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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檀國大學校,Dankook University)는 1947년 11월 3일에 개교한 대한민국의 사립대학교이다. 상징동물은 검은 곰이며, 상징 색은 청색이다. 창학이념은 구국, 자주, 자립이다. 캠퍼스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에 두고 있다. 특히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는 1978년 충청남도 천안시에 국내 대학중 최초로 제2캠퍼스를 설립한 것으로 국내대학교의 제2캠퍼스설립에 기폭제가 되었다.[1][2]
또한 서울에 연고가 있는 대학 중, 기존에 있던 서울캠퍼스의 모든 기능을 수도권 캠퍼스로 완전히 옮긴 최초의 대학교이기도 하다.[3]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전의 서울캠퍼스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2007년 경기도 용인시에 새로 건립된 죽전캠퍼스로 모든 기능이 이전되었고 대학원, 평생교육원 등으로 사용되던 서관이 재단소유의 수익형 임대건물로 남아있다. 옛 서울캠퍼스 터에는 찬반 논란 등을 거듭한 끝에 고급 주택 단지가 조성되었다.[4][5]
교책중점연구기관(정보통신융합기술연구원, 미디어콘텐츠연구원, 생명과학기술연구원)신설 정보통신원 정보기획지원과와 정보통신지원과를 정보통신과로 통합
<천안캠퍼스> 첨단과학대학 대학단위모집(정원 250명)에서 학과별모집으로 전환 (응용수학과, 전자물리학과, 화학과, 생명과학과, 미생물학과 각 정원 50명) 의과대학 간호학과 정원 50명을 59명으로 조정 공학대학 컴퓨터학부 정원 160명을 151명으로 조정 2009학년도 대학원 교육편제 조정 <일반대학원> 교육과학기술부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 선정에 따른 나노바이오의과학과 (별도정원50명:석사25명,박사15명,석박사통합10명)신설 <특수대학원> 스포츠과학대학원 스포츠레저지도학과를 레저스포츠학과로 변경 직제조정
대외협력 부총장, 산학협력 부총장 직제 신설
재단법인(財團法人) 단국대학(檀國大學)은 우리 민족(民族)의 역사적(歷史的) 요구(要求)와 인류(人類)의 세계적(世界的) 요망(要望)에 대응(對應)하기 위하여 오천년(五千年) 유구(悠久)한 문화(文化)를 여기에 재흥(再興)하고 만인공영(萬人共榮)의 진리(眞理)를 부흥(復興)하고 혈맥(血脈)에 흘러온 전통적(傳統的) 우수성(優秀性)을 민족적(民族的)으로 회복(回復)하여 우리와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영원(永遠)한 자주적(自主的) 독립(獨立)과 발전번영(發展繁榮)을 기도(期圖)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정신(建國精神)을 여기에 광복(光復)하는 선도자(先導者)와 창조자적(創造者的) 역할(役割)을 메고 나갈 문화사관(文化士官)을 양성(養成)하여 조선(朝鮮)과 세계(世界)의 부흥(復興)을 위(爲)하여 동원(動員)되는 전선(全鮮)에 배속(配屬)시키는 사업(事業)의 원천지(源泉地)가 되겠다는 자부(自負)와 자긍(自矜)에서 만리붕정(萬里鵬程)에 오르는 때다.
정의(正義)는 이기고 진리(眞理)는 길이 빛날 것이다. 새 세계(世界)의 전개展開)가 그 무대(舞臺)의 중심(中心)을 동방(東方)으로 전존(轉奠)하고 있으니 아득한 그 옛날 사해(四海)를 비치던 그 등대(燈臺)에 이제 봉화(烽火)는 높이 들렸다. 의(義)를 모르고 예(禮)를 상실(喪失)한 얕은 지식(知識)의 무리들의 지배(支配)와 말발굽 아래서 억눌리어 그 천부(天賦)의 낙토(樂土)를 잃고, 그 문화(文化)를 짓밟히고 자유(自由)와 행복(幸福)을 상실(喪失) 당(當)한 채 유리전전(流離轉輾)하는 암흑(暗黑)의 천지(天地)가 몇 세기(世紀)를 되풀이하였는가. 우리는 하늘이 주신 인권(人權)과 그 천연(天然)의 자유(自由)를 확립(確立)하고 만인(萬人)이 갈길을 개척(開拓)하여 자기(自己)로부터 세계(世界)가 한집으로의 낙원(樂園)을 건설(建設)하는 데 우리는 한 개의 횃불이 되고 진리(眞理)의 전당(殿堂)이 되고 인류(人類)의 지표(指標)로의 사명(使命)을 스스로 수행(遂行)하려는 것이다.
