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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이여, 진정 붕어를 아는가?
사실 붕어낚시의 매력은 그 채비와 기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상어인 붕어에 있다.
붕어의 습성과 생리를 모르고서는 붕어낚시의 참 맛을 알 수가 없다.
붕어낚시의 본질은 찌맛과 손맛에 있다.
붕어의 입질에 미끼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목줄에 이어 봉돌이 들리어지며 찌가 솟구치는 찌의 움직임을 감상하는 것이 찌맛이다.
이런 찌맛을 즐길 수 있는 낚시문화는 세계적으로 단연코 우리나라밖에 없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자 복인가...
이런 형이상학적인 쾌감과 정서에 이어 맛볼 수 있는 손맛도 일품이다. 월척이라야 1kg전후의 무게에 불과하여 수kg의 육중한 바다고기의 괴력이나 두자급 잉어의 당길 힘에 못 미치겠지만, 한반도 토종 정기를 받은 6치급 작은 붕어라도 끈끈히 버티는 당찬 손맛은 나름대로 쫄깃쫄깃한 유혹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붕어를 아는 붕어꾼들은 다른 낚시에 전업(?)도 못하고 설사 외도(?)를 하더라도 결국 돌아 올 수밖에 없는가 싶다.
잡는 것이 아니라 낚아야 한다
그런 붕어만을 대상으로 채비를 갖추고 어신을 유도하여 깊은 찌맛과 끈끈한 손맛을 즐길 수 있어야 올바른 정도 붕어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저 지나가는 붕어를 어쩡쩡한 입질을 보고 한 두마리 후다닥 잡아 내기만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낚시꾼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낚시꾼들은 붕어낚시 가치관이 정립이 안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안보이는 물 속에 있는 붕어든 잉어든 메기든 그저 와서 물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들에게 붕어의 습성과 생태원리는 고루한 이야기 일뿐이다. 그들은 덩어리로 뭉쳐진 인찌끼가 떨어지는 소리가 붕어에게는 벼락치는 소리로 들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붕어가 먹이를 찾는 얕은 취이층 수심이 코앞에 있는데도 오로지 남보다 긴 대로 붕어가 안정을 취하려고 입을 굳게 다물고 쉬고 있는 피신층 깊은 수심만을 노린다.
무거운 봉돌은 붕어가 흡입과정상 이질감을 쉽게 느껴 먹이 뱉음을 유도하는 어리석은 채비인지, 수초 위에 채비가 얹혀 밑바닥만을 고집하는 저서성 붕어가 미끼를 먹으려 해도 여간 까다로와 입질이 깐죽되고 끝난다는 식의 얘기는 그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잡는 것이 목적이지 붕어를 알고 그에 맞는 채비와 현장적응이라는 것을 통해 낚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고 원초적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한 붕어라는 동물을 상대하긴엔, 그래도 붕어낚시를 왔노라고 그럴 듯한 채비로 물가에 앉아있는 그들에게 버거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이 붕어를 너무 모른다는 점이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들이 너무 현실적으로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붕어를 모르면 자신은 물론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들의 특징은 안하무인격이 되고 자포자기형이 된다.
우선 자리잡을 때 조용히 붕어를 불러 모으는 붕어꾼에게 너무 가깝게 접근하여 낚시를 방해한다.
낚시터가 누구의 것이냐는 자리 소유권에 대한 궤변도 서슴치 않는다.
왜 방해가 되는지 조차 모르고 애써 설명해도 비웃음으로 넘어간다. 보통 삼삼오오 단체형이 많으며, 심하면 고성방가와 취중낚시도 마다 않는다. 낚시의 본질을 깔아 뭉겐 것은 옛날이고 이젠 낚시터는 아예 물가 유흥장이 되고 만다.
한 두번의 요행으로 잡은 붕어만으로 그나마 다시 물가를 찾아 그런 행위를 반복하는 사이비 붕어꾼이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매번 보잘 것 없는 조과에 짜증만 내고 그나마 조행길도 꾸준치가 않다. 간혹 스트레스를 풀러 왔다가 스트레스만 더 얹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낚는 낚시가 아니라 잡는 낚시를 하기 때문이다. 아니 붕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붕어를 알고 진지하게 붕어를 낚는 자세를 깨우쳐준다면 정도 붕어낚시꾼이 되어 풍요로운 취미생활을 할 수가 있음은 물론이다.
正道 낚시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붕어를 아는 것이 그 첫 걸음이다.
