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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소식 5호(영국연수 보고)♧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좋은 교육을 경험하고
정 호 진(인도 농업선교동역자) 2002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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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저는 영국연합개혁교회(The United Reformed Church)의 초청으로 배상왕목사(의정부 송암교회)와 김영선전도사(인천 해인교회)와 함께 지난 4월 9일부터 6월 7일까지 약 8주간에 걸쳐 영국에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인도선교를 위해 영어훈련과 타지 문화를 이해하는 훈련이 절실히 필요했던 제게는 이번 연수가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경험이 되었기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아울러 초청해주고 좋은 교육을 시켜준 영국개혁교회와 선발해주신 기장 총회와 해외선교 위원회 그리고 위해서 기도해주신 분들과 교회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했던 사람들
영국개혁교회의 초청으로 교육을 받기 위해 에딘버러에 모여든 사람들은 5개국에서 모인 12명이었습니다. 모잠비크(2명), 헝가리(3명), 체코(3명), 독일(1명) 그리고 한국(3명)이었습니다. 교육생들 중에 여성이 작년에는 반반이었다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간 김영선전도사 한 사람 밖에 없었던 점이 참 아쉬웠습니다. 다음부터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남녀의 배분을 잘 하기로 했습니다. 연령은 33세에서 52세까지로 비교적 세대차가 많이 나지 않는 편이었으며, 대부분이 목회자였고 대학의 채플린이 한사람, 기관 근무자 2명, 선교사가 1명이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하거나 지도해준 선생님은 4명(Robin, Isla, Biffy, Anne)이었으며 두 사람은 주로 문법과 발음 및 말하기를 지도했고 한 분은 듣기와 스코틀랜드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주로 탐방 일정을 짜고 안내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뒤에서 도와준 스텝들과 특강을 맡아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교육을 하기에 너무도 좋았던 곳(St.Colms)
우리들의 교육장소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딘버러에 있는 St. Colms International House 였습니다. 그곳은 생활하거나 교육을 하기에 한적하고 참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시내와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나갈 수도 있었고, 가까이에 Botanic Garden과 체육공원들이 있어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기에도 아주 적당했습니다.
개인별로 방이 하나씩 주어졌으며 샤워실과 화장실은 3-4명이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나는 처음엔 배상왕목사와 한 방을 둘이서 쓰도록 배치되었습니다. 외롭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과제가 많은 편이어서 생활습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일에 모범적인 배목사는 남보다 먼저 과제도 하고 일찍 자는 생활습관을 가진 데 비해 나는 좀 늦장을 부리다 과제도 늦게 하고 잠도 늦은 밤에야 자는 타입이어서 좀 힘들었습니다. 결국엔 개인면담시간을 통해 선생님께 요청하여 새로운 방을 얻게 되었는데 방은 작았지만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 과분했습니다.
식사는 아침은 우유와 씨리얼과 빵 과일 등으로 간단히 제공되었고, 점심과 저녁은 정찬이 나왔는데 참 근사한 식사였습니다. 작년부터 육식을 피하고 야채를 중심으로 물고기만을 먹는 생활로 바꾼 저를 위해서는 육식이 나올 때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요리를 준비해주어 아무런 불편이나 차별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점심 저녁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돈이 제공되면서 공식적인 식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사람들끼리는 한국식으로 밥과 찌개도 하고 김치도 얻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은 매주 에딘버러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유학중인 목사님들 가정의 초대를 받아 돌아가며 한식을 대접받기도 하고 우리들이 답례를 하기도 해서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규 교육과 생활 내용
교육내용은 큰 구성으로 보면 처음 3주간 교육, 4주간에는 시골 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현장실습, 5-6주간 교육, 7주간은 현장교회로 배치되어 개인실습을 한 후 런던으로 모여 종합정리 및 평가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매일의 일상은 먼저 간단한 아침식사 후 8:45-9:00까지 기도실에서 교육생들 끼리 자율적으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서로 돌아가며 인도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각자 두 세 번씩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주로 영어로 인도하는 실습이 되기도 했고, 각 나라의 찬양과 문화적특성을 소개하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주로 영어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는 수준에 따라 2개 반으로 나뉘어져 학습을 했기 때문에 약간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주로 문법교육과 말하기 훈련, Radio나 TV의 뉴스를 듣는 훈련 등으로 채워졌습니다.
