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동서문학상 맥심상.hwp
제11회 동서문학상 맥심상(수필부문)
추어탕
최정희
며칠째 뿌연 연무에 시야가 가려 가뜩이나 답답한 심정에 날씨까지 덥게 한 몫 하더니 폭포처럼 퍼부어대는 빗줄기가 내 마음을 아주 시원하게 비워준다. 이렇게 장맛비가 오면 고향마당이 생각난다. 딸을 내리 다섯을 낳으신 친정어머니는 6·25전쟁 중에도 아들을 낳겠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급한 나머지 논 가운데에 척 집을 지으셨단다. 급하게 지으신 까닭에 대들보도 원목으로 삐뚤삐뚤 곡선을 잘 살려 지은 우리 집은 지금 내 눈에 보인다면 참 운치 있게 바라볼 텐데, 그 때는 반듯한 다른 집이 훨씬 좋아보였다. 그런데 정말 거기서 어머니는 오라비를 낳으셨고 내친김에 나와 내 동생 둘까지 덤으로 낳으셨다.
반질반질 윤나는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고향집마당엔 비만 오면 마당과 비슷한 높이에 있던 논물이 차오르곤 했다. 절반쯤 물이 차오를 즈음 마당에는 논에서 미꾸라지들이 기어 올라왔고, 비가 조금이라도 주춤하면 물이 다시 빠져나가 마당에 남겨진 미꾸라지들이 몸을 꼬면서 펄떡이곤 했다. 미꾸라지들의 힘찬 율동을 보면서 우리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소쿠리를 들고 마당으로 달려들어 미꾸라지를 잡곤 하였는데, 이 한바탕 소동은 축축하고 지루한 장마 기간의 별미였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그런 고향집 마당이 생각나곤 했는데 그 마당은 십여 년 전 아버지를 선산에 묻으러 갈 때 보니 주춧돌만 앙상하게 남아 나를 맞았다. 그 휑하던 마음은 아버지를 비운 가슴만큼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지금 이 비가 비우고 있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고 어깨에 힘이 쑥 빠져 터덜터덜 돌아왔었다.
어릴 적 고향집은 자그마한 화단이 있어 노랑꽃창포랑 구기자, 그리고 단쭈시(사탕수수)가 화단가에 나란히 심어져 있었고, 집을 빙 둘러 담장 대신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서 있었다. 단풍나무 위로는 청포도넝쿨이 덕을 지으며 말간 연두색 청포도가 칠월 햇볕에 익어가고, 청포도넝쿨 아래에는 장독대가 있어 장항아리 위엔 청포도 사이로 흘러 든 햇빛이 반짝반짝 아른거렸다. 뭔가 모를 설렘으로 다가가곤 했었던 그 곳엔 어머니께서 담가놓으신 찹쌀고추장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가 담그신 찹쌀고추장의 맛은 왜 그리 좋았던지. 음식에 넣어 먹은 것보다 아마 작은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았던 고추장이 더 많았으리라. 내 꼬리뼈 부분이 쓰라렸던 기억도 향수로 다가오니 말이다.
어머니의 그런 꿈을 먹었던 고향, 청포도를 오물거렸던 마당, 그 앞마당의 미꾸라지 향수를 도심의 빗속에서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와 함께 읊조려본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나 햇빛 맑은 날이면 잠깐씩 도시의 모든 것 비우고 돌아가, 한줄기 소나기로 고향 마당에 마음을 내리곤 하며 추억의 고향 여름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동안 어머니는 여름내 편찮으셨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고 어머니 생신이 다가왔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께 와달라는 전화였다. 이럴 땐 어머니 가까이 살고 집에 있어 어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엊그제 미리 다녀왔지만 생신이라서 가까이 사는 딸이라 또 보고 싶으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을 향해 가는 길로 들어서는 거지요. 나고 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세상 이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살아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 드리는 게 효도지요.”
이 글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내가 보낸 편지를 받고 카페 회원이 보내준 메일 내용이다. 사실 어제는 참 마음 아팠다. 엊그제 어머님을 뵈었을 때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왔고,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오래 살아계시겠니? 잠깐이라도 생신날은 찾아뵈어라. 그게 자식 된 도리이다.”
하시던 오라비 말이 생각나서 오후에 잠깐 다녀오려고 집을 나섰다. 숨쉬기도 힘든 목소리로 전화를 하시면서도 꼭 며느리로서의 딸을 염려하시고 당부 하시는 어머니.
“시아버님이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 잘 모셔라.”
“어머니, 어머니 걱정만 하셔요. 누가 그런 걱정까지 하시래요?”
나는 그런 어머니가 정말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어머니께 짜증을 부릴 때도 있지만, 어머님의 그 말씀은 늘 타성에 젖어 안주하려는 나를 일깨워 주시는 말씀이다.
