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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한남금북정맥을 밟기 시작했다. 금북정맥을 먼저 밟을까 생각해 봤지만, 7월 대간종주 때 나머지 자투리를 완성한다면 3회에 나눠 한남금북정맥을 완벽하게 이을 수 있어 괜찮아 보인다.
한남금북정맥은 안성의 칠장산에서 속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전체 도상거리가 152.3km나 된다. 세번에 나눈다 하더라도 매번 도상거리로 50km정도를 이동하여야 하는 쉽지 않은 산행길을 예고하고 있다. 첫 번째 산행을 행치고개에서 마치고(도상거리 49.8km) 두 번째는 회사창립일과 주말을 이용하여(7월 1~2일) 89.1km를 이은 다음, 남은 13.4km는 7월 둘째 주 대간종주 때 연결할 예정이다(아니면 2일간 전부를 연결할 수도 있다). 어차피 산악회가 비재에서 속리산 천왕봉을 지나가게 되니까 말티재에서 천황봉을 올라 한남금북 정맥종주를 마감하고 대간종주하는 산악회를 따라가면 된다.
문제는 장마가 7월 1~2일도 계속될지 여부이다. 그리고 단독종주를 하여야 하는데,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편리함도 있지만 무서움과 불안감은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계획은 6월 25일날 시작하여 7월 둘째주 끝낼 예정이다. 너무 장거리를 이동하다보니 보고 느낀 것이 수없이 많지만 다 기억할 수도 없다. 그나마 재주없는 글 솜씨로라도 기록으로 남겨놔야 훗날 내가 간 흔적들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안성 칠장산 - 음성 행테고개(행치고개)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49.8km
- 산행일시 : 6/25 (토요일) 00:00~20:30
- 산행소요시간 : 20시간 30분
★ 기록들
6/24 19:30
퇴근하자마자 안성시 죽산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집앞 시외버스 터미널에 달려가니 19시 30분행 마지막 버스가 있었다. 20시 45분 죽산에 도착하였지만 황량한 죽산 시외버스 터미널은 문이 닫혀있다. 가게에 들러 칠장사를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광해원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칠장사 가는 방향에서 하차하면 된다고 한다. 21시 30분 정각에 광해원행 버스를 이용, 칠장사 입구 쪽에서 하차한 후 헤드라이트를 켜고 포장도로를 터벅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서두를 필요는 없기 때문에 평소의 보폭대로 걷고 있는데, 개짖는 소리가 엄청나다. 차량통행도 뜸한데다 드문드문 있는 민가나 농장에는 한 두 마리 또는 그 이상의 개들을 키우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개를 묶지 않고 풀어 놓고 있어 떼거리로 가까이 몰려오기까지 한다. 순간적으로 공포심으로 느껴 길가의 가로수 나뭇가지를 꺾었지만 실제 달려들기라도 한다면 무슨 도움이나 될까 걱정이다.
한남정맥 종주하면서도 개떼들이 가장 무서운 대상이었지만, 한남금북정맥을 시작하기도 전에 개떼들 때문에 오금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22시 45분 칠장사에 도착한 후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하여 등델 곳을 찾는데 또 커다란 개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다 나를 발견하곤 그대로 사라진다. 그때부터 마치 신호를 한 것처럼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칠장사 창건당시 출입문으로 이용한 곳인 듯한 곳에 등을 기대여 잠시 눈을 붙일려고도 해 봤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 짖어대는 개소리는 오히려 정신마저 말짱하게 만들었다.
할 수 없다. 12시 정각에 칠장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하고 11시 40분 칠장사를 거쳐 칠장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없는 무더운 날씨이다. 내일 대낮은 얼마나 더울까하고 걱정이 앞선다.
반딧불이가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만약 익숙치 않았다면 야심한 숲속에서 공포심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까마귀 촌동네에 자랐기 때문에 반딧불이가 반갑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멧돼지의 급습이다. 일전에 누군가의 산행기를 보니 단독산행 중 멧돼지로부터 습격 받아 크게 다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글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또 한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혹시 야심한 밤에 숲속으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등산객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이다.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놀라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가능한 피하려고 했다.
6/25 00:00
칠장산 정상에 도착했다. 지난번 한남정맥 때도 무대포(절친한 산친구)랑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왔었지만 이제는 혼자다. 나 혼자만의 행사지만 심호흡과 함께 한남금북정맥을 무사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경건하게 기도해본다.
