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동반하는 상대세계와 절대세계
2007년 3월 11일 일요일 맑으나 춥다. 바람이 불고 있다.
람스에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을 노래하듯 부끄러운 수면을 찰랑이는 잔잔한 음악이 모두의 곁을 채우며 흐르고 있다. 주방에선 보통 때와는 달리 분주한 모습들이 보인다. 하얗고 갸름한 흰 떡들과 오뎅꼬치들, 그리고 삶은 계란들이 수북이 쌓인 것이 보인다. 오늘은 지난 주일에 수국이 약속한 대로 떡볶이와 오뎅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의 여행을 위하여 사람마다 잔을 들고 주방에 들어와 커피나 녹차를 담아 간다.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주방에 들어와 그걸 보고 가는 사람들이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눈빛이 마주치면 잔잔한 음악이 다치기라도 한다는 듯 말소리를 죽여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서둘러 홀에 둥그렇게 배치된 자리들에서 한 자리씩을 찾아 앉는다. 모두 자리에 앉고 음악은 더욱 깊어 가자, 새벽의 어스름한 여명이나 저녁의 아스라한 황혼 속에 드러나는 연못가를 빙 둘러 안치된 불상들의 군상처럼 좌정한 모습들이 서로를 가까이서 이웃하고 멀리서 마주하고 있다. 머슴과 그의 아내 기쁨, 하늘, 수국, 진이, 자연, 나그네, 뱃사공과 물방울 부부, 바그완, 강물, 민들레, 또 하나의 기쁨, 순둥이, 여백, 하별, 지혜, 생기가 모였다.
맑은 공 소리가 세 번 울린다. 머슴이 책을 들고 일주일의 묵상 중에 발견한 책 속의 깨어있는 구절들을 읽어준다;
사람이란 한 몸에 각 부품과 같아서 동일한 근원에서 창조되었다. 한 부분이 다쳐서 아파할 때 다른 부분이 평화롭고 조용하게 지낼 수는 없다. 타인의 불행에 당신이 무관심하고 아무런 슬픔도 느낄 수 없다면 당신은 인간이라 불릴 수 없다.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그런 자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몫이 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안으로 살펴야 한다. 내가 지금 순간순간 살고 있는 이 일이 인간의 삶인가.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 스스로 물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 주는가. 내가 내 삶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저마다 자기 그림자를 거느리고 휘적휘적 지평선 위를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소나무가 소나무를 떠나 나무로 돌아가면 곁에 있는 참나무와 한 몸이 된다. 나무가 나무를 떠나 물건으로 돌아가면 아래 있는 바위와 한 몸이 된다. 내가 나를 떠나 사람으로 돌아가면 멀리 있는 너와 한 몸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 물건으로 돌아가면 걸터앉은 바위와 한 몸이 된다. 아하, 한 물건으로 돌아가면 사방천지 탁 트여 거칠 것이 없겠구나. 어떤 이는 본래 무일물이라 처음부터 한 물건도 없다고 했지만 지금 내 형편으로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시방은 아무쪼록 나를 떠나 사람으로 돌아가기. 사람도 떠나 물건으로 돌아가기. 마침내 나를 떠나 나없는 나로 돌아가기.
다시 음악이 흐른다. 랩퍼가 랩으로 시작을 열며 전자음악의 비트가 살아있는 채 흐르기 시작한다. 음악의 비트가 점점 더 강해진다. 움직임을 허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앉은 채 상체를 춤 속에 던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들이 즐겁고 아름답다. 음악을 온 몸으로 흡수 하고 있는 흡족한 모습들이었다.
바그완이 오늘의 기도를 리드한다. 그는 노래 기도를 선택하였다. 동요였다. 조금도 치장하지 않은 생생한 목소리로 바그완은 일 절을 부른다. 동요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절을 같이 부르자고 한다. 멋진 단체기도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곳에서
파란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곳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아멘.......
다시 신비한 전자음과 둔중한 북소리가 함께 울리기 시작하더니 전자 기타의 강렬한 비트와 드럼의 경쾌한 리듬으로 이어지며 국악의 피리 소리가 돌출한다. 사람들의 몸짓이 격해지기 시작한다. 음악을 마음껏 환영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도반의 숨소리가 격랑을 실은 것 같다. 귀에서는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퍼져나가는 열정이 이웃의 도반을 얼싸안고 있다. 또 다시 님들의 미소를 본다. 그들은 항상 거기에 있어주면서도 언제나 새롭게 사람을 맞아준다. 음악이 웅장한 북소리로 마무리를 급하게 끝낸다. 몇몇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람스에 불이 환하게 켜진다. 명상이 끝나는 것에 맞추어 뱃사공이 일어나서 불을 켠 것이었다.
머슴 :
시방 느낌은?
수국 :
재밌었습니다.
머슴 :
왜 재밌었습니까?
수국 :
신 났어요.
진이 :
즐거워요.
물방울 :
춤추고 싶었어요.
머슴 :
안 추던데 뭐....... 남편인 뱃사공 아우님은 좀 흔들던데.
하하하.......
뱃사공 :
후덥지근합니다. 하하하.......
기쁨 :
바그완님 노래가 깨끗했어요.
바그완 :
조마조마한 마음이 실렸나 봅니다.
하하하.......
진이 :
감동적인 기도였어요.
머슴 :
오늘 창세기에서 볼 4장 마지막 부분과 5장의 내용이 족보인데, 이곳은 성서학에서는 해석에 있어서 의미 있는 비중을 두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놓고 일주일 고민하니까 이곳도 나름대로 재미있습디다.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풀 수 있는 것만 풀어볼게요. 방금 말한 여러분들의 느낌, 즐겁고 행복하고 깨끗하고....... 이것들이 오늘 여행할 내용에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럼 창세기 4장 17절부터 5장 마지막 절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지루한 족보얘기지만 그 안에 몇 군데가 재미있습디다. 그 재미를 나눠볼까 합니다. 제가 먼저 한 절을 읽고 순둥이님부터 모두 한 절씩 읽겠습니다.
가인의 자손
4장 17절 :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을 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18절 :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절 : 라멕은 두 아내와 함께 살았다.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이고,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씰라이다.
20절 :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을 치고 살면서,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1절 :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유발은 수금을 타고 통소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2절 : 또한 씰라는 두발가인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고 하는 누이가 있었다.
23절 :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24절 :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셋과 에노스
25절 :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였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말하였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그의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26절 :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아담의 자손
5장 1절 :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2절 : 하나님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3절 :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닳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4절 : 아담은 셋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5절 :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
6절 : 셋은 백다섯 살에 에노스를 낳았다.
7절 : 셋은 에노스를 낳은 뒤에 팔백칠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8절 : 셋은 모두 구백십이 년을 살고 죽었다.
9절 : 에노스는 아흔 살에 게난을 낳았다.
10절 : 에노스는 게난을 낳은 뒤에,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1절 : 에노스는 모두 구백오 년을 살고 죽었다.
12절 : 게난은 일흔 살에 마할랄렐을 낳았다.
13절 : 게난은 마할랄렐을 낳은 뒤에, 팔백사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4절 : 게난은 모두 구백십 년을 살고 죽었다.
15절 : 마할랄렐은 예순다섯 살에 아렛을 낳았다.
16절 : 마할랄렐은 아렛을 낳은 뒤에, 팔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17절 : 마할랄렐은 모두 팔백구십오 년을 살고 죽었다.
18절 : 아렛은 백예순두 살에 에녹을 낳았다.
19절 : 아렛은 에녹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0절 : 아랫은 모두 구백육십이 년을 살고 죽었다.
21절 : 에녹은 예순다섯 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22절 :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3절 :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24절 :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25절 : 므두셀라는 백여든일곱 살에 라멕을 낳았다.
26절 : 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은 뒤에, 칠백팔십이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7절 : 므두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년을 살고 죽었다.
28절 :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29절 :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30절 : 라멕은 노아를 낳은 뒤에, 오백아흔다섯 살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31절 : 라멕은 모두 칠백칠십칠 년을 살고 죽었다.
32절 : 노아는 오백 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머슴 : 이 당시 사람들은 되게 오래 살았네?
하하하.......
머슴 :
학자가 그런 학자도 있습디다. 이들은 문화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고 해요. 그 근거를 대는 것이, 공룡이나 매머드처럼 지금은 사라진 동물들의 생존 기간이 지금의 동물들보다 길었다는 겁니다. 크로마뇽인부터 쳐서 현생인류는 몇 만 년밖에 안돼요. 지구의 수명 40억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친다면, 공룡이 지구상에 생존했던 시간은 약 15분 정도이고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간은 1~2분 정도래요. 그리고 창세기 여기에서 언급한 이 당시에는 지금의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한참 후에 시간 개념이 여러 가지로 나타났지만, 지금의 서양식 달력이 완성되는 것은 6, 7세기에 와서 굳어진 거구요. 그레고리력부터 지금의 현대적 시간 개념이 생겨난 것이지요. 시간이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여러분, 족보를 왜 기록해요?