진동대륙(秦東大陸)에 아침이 열리니 이름하여 배달([12]≒단국(檀國)·배달나라·배달겨레·배달민족)이라 한다. 대륙(大陸)과 대양(大洋)에 터전한 지리적(地理的) 부(富)와 맥맥(脈脈)히 흐르는 피의 겨레 삼천만(三千萬)의 뭉치가 자기(自己)로부터 비롯하는 세계부흥(世界復興)의 성업(聖業)에 진군(進軍)될 것이다. 이 시대창조(時代創造)의 행진곡(行進曲)에 그 연주(演奏)의 지휘봉(指揮棒)은 들렸다. 우리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同志들과 힘을 아울러 우리와 우리의 後輩들의 길이 그 眞理를 찾고 일을 배우고 글을 닦아 眞과 善과 美의 참된 일군이 여기에서 나고 여기에서 비롯하기를 期하여 한 개의 글집을 세우는 것이다. 1947. 11. 3. 財團法人 檀國大學 設立者 趙喜在 張炯 - 理事長 兼 理事 : 張炯, 理事 : 趙喜在, 朴正淑, 金正實, 李淡, 白原康, 張勳, 李錫夏, 張道斌, 監事 : 金鴻濟 (이상의 내용은「檀國大學 設立 趣旨書」라는 제목으로 1948년 3월 1일『단대학생신문』창간호에 발표됨 -《대학의 길 단국의 길》 2000년판 226~227쪽, 국회도서관.국립중앙도서관 소장도서, 제목: 범정 및 혜당의 교육 열정과 단국의 태동,“단국대학교 설립의 역사적 의미”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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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연구소, 석주선기념박물관, 단대신문, 단국헤럴드사, 단대방송국(D.K.B.S), 퇴계기념중앙도서관, 연민기념관, 광에너지소재 연구센터, 분쟁해결연구센터, 정보통신원, 출판부, 체육부, 125학군단, 사회봉사단, 교수학습개발센터, 평생교육원, 종합인력개발원, 산학협력단, 국제어학원, 강진도예연구소, 인재개발원, 체육관, 보건진료소, 교육개발인증원, 직장예비군 연대, 춘천수련원, 학생상담센터/성폭력상담소, 건축ㆍ도시기술연구소, 교과교육연구소, 나노센서바이오텍연구소, 리모델링연구소, 매장문화재연구소, 멀티미디어산업기술연구소, 법학연구소, 사회과학연구소, 산업연구소, 산업기술연구소, 아시아ㆍ아메리카문제연구소, 인간과학연구소, 일본연구소, 재료화학시험연구소, 지역연구소, 특수교육연구소, 콘텐츠&컨버전스기술연구소, 미래과학기술연구소, 보호복연구소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10층, 수용인원 : 1인실 6명(장애우), 2인실 1068명으로 총 1천74명 수용, 생활편의시설 : 60석 규모의 지하열람실, 2개의 세미나실, 체력단련실과 세탁실, 식당, 매점, 택배보관실, 스낵코너 등
도서관은 1947년 11월 3일 대학의 설립과 동시에 개관, 지상6층 연면적 5,613평의 규모, 2,431석의 열람석 보유, 고시생전용열람실, 대학원열람실, 그룹 스터디룸(14실)등 별도 운영, 86만여 권의 장서와 국·내외 학술지 1,400여종, 30여종의 전자저널, Web DB 및 e-Book을 소장, 그 밖에 어학용 Audio, Video, VOD, CD-ROM, DVD 등 약 16,000여점의 전자 자료와 멀티미디어룸(3실),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자료실, 이용자용컴퓨터 및 원문검색코너가 있음.
동양학연구소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주제인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한국문화전통의 지속과 변용”이 1단계에 이어 2단계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지원기관에 2008년, 선정되어 향후 3년간 6억 9천여만 원을 지원받는다.
