강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평화로이 떠있는 펠루카에 몸을 싣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 순간 우린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경쟁도 욕심도 미움도 이기심도 타인과 비교하여 더 많이 가지지 못함 때문에 속상함도 없는 거다.
이 평화로움 많이많이 담아 가지고 가야 되는데
오래 오래 고갈되지 않도록 간직하며 살아야 하는데.....
1월16일 수요일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이동)
룩소르에서 하쳅수트신전, 왕가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을 갔다.
룩소르 서안지역을 투어했는데 이곳은 점심 먹을 곳도 적당치 않았고 또 다시 일단 룩소르 동안 쪽으로 갔다가 점심먹고 또다시 룩소르 서안 쪽으로 오기가 적당치 않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몰아치기 투어가 시작됐다.
이집트 파라오들이 도굴꾼들의 손길을 피해 일부러 계곡에 왕과 왕비들의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이제 이집트의 신화와 벽화에 대해 보기만 해도 짜맞출수 있게 되었다. 맞든지 안 맞든지
오시리스, 이시스 ,호로스 ,아누비스, 아문, 세트 등등
점심을 오후 4시에 먹었다
온종일 왕가의 계곡을 걷고걷고 또 걷고 완전 죽음이었다
힘든 하루였다
입술에 헤르페스가 전체 자리를 잡고 언제든지 터질려고 준비를 하고 손등과 다리에는 햇빛 알러지가 생겼다.
비타민 로얄제리 오렌지 바나나로 완전무장을 했건만 상태가 심상치 않다
밤새 온몸이 가려워 긁다 자다를 반복했다
왜 피부과에 가서 미리 약을 준비해 오지 않았던고 오호 통재라 오호 애재라 후회하면 무얼하리 이곳은 이역만리 이집트 룩소르인걸
1월 17일 목요일
(온종일 자유일정)
카르나크신전 - 룩소르박물관 - 룩소르신전을 순서대로 투어하기로 하고 호텔앞에서 마차를 타고 일단 카르타크 신전에 갔다. 아문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카르나크 신전의 기둥에 압도되었다. 이집트가 파피루스, 동물, 짐승,곡식등 모든 것을 신에게 바쳤지만 딱하나 안 바친 것은 인간이었다고 한다
신전의 기둥에 새겨진 벽화들을 보고 당시이 생산물 생활상등을 엿볼 수가 있었다. 몸이 영 말이 아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이집트인 젊은이들이 사진 찍기를 청하여 함께 사진도 찍었다.
젊은 이집트 총각들 좋아 죽는다
"나 40살이야 임마"
룩소르 박물관으로 갔다
학생요금 15파운드 일반 30파운드다
여행사에서 만들어준 국제학생증을 내미니 안된다며 매표소 직원이 거절을 한다
그래서 5파운드 박시시로 주니 동현 철용 무료이고 학생할인까지 단번에 된다
그런데 이 여우가 내가 제시한 돈 중에서 15파운드나 박시시로 떼어가 버리고 나머지 돈을 거슬러 준다. 도합 20파운드나 챙긴 것이다.
그리고 우린 학생 할인 받아 10파운드를 절약하게 되었다
정의로운 배선애샘은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게 바로 부정부패라는 표정으로
뭐가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다.
몸은 아프고 정신이 아득하다
룩소르 박물관에 갔더니 관리 직원이 나보고 피곤해 보인다며 의자에 앉으라고 자꾸 권한다.
룩소르 박물관에서 나와 또다시 마차를 타고 호텔옆에 드래곤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는데 볶음밥이 맛있었다는 일행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점심을 먹기위해 드래곤으로 갔다. 볶음밥 한그릇 양이 너무 적어 얘들은 두그릇 시켜주고 난 병원을 찾아가고 배선애샘은 바자르를 가기로 했다.
드래곤사장인 이집트인이 택시기사들은 영어를 잘 모를테니 병원을 자기가 아랍어로 써주겠다며 종이에 아랍어로 병원이란 단어를 써준다.
General hospital 까지 8파운드에 마차타고 갔는데 이 마차 주인 지나가는 예쁜여자보고 뭐라고 한마디하고 자나가는 다른 마차꾼에게 소리 소리 지른다 또 뒤돌아보며 내게 기다리겠다고 8파운드에 해줄테니 병원진료 마칠때까지 기다리겠단다.
널려 있는게 마찬데 내가 왜 이 마차를 기다려 라고 해서 타야 한단 말인가
마차나 잘 몰아 이 아저씨야 싫다고 했다.
General hospital에 가니 입구에서 관리인이 오늘 진료를 안 한단다.