혹시 붕어꾼이라 자처하는 베테랑도 고기욕심에, 자기과시에, 붕어꾼 특유의 고집(?)에 붕어를 아는데 게을리 했다면 알게 모르게 엄청난 실수(?)를 자행해왔고 잘못된 가치관으로 남을 가르쳐온 것이 아닐까?
붕어를 많이 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붕어를 한 마리 못낚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더욱 붕어를 연구하는 꾼이야말로 진정한 정도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번의 정직한 찌올림에 한 마리의 조과에도 만족할 수 있는 꾼이야말로 진정한 꾼이다.
설사 한 번의 입질을 못받았더라도 천천히 가라앉는 찌의 찬란한 입수과정만을 즐기는 꾼들만 있다면 낚시문화를 얼마나 즐겁고 풍요로울까.
그러기 위해선 붕어를 알아야 한다. 붕어는 잡는 것이 아니라 낚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부가 아니라 붕어꾼이기 때문이다. 못잡아 씩씩대고 우울해지거나 녹초가 되어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번의 찌올림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붕어낚시이기 때문이다. 평생 복받은 취미생활을 갖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토종붕어는 저서성이라 찌맞춤 낚시가 가능하다
붕어는 어류 중 담수계 어종중 붕어과에 속하며(학자에 따라서는 잉어과로 불림),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을 정도로 탁월한 번식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 나라의 호소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참붕어 혹은 토종붕어'라 불리는 우리 나라 붕어는 그 번식력과 적응력이 유달리 뛰어나고 힘이 세어 붕어낚시꾼에게 주 대상어가 되고 있다.
붕어의 형태는 거의 대동소이하나 지형과 계절, 혹은 장소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다.
붕어는 일반적으로 등이 위쪽부터 조금 검고 노르스름한 편이며 배 쪽이 하얀 편이나 붕어 중엔 유난히 전체적으로 하얀스런 붕어, 거의 황금빛에 가까운 붕어, 거무스름한 붕어, 심지어 높은 산악지대의 저수지에서 잡히는 푸르스름한 붕어 등, 색깔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습성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우리나라의 토종 붕어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철저히 물 바닥을 헤엄치며 생활하는 저서성 동물이다. 그래서 평상시 물 바닥에 가라앉지 않은 먹이는 철저히 외면하는 습성이 있다.
잡식성인 붕어는 플랑크톤을 1차 먹이로 하며 성장에 따라 활발한 취이활동을 한다. 또한 붕어는 신체구조상 먹이를 직접 물어 먹지 않고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흡입하여 먹이를 먹는다.
붕어의 입구조는 이빨이 없고 둥글고 짧은 호수 모양을 하고 있다. 이빨이 없기에 물어뜯지는 못하며 몸을 45도 전후로 세워 먹이를 흡입한다. 그리고 단단한 조직의 윗입술과 아래 입술로 먹이를 물고 고개를 쳐들어 삼키는 것이다.
위가 없고 장만으로 소화를 시키는 붕어는 입술에는 예민한 감각세포가 있어 먹이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한다. 입안에는 미뢰(味雷)라는 여러 가지 맛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발달되어 있어 의외로 먹이 선택도 까다롭다. 붕어는 무르고 고소한 것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단 것에는 인간보다 80~100배정도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신중히 흡토(먹이를 흡입하고 토함)를 반복하는 습성도 이런 까닭이다. 이런 습성을 이용함으로써 먹이가 바닥에 닿게하여 붕어의 취이행동이 찌로 바로 전달되게 하는 찌맞춤 낚시가 성립되는 것이다.
성격이 매우 조심스런 붕어는 감각이 극도로 발달되어 있다
붕어는 주로 시각과 후,청각 감각기관을 이용해 취이활동과 경계활동을 한다.
우선 붕어는 한 쪽 눈으로 180도를 볼 수가 있어 양쪽 눈으로 360도 전방위를 볼 수가 있다.
이를 이용하여 우리 인간이 응용한 것이 카메라 렌즈인 어안(魚眼)렌즈이다. 이런 붕어의 복시(複視)는 정확한 원근감을 가질 수 있어 앞뒤에 있는 먹이 등 상대개체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붕어의 시각이 색깔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지만 외국학자의 여러 실험을 통해 어류도 색깔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결과도 있고 보면 이도 낚시 채비의 선택에 응용할 일이다.