구름이 얕게 깔려 달빛은 밝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진행하기는 괜찮다. 무대포랑 같이 왔으면 심야의 공포심은 훨씬 줄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야간등반이라 길을 잃으면 끝장이다. 따라서 뛰지도 않았고, 반드시 리본을 확인하여 정맥길을 분명하게 밟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혹시 리본이 계속하여 안 보인다거나 발바닥을 전해져 오는 정맥길과 다른 푹신한 느낌이 있으면 다시 돌아서가서 포인트를 확인하였다.
이미 한남정맥 종주 때 처절하게 느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철저하게 지켰다.
01:10
복전현을 지나자 안성컨트리클럽안으로 떨어졌다. 지도를 보니 골프장안을 관통하게 되어 있어 포장길을 따라가니 걸미고개에 도착한다. 늦은 시간임에도 골프장안으로 차가 들어가거나 17번 국도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았다. 리본을 찾아 바가프미산 들머리를 진입하였지만 가시덤불 때문에 여기저기가 찔린다.
일부러 분량은 많았지만 육덕 이병구님의 산행기를 프린트해서 갖고 다니면서 들머리와 날머리를 확인하였다. 바가프미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자 02:00 도솔산 보현봉에 도착하고 이어서 비로봉이 나타났다. 02:40 임도에 도착하여 산행기를 보니 우측 숲으로 다시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나 아무리 정맥길을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중간에 임도로 나왔는데, 조금 전에 진행하다 되돌아간 바로 그 자리였다. 임도를 따라 불과 2~3백미터를 진행하니 바로 정맥길인 도화동에 도착한다. 제 자리를 빙글 돌았는다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마저 든다.
02:50
도화동(안성시 죽산면 당목면)의 절개지를 치고 올라 임도를 따라 나란히 진행하다가 약 2km 지나 나침반을 확인하니 동쪽으로 가던 정맥길이 동남방향으로 꺽인다. 아마도 여기서부터는 경기도와 충청북도(음성군)의 경계를 지나 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는 길목마다 죽은 통나무가 곳곳에 쌓여있어 진행을 방해하고, 거미줄을 수없이 걷어냈건만 계속해서 얼굴에 끈적거리며 달라붙는다. 저티고개를 지나자 오래 전에 한 듯한 형체만 남아있는 통나무계단이 나타났다. 숲속에서 갑자기 허연물체가 나의 출현에 놀랐는지 황급하게 달아난다. 노란색 털이라도 불빛에 반사되면 허옇게 보이기 때문에 아마도 고라니인 것으로 생각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통나무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황색골산(도고리봉)을 오른 후(04:05) 우측능선을 확인(좌측능선은 죽림산 방향)하고 하산을 시작하였다. 아직도 컴컴한 밤이다. 출발 때 주운 몽둥이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여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04:25
차현고개에 도착하였다. 583번 국도에 내려 바나나와 쵸코렛을 꺼내 먹었다. 여명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한다. 들고있던 몽둥이는 버리고 출발하려는데 승용차 한대가 나를 발견하곤 잠깐 멈칫 하더니 출발한다. 적의 놀랐을 것이다. 583번국도로 따라 진행하니 중부고속도로 위를 관통하고 오버브릿지가 끝나는 곳에는 마의산 들머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보신탕 가게 플랑카드에 가려 못찼았지만, 산행기를 보니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플랑카드를 제치자마자 바로 들머리가 나타났다.
이제 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한다. 통나무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가는데 배가 고프다.
05:10
마의산 정상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정상을 표시한 비석이 두 군데라 처음에 만난 비석을 기준으로 산행기에 적혀있는 약수터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진행하다보니 산행기에서 묘사된 그대로 정상비석과 멋있는 소나무가 있고 그 우측으로 약수터가 있었다.
약수터에서 식수를 보충한 후 세수하고 옷을 벗어 몸을 씻었다. 무슨 산악회라는 곳에서 시설물을 설치한 모양이지만 관리가 엉망이라 소주병과 막걸리병이 뒹굴었다.
와이프가 찹쌀로 만든 주먹밥을 입에 넣었다. 배는 고픈데 이외로 잘 넘어가질 않는다. 억지로 넣다시피 하여 도시락하나를 다 비웠다. 05시 45분에 짐을 꾸려 다시 출발하였다. 망이산성은 보수공사를 한다고 천막으로 덮여있었다.
