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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心修行章 제 9 강
불법을 수행하는 길이 百千三昧頓熏修(백천삼매돈훈수)라고 했지만, 백 천 가지 삼매법문이 있다고 그랬지만, 그 가운데 제일 큰 길이 네 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참선하는 문· 염불하는 문· 기도하는 문· 경을 보고 관하는 문.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남대문 = 格外向上門(격외향상문) = 參禪門(참선문)
참선에는 크게 나눠서 두 가지가 있는데요.
敎外禪(교외선) = 부처님의 교법 밖에 있는 선.
敎內禪(교내선) = 부처님의 교법 안에 있는 선이 있어요.
부처님의 교법 밖에 있는 선을 참선이라고 하고,
부처님의 교법 안에 있는 선을 觀禪(관선)이라고 합니다.
관선에 있어서는 모든 수행이 “관”하는 생각.
볼 觀(관)자 이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지극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관선인데요.
관선은 어디든지 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불교가, 시대적인변천에 따라서 부처님 당시부터 자꾸 수행하는 방법도 그때 그때 따라서 좀 변해 내려왔거든요. 변해 내려와서 중국에 와서는, 참선법이 크게 발달을 했고, 남방에서는 관선으로 많이 머물렀고, 티베트· 몽고 근방에서는 만다라 = 다라니법 = 밀교로서 많이 발달을 했어요.
남대문을 격외향상문이라. 부처님의 격외법문으로서 향상 시키는 문이라 그래서 참선문 이라는 뜻입니다.
서대문 = 念佛往生門(염불왕생문). 염불을 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염불왕생문...
북대문 = 依敎修行門(의교수행문). 부처님의 교법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문이다.
부처님의 교법을 보고 교법대로 수행하는 길이다 이 말이지요. 경· 율· 론. 3장을 닦아가는 길이다 이 말이지요.
동대문 = 眞言總持門(진언총지문). 진언을 하면서,
다라니 = 총지거든요. 모든 뜻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말씀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이치가 다 그 가운데 구족되어있다고 해서 총지라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관법만이 크게 발달을 했고, 지금 현재 남방 불교에서도 관법만이 그냥 그대로 발달을 하고 있습니다. 원시불교 그대로지요.
그것을 좋게 말하면 근본불교라고 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승불교라고 그래요.
근본불교라고 해야지 원시불교. 소승불교라고 하면 아주 싫어하는 스님은, 대승불교라는 것은 중국에서 순전히 만들어 졌고, 이것은 진짜 불교가 아니라고 하는 식으로 자꾸 이죽거리지요. 남방에서 이죽거리는 것은 괜찮은데, 한국에 와서 자꾸 그렇게 이죽거리니까 밉상 받고 있어요. 겨울에는 벌벌 떨면서 남방 옷 입고 그래요.
부처님 당시에도 예배하고 기도 하는 문은, 부처님 당시에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 지극정성을 다 하는 이것은 다 있게 마련이었거든요.
예배하는 길도 있었고요.
부처님을 생각하고 念하는 염불하는 길도 있었고요.
기도 하는 길이, 두 발꿈치를 들고 합장을 하고 섰는 翹足合掌祈禱(교족합장기도) 라는 것이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빈바사라”라고 하는 왕이 아들이 없어서 사방 물어보니까, 어떤 신선이 말하기를
“설산에 가면 아사다 라고 하는 신선이 있는데, 오신
통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대왕하고 가장 인연이
가깝소. 그렇지만 아직 그 사람이 아직 몇 년 남았으
니까 기다려야 될 것이요.”그러니까
“내가 왕인데 내 하고 싶은 대로 권리를 쓰면 되는 것
이지 기다릴 것이 뭐 있느냐? 그 사람이 죽으면 나
한테 꼭 오느냐?”고
“틀림없이 오기는 오게 되어 있는데 아직 시기는 멀었
다.”고
“그 시간을 누가 기다리고 있겠느냐?”고 가서 죽여 버렸어요. 죽이니까 와서 태어났는데...