경험상 미끼나 목줄채비의 색깔 선택이 그 것이다. 하지만 성장기에 든 붕어는 흐린물과 야행성 취향을 가지고 있고 육상보다 시계가 좁은 수중에서 아무래도 시각보다 후각이나 청각, 그리고 온몸에 산재해있는 기타 감각기관으로 경계나 취이활동에 더 의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후각은 코로 하는데 우리 인간과 달리 붕어는 호흡은 아가미에 의존하고 코로는 오로지 냄새만을 맡는다.
눈 위쪽에 붙어있어 물이 들어오는 전계공(前界孔)과 물이 빠져나가는 후계공(後界孔)이 있고 그 사이에 후신경이 밀집되어 있는 후판(後板)이라는 것이 있다.
전계공으로 물을 빨아들여 후계공으로 내뿜으면서 후판으로 냄새를 맡는 매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종에 따라 그 후각의 예민성은 차이가 있으나 붕어의 경우 수온 18℃ 적정온도에서 수십미터에 떨어진 떡밥냄새를 맡을 정도이다. 온도가 내려가면 그 후각의 정도는 다소 떨어진다.
이를 근거로 떡밥의 활성도 및 떡밥의 집어력 등의 근거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그 낚시터에 붕어는 분명히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떡밥낚시를 오래해도 입질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붕어가 떡밥냄새를 못맡아서 입질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운 환경 등이나 기타 이유에서 입질을 못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를 알아 극복하여 입질을 받는 것이 진정한 붕어꾼이 되는 것이다.
붕어의 청각은 두 개골 사이의 내이(內耳)나 부레나 옆줄에 그 기능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내이 속에 있는 석회질 구조의 이석(耳石)으로, 부레의 외부막으로, 옆줄의 촉감세포로 물의 미세한 진동도 감지하여 듣는다고 보면 된다.
특히 옆줄의 경우 물의 미세한 흐름과 수압의 변동도 알 수가 있다. 특히 물 속에서의 음파 전달속도는 공기중에서 보다 3 ~ 4배가 빠르다. 따라서 시끄러운 낚시터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차에 시동을 켠다거나, 떡밥을 달고 던진 후, 혹은 붕어 한 마리 잡은 후에 수시로 물에 손을 담그고 소리를 내어 닦는다거나, 낚시 후에 옆 사람에 아랑곳 없이 받침대 등을 물 속에 휘저어 닦는 행위 등은 절대 버려야 할 습관들이다.
스펀지를 고무줄에 매달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닦던 옛 조사들은 이런 과학지식이나 알았으랴. 정도(正道)는 과학으로 이해하기 전에 계도(戒道)로 지키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초감각을 가진 붕어는 더구나 성격이 워낙 조심스러워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으면 2~5마리, 많으면 20여마리 이상 개체(같은 세대나 비슷한 씨알)별로 군집생활을 한다. 씨알이 굵은 개체일수록 그 군집 숫자가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한 마리의 붕어를 낚은 후에 같은 크기의 붕어 입질이 계속되는 것은 이런 이치이다.
붕어라고 다 같은 붕어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붕어는 매우 놀라운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봄에 가끔 낚시를 하다 보면 갈대 등 수초줄기에 혹은 채비를 걷으려 할 때 받침대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투명한 붕어 알을 보곤 한다.
보통 붕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20Cm 급 붕어가 1년에 약 4만개의 알을 낳는다.
그러니 월척 급 이상의 더 큰 붕어 심지어 작은 붕어까지 알을 낳는 것을 상상해 보면, 더욱이 붕어의 그 강한 적응력에 비추어 볼 때 붕어는 씨가 마를래야 마를 수가 없는 것이고, 낚시꾼에겐 그 사실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더군다나 붕어의 암놈과 숫놈의 비율에서도 곤충인 벌과 반대로 붕어 숫놈을 여왕벌로 생각해도 좋을 만큼 암놈의 숫자는 절대적이다.
쉽게 말하면 낚시하다 잡히는 놈은 거의 다가 암놈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보통 학자에 따라 수컷 한 마리에 암컷 50~200마리 정도로 보고 있으니 그 번식체계에 입을 다물길 없다.