한편 동양학연구소는 30년간 진행해왔던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편찬사업을 2008년 10월, 전체 16권을 완간으로 성공리에 끝냈다. 이로써 '세계최대한자전문사전'[13]을 보유하게 되었다.[14] 그동안 자체 예산 285억 원과 국가보조금 25억 등 총 3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방대한 작업이었다. 앞으로는 온라인 검색이 가능하도록 인쇄본을 5년에 걸쳐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동양학연구소는 이 사전을 기초로 <한한의약사전> <한한인명사전> 등 주제별 전문사전을 편찬하는 사업도 병행할 계획이고 “국가나 기업이 후속 사업에 도움을 준다면 사전에 대한 지적소유권을 공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15]
(이미 1996년에 완간한 『한국한자어사전(韓國漢字語辭典)』 전 4권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자와 어휘 8만 4천단어를 수록하고 있어 이를 합치면 총 20권, 당분간 다른나라에서 따라오기 힘든 방대한 규모의 한자 전문사전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만든 한국식 한자, 그리고 한국식 한자용어, 한국 인명, 지명, 제도명, 이두용어, 향찰, 구결 등 약 8만4000단어의 출전을 밝힌 『한국한자어사전(韓國漢字語辭典)』 전 4권은 국학의 가장 위대한 초석이라고 평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16])
민속복식연구가이며 학자인 난사(蘭斯) 석주선은 평생 수집한 복식관계 자료를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다. 단국대학교에서는 보존, 전시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단국대학교 부속 민속박물관으로 설립하였다. 생전 민속학 및 한국복식사분야의 권위자였던 석주선 선생은 일생을 통하여 수집해온 민속유물 3,365점을 기증하였고 1976년 8월 박물관건립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민속학연구소를 설치하고 1981년 5월 2일 개관하였다.[17] 제1종 종합박물관에 등록된 민속박물관은 1999년 3월‘석주선기념박물관(石宙善紀念博物館)’으로 통합되었고 2007년 서울시 한남동에서 죽전으로 옮긴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4844㎡ 규모이며 3개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소장품 4만1550점 중 1500여점을 엄선해 전시하고 있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호인 덕온공주(조선 순조의 셋째 공주)의 당의를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 10종 76점이 있는데 박물관 1·2층의 제1~4전시실에는 9,000여 점에 이르는 민속·복식학 분야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중 제1전시실에는 16세기 출토 복식과 복원품이 있고, 제2전시실에는 광해군 왕비의 저고리, 고종의 누비저고리, 흥선대원군의 자적용포 등 왕실의 복식, 제3전시실에는 관모류·귀고리·노리개·신발 등 복식부속품, 제4전시실에는 왕과 왕비의 대례복을 비롯하여 조복·상복·구군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단국대학교가 조사해 학계를 흥분케 한 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198호)는 실물 크기 복제품과 발견 직후 최초 탁본이 공개되었다. 이 중 단국대학교 소장품인 적성비 파편은 1978년 발견 이후 처음으로 전체가 전시되고 있다. [18]
또한 현재 박물관안에는 해평 윤씨 집안의 ‘단웅이’미라가 전시되어 있다. 단국대학교의 ‘단(檀)’자와 곰 ‘웅’(熊)자를 합성해 붙였다는 ‘단웅이’는 한국 미라 연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한국 미라의 계보로 한국에 연구용으로 기증된 적이 있는 완전한 형태의 미라는 7구뿐인데 그중에서 국내 처음으로 발견된 미라이다. 더구나 2001년 경기 양주시에서 발견된 동자 미라‘단웅이’는 단국대 의대의 분석에 의해 400여 년 전 6세가 되던 해 간염 바이러스와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라와 함께 2001년 출토 당시 미라가 안치돼 있던 목재관과 단웅이가 입고 있던 의복들도 보존처리를 거쳐 함께 전시되고 있다.[19][20]
그외에도 박물관에는 2000년 2월 15일에 보물 569-21호로 등록된 안중근의사유묵(安重根義士遺墨)을 들 수 있는데 이 유묵(遺墨:살아있을 때 남긴 글이나 그림)은 러일전쟁(露日戰爭) 당시 전의(典醫:대한제국 때 태의원에 딸린 주임의 벼슬. 네 명이 있었음)로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만주 뤼순(旅順) 감옥으로 전근되어 근무하던 오리타 타다스(折田督)라는 뤼순 감옥의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안의사가 순국하기 전에 1910년 3월, 감옥에서 받은 유묵으로 1945년 귀국하여 그의 조카인 오리타 간지(折田幹二)가 소장하게 되었다. 오리타 간지는 일본 대학병원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오카야마 대학(岡山大學)병원의 암 진료 권위자로, 1989년 2월중 천안의 단국대학교 병원 개원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장충식 총장에게 기증하였던 유목이다. 장충식 현재 명예총장은 “오리타 간지 씨를 병원 개원 기념으로 초청하자 고마움의 인사로 유묵을 기증했다”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개인이 소장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서 중국 뤼순감옥의 안 의사 유묵은 일본을 거쳐 단국대학교에 오게 됐다.
