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여행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경.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밤 10시 이전에 숙소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연일 강행군으로 피곤하지만 숙소보다는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계단에 앉아 쉬는 것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한 첫 날, 숙소를 찾는 것조차도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숙소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아 테르미니 역으로 향하려던 무렵, 귀에 꽂히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찾으세요? 한국분이시죠?”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현지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는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숙소는 제대로 찾았지만 문에 눈에 띄는 간판이 없었고, 벨도 어떤 걸 눌러야 하는 건지 몰라 헤맸던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 보낸 천사 구원자 같이 느껴졌다. 가이드의 도움으로 무사히 숙소를 찾을 수 있었고 소매치기를 비롯한 유의사항 등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대충 정리를 마친 시간이 대략 9시 반쯤.
‘매일 밤마다 펼쳐지는 금빛의 향연’
▲ 테르미니 역 근처에 위치한 호텔 (Exedra, a Boscolo Luxury Hotel)
첫 날부터 그냥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헤매면서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던 로마의 밤거리를 다시 여유롭게 걸어보고 싶기도 했다. 결국,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들고 거리로 향했다.
첫 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호텔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똑같은 모양의 건물 두 개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둥이 호텔이라고 불리는 곳이란다. 정확한 명칭은 ‘Exedra, a Boscolo Luxury Hotel’로 대충 고급호텔이라고 보면 된다.
여행 전부터 로마의 소매치기에 대해 너무 많이 들었던 탓에 바짝 긴장했다. 주변을 살피며 삼각대를 펴고 가장 먼저 촬영한 곳이 바로 이 호텔이었다. 이 근처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 건장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영어로 “너무 불안할 필요 없다. 편하게 여행하라”는 취지의 말을 건네고 지나갔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여행객들에 대한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는 듯 했다. 하긴, 여행객들이 대다수의 선량한 이탈리아 사람들마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니 그럴 만도 했다.
▲ '콜로세움'의 야경
야경은 로마에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밤마다 돌아 봤다. 특히 웅장한 ‘콜로세움’은 밤이 되면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사진에서는 그 화려함을 느낄 수 없어 아쉽지만 그 때의 느낌은 잊혀 지지 않는다.
밤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로마의 유적지
로마에서 지낸 둘째 날 저녁에는 첫 날 만난 가이드 분의 소개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무료 야경투어에도 참여했다. 테르미니 역에서 만나 가이드의 안내로 로마에서 야경이 아름다운 핵심 장소 몇 군데를 돌아보는 식이다.
교통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숙소에 돌아와야 하는 문제로 멀리까지 나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정은 크게 천사의 성-나보나 광장-판테온-트레비분수-스페인광장이었다.
▲ 성 베드로 성당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천사의 성’ 건물 앞. 천사의 성 건물을 등지고 서면 ‘성 베드로 성당’의 야경도 볼 수 있다. 도로 정 가운데 자리 잡은 성당이 화려한 금빛 조명을 받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시 뒤돌아서면 ‘천사의 성’이 보인다. 이 건물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들을 위한 묘로 지어진 건물이다. 꼭대기에는 황제의 동상과 전차의 청동상이 우뚝 솟아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요새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시절엔 요새로 사용됐다고 한다.
▲ 천사의 성(왼쪽)과 천사의 다리에서 볼 수 있는 '천사상'
‘천사의 성’을 끼고 우측으로 올라가다보면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이 다리를 ‘천사의 다리’라고 부른다. 이 다리를 지나는 동안엔 ‘천사상’이라 불리는 10개의 조각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또, 이곳에선 ‘천사의 성’과 ‘성 베드로 성당’을 또 다른 각도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밤이 되면 더욱 활기를 띄는 로마
▲ 나보나 광장의 풍경
나보나 광장엔 밤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나며 화려한 조명을 받아 더욱 멋진 분수 앞에 앉아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거리의 행위예술가는 물론 화가들 역시 늦은 시간까지 계속 활동하며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판테온 신전
'판테온' 건물 앞쪽에 위치한 '오벨리스크'
판테온의 야경 역시 절대 놓쳐선 안 된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웅장한 건물은 낮에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사진은 판테온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에서 촬영한 것이다. 장동건의 디지털카메라 CF가 바로 이 앞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판테온을 지나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남녀가 짝을 지어 화려한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은 관광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었다.
▲ '트레비 분수'와 주변 풍경
이밖에도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 등을 포함한 거리 곳곳에는 야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많아 늘 활기가 넘친다. 굳이 유명한 건물이 아니더라도 저마다 금빛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이동시에도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시내 중심가를 돌다 보면 인적이 드물어 두려움을 느낄 일은 없었다. 거리를 지나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광장 앞에 도착하면 여전히 밝게 웃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잡상인들과 마차에 이르기까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상인들의 호객행위도 끊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문을 닫은 상점들 대부분 내부 불을 켜두고 있다는 점이다. 영업은 하지 않지만 저마다 불이 켜져 있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진열해 놓은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로마의 밤거리는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었다.
▲ '스페인 광장'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