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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혜경이야"
저녁을 다 지어 놓고 잠깐 나간 남편과 둘째를 기다리는 사이 큰방에서 들리는 전화 벨소리. 이 시간에 누구지? 흔치 않은 저녁 무렵 전화였다. 그런데 혜경이라니!
진부한 말이지만 강과 산도 변한다는 십년만의 통화였지만 저편에서 들려 오는 음성은 아주 귀에 익숙한것이었다. 지금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혜경이의 한껏 달뜬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하는 짧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반가움 보다는 놀람의 탄성이었다.
초등학교 친구 소개로 다녔던 회사 아래층에 일하던 혜경이는 동갑인데다 그녀의 활달하고 늘 웃음기 가득한 표정때문에 나 같이 소심한 사람과도 금방 친해질 수 밖에 없는 타입이었다.
그러니까 혜경이는 나와 친구가 되기 이전에 채연이의 회사 동료였다가 친한 사이가 된 경유였다
통통하고 작은 키에 웃으면 양쪽 보조개가 패이고 성격은 서글서글했던 기억들이 화다닥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단박에 나를 젖게 만들어 버렸다. 딱 한번 뿐이었지만 토요일 퇴근 무렵인가 그 애와 단둘이 점심을 먹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 날은 오후 근무가 없는 토요일로 비가 와서 한 우산 속에 둘이 들어갔던 기억. 비도 오고 집에 그냥 가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단둘이 퇴근하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이라서 점심사줄게 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었다. 당연히 밥 값은 내가 지불했고 혜경은 볶음밥을 맛있게 먹으며 다음엔 자기가 사겠노라고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형제가 자그만치 열 한명이나 되는 데 그 중 혜경이는 아홉째여서 언니, 오빠들과는 나이차가 많이 났었다.
그래서 나이차가 제일 많이 언니나 오빠들 하고는 서름서름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는 속사정까지 조심스럽게 비치기고 했었다.
바글바글 형제 많은 집에서 사는 혜경에겐 남모를 어려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놀람움이 가라 앉고 대신 반가움과 궁금증이 섞인 음성으로 소식이 없다가 어떻게 연락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좀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나 또한 흥분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어 연이 닿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 만나게 되 있구나하는 불교의 인연설이 떠올랐다.
" 싸이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채연이 홈피를 본거야.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사진 밑에 혹시 채연이 아니냐고 누구 남편 되지 않느냐고 써 놓으니깐 글쎄, 자기가 채연이 맞다고 난리더라. 그래서 바로 통화하고 너한테 하는거다. 무지 반갑다, 야."
우리 둘의 대화는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아줌마와는 동떨어진 스물 다섯의 호들갑스런 수다로 시작되었다.
스물 다섯 아가씨에서 서른 다섯 아줌마로 껑충 건너뛰기를 한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마흔을 넘고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지라도 우리들의 대화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외모가 변했다고 속마음까지 똑같이 달라지는 법은 아니다.
스물 다섯의 은빛 찬란한 싱싱한 잉어 같았던 우리들의 젊은 시간들이 그물망에 걸려 파닥파닥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 결혼 전에 일본에 갔었잖아. 한국에 돌아와 면세점에서 삼년 일하고 일년 연애해서 결혼했지."
그 당시 어떤 까닭이었는지 나나 채연 모두 혜경이 결혼 소식만 나중에 들었지 언제 누구와 어디서 결혼을 했는지는 몰랐다.
내가 제일 먼저 결혼했을 당시 채연이와 혜경이는 함들어 올때부터 야외 촬영 그리고 결혼 피로연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내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였다.
그래서 나도 그 애들이 결혼을 하면 당연지사 받았던 도움을 돌려 주어야지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누구도 앞일을 장담못한다더니 채연이 결혼식 날 나는 참석을 못했다.
그 당시 큰 아이를 출산한지 몇 주일 밖에 되지 않은 터라 한달 동안은 외출을 삼가하고 집에서 몸조릴르 잘해야 한다는 말에 꼼짝없이 친정집에 머무르고 있어야만 했다.
채연이가 결혼을 하고 일년이 지나 첫 아이를 낳고 돌이 되었을 때야 만날 수 있었다.
그 이후 둘 다 아이 엄마가 된 이후로 채연이는 좀 멀리 떨어진 거리에도 불구하고 애하고 같이 놀러 오곤 했었다.
그나마 채연이를 통해서 혜경이가 우리들한테 종종 떠벌리곤 하던 이상형과는 맞지 않는 애매한 남자와 결혼한 것 같더라라는 두리뭉실한 뜬구름 같은 말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그 후 채연이 입을 통해서 혜경이의 결혼 생활이나 그 향방에 대해선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혜경이 편에 의해서인지 그냥저냥 이유에서였는지는 확실한 게 없는 처지였다.
