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교육열이 유난히 뜨겁기로 유명합니다. 얼핏 보면 한국의 교육은 다이내믹 그 자체입니다. 특히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며 모든 것을 바치는 학부모들의 열정과 희생은 정말이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한데, “우리의 교육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인성 교육에 문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가진 게 많아도 사람 됨됨이가 엉망이라면 사회에 유익하지 못 하고 되레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육은 인간교육에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는 탄식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듯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성, 정직성이 기본인데 이러한 기본 요소들이 점차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반(反)부패인식지수는 기대 이하입니다. 얼마 전 한국투명성기구가 준법·윤리·도덕성과 관련한 질문을 던져 얻은 설문 결과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제일 눈에 띄는 응답은 알게 모르게 퍼져있는 부패 불감증입니다. 요컨대 응답자의 18%가 “10억 원을 받게 되면 10년 감옥 가도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생각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10명에 2명꼴이라지만 돈이면 감옥살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쯤 되면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주의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돈의 노예화’가 심각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유사한 항목들도 오십보백보입니다. 가령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응답이 46%였습니다. 또 “권력을 남용하거나 법을 위반해서라도 부자가 되는 건 괜찮다”(17%)거나 “인터넷 자료를 짜깁기했더라도 꼭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35%)는 응답도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현실인식을 반영합니다. 청소년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싱싱하고 정의에 불타며 무엇보다도 정직한 이름이 아닙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름이 퇴색할 대로 퇴색해버렸습니다.
청소년들만 나무랄 수 있을까요. 기성세대도 연대책임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성장기 청소년들의 ‘역할모델’에서 사라져버린 탓이 크다고 봅니다. 어쩌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들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인성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고, 입시전쟁에 내몰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지도층은 또 어떤가요. 대형 비리사건이 터졌다하면 알만한 얼굴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마당에 청소년들에게만 청렴성, 사회정의,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건 낯 뜨거운 노릇이죠. 윗물이 맑지 못하면 아랫물까지 흐려지는 건 뻔한 이치 아닌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반적인 교육을 통해 인성교육을 성공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물질 만능주의가 판치고 인터넷 등 유해환경에 의한 오염도가 치유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에서 교육은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됩니다. 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꾀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해결책은 바로 기독교 교육입니다. 한 인간을 사람의 힘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절대성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되도록 할 때 진정한 의미의 인성함양 및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식하게 될 때 양심이 작동하고 인성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녀의 바람직스럽지 못한 행동을 고치려고 할 때 부모가 일일이 자녀에게 간섭하고 잔소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상의 이상야릇한 프로그램들을 즐기려는 자녀를 이런 저럼 방법을 동원해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겠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자녀에게 말이나 소처럼 고삐를 매거나, 개나 고양이처럼 목걸이나 방울을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죠. 중요한 것은 자녀의 마음가짐과 의식을 바로잡아주는 일인데, 그러한 작업은 자녀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할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신흥고등학교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모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학교로서 훌륭한 인성교육의 요람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16)란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교과서로 삼아 배우고 갈고 닦는 신흥고는 정말 축복받은 학교라고 여겨집니다. 모교의 선생님 한 분 한분, 모든 선생님들이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해오고 계십니다. 특히 양영옥 선생님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제가 재학당시 선생님은 교감선생님이셨습니다. 교감선생님 자리는 학생 관련 업무를 관리 감독함은 물론 학교 살림살이를 전체적으로 도맡아 챙기는, 고되고도 책무가 막중한 직책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그 책무를 엄격하고도 신실하게, 그리고 혼신을 다해 수행하셨습니다. 특히 선생님은 잠바 차림으로 학생들의 수업태도 등을 세심하게 돌아보시고, 학교 구석구석을 일일이 살펴보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모교학생들이 다른 학교학생들에 비해 품행이 단정하고 맘 놓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이나, 모교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된 배움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한결같은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백해무익한 담배를 손에 대지 않는 것도 신흥고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검소한 옷차림과 겸손한 인품은 모교 선생님들로 하여금 제자 사랑에 더욱 앞장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검소한 삶을 생활화하시며,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신 선생님은 ‘마더 테레사’라 불리는 테레사 수녀를 연상케 합니다. 선생님은 언제 뵈어도 소박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모교를 하나님의 말씀아래 바로 서가게 하시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이셨습니다. 성경에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출애굽기 9:16)는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셨고, 그 사랑에 힘입어 모교는 기독교의 명문사학으로 줄기차게 성장해올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은 모교가 정직한 학교로 거듭나도록 하는데 유달리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학교매점에서는 참고서 가격의 상당액을 할인해 학생들에게 공급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특정 참고서를 교재로 정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프리미엄 같은 것을 주고받는다는 소문이 나도는 때였습니다. 참고서 값이 훨씬 싼 우리 학교 매점을 다른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저는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학교경영의 이 같은 투명성과 도덕성, 정직성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같은 전통은 선생님이 주도하셨고, 이러한 노력은 모교가 기독교 학교답게 반듯하고도 비전 넘치는 학교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흥고에 들어가면서 인생이 확 바뀌었습니다. 이웃에 살던 모교 선배가 구해온 신흥고 입학원서를 작성해 제출, 시험을 치렀고 감사하게도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제가 신흥고에 입학한 이후 저희 부모님과 형제들, 친척들도 예수님을 믿게 됐고, 저의 가족은 믿음의 가문이 됐습니다. 참 놀라운 변화입니다. 제가 다른 학교로 진학했더라면 예수님을 영영 영접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생각하면 아찔하기조차 합니다. 제가 신문사에 들어와서는 미국 뉴욕특파원의 기회도 얻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북 완주군 조촌면으로 현재는 전주시 권역입니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 바로 옆 동네죠. 세계 최고 선진국인 미국을 가서 보고 취재활동을 하게 된 것은 저 같은 시골 촌놈에게는 상상조차 못한 ‘사건’ 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덕이었습니다.
미국 활동을 통해 저는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임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현재 저는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예배에도 참석하고, 한글학교의 교사로 봉사하는 등 외국인들과 친밀하게 보내는 편입니다. 하나님의 같은 형제자매로서 함께 어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구촌 형제자매들은 비록 국적과 피부색, 문화 등이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동일한 자녀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교는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해준 부모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양영옥 선생님은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실천으로 제게 각인시켜 주신 큰 스승입니다. 선생님은 화려하지 않지만 꿋꿋하셨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심으로써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우리사회가 깨끗하고 수준 높은 선진국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는 말씀처럼 세상은 너무도 험하고 거칩니다. 이런 때일수록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힘써야 할 것”(로마서 12:2)이라고 생각합니다.
모교는 특별히 선택받은 학교임에 틀림없습니다. 양영옥 선생님의 참 교사상, 큰 스승상은 신흥인의 가슴마다에 깊이깊이 아로새겨져 길이길이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그 큰 스승상은 지역과 국가와 세계를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신흥인 들에게 시들지 않는 표상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미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저로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사탄과 마귀가 틈타지 않게 해주시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도록(고린도전서 10:31) 기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문집 발행에 졸필로나마 참여할 수 있어 기쁘고 감사 합니다.
최 문 갑 (대전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