인연이 가까우니까 와서 태어났는데요. 관상쟁이가 보고“이 아이는 앞으로 대왕을 죽일 것이요.”이러거든요. 아사세라고 하는 말이 未生怨(미생원) 이라. 태어나기 전부터 원수다 이 말입니다.
죽였으니까 원수 아닙니까? 죽였으니까 원수를 받는 것이지요.
“그래요? 그러면 안 낳은 것만 못한데”그러면 지금 없애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해서, 아이를 고층 누각에서 밑으로 던져 버렸어요. 죽어버리라고...
던졌는데 궁녀가 지나가다가 치마로 아이를 받았거든요. 그래 손가락이 몽창 부러져 버렸어요.
나처럼 아사세왕은 한쪽 손가락이 없어요. 그래도 살았으니 두 번 죽일 수야 있나요? 살았으니 어떻하겠어요? 그냥 키웠어요.‘설마하니 뭐 그럴려고?’
그 자식이 커서 어찌나 난폭한지 더군다나 외아들이니까... 커서는 조달이를 만났거든요. 제바달다...
제바달다는 부처님 사촌인데, 부처님 키는 장 육 끝. 열 여섯 자니까 부처님보다 키가 조금 작아요. 부처님은 4월 8일에 태어났고 조달이는 4월 9일에 태어났으니 하루 늦게 태어났지요. 뭐든지 한 발짝 떨어져요. 조금 떨어지지 많이 떨어지지는 않아요.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을 겨룰 사람은 조달이 밖에 없어요. 씨름을 해도 부처님보다 한 수 지고, 무엇을 해도 한수만 져요. 두 수는 안 져요.
부처님은 코끼리를 한 손으로 드는데, 조달이는 두 손으로 들어요. 기운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렇거든요.
나중에 조달이가 부처님을 배반하고, 아사세한테 가서 “너는 너희 아버지 죽이고 네가 왕이 되고 나는 우리 부처님 죽이고 내가 부처가 되고, 그래서 마갈다 국에 신왕 신불이 출세하면 얼마나 즐겁고 좋겠느냐? 나는 부처가 되고 너는 왕이 되고...”
조달이는 부처님을 죽이려고 몇 번 시도를 하다가... 부처님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내면 칼 가진 놈들이 부처님만 쳐다보면 그냥 부처님의 자비삼매 매력으로 그만 머리를 숙이고 칼을 놔 버리고 제자가 돼버리고, 제자가 돼버리고... 부처님은 설법하기 전에 감화력이 있기 때문에 쳐다보기만 하면 그만 머리를 숙여 버리거든요.
녹야원에 5비구 제도 할 때요. 5비구들이 본래 시봉을 했거든요 다섯 사람이... 부처님이 계속 6년 동안 거의 단식하다시피 一麻一粟(일마일속) 삼씨하나 좁쌀 한개 잡숫고 사셨는데, 나중에 생각하기를 출가한 사람은, 도 닦는 사람은 너무나 고행에만 치우쳐도 邪見稠林(사견조림)에 빠지는 것이요.
너무 잘 먹고 잘 입어도 五欲樂(오욕락)에 淤裏(어리). 오욕의 진흙속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해.
그러니까 잘 먹는데도 치우치지 말고, 너무 안 먹는 데도 치우치지도 말고, 잠을 너무 자도 안 되고, 너무 안자도 안 된다 이겁니다.
‘中道(중도)를 취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내가 뭘 좀 먹어야 되겠다.’이렇게 생각을 먹었더니 보리수 수신이 “순탄”이라는 목녀를 시켜서 우유젖을 짜서 우미죽을 끓여서 三斗六升(삼두육승). 서 말 여섯 되. 우미죽을 바쳤다.
부처님이 자시니 이것을 먹여주니까 생력이 충실해 졌어요. 왜 그러냐 하면,
我身中有八萬毫(아신중유팔만호)하니 내 몸뚱이에는 8만개의 털이 있는데,
一一各有九億蟲(일일각유구억충)이라. 낱낱의 그 털구멍마다 9억 마리의 벌레가 있답니다.