.......
머슴 :
한국 사람들도 족보 좋아하잖아? 한국 사람들처럼 족보 쓰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 이 토라를 쓴 유대인들예요. 아, 이 토라 번역을 읽는 것을 생략합시다. 이 부분은 토라와 성경이 거의 같고요. 사람 이름만 원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표준새번역 성경에 ‘동침하다’가 ‘야다’ - ‘알다’로 되어있다는 것과 표준새번역에는 4장 17절에 ‘도시를 세웠다’고 되어있는데, 토라에는 ‘성을 지었다’라고 되어있는 것 외에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흐음, 이것도 재밌는 표현인 거 같아. 왜 성을 지을까? ....... 하여간 오늘은 족보이야기니까 이건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유대인들이 족보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을 제일 처음 알린 성서가 뭐유?
자연 :
마태복음.
머슴 :
그래 마태복음. 마태복음의 처음 시작이 뭐유? ....... 족보야. 그것두. 아담부터 예수님까지. 14대, 14대, 14대. 그거 구라유. 응? 그거 맞는 게 아니라구. 성서 기자가 일부러 짜 맞힌 겁니다. 14대, 14대, 14대. 아냐. 이건 성경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씌어졌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이 쓰셨기 때문에 무오하다 라고 말하는데 족보 따져가다 보면 14대, 14대, 14대가 아니야.
하여간, 족보를 왜 적어요?
하별 :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고요. 근데 요즘 족보 팔아먹으려고 쓰는 모양입니다. 자꾸 전화 와가지고 족보 안 사겠느냐고.......
하하하.......
머슴 :
나도 그래. 우리가 이북이거든. 근데 우리 할아버지가 족보를 놓고 내려오셨데. 그래서 그런 제의가 와요. 우리가 임씨인데 조상이 700년대에 복건성에서 왔데요. 그러니 물방울님과 나는 중국 사람이야. 허허허....... 근데 그게 맞어? 허허허.......
기쁨 :
나는 국제결혼 했네. 호호호
하하하.......
머슴 :
그렇네. 근데 기쁨님 김해김씨도 조상 할머니가 인도에서 왔어요. 김수로왕의 부인이 인도에서 왔고, 그분이 김해 허씨를 받았잖아요. 그래서 김해 김씨하고 김해 허씨는 결혼을 안 해요.
그 왜 족보를 쓸까?
자연 :
기억하기 위해서.
머슴 :
뭘 기억하기 위해서?
자연 :
근본.
수국 :
뿌리.
머슴 :
그럼 왜 서양 사람들은 족보를 안가지고 있을까? 서양은 왕족과 귀족만 족보를 가지고 있어요. 서민들은 없습니다. 해외토픽을 보았는데, 찰스 황태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서민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한데요. 그런데 결혼은 불가능할 거라고 해요. 왕실 초청으로 행사에는 초대되었는데 정식 부인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해요.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는 귀족 출신입니다. 유럽왕족들은 그걸 따집니다. 그런데 유럽왕족들은 피가 섞여 있지요. 스웨덴왕족, 덴마크왕족, 오스트리아왕족 등이 복잡하게 피가 섞여 있습니다.
자연 :
정략결혼을 하니까요.
머슴 :
응. 정략결혼 때문이지. 우리나라 재벌들과 같지 뭐. 재벌들은 사돈의 팔촌이 아닌 놈이 없어. 막 섞여가지고. 거 왜 그래? 인간이.
바그완 :
자기들이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고귀하다. 개들도 족보가 있어야 비싸지는 것처럼요.
자연 :
성을 쌓는 거죠. 자기들 외의 것을 성 밖에 두는.......
머슴 :
그래, 자, 여기 두 가지 얘기가 나왔잖아. 근본, 뿌리를 찾는 것과 남과 분리하는 것....... 분별지야. 근데 왜 성경에 갑자기 족보 얘기가 등장할까? 성서학자들은 이 부분을 빼고 노아의 홍수로 넘어가도 맥락이 이어지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창세기 안에 섞여있는 전승이 대표적인 네 가지가 있다고 했지요? 이 부분은 어떤 전승 같아요? 야훼전승, 엘로힘전승. 제사장전승, 예언자전승이 있다고 했어요. 이건 어디 전승 같아요? 히브리서를 아는 사람은 금방 알 텐데....... ‘구원의 반차는 아론의 족보가 아니고, 멜기세덱의 족보다.’ ‘멜기세덱은 아버지,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7장에 이렇게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얘기하고 딱 맞는데....... 그럼 족보 따진 놈들은 누구겠어요? 아론이잖아. 그지? 아론이 뭐야? 제사장! 그래요. 이건 제사장 전승예요. 그럼 왜 제사장들은 계통을 중요시 했을까?
하별 :
하나님 빽 자랑하려고요. 후후후.......
머슴 :
자기네가 가깝다.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단 말이지. 그럼 왜 유대인들이 이 아이덴티티(identity)를 특히 강조하느냐?
하늘 :
‘선택 받은 민족이다.’라는 거.
머슴 :
그렇지. 조선민족이라는 거지.
???
머슴 :
난 영어 했어요. 조선, 초우슨(chosen). 후후후.......
하하하.......
머슴 :
그거 강조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족보얘기를 하거든. 구약을 읽기 싫어하는 이유가 계속해서 이 족보얘기가 나오기 때문이거든. 거기다가 민수기에는 제사 형식만 좍 나열되어 있기도 해요. 거기다가 성막을 어떻게 만드느냐하는 얘기까지 나오지요. 그래서 지루해요. 그러나 어떤 시각에서는 재미로 읽혀지기도 해요. 하지만 이건 큰 의미는 없어요.
자,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가 3장과 4장의 앞부분을 어떻게 해석했지요? 우리에게 분별지가 들어와서, 즉 생각과 느낌이라는 것이 들어와서 분리되었단 말이지요. 그래서 원래 절대인 우리가 상대의 세계에 떨어졌지요. 그렇게 상대의 세계에서 절대의 세계를 망각하고 잃어간다는 거지요. 그런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거지요. 그런데 인간은 상대와 절대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 다루는 이곳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왜 가인의 족보를 맨 먼저 올렸을까?....... 자 칠판에 정리를 해 봅시다.
칠판에;
<族譜>
가인의 족보
1. 가인 - 2. 에녹 - 3. 이랏 - 4. 므후야엘 - 5. 므드사엘 - 6. 라멕 : 2번과 6번.
라멕의 자식들 : (아들); 야발, 유발, 두발가인. (딸); 나아마
아담의 족보
1. 아담 - 2. 셋 - 3. 에노스 - 4. 게난 - 5. 마할랄렐 - 6. 아렛 - 7. 에녹 - 8. 므두셀라 - 9. 라멕 - 10. 노아 : 7번과 9번.
여러분들은 이렇게 정리해 본 적이 없지요? 잘 보세요. 가인의 족보는 6번 라멕에서 끝나요. 천지창조 할 때에 몇 날에 끝나지요?
자연 :
여섯 번째 날이요.
머슴 :
그렇지. 6은 상대세계를 얘기하며 땅의 숫자야. 그리고 또 재밌는 것이 뭐냐 하면, 비교를 해봤는데, 가인의 바로 밑의 자식이 에녹이잖우? 2대란 말이야. 근데 아담의 손자에도 똑 같은 이름의 에녹이 있어요. 또 라멕도 있어요. 동명이인일까, 동일인일까? 이건 뭔가를 상징하는 걸 거야. 경전이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요. 우리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일본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서양 사람들의 이름은 이 바이블에서 옵니다. 죠셉이 요셉이구요. 샘은 사무엘에서 오구요. 톰은 토마스, 도마에서 왔지요. 존이 요한입니다. 이것은 의미를 계승하는 겁니다. 그래서 에녹과 라멕의 의미를 두세 개의 주석서에서 찾아보았는데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러나 이 에녹과 라멕의 이름 속에는 의미가 있겠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렇게 중복시켰을 거예요.
예수라는 이름이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흔한 이름이었어요. 최근에 예수의 이름을 가진 무덤이 발견되어서 예수의 부활이 부정되었다고 토픽에 나왔는데, 반박하는 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란 이름이 당시에 흔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양쪽 다 예수의 부활을 삼차원적인 것으로 다루어서 이런 논쟁을 벌이는 겁니다.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부활로 여기고 있는 거지요. 상대의 세계에 얽매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예수는 부활했어요. 걱정하고 떠들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똑같이 부활할 거구요. 이걸 모르는 자들은 니고데모를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으음, 이건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고.......