장충식 명예총장은 이것을 “정치권력에 단 한 번도 아부하지 않은 의연한 대학”에 안 의사의 담대한 영혼이 찾아온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중근 의사는 적국이었던 일본에서 숭모의 대상이 되어 있다. 한시준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매 달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을 정도다. 중국 안위성 선성현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우수한 선지(宣紙)에 2행 16자를 쓰고, 그 왼쪽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서(安重根書)”라고 묵으로 쓴 글씨와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찍혀 있다.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欲保東洋) 일본의 정략을 먼저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先改政略) 세월이 흘러 시기를 놓치게 되면(時過失機)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追悔何及)'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것은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대한민국 문화재정보센터[21], 단대신문(1260호) 2009년 10월 14일 (수) 6면 참조)
단국대학교는 2007년 죽전캠퍼스를 마련하면서 연민기념관을 설립하여 연민 이가원의 기증품을 보관해 오고 있다. 연민은 약 20여 권의 한국한문학 관련 저서를 남겼으며, 1986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서적과 병풍, 서화 등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였는데 특히 경북 안동출신인 연민은 퇴계 이황의 14대 손으로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세계 최대 한자사전인 `한한대사전' 편찬사업에 투신하였으며 그가 남긴 각종 글은 23권짜리 전집으로 정리되어 있다. 연암소설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민은 연암 박지원과 동의어라고 할 정도로 연암 연구에 천착했으며 1986년 살아 생전에 `한한대사전' 편찬사업 대기원의 의미를 기리려는 마음으로 평소의 약속대로 단국대학교에 `열하일기' 원본을 비롯해 귀중한 3만여 각종국학자료를 흔쾌히 기증한 원로 국학자이다.[22][23]
2008년 9월 10일, D-Voice, 단대신문, The Dankook Herald, D.K.B.S(교육방송) 통합
국내 대학에서 대학신문이 본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한 것은 1945년 8.15 광복 이후부터였다. 해방후 서울대, 고려대같은 대학의 신문들이 창간되었는데 1948년 3월 1일, 단국대학 학생회 문화부에서도 《단대학생신문》이 창간되었다(1954년 8월 2일부터는 《단대학보》로 개제(改題)됨). 그리고 1961년 4월 1일부터는 《단대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24]
단국대학교 출판부는 교내 간행물의 질적 향상을 기하고, 간행물을 통한 대학의 학풍조성과 진작은 물론 국내 출판계의 학술·문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서를 출판할 목적으로 1964년 4월 1일에 본교 부속기관으로 설립되어 1968년 2월 27일에 출판의 법적 등록을 마침(등록번호 : 제03-00095호). - '한국대학출판부협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출판부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미국, 일본, 대만의 대학출판부들과도 상호 방문, 출판정보를 교환하며 학술연구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교수의 저작물, 기획출판, 강의총서 및 본교의 부속·부설 연구기관의 학술지를 출판하고 있는데 그동안 총류 및 학술도서, 교양도서, 강의총서가 280여종, 논문집류 20여종의 출판물 등이 있다. 전국 주요도시에 30여 '특약서점'을 두고 출판을 통한 외부 독자와의 유대형성이 되어 있음.(학교안내 참조)