오후 시간은 주로 개인면담 시간과 특강, 혹은 한 주간의 일정 소개와 탐방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 면담시간(Tutorial Time)이 제게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과 20-30분 정도의 면담시간을 돌아가며 갖는 것인데 주로 한 주 전에 제출했던 영문일기를 체크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더 하고 싶은 애기들이나 필요한 물품요청 혹은 건의 사항을 제안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생태공동체로 유명한 핀드혼 공동체와 생태환경 전문 대학인 슈마허 칼리지를 방문하고 싶다고 제안하여 선생님으로부터 핀드혼 공동체를 1박 2일로 함께 안내를 받아 다녀오기로 약속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개인 면담시간은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원 논문을 쓸 때 거의 형식적으로 해 본 경험 외에는 없었는데 매주 월요일 20-30분씩을 꾸준히 만나서 나의 진전된 부분이나 성장에 대해 칭찬도 받고 생각과 느낌을 선생님과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교육적으로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에서 제가 맡은 역할이 가난한 농민들을 3개월간씩 농업훈련센타로 모아서 생명농업과 생명운동에 대해 교육하는 일입니다. 이 때 모두 모아 놓고 하는 전달과 대화 교육 이외에 필히 이런 개인 면담 시간을 가져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필요를 알아내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잘 발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초 중고와 대학의 교육에서 이처럼 매주는 아니더라도 달에 한 번이나 한학기에 한 번 만이라도 선생님과 차분히 앉아 면담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교육에 획기적인 변화가 오리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일은 한편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영어로 문장을 만들어 가는 데 상당한 진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겪거나 생각한 바를 영문으로 표현해보게 되니 영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연수를 마친 뒤에도 영어로 일기를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아마 1년 간만 영어일기를 계속 쓴다면 영어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탐방시간을 통해 여러 곳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딘버러 내에 있는 로얄마일(Royal Mile) 거리와 존 웨슬레의 집, 에딘버러성, 중세 봉건 영주의 집, 남극 탐험선(Discovery), 호수 위에 지은 집(Crannog), 영국의 종교개혁과 관련된 많은 교회들, 존 녹스가 갇혀있던 감옥, 포클랜드 궁(Falkland Palace), 박물관, 미술관, 럭비경기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스코틀랜드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주로 영어로 일기를 쓰거나 과제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은 6시가 되면 먹지만 에딘버러의 밤은 10시가 넘어야 시작되었습니다. 위도가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때로는 뮤지컬(King and I)과 복음성가 콘서트에도 가고, 함께 팝에 가거나 옛날식 보울링장에 가기도 했습니다.
5분 발표와 마지막 발표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수업시간을 이용해 매일 1-2명씩 자신의 하는 일이나 관심사와 관련해서 5분 동안 영어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과 여러 교육생들 앞에서 발표도 하고 질의응답도 받아야 하니 바짝 긴장해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통 2번씩 짧은 발표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2일 간은 선생님의 수업이 없이 오로지 교육생들만의 발표로 채웠습니다. 한 사람이 20분 정도를 발표하기로 하고 자신의 전문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마지막 주간은 사흘 간 그 준비로 보내고 이틀은 발표로 보내느라 시간이 다 흘러갔습니다.