濟彼身命(제피신명)하여 受身施(수신시)라. 그 신명들을 살려주기 위하여 내가 지금 신시 을 받는 것이랍니다.
我必成道(아필성도)하면 先渡汝(선도여)하리라.
내가 도를 성취하면 너부터 먼저 제도하리라.
그전에는 그것이 무슨 소리냐? 그랬는데 지금은 과학적으로 그것이 다 맞는답니다.
터럭구멍에 9억 마리의 벌레가 있다는 것. 다 맞는답니다. 이 몸뚱이가 전부 벌레 뭉치래요. 그래 잡수자마자 생력이 충실해져서 도를 성취했거든요.
5비구가, 그 잡수시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상의해서 녹야원으로 떠나 버렸거든요. 부처님을 내버리고 떠났거든요.
그랬는데 부처님이 그래도 인연 가까운 자들이 그자들이니까 ‘제도해야 되겠다.’해서 거기를 갔는데, 저 멀리서 부담 사마님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 양반 오거든 우리 절대 절하지 말자.
“일어나지도 말자.”
“아는 체도 하지 말자.”
“모른체 하고 가만히 눈감고 앉아있자.”저희들끼리 아주 약속을 했거든요. 약속을 했는데,
부처님이 앞에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절을 하면서,“여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부처님이 떡 하니 사제법문을 설법하셨지요.
“이 세상에 사람이 난다는 것은 다 괴로운 것이요.
나서 늙는 것도 괴롭고,
병드는 것도 괴롭고,
죽는 것도 다 괴롭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하는 것도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도 괴롭고,
구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는 것도 괴로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해도 마음이 항상 뒤끓고 있는 것이 괴로
운 것이다.
오음이 치성하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그랬거든요.
5비구가 부처님한테 잘 안하기로 결정을 했는데도, 절을 했듯이 조달이가 사람을 사서 부처님을 죽이려고 보냈는데도, 부처님을 보면 전부 그냥 꿀어 엎드려서 다 제자가 돼버리고... 제자가 돼버리고 실패했어요.
마지막에는‘에잇, 내 손으로 직접 한 번 해보는 수밖
에 없다.’
부처님이 왔다 갔다 하시는데 뒷산 바윗돌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까 왔다 갔다 하거든요.
“온다. 온다. 온다. 돌 던져라. 던져라.”사람을 시키니 돌을 던지려하면 힘이 하나도 없어 못 던져요.
지나가 버리면
“에헤 지나가 버렸네. 또 이쪽으로 온다. 온다. 온
다. 던져라. 던져라.” 또 힘이 하나도 없어 못 던져요. 몇 차례를 그러다가 조달이가 직접 큰 바윗돌을 던졌거든요. 큰 바윗돌이 부처님 머리위에 막 떨어지는 순간에 축봉산 산신이 발로 차 버렸거든요. 바윗돌을 차 버리니까 바윗돌이 쪼개져서 쪼개진 파편이 부처님 발등을 탁 찍었어요. 발등에서 피가 났지요.
부처님이 쳐다보니까 조달이가 그러거든요.
“아 불쌍한 자여, 섶을 지고 불에 뛰어 들어가는 자여,
네가 그래서 복과 덕을 성취 하겠느냐?”고 부처님이 꾸지람을 했거든요.
그 소리 들으니까 부아가 버쩍 나니까 부아가 나자마자 生陷地獄(생함지옥)이지요. 밑이 쩍 갈라지면서 생함지옥에 갔다 그랬거든요.
아사세왕은 저희 아버지를 석실에다 가뒀지요. 돌 굴에다 가둬 놓고 굶겨 죽이는데 저희 엄마가 위제이부인이라고 어쨌든지 내가 가서 만나야 되겠다고 자꾸 그러니까 자기 엄마만 출입하게 했지요.