" 야, 목소리는 똑같구나. 애는 몇 살이야.?"
다섯살 짜리 남자 애 하나라면서말도 안 듣고 눈이 작아 못생겼다고 했다.
남편은 한살 어린 연하라니 마흔을 넘긴 남자와 사는 나로서는 조금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결혼 십일 년 차에 사내 아이들만 연년생을 둔 나로서는 이제 갓 오년 차 주부에 달랑 애 하나 딸린 혜경이가 신혼 부부 같이 보였다.
동갑내기가 아닌 언니로서의 동생을 대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혜경은 임신 기간 동안 당해야만 했던 시어머니의 모진 시집살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과 남편이 투잡을 하는 데 출장을 갔다 하면 일주일이 기본이라는 것과 그동안 너희들 소식 궁금했다면서 곧 저녁 상을 차려야 하는 내 입장은 안중에도 없이 떠들어 댔다.
십년만에 할 얘기가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그동안 내면에 쌓인 불만이 많았구나,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지만 혜경이의 목울대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폭소수 같은 말들엔 외로움이라는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 허허로운 가루 맛이 전화선을 빠져 나와 내 혀 끝에 감겨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결혼한 여자만이 느낄수 있고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들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경기도 벽제 쪽에 살고 있다는 혜경은 도심지에서 외떨어진 주거 환경으로 인해더욱 막막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예전에 둘째 동생이 파주로 이사해 살때 그 애는 새로 이사한 곳의 편의점을 낱낱이 소개하면서 언니도 이 근처로 이사왔으면 하고 여러 차례 말을 꺼냈었다.
제부는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고 동생은 유치원 원장의 꿈을 안고 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세, 네 시간씩 하는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열성 우먼이었다.
또 그 와중에도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싸돌아다니느라 정작 집에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활달하고 거침없는 돌발적인 성격을 가진 동생이 부러울 때가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파주는 그때 당시 한창 신도시라는 미명 아래 논밭을 갈아 해치우고 그 자리에 우뚝우뚝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을 세우기에 열이잔뜩 올라 있었다.
그래서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들어서 있는 아파트를 볼 때면 마치 견본 주택인 양 저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정도로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통화할 때마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과장되게 떠벌리던 동생의 속마음은 실은 살기 좋은 환경이래서가 아니라 썰렁한 주변 환경에 처한 스산한 마음을 피붙이와 더불어 살면서 어떻게든지 이겨 내보고 싶었던 것이다.
차후에야 동생의 진짜 속마음을 간파했을 때, 동생은 그곳에서 벗어난 직후였다.
그것도 저 혼자 묵묵히 떨어져 나온 상태였다.
남편과 아이들이 남아 있는 둥지 밖으로 나와 친정과도 연락을 두절한 동생 생각에 멀미 비슷한 메스꺼움이 일순 출렁거리다 가라 앉았다.
그 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구와?
무슨 이유로 가정을 뒤로 하고 그 애를 꼭꼭 숨어 버리게 만들었을까?
처음엔 제부를 의심하고 조심스레 연락도 취해 보았지만 속시원한 이유는 알아 낼수 없었다.
휴대폰 신호음만 갈 뿐 그 애의 목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문자를 전송해도 매번 무반응으로 대처하던 한번 돌아서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얼음장 같은 동생.
혜경이는 나한테 채연이와 약속 날짜를 정한 다음 자신에게 일러 주기를 바랬다.
나도 채연이와 연락한지도 오래 되고 해서 그러마하고 조만간 만날 곳을 약속하고 삼십 여분만에야 수화기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남편과 아이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 영길이 일본에 가 있는 동안 고생 엄청 했다 하더라. 옛날엔 통통했었는데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 뛰느라 말이 아니었나봐. 사십 팔 킬로밖에 안된대. 그래서 둘째가 안 들어선다고 하나봐. 여자가 너무 말라도 기가 빠져 그러겠지. 여잔 좀 촉촉한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말 끝을 흐리며 실실 웃던 채연이는 자조적이었다.
채연이는 첫 애 이후 칠년 동안 갖지 못하고 있는 재임신에 불안감으로 혜경이와 진한 동질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결혼을 해도 자식을 낳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남에 따라 출산장려책과 더불어 나라에서 돈을 지불해야만 자식을 낳는다는 요즘 같은 마당에 두 여자는 어떻게든 또 한 명의 자식을 낳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터라 진정한 애국자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그동안 임신의 두려움때문에 피임을 철저하게 하는 나와 다르게 두 친구는 임신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면서 살고 있었다니 우월감 내지는 묘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지만 원치 않는 임신과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조치를 치르는 과정을 떠올리면 치가 떨리고 두꺼운 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처럼 답답증이 솟아 올랐다.