하여간 이 에녹과 라멕의 이름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에녹은 가인으로부터 2대이고 라멕은 6대입니다. 아담의 족보에서는 에녹은 7대이고 라멕은 9대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족보에서 간단히 누구 낳고 몇 살에 죽었다는 간단한 기술을 하다가 네 사람만 부연설명을 합니다. 3. 에노스, 7. 에녹, 9. 라멕, 이구요. 마지막 10. 노아에서 입니다. 여러분, 성경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은 가려져 있습니다. 그 가려진 것을 열어봐야 보이는데요. 그걸 종교적인 용어로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글로 써 있는 것만 다가 아니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부연 설명한 곳에는 뭔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계시, 메시지, 메타포가 있다는 겁니다. 자, 보세요. 해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이건 제 해석입니다.
가인의 자손
4장 17절 :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을 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18절 :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
19절 : 라멕은 두 아내와 함께 살았다. 한 아내의 이름은 아다이고, 또 한 아내의 이름은 씰라이다.
20절 :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을 치고 살면서, 집짐승을 치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1절 :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인데, 유발은 수금을 타고 통소를 부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22절 : 또한 씰라는 두발가인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두발가인에게는 나아마라고 하는 누이가 있었다.
왜 에녹일까요? 왜?....... 여기 가인의 족보에서 에녹은 성을 쌓았다고 했어요. 여러분, 도시가 왜 만들어지나요? 그것도 2대째에? 그럼 아담의 족보에선 7대째에 도시가 만들어지나? 2란 무엇입니까? 두 개, 즉 상대입니다. 가인의 족보에서 2와 6대만 얘기합니다. 이건 상대의 세계만 얘기한다고 봐야지요. 그럼 ‘도시를 건설했다.’, ‘성을 쌓았다.’ 이 얘기는 뭘까?....... 그리고 라멕은 부인도 둘이고 자식도 둘씩만 있네요. 2라는 숫자가 강조되어 있으며 자식들에 대해서는 직업까지 나옵니다. 이것들이 다 뭘 의미할까요? 이것이 가인의 족보를 쓴 이유가 다 풀리는 물음인데요....... 또 하나 재밌는 것이 라멕의 자식 중에서 아들들에게는 이름에 ‘발’자가 들어갑니다. 이건 주석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가인, 카인이 무슨 뜻을 갖고 있다고 했지요? 만들다, 생산하다. 낳다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발’자에도 그런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발은 낙농업자이고, 유발은 예술가, 두발가인은 공예가 또는 제조업자입니다. 이런 의미들이 다 연결되는 건데.......
나그네 :
문명!
머슴 :
그렇지. 문명, 문화가 상대세계에서 일어났다는 얘깁니다. 누구로부터? 가인의 후손으로부터! 가인의 후손들은 상대의 세계에 떨어진 사람들예요. 그럼 아담, 셋 족보는 상대의 세계에 떨어져 살지만 절대의 세계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야. 스스로 계신 그분을 잊지 않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족보입니다. 가인의 족보를 쓴 이유 중 하나가 상대의 세계에 매몰된 사람들도 이어이어 간다는 겁니다. 이어가지 않는 것은 없지요. 있음은 어떻게라도 계승되어 가는 겁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인의 족보와 아담의 족보를 대비시킴으로써 두 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거지요.
그럼, 이건 좋고 저건 나빠?
나그네 :
그렇진 않죠.
머슴 :
네, 그렇지 않아요. 이거 좋고 저거 나쁘고 하는 것이 기울어져 사는 거예요.
4장 17절 :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을 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자, 가인도 누구하고....... 그런데 가인의 여편네 이름은 안나오네. 아, 여편네는 비하하는 말인가? 여편네는 옆에 있는 사람인데. 비하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아내는?
여러 명이 :
안에 있는 사람.
머슴 :
아녜요. 내 안의 해, 태양예요. ‘안해’ 내 안에 있는 태양이 아내입니다. 나는 기쁨님을 태양처럼 모시잖아요.
하하하.......
머슴 :
여편네는 옆에 있는 사람. 그럼 남편은?
민들레 :
남의 남자.
하하하.......
머슴 :
그건 좀 해석이 아니다. 뭐, 바람피는 게 남편의 상징인가? 후후후.......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동침한다가 히브리어 원본에는 ‘야다’ 즉 ‘알다’로 되어있다고 했지요? ‘알다’는 우리가 ‘더불어 함께한다.’로 풀었지. 그럼 함께 한다는 것은 뭘 함께 한다는 거유?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갑시다. 사랑도 ‘살앙’으로 ‘삶을 함께 더불어 한다.’로 풀었지요? 그럼 함께 어떤 행위를 하나요?....... 우리 살림마을 수련회 들어가며 같이 하는 것 있잖아요. 뭘 같이 해요?....... 먹고, 자고, 싸고, 앉고, 서고, 울고, 웃고, 눕고....... 그게 함께 하는 겁니다. 그렇게 했더니 뭐가 생겼데?....... 자식이, 생명이. 그렇게 할 때만 생명이 이어진다는 거지. 상대에 떨어졌든, 절대에 있든 상관없이.
2대라는 것이 상대이며 분리인데 성을 쌓는 것도 분리입니다. 나만의 성을 쌓는 겁니다. 근데 이것으로부터 문명, 문화가 발생하는 겁니다. 그럼 왜 문명, 문화가 생길까? 어떻게 해서?....... 바로 이어서 23절 24절이 그걸 얘기하는 것 같아요.
23절 :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와 씰라는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24절 :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나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죽였데요. 자신을 해치면 일흔일곱 갑절로 벌을 받는데요. 그럼 아건 무슨 얘길까? 순전히 복수하는 얘긴가?.......
최근에 지식 산업 사회에 오면서, 미래학자 사무엘 헌팅턴이라고 있는데, 엘빈 토플러와 책제목도 똑 같이 제3의 물결이라고 책을 냈어요. 이 사람은 미국을 대단히 떠받드는 극우보수주의자인데, 미국에게 알랑방귀 낀다고 한국도 높이 평가해요. 아주 또라이야. 그 사람이 얘기 했죠. ‘문명이 충돌한다.’ 그럼 상처 입히는 것이 뭐겠어요? 지금의 우리로 조명 해봐요. 기독교 문화권이 이슬람 문화권에 상처를 줍니다. 또 동양 문화권에도 상처를 줍니다. 중국에서는 상처를 받았다고 봅니다. 동양권에서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들어간 곳이 중국이었어요. 근데 중국 들어가서 선교사들이 한 짓이 뭐냐? 그들은 제국주의하고 같이 들어갔거든요. 식민지화의 방편으로 같이 들어간 거지요. 인도도 마찬가지고요. 식민지화 한 나라는 모두 이런 식이었지요. 그래서 식민지를 자기네들 상품시장화 한 것이지요. 그리고 원주민들은 고유의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힘과 함께하여 밀고 들어온 기독교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어요? 도둑놈들로 보였을 거야. 사무엘 헌팅턴은 그런 식으로 지금이나 미래에도 문명은 충돌할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서도 기독교 문화권이 우월할 것이라고 보는 거지. 반면에 엘빈 토플러는 그렇게 안 봐요. 그는 아주 객관적으로 봐요.
자, 23절, 24절은 문명의 충돌을 의미한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문명은 충돌을 통해 흡수 발전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상대의 세계는 이렇다는 것을 성경이 쓰고 있는 겁니다. 성경이 BC200~300년대에 압축되었을 거라고 보는데, 그 당시에 이렇게 상대세계의 문명의 기원과 발달을 벌써 언급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예수쟁이들은 다르게 얘기하잖아. BC1000년 BC2000년의 얘기라고 하지요. 그러나 성격이 문자화되어서 결집된 것은 구약은 BC300년대 입니다. 유대인들이 멸망해서 바빌론으로 흩어진 BC586년경으로부터 BC520년에 고레스가 유대인을 보내주기 시작했고, 이때 나라 없는 유대인들은 서서히 전승을 모으기 시작했고, BC3~4세기부터 문자화되어 압축되어 씌어졌다고 보는 것이 거의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BC3~4세기에 이런 걸 쓰면서 삶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참으로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그것도 계시로서 하는데, 그래서 여러 가지 해석도 나오고 있지요. 초기 교부 중에는 그 뜻을 잘 풀어서 해석한 분이 오리겐이라는 분이래요. 200년대 중반에 살던 분인데, 가톨릭과 오소독스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되고 말았지요. 한 가지 설 때문에요. 하나님은 악마도 구원한다고 주장해가지고 이단이 됐어요.
오늘 김흥호 선생님에게 얘기 들었는데, 조로아스터교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여호와와 같다고 내가 한번 말했잖아요. 유일신, 스스로 있다, 존재를 말하는데, 선악이 등장하며 딜레마에 빠진 거야. 그럼 악도 하나님이 만들었네?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해결이 안 되니까 조로아스터교에선 또 하나의 신을 만들어요....... 후후후 그러니까 신은 누가 만드는 거야?