07:20
20분쯤 내려오자 아무도 손을 데지 않은 산딸기가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과일은 바나나밖에 준비하지 않아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조금 따 먹기로 하였다. 엄지손톱만한 산딸기를 한움큼씩 따서 입안에 넣었다. 어린시절 따 먹던 그런 맛이었다. 대개 과일 맛이 어린 시절맛만큼 나지 않는 법인데, 이곳의 산딸기는 달랐다. 달기도 하고 즙이 많아 먹기가 좋았다.대야리까지 내려가는 정맥길 전부가 산딸기 밭으로 깔려 있었다. 그것 때문에 여기저기가 찔리긴 했어도 나를 위해 준비한 성찬이 되었다.
06시 45분 대야리 편도1차로 도로에 내려선 후 지도에 표시된 대로 도로를 가로질러 공사장을 우측으로 두고 진행하자 개인소유의 집앞에서 정맥길이 끊겼다. 집앞을 지나가야 하는지 우회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산행기에는 집앞을 지나가라고 되어 있지만 조금 이상하였다. 그래도 한번 가보자고 생각하고 진행하니 진짜로 정맥길이 나타났다. 대정1리 윗두루실에 도착한 후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고 되어 있어 한편으로는 시간절약도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심하여야 했다. 일단 지도를 놓고 정치하여 나침반이 표시하는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워낙에 갈림길이 많아, 진행하면 할 수록 확신이 서질 않았다.
20분을 달리고 나서(07:40) 583번도로가 있는 4거리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도착한 후 다시 지도를 놓고 확인하니 방향이 잘 맞질 않는다. 이상하다 싶어 행인에게 방향을 물으니 내가 남쪽이 아닌 오른쪽으로 빠져 나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시 583번 국도를 따라 진행하자 삼거리가 나타나고 쌍봉초등학교가 보였다.
08:15
쌍봉리 매점에 들러 건빵과 목캔디 그리고 음료수 한병을 샀다. 건빵을 먹으며 쌍봉초등학교 앞을 지나 인삼밭둑을 거쳐 다시 583번 도로로 나왔다(08:25). 오늘 산행 처음으로 지름길로 가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형편없는 싸구려 신발을 신고 나왔던 터라 아침 이슬에 양말까지 흥건하게 젖어있어 앞으로 30km이상을 더 가려면 양말을 바꿔 신어야 했다.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1만2천원에 낙찰받고 신어보니 모양새는 그럴 듯한데, 발바닥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고 약간의 습기도 그대로 머금어 버리는 싸구려신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양말을 바꿔신고 발목 부근에 바세린을 다시 바르는데, 동네 노인 한 분이 지나가다 신기한 듯 쳐다본다.
09:00
내송리(충북 음성군 금왕면)에 도착하여 금왕농공단지 들머리는 이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도에 나타난 대로 선답자의 표지기가 달려 있었다. 한남정맥과는 확연히 달랐다. 기점과 종점 그리고 의심이 드는 거의 모든 곳에는 대부분 선답자의 표지기가 달려 있었다.
09시 25분 농공단지 앞을 지나 방아다리에 도착하였고, 매번 계속하여 도로를 가로 질러갔지만 예외없이 정맥길을 밟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진행하는 과정에서 봉곡리 용흥사 진입로에 도착하여야 하는데, 용계리쪽 21번 국도로 먼저 내려오게 되었다. 산행기에 묘사되어 있는 장소로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전혀 엉뚱한 곳이었다.
마을안 살구나무에는 살구가 잔뜩 달려있었고 아무도 이를 따지 않아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하나를 따서 깨물어 보니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아마도 2kg 정도는 땄을 것이다. 용흥사 진입로까지 가면서 하나씩 깨물었다. 원래 등산로는 용흥사 직전에서 올라타야 하지만 용흥사에서도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일단 용흥사로 가서 부처님 전에 배례를 하고 식수를 보충하기로 하였다.
10:45
용흥사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일반적인 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대웅전도 없는데 현대식 건물로 용흥사 추모관은 화려하게 신축되어 있었고, 따로 관리인을 두고 있었다. 비구니 독경소리가 애초롭게 들려왔다. 법당에 들어가기도 그렇고 해서 주방에 가서 식수를 달라고 했다. 정수기의 물을 물주머니에 담는데, 눈치가 보여 꽉 채울 수가 없었다. 그 때 염치불구하고 꽉 채우고 나오는 것인데 나중에 후회가 되었다.