저희 어머니가 금단추를 굵게 잘 만들어서 거기에다 포도주를 넣고, 어쨌든 음식을 어디다 감추고 가서 먹이지요. 그것만 먹어도 안 죽어요.
죽을 때가 되어도 안 죽으니 이상스러워서 조사를 해보니, 저희 엄마가 단추 속에 먹을 것을 갖다 줘서 살거든요. 부아가 나서 자기 엄마를 치려고 달려드는데, “기바동자”라는 이가 나서서 하는 말이
“지금까지 역대의 역사적으로 모든 임금들이 자기 아버지
를 치고서 왕이된 사람은 많지만,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오역죄를 범하지
마시오.”
“저 할마씨 못 들아가게 하라.”고
“저 할마씨 가두라.”고. 자기 엄마 아버지 둘을 다 기뒀지요. 자기 엄마한테는 먹을 것을 주고요.
자기 아버지는 굶어 죽었어요.
어머니는 굴속에 갇혀서는 “나무불”“나무불”하고 부처님한테 예불을 했어요. 간절히 예불을 하면서
“나는 어찌 저런 악한 자식을 낳아서 고생이 이렇게 심합니까? (인과를 알기야 알지요. 왜 이 사바세계가 구태여 그렇게 해야 하느냐 이겁니다.) 다시는 이 사바세계에 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사바세계 말고 항상 즐겁기만한 더 좋은 국토가 없습니까?”그랬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턱 앞에 나타나서 내 손끝을 보라고 서방을 가르치니까 서방극락세계가 그대로 현전을 했어요. 척 나타났어요.
“저기 계신 부처님이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을 항상 염하면 一切衆苦(일체중고)가 여러 가지 고통이 다 없고,
但受諸樂(단수제락)이라. 다만 모든 낙만 받는 곳이 저 극락세계이니 극락세계를 가고록 발원을 해라.”
부처님 당시에 염불법이 생겼는데 염불법에는 세 가지 염불법이 있어요.
“나무아미타~ 불”하고 일심으로 부르는 稱名念佛(칭명염불). 다음에는
부처님 얼굴을 쳐다보고. 합장하고 부처님 얼굴만 생각하는 觀像念佛(관상염불). 그것이 교적적 이라는 것이지요.
다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나무라는 말은 귀의한다는 말이고, 아미타불이 無量壽(무량수)· 無量光(무량광).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을 가지고 있다.
한량없는 수명은 시간이고 한량없는 광명은 무한한 공간을 말합니다. 빛은 공간이고 壽는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한량없는 공간과 한량없는 시간 속에 모든 生死(생사)의 大夢(대몽)을 깨달으신 분이 아미타불이라는 말입니다. 그 실상. 그 진리의 경계를 가만히 관하고 앉아 있는 그것이 참선입니다. ←實相念佛(실상염불)이라고 합니다.
칭명염불· 관상염불· 실상염불 ←이렇게 세 가지 염불이 있습니다.
2500년 이후 부처님 돌아가신 이후로 약 천 2 ~ 3 백 년 전 까지는 이 염불법이 아주 성했었거든요.
원효스님당시만 하더라도 천 300년 전이니까 염불법이 성했었거든요. 그래서 예불하고 염불하는 법. 그러니까
助響巖穴(조향암혈)로 爲念佛堂(위염불당)하고
哀鳴鴨鳥(애명압조)로 爲歡心友(위환심우)니라.
拜膝(배슬)이 如氷(여빙)이라도 無戀火心(무연화심)하며 餓腸(아장)이 如切(여절)이라도 無求食念(무구식념)이니라. 그랬거든요.
배슬이 여빙이라도 부처님한테 절하는 것은, 염불하고 절하고 그 당시는 그랬다 이 말입니다.
원효스님당시 참선법이 별로 안 들어왔었다고 그래요.
그때 조금씩 조금씩 들어왔는데 도의국사가 중국으로부터 시작해서格外禪(격외선)이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그때 성하지는 않했었다는 겁니다.