나그네 :
인간요?
머슴 :
너무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 하지마. 후후후....... 속으로만 갖고 있어요. 후후후.......
하하하.......
머슴 :
진짜 그런 것 같아....... 그분은 이름도 없이 근원으로 계신데, 디리 만들어내. 이름도 그냥 갖다 붙이고 말이야. 이슬람은 그 양반을 알라라는 거거든. 한국 예수쟁이들은 하나님, 하느님이라고 하고, 유대인들은 야훼라고 한단 말이야. 원래 그 양반 이름 없어요. 그래서 김경제 선생님은 ‘이름 없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거야. 그리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은 ‘없이 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고. 그것도 알고 보면 다 표현이지. 그냥 계셔. 그럼 돼. 그래서 나는 ‘그분’ 소리를 잘해. 그분! 그럼 좀 객관화되는 것 같아서. 후후후.......
그럼, 문명 문화는 어떻게 해서 일어나요? 요거 하나만 짚고 가인의 족보를 끝냅시다. 상대세계에서 문명, 문화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지? 지금도 인간들은 계속해서 문화를 창출해 내고 있거든요. 지금을 포스트모던시대라고 합니다. 이건 사실 정의가 안 됩니다. 한참 지나야 정의되는 것이지요. 지금 살다보니까 20세기 초를 모던이라 했는데 지금 우리는 그 모던을 지났다는 거지. 해체되었다. 해체된 모던을 살고 있다는 건데, 그거 이상으로 이거다! 라고 아직 표현을 못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포스트모던에서 특징의 하나로 ‘다양성 인정’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이거는 후대의 역사가들이 우리를 표현할 때 중요한 특성으로 삼아 쓸 것 같아요.
언제 일어나요? 문명은?
하늘 :
일할 때.
머슴 ;
그렇지. 또?....... 답 없어요. 자기 얘기들 해요. 대답을 해야 가슴에 새겨지는 거예요. 람스 예배는 참여 안하면 얻어가는 것이 별로 없어요.
나그네 :
동침할 때. 더불어 함께할 때.
머슴 : 호오 말 되네. 또?.......
자연 :
자기 디자이어(desire)를 실현할 때.
머슴 :
그렇지. 자기 디자이어(desire)를 실현할 때 문명은 탄생하고 발전해 나아갑니다. 여러분들이 상대의 세계에서 자신의 디자이어(desire)를 선택 없이 팍팍 실현할 때 이지요. 거기에는 좋고 나쁘고가 없어요. 절대가 거기에 있으며 디자이어(desire)의 실현을 외면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그런데 좋고 나쁘고는 어디에 있어? 분별지에 있어요. 상대는 상반되는 힘의 충돌로 디자이어(desire)의 실현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절대와 상대는 우리에게 항상 같이 있는 거예요. 우리 몸을 봐요, 우리는 지금 영혼은 없고 몸만 있나요? 아니지요. 같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는 삼차원과 사차원이 공존하고 있으며 분리할 수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가인의 족보와 아담의 족보를 같이 쓰는 거라고 봐요. 그러니까 뒤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편에서도 노아만 나오지 않고 노아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같이 나오는 겁니다.
자,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셋과 에노스
25절 :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였다. 마침내,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말하였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죽은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그의 아내는 아이의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주석서에서 셋의 의미에는 ‘그가 허락하셨다.’ ‘그가 낳으셨다.’ 이런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낳으셨다.’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이런 뜻예요. 그러니까, 절대는 계통이 근원으로부터 온다는 거지. 우리가 모두 근원으로부터 와요. 그 양반이 허락 안 했으면 우리 여기 못 와요.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대칭적으로 해석하면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족보를 쓰고 있는데, 마태가 족보를 쓰면서 아담부터 시작을 해요. 그것은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거기에서 왔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그렇게 온다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그동안의 기독교에서는 예수만 그리스도라고 얘기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걸 부인하는 겁니다. 솔직하게 깨놓고 얘기하면 말예요. 그래서 나는 기존의 기독교단에 가면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리스도라는 본질이 우리에게 다 있다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영이라는 겁니다. 예수쟁이들이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하고 얘기하잖아요. 그럼 그 성령이 뭐야? 삼위일체를 얘기하는 건데, 성령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또 곧 아버지 하나님이 되는 거야. 그럼 나는?....... 나를 거기서 제외해 버리면 안돼요. 나도 거기에 있는 거예요. 그 안에요. 그러니까 내 안의 그리스도성이, 성령이 더불어 함께하고 있음을 깨달으면 그게 바로 내가 그리스도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지요. 그걸 극명하게 주장하는 분이 한국에선 다석 류영모 선생예요. 선생님은 ‘기독교에서는 예수만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시는 성령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 ‘오시는 그리스도!’ 재밌지 않아요? 어디에 올까?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예수라는 이름을 갖고 온 청년만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얘기지. 그래서 신약에 오면 신약 기자가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우리 족보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거지. 여기서는 ‘족보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것’과 대칭되는 것이 ‘하나님이, ....... 허락하셨구나.’입니다.
26절 :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에노스는 주석서에 그 뜻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담’하고 같은 의미랍니다. 에노스가 사람의 뜻이 있다면 에녹도 그런 뜻이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이때, 3대에 와서 드디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왜?....... 여러분 예배를 왜 드린다고요? 지난주에도 물어본 것 같은데?....... 람스에 왜 와? 안 빠지고 열심히 오는 사람들이 열 명은 있어. 난 열 명의 제자는 있어. 후후후 뿌듯해! 작은 선생 노릇 하는 것 같아서. 후후후....... 아침햇살님도 수련회 때는 그렇게 사람이 많아도 예배 때는 20명 내외야. 곱부나 컵이라고 인도에서 그 얘기가 나와서 선생님하고 눈 마주치고 한참을 웃었네. ‘전원교회나 람스나 곱부가 컵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거 무슨 얘길까? 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했다는 걸까?
바그완 :
자기 존재를 기억하려고요.
머슴 :
그렇지. 그때부터 절대를 잊어먹지 않으려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상기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깨달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불교용어로는 견성을 추구했다. 각성을 하기 시작했다. 이 얘기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3이야? 왜 3대 때 그랬을까? 그러니까 이게 메시지라는 겁니다. 3은 참입니다. 하늘, 땅, 사람. 또 하나 오늘 김흥호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 仁 : 어질 인에서 사람 인 변 옆에 一자 두개가 위의 것은 하늘이고 아래 것은 땅이래. 그래서 이 仁이라는 글자에는 천, 지, 인이 같이 있는 것이래. 이건 삼위일체와 통해요. 하늘은 성부이고, 사람이 성자이고, 땅은 성령예요. 이 온 땅에 성령이 가득 차서 세상을 만들고 있잖아요? 그리고 계속 오고 있고요. 기존 교회에 가서는 이런 얘기하면 이단이라고 찍히니까 하지 말고....... 그래서 3대 째 그 얘기를 한다는 거지.
그 다음에,
21절 : 에녹은 예순다섯 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22절 :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3절 :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24절 :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7대 째에 에녹이 나옵니다. 기가 막힌 얘기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데요. 몇 년을? 300년을. 3 x 100입니다. 3은 완전한 수라고 했고, 100은 무한대를 얘기합니다. 그렇게 동행했다. 그리고 에녹이 얼마를 살았느냐? 365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일년을 꽉 채우는 날 수. 오늘을 오늘로 산거죠. 오늘을 산 사람입니다. 7대째. 7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렇게 완전하게 산 사람입니다. 하루도 무의식에 빠지지 않고 완전하게 깨어서 산 사람입니다.
28절 :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29절 :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30절 : 라멕은 노아를 낳은 뒤에, 오백아흔다섯 살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31절 : 라멕은 모두 칠백칠십칠 년을 살고 죽었다.
라멕은 9대 입니다. 9는 3 곱하기 3이지요. 그리고 777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의미겠어요? 이것도 무한대를 의미합니다. 예수한테 누가 몇 번 용서하냐고 물으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말하는데 그건 무한대로 용서하라는 의미지요.
근데 용서는 해라 마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때의 서(恕)는, 공자의 인(仁)이 무엇이냐고 한 제자가 물으니까 증자가 충(忠)과 서(恕)요 라고 얘기할 때의 서(恕)입니다. 충(忠)은 신실함입니다. 이건 나를 다함입니다. 그러면 서(恕)는 무엇이냐. 같은(如) 마음(心)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을 서(恕)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변질되었지만 용서란 원래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고, 마음나누기 표현으로 하면 공감을 넘어 동감이 되는 것이지요.