배목사는 한국교회의 역사와 하는 일에 대해 자신의 목회를 중심으로 발표했는데 한국교회의 특색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권의구목사는 존 로스목사의 성경번역과 한국교회사에 대해 발표했는데 스코틀랜드 선교역사여서 선생님들의 관심이 아주 높았습니다. 김영선전도사는 한국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여성운동적 입장에서 발표했으며 유일한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반성과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마지막 발표자였는데 평소의 관심에 따라 생명운동에 대해 환경운동의 변천사와 오늘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내용을 제 경험에 비추어 발표했습니다. 가장 긴 시간의 질의응답과 토론이 오갔으며 모두들 자신의 처지에서 생명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영어발표를 통해 우리들은 한 두 편씩의 영문원고를 만들 수도 있었고 영어로 발표하는 훈련도 잘 받았습니다. 각종 그림이나 자료, 그리고 OHP나 컴퓨터를 동원하는 발표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발표를 마칠 때까지 함께 틀을 짜주기도 하고 준비한 원고를 검토하고 수정해주고 발표하는 동안 진지하게 들어주고 평가해주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참 좋게 느껴졌고 앞으로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와 한인교회에서의 예배
주말에는 밀린 일들이나 빨래를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프로그램에 따라 탐방을 가기도 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우리는 교회를 선택해서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주로 영국교회들을 탐방했습니다.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새롭게 주목받으며 성장해가는 교회에 참여해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교회는 큰 건물에 비해 너무도 적은 수의 교인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주로 노인들이 중심이 되었지요. 그러나 몇 몇 교회는 시작시간 10분전까지 가지 않으면 자리를 얻기도 어려운 교회도 있었고, 교회가 좁아 2부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들에서는 주로 새로운 꿈과 비젼을 제시하는 설교가 이루어지고 힘있는 찬양이 울려퍼지는 특징을 지녔으며 젊은이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에딘버러에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한인교회가 두 곳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장의 노기원목사가 시무하는 에딘버러 한인교회였고 다른 하나는 유학 중인 목회자들이 서로 돌아가며 강단을 맡고 있는 로스 채플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에딘버러 한인교회와 인연을 맺게 되어 현장실습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오후 2시에 열리는 예배에도 참석하고 친교시간과 저녁식사모임에 까지 다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 매주 한국말을 실컷 할 수도 있었고 한국소식도 듣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에딘버러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에 가볼 수 있었던 로스채플도 나름대로의 특징을 잘 살려가는 아름다운 한인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런 한인교회들과의 관계는 가기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덤으로 얻은 참 좋은 소득이었습니다.
제 1차 현장실습(학생들 가르치기)
3주가 지난 후 우리들은 일주일 간 에딘버러에서 북동쪽으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포클랜드(Falkland)라는 농촌지역으로 현장실습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가기 전에 미리 편지를 보냈던 두 학교(Falkland and Freuchie Primary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각 나라별로 짝을 지어 자기 나라의 문화와 역사나 게임을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모두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두 조로 나누어 가르쳤습니다.
배목사와 에딘버러에서의 6주간 교육에만 임시로 합류한 권의구목사는 한국의 태권도를 가르쳤고, 김영선전도사와 나는 진도아리랑의 첫 부분을 우리가락에 맞춰 장구와 징 그리고 쇠를 동원하여 춤과 함께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개량한복을 입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닭싸움도 하고 한글로 이름을 써 주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이 쓰인 도화지를 보물처럼 가져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역시 태권도 였습니다. 우리눈으로 보기엔 어설픈 태권도 시범이었지만 온 학교와 동네가 태권도 기합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였고 시범조교였던 배목사는 과외지도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제 2차 현장실습(개별 현장 파견실습)
에딘버러에서의 6주 교육이 끝나고 우리 교육생 12명은 각자의 실습 현장으로 흩어져 갔습니다. 배목사는 지역사회 채플린으로 활동하는 목회자가 있는 뉴캐슬 근처의 달링톤으로 가고, 김전도사는 여성목회자가 특수목회를 하는 런던 근교의 욱스브릿지로 떠나고 저는 혼자 에딘버러에 남게 되었습니다. 에딘버러가 아닌 새로운 지역을 보고픈 마음이 많았지만 아직도 에딘버러와 맺어야 할 인연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제가 배치된 교회는 어거스틴교회였는데 에딘버러 시내 중심가에 있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번지(Bungie)목사가 시무하고 있었으며 주일 출석 인원은 70-80명 정도 되는 교회였고,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운동(Christian Aids)에도 열성을 보였습니다. 제가 가기 전에 미리 제 사역에 대해 소개할 준비를 하고 오라고 하여 미리 준비해둔 원고(My experience as a farmer in Korea and my mission plan in India)를 보냈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번지목사와 주일 예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영국찬송가 속에 있는 한국찬송가를 찾아내서 함께 불러보기도 하고 예배 때 내게 지도해주기를 요청했으며, 인터넷에서 한국지도와 인도지도를 찾아내 내가 농사지었던 합천과 인도사역지를 표시하여 OHP자료로 만들어 주었고, 내가 설교할 내용의 줄거리도 그렇게 만들어주는 등 열성을 보였습니다. 하여간 주일예배는 한국찬송과 제 설교와 다른 요소들이 어울어져 아주 감동적인 예배가 되었으며 긴급회의를 통해 저의 인도사역(푸른 인도만들기 운동)을 지원하기로 하고 200파운드를 주기도 했습니다. 번지목사는 제 설교문도 온 교우들에게 복사해서 나눠주었습니다.