생신인데 뭘 사다 드릴까? 거리에 서서 한참 생각해도 살 게 없다. 세상에 그 많은 음식 중에 어머니가 잡수실 만한 음식이 없다니 이럴 수가! 잘 잡수실 때는 내가 힘들다고 맛난 것 한 번 제대로 사다 드리지 못했는데, 이제 내가 밥술이나 먹게 되었다고 맛난 것 좀 사다 드리려고 하니 이가 없으시니 마땅히 살 게 없다. 이럴 땐 정말 막막하다. 포도를 잘 잡수시기에 포도를 찾으니 제철이 아니라 포도도 없어 딸기를 샀다. 오늘따라 딸기가 가장 부드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딸기를 사들고 가는데 민물고기 파는 가게가 보였다. 어머니께서 평소에 추어탕을 참 좋아하신다는 생각이 들어 산 미꾸라지를 사가지고 가서 추어탕을 끓였다. 말이 내가 끓이는 것이지 처음 끓여보는 추어탕이다.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추어탕을 같이 끓이시며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뵈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 생각하러 왔다가 추어탕 끓이는 법을 또 배웠다. 어른 말씀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어머니 덕분에 내가 추어탕을 먹게 되었다.
“며칠간 죽만 먹다가 지금 밥 한 숟갈 먹는다.”
하시면서 숨을 헐떡거리시는데 그때 이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생일인데 여섯째딸이 추어탕을 해줘서 지금 먹는다.”
전화기 속 이모님도 덩달아 행복하게 웃으신다. 처음 끓인 솜씨지만 오후 내내 내가 애써 끓인 추어탕을 한 숟갈씩 잡수신다. 행복이 듬뿍 밴 어머니 얼굴.
“내가 이 추어탕을 참 좋아해야.”
어머니는 고향의 추어탕을 잡숫고 계셨던 것이다. 맛있게 잡수시는 어머니 손을 잡아드리는데 손이 아주 차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정신도 가끔씩 가물가물하시니 아뿔싸 이러다가 정말 어느 순간 가시는 게 아닌가 안쓰럽기 짝이 없다. 모시고 사는 오라비는 항상 이럴 거라 생각하니 오라비가 엊그제 한 말이 다시금 가슴에 와 닿는다.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 하시던 말씀이. 이렇게 잠깐씩 와서 어머니를 뵐 때마다 오라비가 참 고맙다. 그리고 나는 많이 미안하다. 손발을 주물러 드리는 내 손을 잡으시면서
“우리 아들 정성 생각해서 내가 살아보려고 이렇게 먹는다. 우리 아들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냐?”
하시면서 그 당당하시던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신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약한 모습을 뵈었다.
“그래요. 어머니. 그러셔야지요. 오라비 같은 사람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요. 오라비 생각해서 얼른 드셔야지요. 그러니 힘내시고 어서 진지 잡수세요.”
약 반, 밥 반. 약을 몇 가지나 잡숫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평생을 자식걱정이시다. 당신 몸이 불편해도 딸 많은 게 죄라시며 늘 시어른께 잘 하라고 하루가 멀게 전국에 퍼져있는 7공주를 독려하시는 어머니. 남보다 선견지명이 있으셔서 동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제일 먼저 어머니를 찾아 의논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어머니. 어머니가 내 나이 때는 신명나게 군부인회까지 이끌어 가셨었다. 우렁찬 목소리로 활동하실 그때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크게 한몫 하셨을 분인데 아깝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던 어머니. 그러셨던 어머니가 이렇게 힘이 없으시다.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더 잘 해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제 가족 홈페이지에 '생신 축하합니다!' 라는 미리 축하 글을 올리면서 참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었다.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이 있어. 어머니는 보지도 못하시는데, 그냥 한 번 더 찾아뵙는 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쭈글쭈글하고 차가운 손이 되었지만, 우리 구남매 키우시느라 한 때는 그 손이 얼마나 따뜻하고 바쁜 손이었던가! 한 번 더 잡아드리는 게 효도라는 어떤 분의 편지가 오늘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부모님은 우릴 기다리지 않으신다. 가실 때는 말없이 어느 날 훌쩍 떠나신다. 그때는 평소에 못해 드린 것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현재의 위치에서 힘닿는 대로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전화라도 자주 드리는 것이 효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지금은 힘이 없으시지만 아직도 목소리는 우렁차고 기상 있는 아름다운 인생을 사신 분이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을 향해 가는 길로 들어서는 거지요. 나고 가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세상 이치니'
앞으로의 여생을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어머니 젊은 시절의 추억의 추어탕을 드리면서…….
동서식품에서 보내온 캘리그라피상패와 커피와 수상집
수필로는 처음 도전한 제11회 동서문학상
맥심상 위로 있는 상을 바라보면서 아쉬움과 부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마치 미꾸라지가 헤엄치는 듯한 상패의 추어탕이라는 글씨와 내 이름이
무언가 모를 정을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맥심이라서 맥심상이라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고 친근하다.
이러다가 영영 맥심상만 타는 게 아닐까?ㅎㅎ
좋아하는 맥심 커피 마시며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격려와
캘리그라피로 하나하나 수상자의 작품명과 이름을 새겨준 동서심품의 마음씀이 고맙다.
차가운 상패보다는 따뜻한 분들의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상패를 받았다.
더욱 정진하여 좋은 작품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이 준 수상 기념으로 준 선물 브롯치이다.
내가 하는 일에 크든 작든 항상 곁에서 응원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그 마음에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나를 응원해주는 마음들이 있어 이렇게 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