운동선수의 과학적 관리와 합리적 지도감독을 통해 대학의 체육진흥에 이바지하고 애교심과 일체심을 도모할 목적으로 1955년 농구부, 럭비부의 창단으로 설치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체육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1980년 5월 학생처 체육과에서 부속기관으로 승격 독립하였고 이후 1990년 12월 1일 체육부로 개편되었다. 운동부는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여 스키, 빙상, 조정, 스케이팅 등 비인기종목에도 관심을 갖고 육성하고 있다. 현재 총 8개의 운동부가 있다. 축구부, 농구부, 럭비부, 야구부, 씨름부, 스키부, 빙상부, 태권도 등 총 8개의 운동부는 이제 각 부문마다 대학의 강호로 자리잡고 두각을 나타내어 체육의 위상을 국내외에 펼치고 있다. 1976년 창설된 빙상부의 쇼트트랙은 세계적인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동안 단국대학교 체육부에서 배출한 스타급선수들이 많다. 씨름부 출신으로 원년의 천하장사로 인기를 끌었던 이준희와 김영현을 위시하여 야구부 출신으로 올림픽 우승의 주역 오승환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을용, 미국 LPGA의 우승의 이선화를 비롯 박태환,손태진,진선유 등의 스타급 선수를 확보하면서 지원을 확대해 가고 있다. 특히 수영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박태환 세계제패기념'으로 세계수준의 수영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25](학교안내 참조)
단국대학교의 정보통신원은 1978년 3월, 서울캠퍼스는 전자계산실, 천안캠퍼스는 분실로 발족하였다. 날로 발전해가는 정보화사회와 급변하는 정보통신환경에 대처하고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Computer의 이용과 기술에 관한 교육 및 제반 학사/행정 업무의 전산화를 목적으로 1977년 3월부터 컴퓨터의 도입을 추진, 1977년 10월에 ECLIPSE C/330 System을 미국의 Data General CO로부터 도입, 1978년 6월, 정식 가동식을 가짐으로써 단국대학교의 모든 학사행정업무의 전산화 및 재학생의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게 되어, 본격적인 컴퓨터 시대를 열었다.
캠퍼스 이전을 계기로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학의 행정, 학사, 연구 등 전 업무를 D/B구축, 전산화하여 전산망을 통해 대학의 전 구성원은 물론 졸업생에게도 제공되고 있으며, 그 처리체제는 업무의 전산화(종합정보시스템 구축, 단위기관 업무 전산화), 전산망 구축, 서버 구축, WEB으로의 업무처리체제 구축, 사무자동화시스템 구축, 연구지원 시스템, 가상교육, 홈페이지 구축·운영, 컴퓨터(PC) 설치 등, 주전산기 2 Set를 포함하여 총 42대의 Server 및 기타 IT 인프라를 이용, 양질의 학사/행정/교육/연구업무 등을 지원할 수 있게 구축되어 있다.
21C와 함께 정보통신원은 전국에 인터넷 보급으로 다양한 정보화 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에 신속한 대응과 방대해가는 자료에 대한 정보보호를 위하여 시스템 안전체제를 구축하면서 급변하는 정보화환경을 선도하는 대학으로의 진입을 목표로, 죽전(정보기획지원과와 정보통신지원과), 천안(정보통신지원과) 3과 체계에서 죽전캠퍼스에 통합 정보통신과 1과 체계로 개편해 학교의 정보화에 관한 기획 및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관련 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정보화 관련 각종 위원회를 운영, 대학 정보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다 하고 있다. (학교안내 참조)
단국대 천안캠퍼스, 세계적 연구중심大 밑거름 WCU사업 선정 쾌거, 학생중심 실용학풍의 생명과학 교육 허브를 구축하게 되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는 석,박사 대학원 중심의 세계 수준 ‘나노바이오 의과학과’ 신설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계획서를 제출하여 향후 5년간 정부지원금 170억 원을 지원받게 된다. [26] 나노반도체장비 상용화사업과 함께 공고된 원천기술 개발 주관기관은 서울대·핵융합연구센터·연세대·단국대·한양대·고려대 등 6개 대학(연구소)로 결정됐다.