2호선 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인 신촌에 내려 지하계단을 올라가니 바로 백화점 정문 앞이었다.
나다니는 발발이 성격이 못되는 편이라 지금 타고 가는 지하철도 면 년 만에 타보는 것 같다.
요즘 같은 때에 나 같이 방콕 스타일의 주부가 있기는 한 걸까?
나의 이러한 생활방식에 제일 답답해하고 불만이 컸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 밖에 한번 나가서 봐라. 요즘 여자들이 어떠게 하고 다니나. 직장을 다니든 안 다니든 얼마나 잘 꾸미고 다니는 데 넌 그게 뭐냐, 맨날."
돈줄테니 옷도 사입고 다니고 하라는 남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정말 자상한 남편다운 것이지만 그 이면을 파헤쳐보자면 소름끼치는 모욕감이 숨어 있음을 알수 있다.
외출이라곤 남편과 아이들을 동반한 것이 대부분이고 또 자가용을 이용하다 보니 지하철을 타니 놀이 공원에서 생소한 기구를 타는 것처럼 느껴지니 나도 모르게 푹, 한숨이 나오고 만다.
그렇지만 일요일 한낮 애 둘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떠 맡기고 만나고 싶었던친구들을 만나 실컷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을 생각을 하니 더욱 기분은 업 되는 것이었다.
일년 만의 외출. 가족이 아닌 나 혼자만의 외출을 작년 이맘때 채연이를 만나고 처음이니 나도 참 인간관계 좁고 한심한 아줌마구나 하는 씁쓰레한 기분도 덩쿨처럼 뻗쳐 오르는 것이었다.
간만에 친구들 만나는 건데 돈 좀 주겠거니 했더니 교통카드만 휙 던지고 마는 남편이 야속하고 미웠지만 그래도 애 하나 달라 붙게 안하고 나온 것만도 다행이다 싶은 마음으로 자칫 가라앉아 버리려는 쓴 기분을 유지하려고 달래면서 나왔다.
작년에 이어 일년이 지난 올해도 남편이 몸담고 있는 회사는 점점 회생이 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자연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남편은 술과 담배 밖에 의지하고 풀데가 없는 양 초췌해져 갔다.
마음이 평화로울리 없는 남편에게 애를 맡기고 나오기란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저버릴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내가 집에 있는다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이나 보고 있으면 상대방 때문에 생기는 한숨 소리에 스스로 놀랄 수도 있다. 그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아직은 한 낮 더위가 남아 있어 지하철을 빠져 나오자 와락 달려드는 후덥지근한 더위를 빠른 발걸음으로 쫒아 버렸다. 햇볕이 따갑고 귀찮게 달라 붙었다. 하는 수 없이 백화점 정문 안으로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채연이가 먼저 올거라는 예상대로 전화를 걸어 온 채연은 금방 너 있는 대로 갈게 하더니 말 그대로 일분 만에 나타났다.
레이스가 풍부한 희 반팔 블라우스에 도라지꽃 치마를 입은 채연은 요즘 유행을 타는 연애인들 가방처럼 파스텔톤의 큰 가방을 갖고 있었다. 유독 큰 가방때문인지 얼핏 메이크 업 강사 처럼 보이기도 했다.
외모와는 반대로 꾸미기를 잘하고 자신을 위해 철저하게 투자할 수 있는 채연이었다.
비록 요즘 유행하는 에스라인 몸매는 아니었지만 통통한 몸매를 옷으로 충분히 카바하고 다니는 채연에겐 센스가 있었다.
변한게 없다면 연한 갈색의 웨이브가 풀린 좀 어수선한 머리 스타일만 빼고.
물빠진 청바지에 흰 티를 받쳐 입고 며칠 전 남편이 사 온 가방을 한쪽 어깨엔 걸친 내 패션은 박물관감이다. 근 십 육년을 고수해 온 티와 청바지 차림은 내 이십대 사진을 봐도 한결 같은 차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발을 그 흔한 샌달도 아닌 남편이 혐오하는 흰색젤리 슈즈라니.
젤리 슈즈는 재작년인가 막내 시누이가 여러개라며 하나 갔다 신으라고 해서 얻어 온 것이다.
신발장엔 샌달이 두 켤레나 있지만 굽이 거의 없는 신발만 신다가 오센티 올라간 신발을 신으면 갸우뚱 중심을 잃고 걷는 기분이 드는 까닭에 만만한 게 젤리 슈즈가 되어 버렸다.
채연인 작년에도 신고 나온 이 신발을 기억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운지 오개월이 되어 간다는 채연은 삼킬로 정도 빠졌다며 앞으로 오킬로 그램만 더 빠지면 좋겠다고 다이여트를 불살랐다.