용흥사에서 등산로가 있는 것으로 표시는 되어 있지만 진입로가 어디인지는 도대체 감이 오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일단 산을 오르다보면 정맥길을 만날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철조망이 둘려쳐 있고, 가시덤불과 아카시아때문에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어렵사리 능선에 올라보니 정맥길이 소나무길로 아스라이 연결이 되어 있었다.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 같아 달리기 시작하였다.
12:05
소속리산에 도착하였다. 이름만으로는 작은 속리산인데,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 자그만한 종이에다 소속리산이라고 써서 나무에 걸어 놓은 것을 보고서야 소속리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속리산을 지나자 누군가(근처 교회인지 장애자재활원인지) 여기저기에 이상한 용어로 표시를 해 놨다. 삼거리에 못미쳐 나무의자에 앉아 식사를 했다. 반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부지런히 무명봉에 오르자 갑자기 리본이 보이질 않았다. 조금 지나면 있겠지 하면서 100미터를 지나도 없었다. 산행기를 확인하여 보니 내가 지나쳐 왔음을 알 수 있었고, 다시 돌아서 1km정도를 가니 좌측으로 꺾이는 곳에 리본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점심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생기질 않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계속하여 갈증이 생긴다. 보현산 약수터까지는 버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용흥사에 올라오면서, 또 소속리산까지 뛰는 바람에 식수를 많이 소비한게 원인이었다.
13:40
최대한 땀이 나지 않기 위해서는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잠이 슬슬 오기 시작한다. 졸리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계속하여 날파리와 하루살이가 기승을 부린다. 정말 끈질기다. 이런 날은 온갖 해충들이 창궐하게 마련이다. 한번씩 쉬기 위해 배낭을 부려 내려 놓으면 베낭과 옷에 송충이에서 자벌레 등 온갖 해충 투성이다. 새벽녘에는 나방이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날파리가 내 진행을 방해한다. 날파리를 쫓기 위해 쏜살갈이 달려 보기도 했다. 그래도 한놈을 쫓으면 또 다른 놈이 달라 붙었다.
14시가 넘어서자 눈이 계속 감긴다. 바람이 제법 분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리를 잡아 배낭을 베개로 하고 누웠다. 날파리만 없었으면 깊게 잠을 잘 수가 있었는데, 코만 빼꼼하게 남겨두고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50분 정도 깼다가 잤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수면을 보충하는 것이 훨씬 낫다.
15시 정각에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리본이 여러 군데 붙어있어 직진방향이 맞겠지 하며 진행한 것이 무극리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였다. 10분간 알바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물주머니에는 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물주머니 연결호수에는 아주 긴요할 때 입술이라도 적셔둘 요량으로 몇 방울밖에 되지 않은 물은 남겨 두었다.
16:00
보현산 정상에는 가건물의 산불감시소가 있었다. 오래 전에 누군가가 있었는지 부탄가스와 비옷, 라면봉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보현산에서 밑으로 달려서 내려가니 이내 임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산행기에 표지된 대로 좌측으로 200미터 정도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보현산 약수터 안내판이 보였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땀에 찌들은 등산복과 수건등을 빨고 몸을 씻었다. 사실 물이 고여 있어 몸을 씻을 수는 없었지만 몰지각한 누군가가 놀다가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바람에, 물바가지 대용 쓰레기를 주어다 세수대야로 사용하니 그럭저럭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물주머니에 물을 꽉 채운 후 남은 주먹밥을 다 비웠다. 16시 20분에 도착하였는데, 출발시간이 17시가 다 되었다. 이외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갈 길이 먼데 부지런하게 서두룰 수밖에 없었다.
19:00
돌고개에 도착하였다. 임도를 따라가게 되면 2~3분이면 되지만 마루금을 정확하게 밟는게 좋을 듯 싶어 10분정도가 소요되는 정맥길을 이용하였다. 그렇게 도로와 짧은 정맥길이 교차하는 곳이 숱하게 나타났다. 가시덤불과 잡목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나의 진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온 전신을 상처 투성이로 만든다. 하루살이는 계속하여 눈속으로 빠진다. 아마도 눈속이 물인 줄 알고 알을 낳기위해 뛰어드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손을 모두 사용하여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진행하는데도, 인정사정 볼 것없이 눈에 빠진다.