[27] 2009년 1월 29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경기도, 민간이 참가해 운영되는 '나노소자특화팹센터'와 단국대학교가 산학협력을 체결했다. [28] 나노팹은 정부와 경기도, 서울대를 포함한 7개 대학 및 연구기관이 1천980억 원을 투자해 2006년 4월 문을 연 나노소자 분야 연구기관이다.[29]또한 2009년 3월 13일에는 카이스트 부설 ‘국가나노종합팹센터’와 학연협약을 맺고 나노분야를 중심으로 석.박사과정 공동운영, 연구시설 및 장비 공동활용, 인턴십 및 방문교수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기로 했다.카이스트 국가나노종합팹센터는 나노기술의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3천억 원이 투입되어 설립됐으며 스탠포드대, 교토대, 서울대, 포스텍, 하이닉스, LG종합기술원 등과 연구협력을 다지고 있는 연구기관이다.(2009.3.16 단국대뉴스 참조)
경기도에서 추진하는 지역협력연구센터로 선정, 2008년 7월부터 2020년까지 경기도청 지원금 4억 원, 용인시 5천만 원, 기업 및 대학 매칭펀드 등 총 8억 6천여만 원이 매년 투입되며, 향후 12년간 총 1백4억여 원의 연구비가 유입되는데 죽전 캠퍼스 대학원동에 ‘광에너지소재연구센터’를 개소하여 운영한다고 밝혔다. 연구센터는 SKC·효성 등 9개 기업 연구진과 함께 에너지 자립화를 위한 미래형 광에너지 소재를 개발할 목적으로 앞으로 태양전지 및 조명소재와 고효율 광소자분야 등 11개 연구 과제를 수행한다. 기업체로부터 연구용역을 의뢰받은 고효율의 유기 태양전지 염료와 접이가 가능한 디스플레이 제작용 마이크로캡슐 개발도 포함된다. (2008.07.04, 단국대 공지사항 참조)
부설 연구소인 분쟁해결연구센터가 “한국의 정치·시민사회 공공분쟁 연구”로 2005년 12월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중점연구소에 선정으로 1단계에 이어 2단계 학술진흥재단 중점연구소 지원기관에 선정되었다. 연구주제 “한국의 정치사회·시민사회 공공분쟁 연구”로 2단계 지원기관 선정, 향후 3년간 6억 4천여만 원 지원받는데 1단계 연구로 헤럴드경제 주관 미래핵심산업 경영대상 수상되기도 하였다. 연구센터는 하버드대학교 PON(Program on Negotiation) 연구소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30] 또한 2009년 3월 9일 노동부의 ‘노사관계전문가 육성사업(NALA Project, 이하 나라사업) 전문교육기관’에 선정됐는데 이번에 선정된 나라사업 전문교육기관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를 비롯해 고려대, 부산대, 한경아카데미, 한국외대 등 5개 기관이다. (2009.3.16 단국대뉴스 참조)
단국대학교의 강진도예연구소는 2008년 12월 2일, 강진군과 함께 지식경제부로부터 국비 50억 규모의 대형 R&D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단국대학교에서는 9억 3천만 원을, 강진군은 8억 7천만 원을 투자하는 등 총 68억 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한편 단국대학교는 2005년부터 전라남도 강진군에 산.학.관 협력을 위한 강진도예연구소를 열고 청자에 대한 학문적,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도예연구와 도자기 생산, 도예강습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계,동계 도예강좌를 마련하고 있다.[31]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은 2004년 4월 설립됐다. 앞서 2001년 생명공학창업보육센터 개소, 2002년 산업자원부 지정 기술혁신센터 개소에 이은 것으로 대학 연구 성과의 특허출원과 기술 이전의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산학협력단은 산하에 ‘창업보육센터’, ‘기술이전센터’, ‘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 ‘단국의료기기시험원’, ‘유기농인증센터’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 및 산업체와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 전자부품연구원, 한국전력기술(주), 한전KPS(주), SKC&C, 삼성SCS(주), NHN(주), 안철수연구소, (주)NK바이오 등과 산학협력을 체결하고 있으며, 천안시·영천시·안성시 등과 관학교류를, KIST등과 학술교류 협정을 맺고 있다. 2008년 8월에는 (재)경기중소기업협력센터와 산업패밀리기관 지정 협약을 체결했고, 건설기술교육원과는 해외플랜트건설기술인력 양성 프로그램 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창업보육우수운영모델 교육부총리상과 우수센터 선정, 최근 4년 연속 정부·지자체 창업보육 운영평가에서 최우수(S) 등급을 받았다. 2001년 설립해 바이오기술을 특화분야로 정한 창업보육센터는 101개사가 입주해 매출 416억 원의 성과를 얻었고, 졸업생 124명을 포함해 566명을 고용했다. 이를 통해 137건의 산업재산권을 취득했으며, 50건(129억 원)의 자금 유치 성과를 이뤘다. [32]