인라인 스케이트라면 아이들이나 타는 놀이인 줄 알았는데 채연이는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니 나로선 대단한 아줌마 파워로 밖에 볼 수 없다.
모든 일에 매사에 적극적인 그녀다운 일이다.
한참 나이 마흔살에 몸짱 아줌마가 인기를 끌더니 요즘은 요가를 비롯해서 에스라인 몸매 만들기가 급물살을 타고 매스컴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짱이니, 쌩얼이니 하는 쏟아지는 신조어들을 보면 요즘 세상은 외모지상주의 천국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었다.
몸매 꽝이고 얼굴 밋밋한 사람들은 고개로 들고 다니지 말라는 식인가.
말 그대로 사람 외모가 먹여 살려주는 극단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강남에 있는 성형외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살이 좀더 빠지면 임신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다는 야릇하고 비굴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채연에게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첫애가 올애 일곱살이니 칠년 동안 불임녀로 살아온 여자답게 인상에 실린 비장함이 느껴졌다.
영길이의 늦는다는 갑작스런 전화에 우리 둘은 잠깐 망설이다가 백화점을 빠져 나와 케이크 조각과 음요를 파는 곳으로 들어갔다.
치즈 케익 한조각과 차 두잔에 만 육천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망설이는 나와는 달리 채연은 굳이 자기가 낸다며 스스럼없이 지갑을 꺼낸다.
푼돈에 연연해하는 전업주부와는 달리 취업주부로서의 당당한 돈 쓰기가 몸에 배여 있는 제스처다.
돈을 버는 내가 당연히 내야지 않겠니하는 무언이 담긴 모습이 당당해 보였다.
치즈 케익 한 조각과 그린 티, 카페오레를 주문하고 마주앉은 채연과 나는 일년 만에 보는 것이지만 작년 이맘때 장소가 신촌인 만큼 바로 이틀 전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대화 도중 채연 작은 언니로부터 자주 문자와 전화가 걸려 왔다.
" 에이구, 애 하나 맡겨 놓고 나오는 것도 일이다, 일. 이젠 일곱살 되더니 이젠 엄마 안 따라 다닌다고 하더라구."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을 너무 일찍 체험해 아쉽다는 표정의 채연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곧 그만 다닌거라고 했다.
" 출근 시간이 한시간 반이야.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서 있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져. 나보다 못한 여자들도 다 아침이면 조깅하고 취미생활 배우러 다니고 하는데 말야. 누가 떠밀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 돈도 돈이지만 나이 서른 여섯에 길에다 버리는 시간이 넘 아까운 것 있지. 집에서 살림하면서 앞으로 뭐 할까 계획도 세우고 또 애 학교 들어가면 초기에 많이 바쁘잖아 엄마가 집에 있어줘야지 . 그리고 광인씨도 이제 자기 사업한다고 바쁘고 내가 아침이면 미나리즙도 해서 주고 내조 좀 해 줘야지. 사실 그동안 내가 번 돈 애 학원이다 뭐다 해서 쓰고 생활비는 고스란히 받아 썼거든. 지금 내가 관두면 혼자 버니까 힘들겠지만 나도 좀 지쳐. 결혼하고 이것저것 손 댄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보니 이젠 두 손 놓고 쉬엄쉬엄 살까해."
내가 보기에 채연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활동적이어서 전업주부인 동안에도 수영을 배운다든지 운전 학원을 다니며 가만히 있지 않고 살아왔다.
바다에서 갖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 같은 김채연.
그런 외적인 채연은 초등학교 이학년 때 처음 같은 반 친구로 지내다가 학년이 올라 간 다음해 이사를 간 채연 때문에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하게 중학교 삼학년 겨울 방학 당시 학교 도서실로 향하던 도중 길거리에서 만난 채연은 손에 목욕탕을 가는지 샴푸와 수건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저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서로 반갑다고 그동안 안부 이야기를 잠깐 나우고 아무런 연락처도 없이 또다시 이별.
그후 스무살이 훨씬 넘어서야 아는 친구에 의해 손에 들어 온 채연의 연락처.
그때 이후 지금까지 연락두절없이 알고 지내는 유일한 초등 동창인 채연이었다.
삼녀일남이라는 형제지간 구성도 같았고 채연 언니들하고도 안면이 있을 만큼 친했었다.
그 당시 채연 어머니는 일찍 과부가 되어 일을 하셔야만 했고 채연은 아버지 없는 조금은 기우뚱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야만 했다.
아침마다 채연이가 사는 집까지 걸어서 학교로 향하는 도중 손을 마주잡고 나누었던 이야기들.