붕어의 성장속도는 다른 어종에 비해 다소 더딘 편으로 부화 후 1년 정도면 5 ~ 10Cm전후로 자란다. 그후 완만히 3 ~ 5Cm 정도 자라다 5년 생 이후로는 1년에 1 ~ 2 Cm 정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척의 기준인 30.3Cm정도 자라려면 약 7 ~ 10년 전후 정도로 보고 있으며 비늘 성장 테로 과학적 분석 결과 5년 미만에 월척으로 자라는 붕어 서식지와 종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낚시로 잡은 우리 나라의 최대어는 충남 아산 송악지에서 1989년도에 김병린氏가 잡은 64.0Cm로 공인되고 있다. 하지만 정도 붕어낚시가 아닌 릴이나 보트등으로 잡은 월척은 월척인정이 안된다는 것이 아직 각 지역의 낚시회의 시조회나 납회 때의 대부분의 정서라 다행이다.
하지만 낚시 월간지 등에 그런 낚시기법을 불문한 월척기사는 물론, 심지어 떡붕어나 수입산 양식어인 중국 붕어도 월척이라 공공연히 게재되고 있어 우리 수 많은 정도 붕어낚시인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어 안타깝다.
황당한 예지만 월척이 예로부터 계승해온 가치의 척도가 아니라 단순히 길이의 개념이라면 황소 개구리도 길이를 재어 월척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요새 토종 붕어를 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붕어꾼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공감하고 있다. 웬일인가. 그 씨를 말릴래야 말릴 수 없다는 그 붕어들을 보기가 힘들다니.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물론 있다. 강과 하천에 쏟아 붓는 산업폐수. 작은 놈 큰 놈 가리지 않고 잡아내는 도처에 설치된 허가난 장소 외의 정치망, 몰지각한 사람들이 몰래 설치한 초코 그물들, 사람이 꼬일 듯한 곳이면 크고 작은 웬만한 저수지는 전부 유료 낚시터로 허가해 생태학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떡붕어 및 중국산 붕어,채널메기, 향어, 돔 등 등 외국산 어종을 방류케 방조한 관련 법안들,
낚시인들이 버리고 간 쓰다 남은 떡밥, 지렁이통, 부탄가스 통, 음식 찌꺼기, 휴지 및 비닐봉지 등등. 과연 이런 환경 속에 붕어는 낚시인에게 즐거움과 안식을 주는 낚시대상어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붕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낚시인의 인지상정이다.
붕어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히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붕어를 단지 스트레스 해소 감이나 매운탕 거리로만 생각하는 낚시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낚시인 중에는 자기가 잡은 고기를 안 먹는 사람도 적지는 않으며, 잡은 고기를 다시 물에 놔주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붕어를 사랑한다면 우리 낚시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가 접하는 낚시터의 자연보호에 앞장서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붕어 낚시에도 정도가 있고 그 사실이 붕어꾼의 삶의 진실과 윤택한 정서를 주고 있기에 붕어는 정말 붕어꾼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동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붕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고 꾸밈이 없다. 붕어의 눈을 보노라면 그 순진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사랑스러워 놔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낚싯대 저 끝으로부터 전해 오는 손맛은 지고의 쾌락이며, 손아귀에 들어온 붕어의 그 생명력은 허무에 빠진 우리 인간에게 용기를 준다.
그리고 붕어란 찌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친근할 수 있는 어종 이라는 것을 붕어낚시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냄새가 나고 탁한 낚시터에서 오염되어 기형화된 붕어를 잡아 보면 기형화된 인간의 정서가 오염시킨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 후회와 절망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첫댓글 민물낚시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붕어와 친해져야 겠네요~~~
예 붕어를 알아야 낚시도 그 즐거움과 조과가 반드시 따르지요...
사진을 보니 작년 가을 강화도 어느작은 농수로에서 낚아 올렸던 너무도 예쁜 황금색 붕어가 떠오르는군요....
그런가요..늘 붕어는 내 친구였습니다!
붕어의 예민함과 민감성...많은것을 알았습니다. 자연친화적인 사고를 가지는것이 정도낚시인것 같네요.
예 제일 중요한 걸 깨달으셨군요..실전에서도 이 생각 잊지마세요!
붕어에 관련해, 섬세하게 표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해가 잘 되셨는지요!^^*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너무 고맙군요!
무식한 낚시를 한 재가 부끄럽습니다 많은걸 깨달고갑니다 붕순이 공부를 많이해야 겟내요
조금이라도 이해되셨다니 고맙습니다. 늘 우리 같이 공부해요!^^*
요즘은 외래어종의 난입으로 정말로 멋진 토종붕어를 구경하기가 힘듭니다. 낚는 맛! 그리고 꼭 제자리로 돌려 보내는 그 기분! 소슬만의 기쁨 입니다.
깊이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