32절 : 노아는 오백 살이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라멕이 낳은 아들이 노아입니다. 노아는 10대 입니다. 10은 하늘 숫자입니다. 절대를 얘기합니다. 초월을 얘기합니다. 12는 땅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일 년이 열두 달입니다. 노아는 오백살이 지나서 자식을 낳습니다. 동양의 오행과 오온은 상대세계의 근본을 다섯으로 보고 있는 겁니다. 불교에서 달마 대사의 달마는 다르마인데, 다르마는 법(法)입니다. 이 법(法)에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 핵심이 진리와 존재입니다. 그런 게 상대의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이 된다는 거지요. 에센스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백입니다. 그리고 세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이 셋이라는 숫자도 완전함을 얘기합니다.
여기가지 마무리하고, 우스개 소리를 하나 하면, 60년대 70년대에 이렇게 해석한 놈들이 있어요. 샘, 샘족은 백인종이고, 함은 황인종이고, 야벳이 나중에 저주 받는데, 야벳을 흑인종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흑인들이 고 모양 고 꼴로 산다고 설교한 미국의 목사가 있었어요. 그랬어요. 지금에 와서도 반성문 하나 제출 안 하고 있지요.
하하하.......
기쁨 :
저도 들어봤어요.
머슴 :
그런 놈들이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666을 사탄의 숫자라고 하며 그것이 바코드로 세상에 출현했다고 했지요. 어떻게 666이 사탄의 숫자인가? 666은 상대의 세계를 표시하는 숫자예요. 그들은 또 사탄의 열 나라가 EU고, 그 사탄의 괴수가 교황이라는 둥 그따위 해석을 했어요. 어떻게 잘 있는 교황님을 사탄의 괴수라고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이 어찌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는지. 이놈들도 여태 반성문 제출 안 하고 있어요. 다행히 요즘 그런 해석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어요.
자, 오늘 얘기들 아시겠지요? 메타포와 수비학의 신비를 숨겨놓고 있다는 것. 저는 11장까지의 원역사는 계속 이런 식이라고 보아요. 상대의 세계와 절대의 세계를 죽 번갈아 가면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죠. 어쩌면 내가 요즘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그렇게 해석되는 지도 모르지요. 원래 해석하는 사람의 관심이 많은 방향으로 해석이 나오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은 이렇게 보는 시각이 어때요?....... 괜찮죠? 이런 식으로 상대와 절대의 두 라인을 묘하게 교차하면서 메타포를 주는 곳이 바로 신약에선 요한복음예요.
오늘 창세기 5장까지의 묵상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근데 우리가 상대를 진실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절대도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느끼는 것이 상대도 철저하게 참이어야 한다. 그렇게 의미로 다가와야 생명도, 존재도, 영생도 목적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마음나누기 합시다. 하늘님부터 하시지요.
하늘 :
왜 족보를 내세울까. 지금의 나. 그 자체로만 세우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무엇인가 기대어야만 되는 그곳 정통성이라는 것이 다른 이에게 기대어서야만 나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고....... 저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신 어머니의 생신이 오늘입니다. 예전에도 생신이면 모여서 같이 식사하고 하였지요. 항상 어머니가 일을 다 하시었는데, 어제가 마침 쉬는 토요일이어서 어제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 준비하고 어머니 생신을 치렀습니다. 진작 이렇게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었는데 왜 미루어왔을까. 바쁘기도 했고 핑계도 많았지만 이번에 딱 한번 해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잘 할 수 있겠다. 아니 잘 한다기보다는 하는데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전에 못 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아멘.
기쁨 :
상대세계와 절대세계, 3차원과 4차원. 이걸 많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멘.
여백 :
다들 생각들뿐입니까?
하하하.......
머슴 :
다들 머리형들이라 생각만 나오잖아. 하하하. 머리형인 기쁨님이 옆에 있는 것이 좋아. 어제 꿈을 꿨거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 페이퍼를 했어요. 꿈 내용을 썼지요. 난 해석이 안 되더라고. 그런데 아침에 김흥호 선생님에게 가는 길에서 기쁨님이 해석을 해주는데, 햐. 기막히게 딱 맞는 해석을 해주는 거야.
하하하.......
머슴 :
꿈에 두 친구 목사가 등장을 했거든, 한 놈은 내가 우습게 아는 목사이고, 한 놈은 내가 존경하는 놈이었어요. 꿈속에서 내가 한 놈에게는 영적 교만을 부리고 있더라고. 우리 기쁨님 해석으로 나의 영적 교만을 깨우칠 수 있었어요. 정말 기쁨님은 제게 태양예요.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어요. 덕분에 회개할 수 있었어요.
하하하.......
수국 :
아침에 있었던 일인데, 장을 보러 갔는데요. 횡단보도에서 차가 내게 돌진을 하다 급정거를 하더라고요. 그 횡단보도가 거의 10년간 거기 없었는데 약 석 달 전에 생긴 거지요. 그래서 거기를 다니던 차들은 습관 때문에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획 지나가고, 사람들도 차가 없으면 신호등을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고 있지요. 제가 매우 놀랐는데, 기존의 습성이 있었는데 새로운 규칙이 생기면 그 습성이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사람도 매우 놀랐겠지요? 내가 쳐다보면 미안해 할까봐 서둘러 그냥 지나갔는데, 내내 그 습성이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멘.
머슴 :
머리형들은 끝에 ‘생각했습니다.’로 끝나네. ‘할 겁니다.’로 끝나는 사람들은 장형이겠지? 그럼 가슴형들은 ‘라고 느낍니다.’라고 할 거야.
하하하.......
수국 :
살아있어서 기뻐요. 호호호.......
머슴 :
기뻐요? 가슴형이란 말이네? 그런가?
진이 :
자, 그럼 여기 가슴형의 소감을 들으시겠습니다.
하하하.......
진이 :
족보얘기를 상대세계와 절대세계로 풀어주신 얘기를 들으면서 놀랍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고요. 생각을 해봤어요. 처절하게, 절박하게 정말 치열하게 상대세계를 살지 않으면 절대세계가 보이지 않지 않을까하고 얼마 전부터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루어 내 안에서 살아간다는 그런 경험을 하고 있어요. 오늘 말씀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조화롭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멘.
나그네 :
전에 이름이 황진이 아니었나요?
머슴 :
처음에 어린왕자였지. 그랬다가 에니어그램 할 때는 그리스도였다가, 황진이에서 진이로 되었네.
진이 :
진이라고 하니까 섹시하게 들린 데요. 이번엔 아주 마음에 듭니다. 호호호.......
하하하.......
자연 :
앞에 네 분이 마음나누기를 하시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제 어머니 생신은 이번 수요일이어서 하늘님 고백을 들으니까 갑자기 부담이 팍 들어옵니다. 수요일에 일 갔다 와서 뭘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저를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호호호.
하하하.......
자연 :
진이님은 벌써 이름을 여러 번 바꾸셨는데 저는 너무 한 이름만 고집한 것이 아닌가. 좀 변화를 주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대와 절대를 얘기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그것들이 배척하며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서 여기 이곳에서의 저의 삶이 잘 어우러져가야 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요.