집에서 애 셋 키우는 나보다 애 하나 키우며 사는 채연이 더 바쁘고 먼저 전화하는 쪽도 거의 내 편이어서 어떤 경우엔 까닭없이 기분이 낙하하기도 했다. 전화할 시간도 없을 만큼 하루를 공백없이 꽉 채우며 살아가는 것은 채연의 공같이 탄력있는 성격과 체질 때문이기도 했다.
나에겐 절대 부족인 쾌활과 활동적인 면에 소유자인 채연이 부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나와는 전연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삶의 즐거운 질투이자 활력소이기도 하다.
채연은 작년까지 없던 얼굴을 덮은 기미와 주근깨를 걱정했고 쌍꺼풀 수술도 하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좀 어긋나 보이는 이도 교정을 할거라고 했다.
사람을 상대로 일하는 직종이어선지 항상 외모에 가장 큰 신경을 쓰고 있는 듯 했다.
하여튼 자기 관리에는 빈틈이 없는 전형적인 줌마렐라 타입이다.
겉모습만 봐선 외모 보다는 식탐이 많아 일상에 재미로 이어지는 여자 이미지 같은 채연이었기 때문에 좀 의아스러웠다.
내 나이가 몇살인데, 아직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이러구 살아. 나, 이쁘게 하고 살거야하고 치즈 케익크를 한 술 크게 떠먹으며 말했다.
자신의 건강과 미모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생활 에너지가 흘러 넘쳐 보이는 채연 앞에 앉은 나는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몇 년 동안 가 본 적 없는 미용실. 몇 년 동안 사 신지 못한 신발과 옷, 악세서리 등.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 나 이러구 살아도 되는걸까, 정말? 살짝 절망스럽기조차 한 이 기분.
같은 땅에 사는 기혼 여자이지만 사는 환경이 만들어 준 여유와 부드러움이 배여 있는 채연의 표정이 빛났다.
" 넌, 그대로구나. 살은 좀 빠진 것 같구."
" 비슷해. 좀 빠졌다 찌고 그러지 뭐..."
한조각인 치즈 케이크를 양쪽에서 조금씩 떼어 먹으며 차를 마셨다.
" 그 사람이 나더러 돈벌어 오라더라. 한달에 삼십만원이라도."
한숨과 함께 흐리멍덩하게 맥이 풀린 자조 섞인 말을 하고 말았다.
" 누가? 기찬씨가?"
" 그럼, 누구겠어. 작년 말부터 그런 소릴 하기 시작하더라구. 처음엔 그냥 농담이겠거니 했는데 지금은 아주 정색을 하고 말해. 돈 벌어 오라고. 다른 여자들 처럼.."
채연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 어쩜, 세상에. 니가 어떻게 살았는데 그런 소릴 다 한대니. 그래, 가만 있었어?"
채연은 입을 떡 벌린 채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
아마 내 남편이 나 모르게 바람을 피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진 않을 것이었다.
다른 여자들도 똑같이 애들 키우면서 살림하고 밖에 나가 돈 벌어 오는데 왜 너는 그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도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처럼 돈벌어 오는마누라 자랑 좀 하고 싶다. 누구는 월급을 얼마나 받네, 이번달 보너스는 내 월급모다 많더라.
작년 말 잘 다녔던 회사가 사장의 불법 탈세와 경영부진으로 다른 사람에게 매각 됨에 따라 마흔을 갓 넘긴 그는 해일 속에 던져진 양 한동안 혼미했다.
퇴직금에 적지 않은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사장은 한달치의 월급마저 떼어 먹고 줄행랑을 쳤고 여기저기 거래처에서 걸려오는 전화들로 그는 펄펄 몸살을 앓듯 힘들어 했다.
몇 군대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이내 낙심한 얼굴이 되어 비적비적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매일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 날이면 점심때가 다 되어 겨우 일어났지만 다시금 이를 닦고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양복을 입고 나갔다.
간밤에 나한테 퍼부었던 멸시와 냉대에 대해 진심은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진심어린 말로 사과를 했지만 며칠 지나 만취한 밤이면 되풀이 되곤 했다.
" 오죽 힘들면 나한테 돈 벌어 오라는 소리를 할까 싶었어. 처음엔 이해하고 내가 잘 나가는 여자였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지. 남자가 힘들면 가장 가까운 자기 마누라한테 기대고 의지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좀 분하고 억울하고 밉기도 하더라."
채연이는 여전히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린티를 홀짝거렸다.
" 그런데 자꾸 그러니까 이젠 나도 지쳐가. 어떻게 십년 넘에 전업주부로만 살다가 하루 아침에 나가 돈을 벌겠어. 마트 계산원이나 식당 주방 아줌마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당장 돈벌이라면 그런 일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하기도 싫고 자신도 없어. 그럴려면 애들은 학원으로 돌려야 하는데 그 뒷감당할 자신은 더더욱 없구. 니가 부럽다. 살림하고 직장도 다니는 네가."