단국대병원, 단국치과대학 병원, 바이오융합기술아카데미, 율곡기념도서관, 정보통신원, 종합인력개발원, 보건진료소, 단대신문사지사, 단국헤럴드사지사, 단대방송국(D.K.B.S), 교수학습개발센터, 사회봉사단, 학사재, 직장예비군 연대, 평생교육원, 학생상담센터/성폭력상담소, 125.1학군단, 기초과학연구소, 생물자원환경연구소, 신소재기술연구소, 유기농업연구소, 의학레이저ㆍ의료기기연구센터, 의과학연구소, 정보기술연구소, 정보디스플레이연구소, 정책과학연구소, 치의학연구소, 협동문화경제연구소, 한국문화기술연구소, 북방문화연구소, 농축산식품바이오연구소, 누리식품바이오사업단, 백합수출연구사업단, 생명공학창업보육센터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8층, 수용인원 : 1인실 6명(장애우), 2인실 1008명으로 총 1,014명 수용, 생활편의시설 : 체력단련장, 탁구장, 공동PC실, 세탁실 등
도서관은 1978년 천안캠퍼스가 신설되면서 구 산업학관(현 제1과학관)에 80평 규모로 중앙도서관의 분관으로 개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규모에 연면적 4,986평, 열람석 2,226석, 48만여 권의 장서 확보, 일반도서, 참고도서, 정기간행물, 석·박사학위논문, 신문, 각종 CD-ROM을 비롯한 각종 전자정보자료 등을 비치, 1993년부터 전산화 7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수서, 편목, 대출, 그리고 정기간행물관리를 토탈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각종 동영상 및 원문정보자료의 D/B구축으로 인터넷 웹을 통한 이용은 물론, 전자자료, AV자료, 위성방송시청도 할 수 있음.
단국대의료원은 환경성질환연구센터와 뇌연구분야의 세계적인 명성의 미국 예일대 뇌유전연구 프로그램으로 2008년 10월 16일 예일대에서 자폐증을 포함한 신경행동발달장애 연구를 위한 협력 의향서를 체결을 하였고 국내 서울대학교병원과 협력지원병원 체제로 구축하고 있으며 심장수술로 세계적인 권위가 있는 미국 오레곤의 세인트 빈센트병원과 자매결연을 비롯 충청남도와 미국 LA 슈라이너스 병원과도 환자에 대한 진료 등에 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중국 길림성 용정시 위생국, 산동성 청도시립의원, 상해시 보타구 위생국 및 이군의원과 의료협약을 체결하여 상호 의료사업 협력과 학문, 연구 분야, 민간의료 분야 교류 등 16개 이상의 의료기관과 의료협약을 체결, 활발한 교류협력을 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와 재미동포들이 고국을 방문했을 때 언제라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특화된 종합건강검진과 치과대학병원을 연계한 치과검진 등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협정을 체결(2009.1.12)하였다.[35] 미주한인회총연합회에 이어 해외 6개 지역 한인회총연합회와 교류협력식을 체결(2009.3.10)했다. 협약을 체결한 한인회는 남미한인회총연합회, 재유럽한인회 총연합회, 대양주한인회 총연합회, 아중동한인회 총연합회, 재중국 한국인회, 캐나다한인회 총연합회이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은 상호협력으로 "해외에서 단국대와 단국대병원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2009.3.11 단국대뉴스 참조)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부속치과병원의 '의료기기임상시험 심사위원회'가 2007년 9월 초 치과계에서는 두 번째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임상시험 실시기관으로 지정됐는데 지정당시 치과계에서 임상시험 실시기관으로 식약청 승인을 받은 곳은 2005년 6월 승인을 받은 서울대치과병원과 함께 단국대치과병원 두 곳뿐이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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