이번 주에 계속 눈이 왔잖아요. 너무 신비로운 거예요. 2월에 봄이 왔다가 3월에 겨울이 오고, 아침에 따스한 햇살이 있다가 오후에 쌀쌀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리며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거기다 사람들의 반응이 다 제각각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 건지 무섭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눈 내리는 것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눈이 오는지 마는지 책상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도 있고, 넓게 다 보이는 세상이 신비로웠습니다. 아멘
머슴 :
삶에서 신비를 알아차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제가 요즘 과학책 하나 잡아 읽고 있는데, 미국에 유명한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한 얘기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자리가 좁다는 것 같은 거에만 신경을 쓴다는 거예요. 그런데 땅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육중한 비행기가 뜨는 것을 신비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나그네 :
생일 얘기들을 하시는데, 어제가 제 생일이었습니다. 어제 친구들 따라 산에 갔다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2년 전에 한 1년간을 앓고 난 후에 사람이 늙어가고 죽어간다는 것을 굳어지는 몸을 느끼며 통감했습니다. 누웠다가 일어나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체력의 저하를 여실히 느끼며 노쇠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통감하기도 했어요. 사람이 늙어서 죽어갈 때 몸은 어떻게 움직이겠구나 하는 것이 상상이 될 정도로 깊은 경험을 했지요. 그러고 1년간 회복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제 산을 가보니까 얼마나 아직 내 몸이 형편없이 망가진 채로 있는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몸이 고통을 하소연해오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어디까지 내 몸이 견디어내는지, 내 몸이 견디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를 한번 보기로 하며 쉬지 않고 산행을 해 봤어요. 숨이 가쁜 것, 다리가 힘없이 꺾이며 고통을 호소해 오는 것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려고 했지요. 그랬더니 평상시에는 알아차릴 수 없었던 몸의 허약함이라든가 오랫동안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신체 각 부분의 무기력들을 알아차릴 수 있겠더군요. 느끼기에 그런 부분들은 마치 이미 송장의 그것처럼 보여지더라고요. 많은 부분이 죽어있었고 일부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냥 놔두면 그런 식으로 점점 더 굳어져 죽어가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등산하는 동안 저는 제 몸에 상당한 시간동안 오래 집중하여 주시하였던 것 같아요. 숨 가쁘게 움직이던 몸 안에서 상당기간 유지되던 고요함을 가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산에서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아득한 거리감을 가지고 아름답게 느껴졌고요. 산등성이를 넘자 감쪽같이 눈보라가 사라지고 포근한 봄 날씨가 감돌았는데 고통 속에서도 저에게 미소가 피어오르게 하더군요. 겨울과 봄의 날씨를 다이나믹한 명상 중에 새롭게 느껴보는 감각으로 접할 수 있어서 고통마저도 보람이 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등산 끝나고 저녁 먹으며 친구들이 생일 축하해줘서 생일 턱도 먹은 셈이 되었고요. 고통 속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제가 장남인데, 젊어서 아버님이 제 앞에서 자꾸 족보얘기를 하시는 것이 싫었어요. 뭔가 가문의 짐을 지우시는 것 같은 부담을 느꼈었나 봐요. 그런데 오늘 족보 얘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 수비학적인 비밀을 감춰놓은 것을 보면서 제가 집 안의 족보를 보다가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옛날 사람들의 살았던 이야기 속의 비밀을 파헤치듯이 족보를 더듬어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 속에 비밀이 있어서 오늘의 나에게 뭔가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환상 같은 것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나는군요. 과거와 핏줄로 연결된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하나의 신비가 되어 지금의 생명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족보라는 것이 단순히 따분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상기할 수 있는 신비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슴 :
생명의 이어감을 피부로 느끼는 거예요. 207기는 수련회 마지막 날 가족 세우기 안했나? 그거 할 때 이어감의 영적 메시지가 확 들어오는데. 특히 가족에 화 날 일이 있은 사람이 많은 기수에는 꼭 합니다. 여기 내가 있으면 윗대에 아버지 어머니가 있지요? 그 윗대에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그 윗대에는 여덟 분이 계시지요? 그리고 그 윗대에 열여섯 분, 이렇게 4대만 가도 조상이 개인당 30명이 됩니다. 이 30명을 삼각형으로 세워 놓지요. 이렇게 가족을 세우는데, 그 중에 하나라도 뺄 수 없습니다. 내가 지구에 올 수 없었습니다. 이중에 한 할머니가 기생이었어요. 빼자! 못 빼지. 이 할아버지가 상머슴이었어요. 빼자! 못 뺀다구. 이렇게 삼각형으로 사람을 세워놓고 보면 진짜 눈물나요. 이 수련 중에 산파들이 그 중에 한 사람 빼자고 가서 잡아당기면 당사자는 쏜살같이 달려와서 막고 난리 나요.
나그네 :
아....... 상상이 갑니다.
족보를 남을 향한 배타적인 것으로 인식할 때는 거부감이 생겼는데, 족보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느끼면서 옛날 얘기 보듯이 보니까 친밀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족보가 개인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머슴 :
족보얘기가 나와서 여러분들에게 하나 얘기할 것은, 조선시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유교를 굉장히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일제의 교육의 잔재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유교가 얼마나 멋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느냐하면, 4대까지 제사를 지냅니다. 기억하는 겁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지금 자신의 생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왔는지....... 그러니까 여러분은 제사를 꼭 지내세요. 어떤 형태로든지. 예수쟁이면 예배를 통해서 그분들을 기리고, 또, 상 놓고 절해도 돼요. 가톨릭은 얼마 전에 인정 했어요. 아직 개신교는 제사지내지 말라하지만 괜찮아요. 그것들은 하나님도 모르는 놈들이야.
하하하.......
뱃사공 :
어제 나그네님하고 북한산 같이 갔었지요. 나그네님 덕택에 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하하.......
머슴 : 물방울님 하고 누가 체력이 더 나아?
뱃사공 :
거의 막상막하입니다. 하하하....... 정말 나그네님 때문에 제가 건강하다는 자부심이 생겼으니까요. 하하하....... 산에 올라가면서 상대적인 것을 많이 느꼈는데, 집에서 나올 때는 봄으로 옷을 가볍게 하고 나왔지요. 하늘도 맑고 봄산이 참 좋겠구나하고 갔는데, 중턱에서 비가 쏟아지고 정상에 가까워서는 눈이 내리치며 바람이 세어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곽 반대편으로 내려갈 때는 바람 한점 없이 따뜻한 날씨가....... 그리고 전 산에서 겨울바다를 보았습니다. 여기가 겨울바다구나 한 것은 눈보라가 강한 바람에 몰아치면서 그 강한 바람이 나무 숲 사이로 파도치는 소리를 내더란 거죠. 마음에 새로운 감이 일어나는 것이 산에 오르고서야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고생 중에도 봄과 겨울과 그리고 바다를 한꺼번에 가질 수 있었던 산행이었습니다.
오늘 여행한 창세기의 이 부분은 항상 짜증나던 곳이었습니다. 창세기를 읽다가도 이 부분만 나오면 덮어버리는 곳이었지요. 누가 누굴 낳고, 몇 살까지 살다 죽고....... 그런데 머슴님이 오늘 풀어주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하고 참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족보라는 것에서 내가 어떻게 이곳에 서 있구나하는 나의 서있음의 근본 뿌리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장을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머슴 :
아, 지금 자연님이 귓속얘기를 하는데 그것 참 좋은 단초입니다. 아담이 셋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가인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담은 절대와 상대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시초이기도 하면서 절대자가 처음으로 직접 손을 대서 만들기도 한 존재이지요. 그를 통해 우리는 절대와 상대를 함유한 채 절대자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가 예수의 근원을 아담으로까지 이끌고 간 것이구요. 거기서 절대자와 연결되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도 또한 우리도 아담과 같이 같은 선상에서 중보자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기 :
어제 엄마에게 내려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동생네 보신다고 올라오신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 심통이 났었지요. 엄마가 밥 먹자고 동생네 오라시는데 싫다고 놀러간다고 하고는 스키장에 갔습니다. 넘어지고 다치고 그랬지요. 참 제가 유치하다. 아직 어린애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주에 머슴님이 보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거든요. 했습니다. 처음엔 울었습니다. 정말 생각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화초를 보며 있음 자체를 보다가 생각으로 그 화초를 칼로 확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보는데, 그 잘린 상처가 아프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는 것을 안 순간 잘린 채로라도 그 있음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있음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을 보게 된 거죠. 상처도 내 생각이고, 온전하다는 것도 내 생각이고, 그 생각이 지워질 때 그냥 봄을 통해 거기에 있는, 있음 자체로 충만하다는 것이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본다는 것이 점점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야겠지만요.
머슴 :
40일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뇌공학에서 말하는 길이 납니다. 그리고 그런 호르몬이 작용을 해줍니다. 그 중에 중단을 하면 호르몬 분비도 그치고 길이 나려다가 없어져 버립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들은 이 뇌공학으로 문제를 풀어요. 하비람에도 영성훈련에서 우울증 같은 뇌질환이 있는 사람이 들어오면 약 먹여가면서 합니다. 그 약이라는 것이 뇌에서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주는 거래요. 항우울제라는 것이 다 그런 거더라고요. 40일을 계속하세요. 길이 날 때까지요. 오늘 읽어준 시에서 ‘시방은 아무쪼록 나를 떠나 사람으로 돌아가기. 사람을 떠나 물건으로 돌아가기. 마침내 나를 떠나 나없는 나로 돌아가기.’ 이렇게 되게 뇌에 길이 나도록 40일 이상 꾸준하게 수련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자꾸 그렇게 보려고 하면 그렇게 보게 됩니다. 근데 나도 요새 가끔 눈이 가려져서 잘 안 보여요. 그게 사람이야. 하긴 그래야 사람으로서 매력이 있어요. 예수님도 그랬을 것 같아요. 후후후.......
생기 :
저는 상대와 절대가 분리되어서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상대 안에 절대가 있는 거구나. 그래서 그걸 통하려면 디자이어(desire)를 실현하는 건데, 저에게는 몸은 느끼는데 머리가 막는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디자이어(desire)를 못 찾고, 지난 후에 몸이 말하는 대로 했으면 됐는데 하는 후회를 가질 때가 있었습니다.