채연은 부러운 거 없다고 얼굴색을 바꾸더니 못을 박았다.
기찬씨가 뭘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밖에 나가 돈버는 여자들이 돈만 버는줄 아느냐고. 그렇게 순수한 아줌마들이 몇이나 된냐고도 했다.
" 주위에서 보면 돈버는 목적보다는 일단 자기가 돈버니까 남편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나다닐수 있고 사고 싶은 거 사서 쓰는 재미로 일하는 여자들이 훨씬 많아. 그러구 밖에 숨겨둔 애인들도 거의 다 있더라니깐."
워킹 우먼이라 일하는 여성으로서 자부심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속에 숨겨진 비애와 넉두리와 비밀도 적지 않게 쌓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 그동안 나도 누가 떠밀어서 일한 건 아닌데 힘들었지. 아침엔 우리 아들 제대로 밥 먹여 유치원 보낸 적도 거의 없고 집에 오면 난장판이야. 근대 치울수가 없는거야. 나는 나대로 종일 밖에서 돌다 들어 오면 지쳐 저녁은 부지기수 외식을 하게 되더라구. 그래서 살이 쪗나봐. 울 남편도 한땐 백킬로 그램이 넘었다니깐, 말 다했지."
짧막한 한숨을 내뱉은 채연에게도 삶의 고됨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왠지 모를 안심이 되고 종질감이 생겼다.
작년에 운전 면허증을 딴 채연은 남편의 반대로 변변히 운전대 한번 잡지 못하고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매고 버스를 갈아 타면서 영업을 하러 다녔다.
채연이 운전 면허증을 따려고 했던 이유를 알자 평소 성격답지 않게 남편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었나 보다.
채연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위로하는 대신 그동안 살림하고 일하는 워킹 우먼의 습한 비애을 폭로하면서 묵은 스트레스를 훌훌 날려 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찬씨가 너의 자리를 몰라서 그래. 집에서 엄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대단한건대. 애가 하나도 아니고 둘 키우면서 살림하는 게 어디 보통일이냐. 너무 욕심이 많다, 니 남편."
살림 잘하고 애 잘 키우고 돈까지 척척 잘 버는 여자랑 살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남자랑 살고 싶은 게 요즘 기혼 남자들의 평균적인 바람일까. 포장지로 가린 진짜 속마음이아닐까.
" 돈 좀 본다고 일하러 다니는 여자들 오죽 잘 꾸미고 다니니. 생활비론 얼마 쓰지도 못할걸. 애들이 불쌍하지. 하루 종일 종일반 있어봐라. 애가 집에 와도 멍해가지고 눈치 본다니까. 남자들은 또 어떤지 알아. 마누라 돈 버니까 자기 일엔 얼마간 시들해져가지고 딴짓하려고 할걸. 나중엔 애 망치고 집안 엉망되고 남편 망치고."
결혼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꾸준히 거쳐 온 채연이한테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랑과 자부심대신 뜻밖의 속사정이 있었다니 내심 놀라웠다.
맞벌이 부부의 장점더 많을 텐데 채연이는 단점이 더 많았나 보다.
" 잘 나간다는 강남엔 기러기 아빠들도 득실거리지만 소아정신병원에 다니는 애들도 많아. 어렸을 때부터 유치원에다 학원을 뺑뺑이로 다니니 애들이 정신이 남아 나겠어.잘난 부모 덕에 일찌감치 정신병원 신세나 지고말야, 하여튼 불쌍해."
채연이 발로 뛰는 영업 구간이 강남이라고 했던가.
" 애를 어지간히 키워놓고 이젠 좀 숨 돌리고 취미생활이라도 즐기며 살까 했었는데 돈 벌어오라는 소릴 들으니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든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기분이야."
채연은 치즈 케익을 포크로 찍어 먹더니 나를 진심어리게 위로했다.
" 니 남편 말에 기 죽을 필요없다, 너. 일년을 충분히 시간을 갖고 니가 무얼 하고 싶은가 생각해봐. 자격증이나 기술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말야. 난 집에서 쉬면서 영어 회화도 배우고 한식자격증도 따고 싶어. 나중에 나이 먹더라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걸. 넌 이쁘니까 미용실 하면 좋겠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미용실 하면 좋겠다는 유아식 발상에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채연의 마지막 말은 순전히 위로 차원이었겠지만 나는 종일 서서 남의 머리를 만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방등에 불 떨어진다면 그 보다 더 힘들고 하기 싫은 일도 어쩔수 없이 해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저만치 나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부로 사는 게 참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긴 피 한반울 안 섞인 게 부부이고 등돌리면 완전 남남이 되어 버리는 부부 아닌가.