다른 날들은 함께 심방도 가고 회의에도 참석했고, 에딘버러 민중운동의 산실인 크래그밀러도 돌아보았고, 농업선교를 주로 하는 저를 위해 대규모의 가든 월드(Garden World)에도 데리고 가 주었습니다. 어디든 제가 보고 싶어하는 곳이면 다 안내해주었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집은 그 교회 여장로님의 가정이었는데 함께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고 저를 위해 특별요리도 만들어주고 참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떠나는 날 정성스런 도시락과 함/게 역에 까지 바래다 준 따뜻한 마음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생태공동체로 유명한 핀드혼 공동체 방문
한 번은 주말을 이용해 선생님 한 분과 한국인 세 명이 함께 선생님의 차로 생태공동체인 핀드혼 공동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에딘버러에서 차로 세시간 반 정도 북쪽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오가는 동안 날씨가 너무 좋기도 했고 아름다운 해변과 생명세계 전체를 사랑하는 삶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공동체의 삶의 모습을 엿보며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해변의 경치에 취해 제 가방을 해변에 둔 채 백사장을 노래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걷다가 공동체로 돌아와서야 기억해내고는 다시 가 보았지만 없었습니다. 파출소에 가서 신고를 하고는 돌아왔는데 함께 간 선생님이나 경찰 모두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확신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그 가방은 약 보름만에 물건 하나 없어지지 않고 에딘버러에 있는 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생태적인 핀드혼 공동체의 모습들은 잔디로 된 지붕과 전봇대 대신 땅속으로 전선을 넣고 큰 우편함 같은 배전함을 아름답게 만들어 세운 것, 동물과 식물까지도 배려하는 마음에서 가로등을 낮게 하고 윗부분에 갓을 씌워 사람들이 다니는 데는 용이하지만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모습, 가정 오폐수를 작은 연못을 만들어 자연정화 하는 모습, 시멘트 대신에 짚을 넣어 벽을 만드는 모습 등등입니다. 인도에서 제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도 저런 모습을 많이 닮아가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산상수훈을 살아보이는 브루더호프 공동체 방문
한국에서 간 우리들 세 사람은 제 권유에 따라 정식 수업이 시작되기 5일 전에 미리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 잘 알려진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공동체 분들이 2000년에 한국에 왔을 때 합천 저희 농장을 다녀간 적도 있고 저도 영국에 가면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해두기도 했습니다. 미리 메일을 주고 받아 약속을 잡아두었고 예정보다 하루 늦게 그 공동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유인 즉 공항까지 마중나온 사랑하는 후배목사들(김종규, 조완태목사)이 본머쓰에 살고 있는 자기들의 집에 들려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룻밤 묵어가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바람에 그리 되었습니다. 후배들이 살고 있는 본머쓰도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바닷가의 작은 도시였는데 한국 학생들이 무척이나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을 가지 않았으면 정말 섭섭할 정도였습니다.
김목사의 정성어린 배려로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자기 차로 태워다 주는 바람에 브루더호프에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틀간을 머물며 함께 노동도 하고 대화도 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무소유로 공동생활을 하며 사랑하며 즐겁게 사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를 많이 느끼며 지냈고, 둘째날 밤에는 한국인 가정들과 체험자들만을 위한 특별 대화시간을 만들어주어서 공동체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세계를 향해 좋은 교육을 펼치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두 달간의 영국 경험은 아직도 할말이 많을 정도로 아주 유익했습니다. 좋은 교육을 경험했고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을 만났으며, 그 문화를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잘 몰랐던 그들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두 달 만에 영어가 그렇게 빨리 느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로 말하거나 글을 쓰는데 대한 두려움이 많이 극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이 세계를 향해 문을 열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를 원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들을 초청해 이렇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제력과 지도력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 교육을 할 수 있을 때 세계속에서의 우리의 지도력과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