그래서 내가 International hospital에 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더니 어떤 이집트인이 아무데서나 사람을 태우고 아무데서나 내려달라는데서 내려주는 봉고차 택시인 비조를 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박시시 50피아스타 줌
비조의 요금이 25피아스타인테 50피아스타를 주니 비조 운전기사 입이 찢어진다.
어떤 젊은이 2명이 옆에 탔는데 담배를 피는거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담배좀 꺼달라고 했더니 너무도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끈다.
병원에 찾아가서 I need a doctor부터 시작하여 이것저것 안 되는 영어 해가며 온 몸이 가렵다를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머리에 쥐가나도록 쥐어짜도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급한김에 바디 랭기쥐로 손으로 긁는 시늉을 했다. 의사에게 처방전 받아내고 약국 찾아서 약 탔다. 입술에 바르는 헤르페스약, 온몸에 바르는 햇빛 알러지 약 그리고 먹는 알약까지,
병원진료비 25파운드, 약값 38.25파운드
아! 똑똑한 손영옥 (우왝)←다솜이가
병원에서 호텔까지 비조택시 타고 또 50피아스타 주니 비조 운전기사 기분 좋아한다
이틀동안 빨래를 못했더니 빨아야할 양말과 속옷이 많다. 사정상(?) 다솜과 내가 한번에 팬티를 2장씩 입었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벗어논 팬티가 8장이나 된다. 몸이 안좋아 "다솜아 니가 빨래좀 할래" 라고 말을 던져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팬티와 양말은 물론 내 티까지 빨아서 넣어 놓았다. 그리고 여행일기를 보니 일기까지 써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칭찬 엄청 해줌. 역쉬 다솜이야
1월18일 금요일
(룩소르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여 다시 카이로로)
전용버스편으로 삭카라의 조세르왕의 세계 최초의 피라미드를 보고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기 위하여 갔다. 입구에서 군인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거다. 이유인 즉슨 클린턴이 피라미드를 방문하여 30분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거였다. 마산팀 " 그놈아 와 집구석에 있지 나와 민폐끼 치고 지랄이고 "
현지 이집트가이드인 미스터 점잔씨 파피루스가게에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 파피루스 가게로 갔다. 실컷 구경만 하다 화장실 사용하고 음료수 얻어먹고 진자 파피루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나왔다. 우리 일행중에 세계사샘이 대표로 파피루스를 샀다. 다시 버스에 올라 재시도를 하니 아직도 출입통제라는 것이다
순간 모두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길로 시도하기로 하고 갔더니 매표소 자체를 close 해 버린거다
표도 못 끊고 서성대고 있는데 곁에 있는 낙타가 재채기를 해서 낙타의 침세례를 받았는데 다솜이 더럽다고 난리다.
기자의 피라미드를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밀어 부치기로 들어갔다
(물론 나중에 tc김선겸샘이 관리에게 박시시 25파운드를 주었고
우리 일행전체의 표값은 공짜였음)
낙타를 타야한다고 내내 기대하며 아이들이 왔기 때문에 우린 낙타 2마리에 5명이서 40파운드를 주기로 하고 탔다. 배선애샘과 내가 한조가 되어 낙타를 타고 동현 철용 다솜이가 같이 탔는데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자꾸만 앞으로 쏠려 맨앞에 탔던 다솜이는 아파 죽는다고 하고 일단 탄 다음에 낙타가 서서히 일어나야 하는데 벌떡 일어나 버려 놀래서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우린 배선애샘이 자꾸 옆으로 쏠린다며 들어가라고 낙타 주인이 소리를 쳤다.약 10분정도 탔을까 낙타주인이 소리친다 "Are you happy ?" 그러면 뒤에탄 배선애샘
"No, I'm not happy" "too short" 라고 외친다
이윽고 우린 낙타에서 내려 돈을 줄려고 지갑을 여는데 배선애샘과 내가 탄 낙타가 벌러덩 누워 버린거다. 배선애샘과 나 찔려서
"낙타가 힘들어서 그랬나봐. 우리 살좀 빼야 되겠어. 세상에 어쩜 낙타가 저렇게 벌러덩 누워버리냐"
쿠푸왕의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맨카우레왕의 피라미드, 그리고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를 보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5시부터 하는 빛과 소리의 쇼를 하기 위해 관리들이 4시 50분경부터 우릴 쫓아냈기 때문이다.
아 아쉬운 피라미드여
(이집트의 콜롬보)
이집트에서 마지막날이다. 새벽 3시55분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했으므로 우린 밤 12시 50분에 쉐라톤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선애샘이 파피루스를 사고 싶어했기 때문에 호텔 1층 선물 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가게 종업원인 콜롬보와 대화를 하게 됐다.