서른 중반을 넘어서 이젠 마흔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서글픈 나이가 되는 시점에서 내 인생 자체가 흔들 바위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우리가 혜경이를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 동안 젊은 여자들이 카페를 나가고 들어오고 했다.
연예인들 부럽지 않을 패션 코디법과 화장술에 하나 같이 모델들 같은 여자애들이었다.
한 공장에서 찍어 낸 똑같은 인형 같은 여자들로 신촌 바닥은 넘실대고 있었다.
개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천편일률적인 모습들이 흡사 가면을 뒤집어 쓰고 나온것처럼 생경스럽고 낯설다.
나도 저렇게 파란 사과 같은 젊은 날이 분명 존재했을텐데 돌이켜 보면 내가 아닌 대역을 시켜 대신 삶을 내주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 젊음을 다른 이한테 넘겨 주고 멀찌감치 서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는 낭패감이 밀려 들었다.
채연은 공부를 좀더 열심히 했을걸 하고 후회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 공부할 수 있을 시기가 제일 행복한 때다, 라고 말씀 하셨던 고등학교 선생님 말씀이 진저리쳐질 만큼 아릿아릿하게 저며왔다. 그 말씀이 진리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무 근심없이 그저 공부만 하면 좋았던 시절, 왜 그땐 그것을 몰랐을까?
" 어, 혜경이 거의 다 왔대. 우리 나가 있자.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있든지. 한 곳에 오래 있으니까 머리가 좀 띨하다."
백화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데도 나만이 접근근지 표지판을 앞에 두고 산 것 같다. 휘황찬란한 불빛과 귀를 먹먹할정도로 지나친 소음과 비밀스런 활기와 인파들로 어지럽고 어리둥절했다.
왜 이렇게 번잡스럽고 사람들 많은 곳에만 오면 가슴이 조여오고 머리가 아픈걸까?
어딜보나 모두 활기차고 명랑하고 행복해 보였다.
드라마 연속극의 주인공이 모조리 백화점 안으로 모여 들었나.
올 가을은 레드가 유행일까? 각 옷 매장마다 날씬한 마네킹에 입혀진 레드 블라우스와 가디건, 원피스와 잠바. 바로 눈 앞에 만져 볼수도 있는 마네킹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현실 세계엔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십년 만에 본 혜경이는 채연이의 말대로 살이 쪽 빠져 있었다. 그리고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성형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구두 굽으로 키를 높이고 검은 스판바지와 쥐색 블라우스를 입고 옴폭 파인 얼굴을 펄로 카바한 혜경은 우리 셋중에서 가장 세련된 미시족 같은 분위기였다.
서로 손을 붙잡고 흔들며 한바탕 호들갑스럽게 해후를 끝내고 시간이 여섯시 전이라 일찌감치 저녁이라도 먹어야 할 참이었다.
우리는 낙지 철판 볶음 과 부침개를 시키고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웃었다.
" 내 이럴줄 알았어."
채은이는 몰라보게 변한 혜경이의 모습을 부러운 듯 흘겨보며 웃었다.
" 채은이는 이뻐졌고, 너는 그대로다, 야."
똑같은 말을 친구들한테 연달아 듣는 기분이 씁쓰레하다.
긴 시간 동안 변치 않고 그대로라는 말은 좋은 것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다음에 만날 때 펑크 스타일로 나와 애들을 기겁해 주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얼굴과 몸매가 골고루 살이 빠진 반면 유독 가슴만 불거져 보이는 채연이는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어떻게 한사람이 저렇게 전연 다르느 각도로 변할수가 있지 신기해 하면서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며 혜경을 뜯어 보았다.
아무 연고도 없이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을 했던 억센 생활력이 채연의 작고 단단한 얼굴에 골고루 배여 나왔다.
" 그때 나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밥 사먹을 돈이 아까워 고구마로 때웠거든."
센스있고 감각있는 친구들 속에 공벌레처럼 움츠려드는 기분을 떨어 내야만 했다.
혜경이는 다시 한번 오래 간만에 만남인데 너무 늦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그 내막을 자세하게 말을 했다.
" 우리 시어머니 앞으로 빈 땅이 좀 있는데 거기다 친언니랑 둘이 식당 할까 하고. 남편이란 얘길 했는데 시어머니가 들으셨나봐. 분에 못이겨 시아버지랑 부랴부랴 예고도 없이 온거야.
나 돈 벌고 싶거든. 애 유치원가면 종일 집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셔 죽겠어. 식당 하면 잘할 자신도 있거든."
" 그래, 혜경이 너는 돈 잘벌게 생겼다."
채연이도 혜경이의 바람에 힘을 넣어 준다.
나는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다.
