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친구 어머님 문상차 오랜만에 광주에 갔었다.
요즈음 단풍철임을 감안하여 비행기로 왕복을 하고 싶었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올라오는 비행기 좌석이 없어, 편도만 비행기를 이용하고, 올라올 때는 고속버스를 타게 됐다.
잠자리를 위해서 우등고속으로 정했다.
10여년 만에 타보는 고속버스라 약간의 설레임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좌석번호 16번. 좌석을 찾긴 찾았는데...
아가씨인지 미시인지 구별하기 힘든 여자 두 명이 16번과 17번을 차지하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우잉? 복이 터졌구만 터졌어!’ ‘그렇지만 나 혼자 어떻게 두 명의 여자를?’
순간 한 여자는 포기하기로 했다.
좌석번호 16번 여자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책임질 수 없으니 떠나달라고 점잔케 통보 했다.
“저기..저..제 좌석이 16번인데요?”
아~ 너무 미안했다. 이건 남자로서 할 짓이 아니다.
그렇지만 한편, 17번 좌석 여자에 대한 예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자 17번 좌석 여자가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머뭇거린다.
‘알어! 알어! 무슨말하려는지 알어! 걱정말라구! 서울 도착때까지는 한 눈 팔지 않고 당신 곁에만 있을게!’ 나는 속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흐미야~ 이런 기분 얼마만인가?
그러나 17번 좌석 여자의 다음 말은 나의 들뜬 기분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저기 아저씨! 죄송한데요. 우리 둘이 일행이어서 그런데...저쪽 18번 좌석에 앉으면 안돼요?”
순간 18번 좌석을 보았다.
혼자 앉아가는 좌석이다. 쩝.
욕심이 과했나 보다.
18번 좌석에 앉아 의자를 뒤로 제꼈다.
희망이 사라진 뒤의 허탈감을 곱씹으며, 오지 않는 잠을 애써 청했다.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오늘 따라 차의 정체가 심했다.
나름대로 외로이 비몽사몽을 즐기며 한참을 가는데, 여자의 비명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났다.
“아저씨! 물이 떨어져요..아휴~ 이를 어째~!”
실내등까지 끄고, 조용히 잠을 자던 모든이들은 깜짝 놀라 비명의 근원지쪽을 바라보았다.
16번 좌석 여자가 에어컨 구멍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고 기겁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속버스 차표를 꺼내 번호를 다시 확인해 봤다.
좌석번호 16번.
푸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인생사 세옹지마라 했던가?
즐거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난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 에어컨 구멍에서 물이 새나 봐요. 에어컨 끄고 수건으로 구멍을 막아야 할 것 같은데요?”
정의의 사도가 따로 없었다.
츠암눼~!! 나에게 언제 이런 용기가 있었던가?
응급조치를 하고, 서울까지 오는데 심뽀가 놀부 심뽄지 내내 웃음이 나왔다.
어러면 안되는데...그쵸?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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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천글방(詩選,自作)
[ 수 필 ]
좌석번호 16번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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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9
03.11.06 09:51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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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만에 오신 형님의 심뽀(?)를 확인해서 좋습니다.. 잘 지내시겠지요.. ///
ㅎㅎㅎ재미있네용...헤헤..
ㅋㅋㅋ.저놈으.심뽀좀보소.ㅎㅎㅎ올만이네..우리.열락좀.하구.지내세.칭구.........
선배님 오랜만에 글 남기셨네요.. 글이 참 재밌습니다..다행입니다,,그좌석에 앉았더라면 물맞을 뻔 했군요... 자주 오세요...
뭘.. 그랬으면 물 맞아도 좋아하셨을 것 같은디.. ㅋㅋㅋㅋ ///
모두들 여전하네요..에어컨 물이 얼마나 더러운데..자슥이.ㅎㅎ.
형님은.. 그 자리에서 세균이 보이겄수?? ㅎㅎㅎㅎ ///
먼 일 있었으까요?
재밌어여......
흥미진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