머슴 :
많이 갔네. 생기님 많이 갔어요. 이 지점에서는 다급해하지 마시고 몸이 가는대로 가세요. 생각이 막더라도 싸우지 말고 느긋하게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셔요. 한번만이라도 몸이 가는대로 충실히 가보면 자신감이 붙을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무척 쉬워요. 생각이 더 이상 어쩌질 못합니다. 자신감을 갖도록 해보세요. 생각이 무기력하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되면 환희조차 일어납니다. 생각의 본질이 두려움과 의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원적인 두려움이 사라지고 추호의 의심도 사라지는 청정한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는 거지요. 원래 거기 있는 거였지만요. 또 두려움과 의심은 없는 사람이 없지요. 그리고 몸이 가는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반드시 거기 있는 두려움과 의심을 잠재우고 원래 있는 니르바나를 회복시키는 키 중의 하나입니다. 언젠가 내가 얘기했듯이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행동하는 겁니다. 몸이 가는 대로 따르려 하면 두려움이 즉시 고개를 듭니다. 놀래지 마시고 비난하지 마시고 그 자리에서 그냥 움직이십시오. 놀랍게도 그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또 그 일이 일어날 때 다시 두려움이 생긴다 해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수십 년을 습관이 되어있는 ‘두려움 일어남’이 한번에 없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계속하십시오, 40일, 40번....... 언젠가는 갑자기 소음이 사라져버리듯이 두려움이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단, 생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즐거움으로 가십시오, 즐거운 마음으로 몸의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두려움을 보고 죄의식을 갖지 않으며 초롱하게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동의 첫발자국을 내딛으십시오, 그때 신뢰가 같이 할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조차도 약이 되는 인생의 소중한 부분을 귀중하게 100% 살아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생기님의 삶에서 부정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넘은 진실을 깨닫고, 그 축복된 사실을 만끽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생기 :
네, 알겠습니다. 최소한 이 지점에선, 일단 저에게 전에는 무심코 알 수 없었던 두려움과 의심이 많다는 사실을 보았고, 얻었습니다. 아멘.
강물 :
처음 왔습니다. 206기 깨기를 했구요. 힐링러브 같은 짧은 수련을 했습니다. 강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데, 강물처럼 살고 싶어서 이 이름을 씁니다. 쓸수록 더욱 좋아집니다. 여기를 전부터 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기회를 보다가 결국 오늘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느낀 것 두 가지 중에 하나가, 전 제가 이상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거거나,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었거나 하는 겁니다. 위안이 되는군요.
하하하.......
머슴 :
그 얘기를 써보면, 이건 지난주에 고민한 것 중의 하나인데, ‘정상(正常)’ ‘비정상(非正常)’....... 기준이 뭡니까? 정신박약아는 비정상이고, 우리는 정상이야?
자연 :
우리도 정신박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물 :
정신박약아 입장에선 우리가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머슴 :
그렇습니다.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없습니다. 이게 많이 걸려 넘어지는 것들 중의 하나입니다. 강물님 말 참 잘했어요. 다 이상하고 다 비정상입니다.
여백 :
박수 한번 칩시다.
짝짝짝.......
자연 :
우리가 비정상이 맞군요. 비정상이란 말에 모두 박수를 치니까요. 호호호.......
하하하.......
강물 :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대와 절대를 말해주셨는데, 요새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데요. 사람이건, 사물이건, 자연이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사랑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말씀 들으면서도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슴 :
더 자연스러워 지겠다는 것도 생각입니다. 우리 본질은 원래 자연스러워요. 그냥 본질을 회복하면 돼요. 초연한 척, 태연한 척도 척이라는 거지. 이것도 어디엔가 묶이는 겁니다. ‘난 자연스러워’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이미 묶이는 것이라는 겁니다. 가슴이,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자연입니다.
강물 :
네, 감기기운이 있어서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머슴 :
잘 오셨습니다. 허허허.......
바그완 :
강물님은 제가 전 회사 다닐 때 저의 팀장님이셨습니다.
머슴 :
오호. 그래요? 바그완이 꼬셔서 하비람을 다녀오셨구먼?
바그완 :
허허허. 네, 제가 푸쉬 많이 했습니다.
오늘 신실함과 다함이라는 말이 다가오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식사기도 할 때도 ‘다하고 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뭘 다하는 건지....... 그전 회사 같은 경우는 할일이 주어져 있었는데, 지금 새로 옮긴 곳은 정해진 일이 적고 자신이 일을 만들어 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자기 일을 잘 찾아서 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일에서 다함을 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물방울 :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또는 약속이 있다거나 하면 사람이 기대를 하잖아요? 아까 에녹 얘기를 들을 때 그가 365일을 하루처럼 살았다고 하시는데, 과연 내가 이 순간 오늘이 다인 것처럼 살았나. 맨날 내일만 기대하며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고 내가 이 순간을 살아야 하는데 항상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하고 저쪽에 가서 그 다음이 일어날 다음 날만 기다리고 살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뱃사공이 혼자 산에를 갔어요. 그래서 집에 저 혼자 있는데 얄미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하하.......
물방울 :
평소에는 나하고 산에 가자고 한번도 안하더니 친구들이 가자고 하니까 어쩜 저렇게 즐거워하면서 갈까하고 얄미웠는데 잠시 후 밖에 비가 내리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잘됐다!
하하하.......
물방울 :
야, 고생 좀 하구....... 마누라한테 한번도 산에 가자, 운동하자 소리 안 하는 사람인데, 아까도 오면서 고생했다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 참 고소하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멘.
하하하......
또 하나의 기쁨 :
족보가 역사이면서 자아실현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해했는데, 그 자아실현에 대해서 요즘 많이 놓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련도 했고, 알고도 있는데 못하고 있더라고요. 말씀을 들으며 왜 못하고 있나를 계속 궁리해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저에게는 의심보다는 두려움이었어요. 예전에는 의심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이 더 고개를 들더라고요. 함께 하고 기댄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 저에겐 혼자 간다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갈수록 그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혼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두려움이 올라오는 겁니다. 30대, 40대에는 그 두려움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린 작은 아이가 남의 집에 놀러가서 종류가 다른 세 가지 쥬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대신 우리 집하고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저는 고맙다고 말을 했습니다. 나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 자꾸 지금은 아이들 앞에서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어오는지 두려웠습니다. 자아실현에서 이런 두려움을 따르는 부정적인 실현 쪽으로 가지 말고 긍정적인 실현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머슴 :
기쁨님 두려움을 나이가 들수록 더 많아지는 겁니다. 그건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가슴에서 하고자 하는 대로 하시라니까요.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하는 수밖에 없어요. 최근에 나 만나고부터는 잘 하시더니 왜 힘들어해요? 좀더 이완하시고 좀더 느긋하게 생각을 풀어놓아 주십시오.
또 하나의 기쁨 :
네, 알겠습니다.
하별 :
절대와 상대 속에서 절대를 너무 찾다보니까, 다리를 다쳐가지고 상대로 이끌어 내려 주시더군요. 상대 속에서 절대를 바라보라고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시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멘.
기쁨 :
아니 다리를 어쩌다가 다쳤어요? 심해요?
하별 :
아뇨, 심하진 않습니다. 화장실에서 어디에 심하게 부딪친 겁니다.
저런, 저런, 쯧쯧쯧.......
여백 :
뇌공학적인 마음나누기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무한 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감사와 기쁨의 화신 여백입니다! 하하하....... 행복학 강의 테이프를 들어보니까 뇌공학 얘기도 많이 나오고, 엔돌핀 얘기도 나오고, 그래서 야, 참 내 생각하고 똑같다. 농담으로라도 부정적인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말 한마디가 습관이고 습관이 실력이고 하니까 좋은 얘기,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주로 ‘낳았고, 살았고,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정말 낳는 것이 중요하구나. 그리고 가족세우기에서도 제가 애가 없으면 그 밑으로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 아내 사랑님이 안 낳으려한다면 딴 데 가서라도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머슴 :
그럼 아우님 생각이 많이 바뀌었네?
여백 :
아닙니다. 아직 낳아도 좋고 안 낳아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머슴 :
아녜요. 이어져야 됩니다.
지혜 :
저는 성공하는 삶의 예술가 지혜입니다!
하하하....... 짝짝짝.......
지혜 :
나란히 앉아계신 나그네님과 뱃사공님 참 보기 좋으세요.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는데 친구도 오래되면 닮는가보다 하고 두 분이 많이 닮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구요. 절대와 상대 세계 오늘 말씀 정말 감사했고, 제가 저번 주와 이번 주 두 번 왔는데 저번 주보다 이번 주가 훨씬 더 익숙해져서 지금 편안함을 느끼고 있구요. 이렇게 모르는 내용들을 알아가서 기쁘며 깨우침에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도반들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제가 음악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와아....... 짝짝짝.......
민들레 :
지혜님이 옆에 계신데 매우 친한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우리 아들하고 살아가기를 같이하셔서 내가 애정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까 족보얘기를 하면서 나는 우리 아빠하고 우리 엄마를 참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선택해서 나온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선택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무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이 막 올라왔어요. 그런데 이 두 분에게 한번도 감사하단 말을 못하고 두 분이 다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는 당연히 그렇게 주는 거고 나는 당연히 그렇게 받기만 하는 걸로 알고 살다가 그 주시는 것이 고마운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지요. 그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못한 대신에 나 자신이 잘 살아가고, 내 아이들한테 내가 이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행복합니다. 아멘.