남편만 믿지 말고 며느리한테 나가 일하라고 했다던 혜경이 시어머니는 하나 뿐인 친손자를 이뻐하지도 않을 뿐더러 넉넉하게 한달 용돈을 준다 해도 맡아 주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혜경이 만삭일 때 수박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던 시어머니였다면서 흉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돌아가신 채연의 시어머니 빼고 다들 한 성격 한다.
애야 어떻게 하든 니가 알아서 나가 돈을 벌어라 식이다.
" 어차피 빈 땅을 놀리면 뭐하야. 집에 있는 것도 답답하고 식당하면 잘할 자신 있거든."
말을 할때마다 눈웃음을 잃지 않고 서글서글하게 빛나는 눈빛이 혜경의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 너 일본어 배워 면세점에서 일했잖아. 그 계통으론 안돼?."
" 내 나이가 몇인데. 그리고 할라면 계속 쉬지 않고 해야 하는데 이젠 늦었지 뭐..."
삼년 동안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고 공부한 것을 한국에 돌아와 면세점에서 돈 천만원 번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혜경의 처지도 그리 부러울 게 못되 보였다.
형제가 많고 엄마도 연세가 많아 결혼 준비도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감당해야 했단다.
사는게 비스무리하다는 게 위로감을 주는 건지 마땅찮는 대우를 받더라도 참고 살아야 하는 같은 코드를 공유해야 하는지 미로 속을 걷고 있었다.
한가지 명확한 점은 혜경이,채연이 모두 삶에 역동적이고 능률적으로 자신을 변신 시키며 살아 갈거라는 확신이 드는 점이었다.
혜경이는 채연이 입을 통해 내 처지를 듣더니 예의 연민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기운내라고 했다.
" 너무 기 죽을 필요 없어. 알았지? 남자들은 다 똑같은 면이 있어. 울 신랑도 언젠가 은근히 내가 돈 좀 벌었으면 하더라구."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시나 소설. 두 친구는 아무렴 어떠냐고. 베스트 셀러 책 한권만 나와도 돈은 저절로 따른다고 했다.
여자 나이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 무엇을 하든지 최고의 기준은 돈이라는 재력일 거라는 굳은 믿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해리포터의 작가도 애 엄마였고 자가 박완서도 마흔 넘어 글을 쓰기 시작해 대성공하지 않았냐고.
방송통신대 국문과 이년 중퇴인 학력 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네들의 성공담을 뒤를 잇기엔 너무 미달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채연은 자신의 홈페이지가 있는 싸이로 들어가 결혼 전 사귀던 남자들 소식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 놓았다.
다들 성공해 대학교수나, 미국에서 사업을 해 잘 나가고 있다면서 뒤늦은 후회인지 지난 날의 미련인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만약 다른 남자를 선택했더라면 지금 처럼 아침마다 무거운 가방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 타는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삻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역한 동경과 안타까움이 배여 있었다. 혜경은 돈을 많이 벌어 남편과 시어머니가 쩔쩔매도록 살고 싶다고 부푼 꿈을 하소연했다.
재력있는 시부모 덕에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집 걱정 안하고 편하게 살고 있지만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싫다고 했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주관적으로 하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던 간에 무조건적으로 시댁 어른들을 거쳐야만 하는 번거로움과 눈치 속에 마음은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보단 그래도 나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짐작했는데 겉으로 보기과는 다르게 제 나름대로의 속사정을 안고 있는 두 친구들을 대하고 있자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고상한 걸로 따지자면 내가 제일 그렇듯한데 과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용케 찾았다면 그 길을 놓지 않고 열정을 다해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나 자신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의문점 들이 나를 포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서른을 지나 마흔을 행해 치닫는 지금 인생은 우리가 둥그스름하게 짐작하고 생각하는 유치한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낮과는 달이 도시는 어둠이 스며 들자 딴세상으로 탈바꿈을 자기들 세상이란 듯 휘황찬란한 형형색색의 불빛들을 뿜어대고 있었다.
채연은 그 큼지막한 가방에서 디카를 꺼내 이것도 추억이라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마도 싸이에 올리는 디카의 매력에 푹 빠진 듯했다.
길가던 젊은 남자에게 부탁을 하고 사진을 찍어 바로 보았더니 역시나 내가 제일 못나게 나왔다.
사진발도 영 안 먹히는 나지만 아련하게 빛나는 두 친구 옆에 무덤덤하게 보이는 여자는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 우리 다음에 애들 데리고 만나자. 김밥 깥은 거 싸서 공원에도 가고 하자 응,?"
혜경이는 아직까지 오래 간만에 이루어진 해후에 다시 한번 크게 감동해하는 낯빛으로 자신이 만든 계획을 알리고 우리의 동조를 구해 왔다.
채연이는 그래 꼭 그러자 했고 나는 세 아이를 떠올리곤 고개만 까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