일심지성으로 절을 하다보면, 그렇게 기도를 하다보면, 신심이 꽉 차서 전신 염불을 하다보면, 전신으로 기도를 하다보면, 일체를 망각해 버리거든요. 내가 지금 기도한다는 생각까지도 망각해 버려지고 오전이다 오후다 그런 생각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러니까
拜膝(배슬)이 如氷(여빙)이라도 無戀火心(무연화심)이라.
불 생각나는 마음이 없어요. 억지로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저절로 없어져버린 겁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배고프다는 생각까지 없어져버렸다는 얘깁니다. 일심삼매에 들어가서 그렇게 하도록 공부하란 말입니다.
억지로 없애려고 한들 없애지나요? 배고파 죽겠는데 “나 밥 생각 없다.”그러면 그것이 거짓말이지 그게 되나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최소한도 해인스님만큼은 해야돼요.
해인스님은 군대 갔다 와서 100만배 절 했잖아요.
장경각에서 100만배 절을 할 때, 한 번 양말을 쑥 벗는데 보니까 발가락에 다다다다다닥 염주 같은 것이 붙었어요.
그것이 전부 다섯 발가락에 붙은 굳은살이었어요. 그리고 무릎팍을 한 번 보여 주는데 딱딱한 깡밥 같아요. 거기는 송곳으로 찔러도 안 아프대요.
이제는 완전히 굳은살이 되어서 괜찮겠지 했는데 어쩌다가 굉장히 아파고 팍 쓰러진 답니다. 쓰러져서 만져보니까 껍데기는 딱딱한데 속에서 찔꺽찔꺽찔꺽 해가지고 피고름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제일 곤란한 것이 코피가 나는 것이 제일 곤란 하더랍니다.
코피가 나기 시작해서 자꾸 코피가 흐르니 어떻게 해볼 재주가 있나요? 그래서 저쪽 장경각 안에 옆문에 들어가서 기대고 있으면 코피가 뒤로 들어가서 꿀꺽꿀꺽 한참 속으로 들어가서 그치고, 그치면 또 기어이 채우고, 하루에 평균 5000배. 6000배. 7000배까지도 했어요.
처음에는 3000배를 했는데 한두 달 하다보니까 3000배가 힘이 안 들더래요.‘힘이 안 들어 가지고야 기도 되겠나?’ 싶어서 4000배로 올리니까 빡빡 하더랍니다. 나중에는 4000배도 별로 힘이 안 들더랍니다.‘힘이 안 들면 기도 아니지, 힘이 들어야 기도지.’그래서 5000배로 올렸다는 겁니다. 5000배로 올리니까 빡빡해서 다른 시간이 없었대요. 기도 딱 마치고 뜀박질해서 저 쪽에 가서 소변을 봐야 공양시간에 참석할 수 있는 겁니다. 어디 다른 것 쳐다본 새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날마다 5000배를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신심이 나서 (그 장경각이 말도 못하게 추운데 거든요.) 그렇게 추운데 신도들이 왔는데 신도들은 추워서 벌벌벌벌 떠는데 법문해 준다고...
춥고 덥고 그냥 다 잊어버린 것이지요. 어디서 그렇게 말이 나오는지...
이 좋은 것을 안 할 수가 있느냐 하는 식으로...
처음에는 원력을 세우기를 한 10년 묵언하고 정진하겠다고 그러더니 어떻게 절 짓는데 물리가 터져서는 천왕사 가서 연습을 한번 해보고 지금 약천사(제주도서귀포). 약천사법당이 동양 최대 건물 아닙니까?
아무튼 우리나라 에서는 최고 큰건물 아닙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거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자기의 개인 힘으로...
그런 불사를 하려면 그런 저력이 없고선 안 되는 겁니다.