순둥이 :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저하고 또 하나의 기쁨님은 수요 성경팀예요. 머슴님이 람스예배와 합치면 어떨까하시는 얘기를 하셨고요. 체력이나 시간이 허락된다면 제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며 두 탕을 뛰게끔 하고 싶습니다. 머슴님의 성경공부가 저에게는 정기적으로 맞는 뽕 같아요.
하하하.......
순둥이 :
뽕을 맞으면 기운이 확 나서 일주일을 살아갔는데, 두 달 쉬었더니 매우 그리웠습니다. 저는 학교에 있는데, 진짜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 20년 넘게 하던 장사가 방학을 끝내고 일주일 됐는데 등에 담이 들면서 힘이 드는 거예요. 이제는 전과는 또 다른 선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옛날에 항상 하던 건데도 괜히 공을 들이게 되서 별것도 아닌 것에 시간을 오래 끌고, 마음이 더 가게 돼서 그런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남편에게 할 일, 아이들에게 할 일을 다 버리고 지금 여기 와서 앉아있는데 역시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뱃사공님처럼 창세기 이 부분 낳고, 낳고 하는 얘기를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여태 성경을 한번도 통독해 보지 못했지요. 여기저기 읽어보라는 데만 읽어봤지요.
머슴 :
통독할 필요는 없어요. 나처럼 전문적으로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통독하는 것이지. 그러나 뭐 한번 정도 통독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성경의 구조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순동이 :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머슴님의 성경공부의 진한 매력이 가슴에 팍팍 왔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교장 선생님이셨으면서 유교적인 기풍이 강하셔서 제가 결혼할 때도 남편감이 양반의 자손이냐를 따지셨습니다. 제가 동춘 할아버지 은진 송씨의 11대 손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자라서 너무 족보가 지겨웠었거든요? 그러데 오늘 말씀을 들으며 족보라는 것이 이렇게 뜻이 있고 이해가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특별히 느껴지는 것이, 몇 대, 몇 대에 하나님이 가장 꼭 맞는 이름과 상황과 살았던 연도까지를 정해주시는 걸 보았는데, 저에겐 가장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질 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이 나에게 꼭 맞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일 때인데 여기도 이런 뜻이 있겠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시대에 여기 태어나 어떤 남편을 만나고 어떤 자식을 낳고 이런 것들이 나에게 가장 꼭 맞는 상황이고 이것이 아름다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족보를 쓰고 내 밑에도 뭔가를 남겨줘야 하는 새 역사를 창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멘
머슴 :
때에 알맞은 것 곱하기 공간(合時 x 空間)이거든요. 여기서 공간을 해결하는 방법은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 곱하기 공간이 절대로 향합니다.
생기 :
때에 알맞지 않은 게 있나요?
머슴 :
없지.
순둥이 :
내가 힘들 때 내가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머슴 :
오늘 김흥호 선생한테 들은 상대와 절대를 극명하게 표현한 얘기를 오늘 마지막으로 해드릴까 합니다. ‘살아서 먹을 것이 없고, 죽어서 갈 곳이 없다.’ 이것이 허무(虛無)입니다. 이게 상대의 세계입니다. ‘살아서 먹을 것이 있고, 죽어서 갈 곳이 있다.’ 이것이 실존(實存)이며 절대의 세계라고 합니다. 근데 잘 생각해보슈. 우리가 사는 상대의 세계도 살아서 먹을 것이 있고, 죽어서 갈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죽었다고 안 그러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가니까요. 상대가 절대와 분리되지 않았으니까. 없다와 있다도 분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광고하시겠습니다.
하늘 :
다음 주 예배를 이끌어주실 분을 정해야겠는데요.
머슴 :
네, 제가 내일 미국으로 가서 두 주간 제가 설교를 못하거든요. 그래서 누가 자진해서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뱃사공 :
제가 다음 주에 하겠습니다.
오호....... 짝짝짝.......
머슴 :
그 다음주는?
나그네 :
여성동지께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하늘 :
지원자가 없으니, 그럼 또 다음 주에 모여서 결정하도록 하지요.
짝짝짝.......
기쁨 :
떡볶이와 오뎅이 불고 있습니다.
머슴 :
아, 떡볶이와 오뎅이 불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기도 세 번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 완전 충만 일체 은혜 감사, 그리스도 완전 충만 일체 은혜 감사, 그리스도 완전 충만 일체 은혜 감사, 아멘.
빨간 양념에 푹 담긴 떡볶이와 구수한 국물의 오뎅이 홀 중앙 원목 테이블에 가득 차려졌다. 삶은 달걀도 떡볶이 양념과 오뎅 국물에 담겨있었다. 모두들 젓가락을 바삐 놀리며 정성스럽게 시간까지 맞춘 음식을 먹었다. 평소 빵을 먹을 때보다 일찍 접시가 비워지는 것은 매운 떡볶이 맛과 시원한 오뎅 국물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모두 함께 하여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뱃속만 채워지지 않고 모두의 가슴을 채우는 것이 바로 이 축복이 아닐까. 커피와 베지밀로 입 안을 가시고 있을 때 지혜가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바로 오늘 지혜가 가져온 음악 선물이 개봉되고 있는 것이었다. 지혜는 복음성가부터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축복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다시 쏟아지는 은총의 선율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혜는 미뉴에트도 연주하였다. 지혜의 바이올린 미뉴에트는 봄이 오는 소리였다. 눈앞에 만개한 화사한 봄꽃들이 가득 차고 있었다. 그리고 꽃길을 따라 아이들이 화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달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맨발이 밟는 들판은 파란 싹이 올라오는 잔디로 온통 덮여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바이올린에 힘을 불어넣었다. 황홀한 바이올린 연주에 모두들 잡념이 사라지고 안온한 휴식의 일요일 오후를 선물 받고 있었다.
이어서 뱃사공이 기타를 꺼내들고 지혜의 바이올린과의 합주를 시작하자 모두들 그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처음 노래는 <우리에게 향하신>이었다. 그 다음은 <왕이신 나의 하나님>, <아주 먼 옛날>, <예수 사랑해요>, <너에게 주노라>그리고 <소원>이 합창으로 이어졌다. 노래를 하면서 나그네가 초등학교 때 합창부였다는 것과 기쁨이 어려서 지금은 없어진 TBC, 동양방송 합창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갑자기 사람들이 기타 치는 뱃사공의 솔로를 원했다. 뱃사공은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원>을 불렀다. 뱃사공의 노래는 좌중을 압도하여 노래가 끝나자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오며 그치질 않았다. 뱃사공은 결혼 전에 물방울의 집에 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물방울과 그녀의 식구들, 특히 처제 될 사람을 매료시켰다고 한다. 그의 기타연주와 노래는 그의 인상을 좋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여 물방울과의 결혼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뱃사공은 나그네와 둘이서 김민기의 <친구>를 부르자고 하였다. 모두 박수로 환영하였다. 두 사람은 중학교 다니던 시절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뱃사공이 이 노래의 멋진 기타 반주를 터득하고는 이 어린 두 친구는 이 노래에 심취하여 부르고 또 부른 것이다. 이들이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때 그 잔잔하나 호소력이 있는 노래는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감게 하였다. 음유시인의 노래 같은 김민기의 <친구>가 여운을 길게 끌며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김민기는 머슴의 큰형과 절친한 사이로서 머슴과는 오랜 친분이 있었다. 머슴은 이 노래 <친구>가 만들어진 배경을 말해주었다.
이 노래 <친구>는 김민기가 경기고 3학년 때 만들어진 노래이다. 그는 경기 중, 고등학교 때 보이스카웃을 열심히 하였는데, 당시 고 3이었던 그는 경기 중, 고 보이스카웃 대장이었다. 그때 삼척 후진 해수욕장에서 잼보리 대회가 열렸는데, 그의 가장 아끼는 2년 후배가 그만 바다에 빠져 익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민기는 이 후배를 기리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뭍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아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고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
잠시 잊고 지내지만 우리에게는 죽음과 그와 함께 거둘 수 없는 슬픔이 있다. 그 마저도 노래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지만 죽음은 온전히 그 당사자의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절대의 손길의 하나로서 일일이 숭고한 것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선물로 받은 이 몸에서 생명과 함께 신비하게도 그치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절대의 손길 중에서 가장 매혹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늙어감과 함께 이 죽음인 것이다. 사람들은 짙은 포도주를 한잔 마신 것처럼 죽음이 상기시키는 불가지에 잠시 사로잡혔다.
사람들의 침묵을 가르며 뱃사공의 기타연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고린도 전서의 내용으로 가사를 만든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에 이끌려 모두 입을 모아 합창을 하였다. 아쉬움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혜는 마지막 바이올린 연주를 선물하였고 소중한 3월의 일요일 하나가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