누비아인인데 누비아 이름으로는 콜롬보고 아랍어로는 모하메드란다
자기는 이혼했으며 이집트여자가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했다며 누비아인은 강하고(대단히 강조한 부분임 strong) 부드럽다며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 몇살이냐고 물어 40이라고 하면 기절할까 싶어 32살이라고 했다. 오늘 떠난다고 했더니 대단히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다음에 오면 자기차는 BMW인데 자기가 관광다 시켜 줄거란다
배선애샘은 마음놓고 파피루스를 고른다
"밑천 떨어졌어 빨리 골라"
배선애샘 "계속해"
콜롬보 계속 얘기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아랍어로 하비비라고 하는데 너는 이제 내 하비비라는둥 느낌이 좋다는 둥
너 종교가 뭐냐고 물으니 무슬림이란다
난 크리스찬이라고 했더니 no problem이란다
그때 콜롬보의 14살 조카인 여자애가 들어왔는데 이 여자애도 우릴 보더니 넘 좋아한다. 조카애 예쁘다고 했더니 삼촌 조카모두 좋아한다
배선애샘 골라 논 파피루스 얼마냐고 했더니 우린 이제 친구이므로 50% 할인해 주겠단다. 140파운드 내라고 하는데 우린 가난하고 돈이 없다 했더니 비밀가격으로 하라며 120파운드에 해주었다.
조카애가 1파운드짜리 돈을 가져오더니 우리보고 이름을 써달랜다
나는 내이름을 배선애샘은 이름과 날짜, seoul korea 라고 써주었다.
콜롬보와 주소와 이멜을 교환하고 호텔로 돌아와 또다시 짐을 샀다
이집트 떠나야 한다니 아쉽기만 하다
처음에는 박시시 때문에 화도 많이 났었는데 이제는 적응되어 박시시 뿌리고 다녔는데 정말 카이로를 떠나는 가 보다.
카이로의 밤은 깊어만 간다
1월19일 토요일
(카이로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카이로에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간 다음에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영종도 국제공항까지 오는데는 8시간정도의 시간이 남아 암스테르담 시내를 투어하기로 했다
김선겸샘의 설명을 간단히 듣고 서혜정샘을 포함한 우리 6명은 8시간을 정말 요긴하게 써야 했다. 반드시 3시까지는 스키폴 공항에 와야 한다.
시간이 늦으면 비행기를 놓친다고 단단히 주의를 준다
일단 뿔뿔이 흩어졌는데 우린 스키폴공항에서 먼저 네델란드 화폐인 유로화로 환전을 한 다음 기차를 타고 중앙역까지 가서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물어 물어 안되는 영어 해가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국립박물관에 매표소 직원이 너무 멋지게 생긴거다
서혜정샘 "you look like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하니 얼굴이 빨개지는 거다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는 렘브란트의 야경(the nightwatch) 고호의 자화상(self portrait) 그리고 루벤스의 여러 작품들이 있었다.
특히 조명을 비춘 것처럼 화폭에 빛과 어두움을 표현한 렘브란트의 야경 앞에는 많은 관람객이 저마다 감동에 젖어 응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이 너무 커서 다 보지 못하고 일단 나왔다.
박물관 뒷편 마당의 의자에서 아침에 카이로의 쉐라톤호텔에서 싸준 도시락을 꺼내 꾸역꾸역 먹는데 서혜정샘 동양의 웬 거지떼가 왔나 생각하겠다며 트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며 한마디 던진다
다시 트램을 타고 담광장에 내려 담광장부터 암스테르담을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비둘기떼, 느긋하고 여유있는 사람들, 자전거전용 도로, 빈부의 격차가 없어 보이는 그만 그만한 집들
길을 따라 걷다 암스테르담의 수로를 따라 투어하는 1시간짜리 water taxi를 발견하고 1분 후에 출발한다고 하여 올라탔다.
그동안 여러날 여행중의 피로와 나른한 암스테르담의 겨울 햇살, 안내 방송하는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워터택시에 타자 동현 철용 다솜이는 거의 혼수상태다. 서혜정샘과 나 배선애샘도 가끔씩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힘꼅게 올려야 했다.
워터택시에서 내리자 2시 30분이다. 우린 중앙역으로 가서 스키폴 공항가는 2층짜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KLM 865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을 날아 영종도에 도착하였다.
집 에오니 남편 하는 말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디 갈거야 "라고 묻는다
착한 사람이다.
한국에 와서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국민대 대학원에 전화한 일이다
입학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언제든지 와서 포기원을 내면 등록금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국민대 대학원에 가서 미련없이 입학포기원을 내고야 말았다.
나의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소망한다
나의 여행이 계속되어지기를
하지만 난 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부모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 사업에 장애가 올 때
어느 것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나의 여행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난 조용히 기도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지켜주시기를 ....
이번 지중해 여행에 함께 했던 동현, 철용, 배선애샘, 서혜정샘, 다솜 나의 패밀리들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