아무나 안 되는 겁니다. 더군다나 이 몸뚱이 하나 나 부터가 늙고 병들고 신심 없고, 옛날만큼 우리도 신심이 없어져 버렸거든요. 어쨌든지 살살 편안하려고나 하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언제든지 이 오욕락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않거든요. 어쨌든지 간에 편안하려 하고, 어쨌든지 재물을 좀 더 많이 가지려고 그러고, 어떤 권세를 부릴려고 하고. 어떤 명예에 연연하고, 중생놀음이란 것이 이런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렇게 신심으로 지극정성으로 절을 할 때,
拜膝(배슬)이 如氷(여빙)이라도 無戀火心(무연화심)이라.
불 생각나는 마음이 없는 것이지요.
餓腸(아장)이 如切(여절)이라도 無求食念(무구식념)이 거든요.
성남사에 月華스님이 있는데요. 반석에다 글씨를 쓰다보니까 시간가는 줄을 다 잊어버렸다고...
배가 고픈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것 같아서 일어나 보니까 그냥 천지가 캄캄한데 시계가 새벽 3시가 됐더래요.
그 오밤중에 불도 안 켜고 어떻게 반석위에다 글씨를 썼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삼매경에 들어 간 거거든요. 밥 먹을 것도 다 잊어버리고 글씨 썼던 것이지요.
기도 하다가 그런 고비를 한번은 넘어가야 비로소 기도 성취에 가까운 것입니다.
참선을 하다가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계가 한번은 그렇게 지나가야 득력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없이는 기도 성취 되었다는 소리는 그건 헛것입니다. 요행수만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 했으니까 설마 부처님 영겁이 있을런가?’다다요행수지요. 그것은 신심이 없는 짓이지요.
일체를 망각 했을 때, 배고픈 것도 망각하고 추운 것도 망각하고, 춥고 배고픈 것을 다 망각 했을 때,
그것이 飢寒(기한)의 發道心(발도심)이거든요. 춥고 배고픔에 도심이 발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등 따스고 배부르면 飽煖(포난)엔 色淫心(색음심)이라
등 따스고 배부르면 음심밖에 안 난다 그 말이지요.
축 생각이 풀어져서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말이지요.
忽至百年(홀지백년)이어늘 云何不學(운하불학)이며
홀연히 100년에 이르는 것인데, 100년 이라는 것은 지살만큼 다 살아서 죽을 때 됐다는 말입니다.
3000년 전에는 백세 정명이라고 그랬지요?
지금 현재는 70세 정명인데요.
1000년 전만 하더라도 80세 정명 아닙니까?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중간 넘어온 곳에 빨갛게 쓴 말이 무슨 말인가요?
순전히 제 생각으로는 '뽀톡뽀톡'은 '조금씩 조금씩' 이라는 뜻 같고, 뒤의 '겨괴사니'는 '거게 禪이' 즉 '거기의 禪이' 같습니다. 참고로 '도의국사(道義國師) (생몰년 미상)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을 전한 조계종 원류인 가지산문을 개창했던 조계종조(曹溪宗祖)이시다. 신라의 고승. 성은 왕(王), 법호는 명적(明寂), 시호는 원적(元寂)이며 도의는 법명이다. 북한군(北漢郡) 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임신한 지 39개월 만에 낳았다'고 합니다.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_()()()_
보현님! 감사합니다. 저도 보현님과 같은 생각이었으나 돌다리도 두두려보고 건너려구요. 도의국사는 진짜 몰랐구요. 의견 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자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계속 늦게늦게 올리드라도 양해 하시길 바랍니다._()_
대원성님! 바쁘실텐데도 답글을 주셨군요. 비록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도움이되실까해서 말씀드렸는데 대원성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사정이 되시는데로, 천천히 올려주세요. 이렇게 올려 주신는 것으로도 감사할 뿐 입니다..._()()()_
대원성님, 감사합니다. _()()()_
拜膝이 如氷이라도 無戀火心이라...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 _()()()_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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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말씀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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忽至百年(홀지백년)이어늘 云何不學(운하불학)이며...백년이 잠깐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랴.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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