그리고 갑자기 목뒤로 송충이가 떨어졌는지 엄청나게 가렵다. 하필이면 물파스를 빼먹고 왔을 때 이런 일이 닥치다니 손에 침을 묻혀 발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방법은 긁지 말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진정되는 듯하자 물주머니의 물을 부었다. 가려움증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훨씬 나아졌다.
옷도 엉망이 되었다. 여기저기 튀어나온 잡목은 등산복마저도 펑크를 내고 말았다. 18시 40분경 깨끗하게 포장된 삼실고개에 도착하였다.
산행기에 표시가 안되어 처음에는 큰산 밑 도로인 줄 알고 다 온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참가도 산 정상이 나타나지 않아 큰산이라고 생각되는 봉우리는 결국 517봉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20:00
낙석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통나무계단을 계속하여 오르니 레이다가 돌아가는 통신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큰산이 나타나고 저 멀리 행치고개에는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어두워버려(라이트가 없음)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산행기에도 적혀있는데로 하산길에 철사줄을 조심하라고 되어 있지만 무심코 가다가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헤드랜턴을 다시 꺼내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이제 행치고개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다 도착하고서 순간적으로 하산포인트를 놓쳐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왼쪽으로 가야할 것을 길건너 휴게소만 있는 것으로 착각하여 오른쪽으로 간 것이 문제였다. 막상 오른쪽으로 가니 절벽같이 가파른데다가 2미터 이상되는 철조망이 가로막는다. 쭉 미끄러지면서 바닥까지 내려왔지만 가시덤불 때문에 옴짝 달짝할 수 없었다.
20:30
할 수 없이 철조망을 넘기로 했다. 지나가는 차량들이 내 모습을 보고 더 놀랄까 봐서 차가 다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러나 차가 없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올랐다 내리는 과정에 바지가 철조망 끝에 걸려 찢어지고 말았다. 20시 30분, 이제 내 일생 중 가장 긴 장시간의 산행을 끝마치는 순간이다. 내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행치고개 중앙분리대를 무단횡단한 후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형편없이 변한 내 몰골을 수습하기 위하여 몸을 씻으니 온갖 먼지와 낙엽과 벌레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상의는 갈아 입었지만 여분의 바지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게 아쉬웠다.
문제는 이제 귀가를 어떻게 하느냐이다. 휴게소 점원에게 물으니 20시 50분경 음성가는 버스가 있을 것이니 가보라고 한다. 그런데, 20시 55분쯤 되도록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아 할 수 없이 음성까지 가는 승용차를 얻어탄 후 음성시내 입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보니 서울행 시외버스는 이미 7분전 21시에 떠났다고 한다. 그런 정보가 없었던게 아쉬웠다. 다시 청주로 가서 서울행 버스를 타면 될 것 같아 시외버스를 타고 북청주에 하차한 후 터미널에 들어가니 막 서울행 버스가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 그게 막차였다. 2분이 늦었다. 참으로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기사가 심야버스가 있을 것이라 하지만 두 번씩이나 놓치니 신경이 쓰였다. 마침 22시 30분 발 남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었고, 24시 5분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하여 심야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다 되었다.
★ 에필로그
이제 한 구간이 끝났다. 대개 한남금북정맥도 10구간 내지 12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3구간으로 나눴으니 상당히 무리를 하는 셈이 되었다. 그리고 한남정맥과 같이 길이 좋으면 뛰었으면 좋겠지만 가시덤불과 잡목에 갇혀 길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곳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선답자가 친절하게도 필요한 곳에 갈등을 하지 않도록 리본으로 표시하여 길 찾는 것은 한남정맥과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리고 내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선답자인 누군가가 진행하였음이 표시가 난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반갑다.
이제 걱정되는 것은 7월 1~2일날 연이틀을 연결해서 타고자 하는데, 민박을 할 수 있는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지 아직은 아무런 정보가 없다. 또한 장마가 걱정이다. 만약 그 때 계속하여 장마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그리고 비상의약품을 준비하고 교통편에 대한 정보를 충분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소요된 비용을 계산해 보니, 죽산행 시외버스비(5,000원), 광해원행 시내버스비(850원), 행치고개에서 음성시외버터미널까지 택시비(2,000원), 음성에서 북청주행 시외버스비(3,500원), 북청주에서 청주고속터미널 행 택시비(7,000원), 청주고속터미널에서 강남고속티미널 고속버스비(9,900원), 집까지 심야버스비(1,400원)를 합하여 교통비만 29,650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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